대한민국의 모든 젊은이들은 군대에 가지만 군대가 정말로 좋아서 자발적으로 가는 젊은이들은 사실 많지 않다. 그만큼 군대는 대다수의 젊은이들에게 피하고 싶은 곳이자 두려운 곳이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자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모병제를 실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신세대 훈련병들에게 군인다운 품위와 절도, 상관에 대한 복종,
부대 전체의 공익을 우선하는 태도가 몸에 배도록 가르치고 동시에
새로운 꿈과 희망을 품게 만드는 일로 논산 육군훈련소의 하루하루는 바쁘기만 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의 군대가 예전의 군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리지고 발전했다는 점이다. 이런 변화와 발전 가운데 가장 자주 회자되는 것이 병사들의 일상생활 측면이다. 훈련을 받고 경계근무를 서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혹한과 폭설, 폭염과 비바람 속에서 적과 대치하고, 끝도 없는 길을 걸어 행군을 하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오늘날의 훈련소는 예전의 훈련소와는 많이 다르다.
일부 속옷은 손으로 빨아 입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빨래는 세탁기로 하거나
세탁공장에 맡기고, 설거지는 식기체척기로 한다.
훈련병들이 훈련에만 열중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진 것이다.
반면에 병사들의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막사는 10년 전과 다르고 20년 전과는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졌다. 재래식 변소는 최첨단 수세식 화장실로 바뀌었고, 생활실 안에는 개인용 침대가 놓였다. 군복을 입은 신분만 아니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예전의 짬밥은 디저트까지 포함된 맛좋은 영양식으로 바뀌었고, 주말에는 대부분 훈련이 없다. 빨래는 세탁기로 해결하고 한겨울에도 샤워기에서는 언제든 뜨거운 물줄기가 쏟아진다.
이렇게 병사들의 생활이 바뀌는 동안 이들의 의식도 달라지고 공동체 생활의 내용도 달라졌다. 상명하복이 모든 군인들의 필수 덕목이지만, 예전에 비하면 요즘의 군대는 개인을 더욱 중요시한다. 근무를 하거나 훈련을 받는 시간이 아니라면 개인의 사생활은 철저히 존중되고 보호되며, 병사들 사이의 구타나 가혹행위는 어느 부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일이 되었다. 물론 지금도 탈영병이 생기고 구타 사고가 일어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일부 병사들 얘기다. 우리 사회에서 사고나 범죄가 없는 날이 없듯이, 수많은 병사들로 이루어진 군대라는 이름의 사회에서도 사건이나 사고는 끊임없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가정에서 교육을 빙자한 아동폭력이 많이 사라진 것처럼, 군대에서도 일상적인 폭력과 가혹행위는 이제 과거의 일이 되었다.
20년쯤 전만 하더라도 군대에서의 폭력과 가혹행위는 그야말로 일상적인 것이었다. 군대생활이 견디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훈련이나 근무가 아니라 고참들의 폭력이요 가혹행위였던 것이다. 이런 비인간적인 폭력과 가혹행위가 사라진 것만으로도 우리 군대는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의 병사들이 견뎌야 하는 군대의 가장 큰 고통 또한 그 내용이 많이 달라졌다. 게다가 소위 신세대 병사들이 군대의 주축을 이루게 되면서 예전에는 고통으로 간주되지 않았던 요소들이 이제는 병사들의 고통 가운데 새로운 항목으로 추가되기도 했다. 여기서는 이처럼 오늘날의 육군 병사들이 견뎌내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움들을 몇 가지 짚어보기로 하겠다.
먼저 신세대 병사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군대식 문화, 군대식 예절에 적응하는 것이다. 군대의 기강이란 다름 아닌 구성원의 몸에 밴 군대식 문화와 예절에서 나온다. 신속하고 정확하며 간명한 의사소통, 군인다운 품위와 절도, 상관에 대한 철저한 복종, 개인보다 부대 전체의 공익을 우선하는 태도 등이 몸에 배어 있지 않으면 이런 군대의 기강은 확립될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의 신세대 병사들에게는 이런 군대식 생활과 예절 자체가 너무나 몸에 익히기 어려운 요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엄격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고, 나보다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태도를 배우도록 강요당해본 적이 없다. 오로지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법만을 배우며 자라난 세대가 이들이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파편화되고 개인화된 인생관을 몸에 익힌 젊은이들에게 육군훈련소의 교육은 여러 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걸음걸이와 앉은 자세까지 일일이 새로 가르치고, 자신은 최대한 있는 힘을 다 짜내고 있는데도 더 많은 힘을 짜내라고 분대장들이 소리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고, 내 옆에 서 있는 다른 훈련병의 잘못으로 나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기 어렵고, 나보다 하나도 잘나 보이지 않는 다른 훈련병이 나보다 더 편한 일을 맡는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들에게 군대는 온갖 통제와 잔소리만이 넘쳐나는 세계, 공정한 경쟁은커녕 공평한 대우조차 인정되지 않는 세계로 비친다.
하지만 이들이 군대의 문화와 예절을 몸에 익히지 못한다면 정예강병은 헛된 구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훈련병들을 가르치는 교관이나 분대장들은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들이다. 부모의 무한한 보살핌과 선생님들의 무한한 관용 속에서 자기 멋대로 살아온 신세대 병사들의 의식을 바꾸어, 이제는 그들이 누군가를 보살피고 누군가와 더불어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먼저 각인시켜야 한다는 것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공동체 생활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하고, 그 구체적인 방식들을 끊임없이 교육시키면서 전우애를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세대 병사들이 군대에 처음 와서 겪는 또 하나의 어려움은 체력적인 것이다. 훈련소 교관이나 분대장들은 한결같이 요즘 젊은이들은 덩치에 비해 체력이 약하다고 진단한다. 그렇다고 이들의 체력에 맞추어 훈련을 약하게 시킬 수는 없다. 반대로 이들의 체력을 무시하고 무작정 힘든 훈련을 시킬 수만도 없다. 예전 같으면 패고 굴려서라도 훈련을 시켰겠지만 요즘 신세대 병사들에게는 당연히 이런 교육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자신의 새로운 내일을 위해 기꺼이 오늘의 고통을 참아내는
육군훈련소의 훈련병들은 거칠 것이 없다.
훈련소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다. 먼저 훈련소에 입소하자마자 아침저녁으로 구보를 하게 하고, 멀리 떨어진 야외 교장들을 오가는 동안 끊임없이 행군을 시킨다. 행군을 할 때도 무작정 시키는 것이 아니다. 처음엔 가벼운 군장을 메고 행군을 하게 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군장의 무게를 늘려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런 훈련을 통해 처음 입소할 땐 10킬로그램 정도의 군장을 메고 1시간 정도 행군을 하는 것조차 버티기 힘들어하던 훈련병들이 20킬로그램 무게의 완정군장을 거뜬히 메고 행군하고 나중에는 일선부대에 가서 장거리를 행군할 수 있는 체력을 기르게 되는 것이다. 규칙적인 생활과 영양식, 끝없이 되풀이되는 행군과 훈련들, 그리고 음주나 흡연 등 체력을 저하시키는 생활습관과의 단절을 통해 훈련병들은 5주 후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체력의 소유자들로 변모한다.
훈련소, 특히 전국에서 징집된 다양한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육군 훈련소에서 훈련병들이 느끼는 또 하나의 고통은 ‘도대체 왜 이런 힘든 훈련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많은 훈련병들이 억지로 군대에 끌려왔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그렇다 보니 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열의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군대는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곳이며, 시간만 때우면 군 생활은 끝난다는 피동적인 생각을 하는 훈련병들이 적지 않다. 이들을 적극적으로 훈련에 참여토록 만드는 일은 사실 교관들이나 분대장들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형식적으로 훈련에 참여하는 훈련병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이들에게 일일이 정신교육을 시킨다거나, 이들만을 위한 특별교육을 시킬 여유는 없다. 모든 훈련병들을 똑같이 대우하면서 똑같이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체력을 길러주고 전투 기술을 숙달시킬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이들만을 위해 교관이나 분대장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사실 많지 않다.
이런 사정들을 고려할 때 훈련소와 훈련소에 입소하는 젊은이들이 가장 신경을 써야 할 점은 바로 군대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실질적인 훈련의 성과를 높여 진정한 정예 병사를 육성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훈련병들의 입장에서 보다 활기차고 즐거운 훈련을 받기 위해서도 그렇다. 인식을 바꾸지 못한 훈련병들에게 훈련소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안겨주는 장소로만 기억될 것이고, 이렇게 해서는 육군이나 훈련병 자신이나 얻을 것이 하나도 없다.
군대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위해서는 군대 스스로의 노력도 절실하다. 2년여의 군대생활이 단순한 봉사와 헌신의 시간으로 끝나게해서는 안 된다. 병사들의 일방적인 희생과 헌신을 통해서만 군대가 유지된다면, 이는 군대를 위해서든 병사들을 위해서든 바람직하지 않다. 군대는 병사들 개개인의 장점과 특기를 더욱 강한 군대를 만드는 데 활용해야 하고, 병사들은 자신의 관심과 장기를 더욱 갈고 다듬는 시간으로 군대를 활용해야 한다. 병사들은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우고, 군대는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군사적 자원으로서의 단순한 병사가 아니라 자발성과 책임감으로 중무장한 진정한 정예 병사들을 통해 어떤 적과 만나도 물러서지 않을 최강의 군대를 육성해야 한다.
이처럼 병사들의 자발적 참여가 강군 육성의 핵심적 요소라는 것을 일찌감치 파악한 부대도 있었다. 예컨대 육군훈련소가 그렇다. 연무대에서는 수시로 훈련병들의 훈련 참여도와 성취도를 평가하고 뒤처지는 훈련병들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더 잘하는 훈련병들을 포상하는 방식으로 자발적인 훈련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특등사수를 수료식 때 별도로 포상하는 것은 물론, 하루하루 훈련 성과를 측정하여 남다른 성취를 이룬 훈련병들에게는 부모님과 통화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등 여러 종류의 포상을 실시하고 있다. 훈련 전에 이런 훈련소의 포상 방침을 미리 설명하기 때문에 훈련병들은 조금이라도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해 훈련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그 성과 또한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훈련소의 적극적인 노력에 훈련병들의 군대에 대한 인식 전환과 이로 인해 생겨나는 자발성이 보태진다면 훈련의 성과는 더욱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논산 육군훈련소는 지금도 다양한 방식의 정신교육과 교육 프로그램들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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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보다 아름다운 젊음은 없다 김환기 저/김상훈 KISH 사진 | 플래닛미디어
창설 60주년을 맞은 논산 육군훈련소 이야기. 지난 60년 동안 육군훈련소는 수많은 변화와 굴곡, 발전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훈련에 대한 열의와 열정만은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시설이 열악하든 말든, 외부의 상황이 좋든 나쁘든, 육군 최고의 정병 육성을 위한 육군훈련소의 땀과 노력은 한시도 멈춘 적이 없다. 과연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6.25전쟁을 치르는 와중에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육군훈련소의 60년 역사를 생생한 사진과 함께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