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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시절 먹던 라면, 가장 지혜로운 음식 – 배우 전무송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라면 누구처럼이 아닌 바로 나, 전무송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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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한 냄비 가득 끓여서 몇 가닥씩 각자 그릇에 덜어 먹을 때의 정감을 그 어떤 음식이 대신할 수 있겠어. 서로 집어먹으려다 면발이 얽히기도 하고 끊기기도 하면서 마음을 하나로 엮어주는 것은 라면만의 마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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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배고픈 예술이라고 다들 알고 있어. 정말 배고프긴 했어. 예전엔 그림 그린다고 하면 환쟁이, 글 쓴다고 하면 폐병쟁이라고 불렀지. 예술가가 전부 배를 곯았던 시대였으니까. 그래서 내가 하려는 얘기가 가난한 예술가에게 가장 은혜로운 음식인 ‘라면’이야. 하지만 라면이 싸고 만만한 음식이기 때문만은 아냐. 라면을 한 냄비 가득 끓여서 몇 가닥씩 각자 그릇에 덜어 먹을 때의 정감을 그 어떤 음식이 대신할 수 있겠어. 서로 집어먹으려다 면발이 얽히기도 하고 끊기기도 하면서 마음을 하나로 엮어주는 것은 라면만의 마력이 아닐까.

그 배고픈 걸 왜 시작하게 된 게 볼트와 너트 때문이었지. 인천공고 기계과를 졸업하고. 인천기계공작창이라는 곳에 인턴사원으로 갔어. 3교대로 볼트와 너트 깎는 일을 했는데, 난 저녁에 출근해 다음 날 오전 5시에 퇴근하는 팀이었어. 기계 소리만 들리는 선반에서 정신없이 작업을 하다가 어느 순간 바닥을 보니 쇠가 깎여서 떨어져 있더라고. 무심히 봤는데 녹이 슬고 있었어.

‘내가 저것처럼 서서히 깎여가며 녹이 스는 거 아닌가?’

순간 스치는 생각에 사로잡혔지. 볼트와 너트가 깎이면서 물품으로 만들어지는 걸 보고 좋아해야 하는데 녹이 스는 것이 먼저 보였으니 내 길이 아니었던 거지. 일주일 만에 나왔어. 방황하면서 영화 구경을 많이 했지. 나도 하고 싶더라고. 그때 <아리랑>이라는 영화잡지가 있었는데 거기 보면 아무개가 어디서 픽업됐다는 기사가 나왔어. 제일 유력한 데가 충무로 태양다방이더라고. 매일 거기로 출근했지. 입구에 앉아서 커피하나 시켜놓고 딴에는 멋 좀 내고, 종일 있어봐야 누가 봐주나. 헛꿈이었지.

결국 들어간 게 드라마센터 부설 연극아카데미였어. 내가 1기로 공부했는데 신구, 반효정 씨 등이 동기야. 지금의 서울예술대학 전신이지. 1962년에 입학했는데 2년 동안 춘향전, 마의태자 등을 하다가 군대에 갔어. 다녀와서 동랑 유치진 선생님이 만드신 극단 ‘드라마센터’에서 올린 ‘생일파티’에 출연하게 됐어요. 해롤드 핀터가 쓴 부조리 연극이야. 사극이나 리얼리즘 연극을 주로 했던 내게 부조리극은 생소하기만 했어. 왜 저러고 있는지 모르겠고, 대사도 무슨 말인지 통 알 수가 없었고. 이해가 안 되니까 엄청나게 헤맸지. 그러니 연출자가 배역을 바꾼 거야. 나는 대역으로 주저앉았고. 내가 가만 안 있었지. 술을 잔뜩 마시고 지하 연습실에 들어가 발로 밟고 잡아 뜯고 난리도 아니었어.

다음날 유치진 선생님이 학생들 시켜서 날 부르셨어. ‘이제 죽었구나. 나가라고 해도 할 수 없지 뭐’ 속으로 그러면서 찾아갔어. 선생님이 “어저께 어떤 미친놈이 술 먹고 땡강 놨다며?” 하셔. “제가 그랬습니다.”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자백했더니 “훌륭한 배우가 되려면 먼저 인간이 돼야 한다” 하시는 거야. 그때 엄청난 깨달음이 왔느냐고? 천만에. 속으로 “인간 아닌 놈이 어디 있어” 했지. 그 정도로 철이 없었던 거야. 나중에야 그날 하신 말씀이 새록새록 새겨졌어. 인간이 된다는 건 제대로 살아내는 거라는 거. 세상을 제대로 보고 제대로 듣고,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표현하는 게 배우의 기본이란 것도.

드라마센터에서는 매일 아침 8시에 모였어. 도봉구 창동에서 살 때였는데, 아침마다 작은 비닐봉지를 들고 나왔어. 거기에 추리닝 한 벌, 신발 한 켤레, 그리고 라면 한 봉지가 들어 있었지. 그게 일용할 하루 식량이었어. 드라마센터 건물 지하에 보일러실이 있었거든. 할아버지 한 분이 근무했는데, 점심때 그 양반이 라면을 끓여 먹었어. 우리는 아침에 도착하자마자 각자 준비한 라면을 맡겨뒀지. 점심때가 되면 우르르 보일러실로 가는 거야. 그 라면 냄비가 지금도 눈에 선해. 매일 거기다 끓여먹으니 하도 닦아서 속은 반질반질한 데 겉에는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검댕이 눌어붙어 있었어.

우리가 내려가면 할아버지가 보일러실에 있던 큰 연탄을 꺼내놔. 예술의 주린 배를 잠시나마 부풀려줄 대작업이 시작되는 거지. 찌그러진 냄비에 라면 4개쯤 넣었어. 네댓 명이 모여서 먹으니 순식간에 동났지. 계란님이라도 하나 들어가 주시는 날은 그야말로 최고의 특식이었지. 라면이 채 끓기도 전에 없어졌으니까. 그거 먹고 연습하다 저녁 9시 반쯤 끝났어. 저녁식사는 기약이 없었지. 드라마센터 앞에 구멍가게가 있었어. 여염집 처마 밑에 임시변통으로 꾸며놓은 듯한 가게였어. 주로 사탕이며 빵을 갖다놨는데 라면도 끓여 팔았어. 정 배고프면 거기서 외상 긋고 라면을 또 먹었지. 가끔 소주도 곁들여서 먹으면 천상의 조화였지. 라면 한 젓가락에 소주 한 잔. 그걸로 충분했던 시절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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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덕분에 힘든 시절을 이겼어. 그래도 정말 그만두려고 한 적도 있었어. 나 혼자 살 때는 그나마 버텼는데 결혼을 하면서 많이 힘들어졌어. 수입이 어디 있어야지. 집사람이 옷 장사를 나섰지. 꿈이 있던 사람이었어. 결혼하면서 피아노를 하나 사왔거든. 적금 든 걸 깨서 산 거였어. 사실 집에 피아노 놓을 자리도 없었어. 그래도 집사람은 어느 날엔가 피아노를 치거나 가르치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지 몰라. 첫 딸 현아를 낳고 얼마 안 됐을 때야. 어느 날 아침에 트럭이 와서 그 피아노를 싣고 가는 거야. 어떻게 된 거냐고 했더니 집사람이 그래. “그동안 뭐 먹고 살았는데?” 빚내서 먹다가 피아노를 팔아서 갚아야 했던 거지.

내가 갖고 있던 대본을 막 집어던지면서 연극 그만둔다고 소리를 질렀지. “야, 내가 장사라도 나서면 세 식구 못 먹고 살겠어?” 그런데 집사람이 엉엉 우는 거야. “배우 전무송하고 결혼했지, 장사꾼 전무송하고 결혼 한 거 아니다.” 그래서 계속했어. 나 혼자의 꿈이 아니고 아내의 꿈, 그 꿈이 걸린 아내의 피아노까지 걸려 있게 돼 버렸으니까.

연극하면서 어떨 때는 ‘아, 되는가보다’ 싶더라고. 박수도 받고 주연도 맡고 하니까. 그런데 자꾸 하면서 뭔가 알게 되니까 더 두려워졌어. 욕심이라는 놈이 속에 똬리를 틀기 시작했어. 더 유명한 배우, 더 잘나가는 스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누구처럼’이라는 게 자꾸 떠오르면서 압박하더라고. 지금 서울예술대학의 유덕형 총장이 연출하던 작품에 나가게 됐어. 욕심이 나를 짓누르니까 헤매게 되더라고. 유 총장이 날 부르더니 하는 말이 “왜 자꾸 리처드 버튼을 따라가려고 하느냐”고 묻더라고. “네가 맨발 벗고 로켓 달아도 리처드 버튼을 못 따라간다. 하지만 리처드 버튼도 전무송을 못 따라온다. 너는 너다.” 그 말에 헛된 욕심을 벗고 나를 찾게 됐지.

요즘 안양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라면집에 자주 가. 처음 아이들을 만날 때 마음의 문을 열려면 라면이 제일이더라고. 일단 허물이 없어야 하잖아. 틀림없이 걔네들은 나를 어렵게 생각할 거라고. 그래서 내가 처음 하는 말이 “야, 라면 먹자!”였어. 대화할 때도 무대에 설 때도 일단 대상을 가깝게 생각해야 하거든. 연극 훈련은 어렵고 희한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해. 그래야 마음이 열리고 자기가 생각한 것을 무대에서 내놓을 수 있는 거지. 연극판에서 50년 가까이 고민해온 나하고, 이제 막 첫걸음 떼는 아이들하고 마주하고 먹을 수 있는 인간적인 음식이 라면 아니겠어. “라면 먹으러 가자”는 내 말은 “난 너희하고 놀면서 공부하고 싶어”라는 말과 같은 거지.

라면 먹으면서 분위기가 열리면 꼭 한 사람 한 사람의 신비로움에 대해 얘기해줘. ‘누구처럼’을 버리라는 거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인 너, 얼마나 신비해. 타고난 능력 이상의 사람이 될 수 없을지도 몰라. 그러나 그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려는 노력에서조차 뒤처져서는 자신이 어느 정도를 가졌는지도 모르게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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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각자의 신비로움이 과제라면, 내게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게 여전히 숙제야. 유치진 선생님이 난동 피우던 내게 해주신 말씀이 평생의 과제가 된 거지. 죽어 관 속에 누워 있을 때 누군가 “그 자식 훌륭한 배우였어” 해주면 그제야 한이 풀리겠지. 하지만 연극 인생 50년을 앞둔 지금도 그런 소리를 못 들을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들어. 아직 훌륭한 인간이 못 됐으니 훌륭한 배우도 못 된 것이 아닌가 해서.

난 내가 공연했던 ‘고도를 기다리며’의 블라디미르의 마음으로 살아. 고도를 기다리듯, 훌륭한 배우가 되길 기다리는 거지. 고도는 안 올지 모르지만, 그날은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 있어. 내가 훌륭한 인간이 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훌륭한 배우가 되는 그날이 가까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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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다, 내 인생 신정선 저 | 예담

맛은 추억이고, 위로이다. 맛있는 먹을거리가 풍성해진 요즘에도 사람들은 어릴 적 먹던 거칠고 투박한 음식을 기어이 찾아다니며 먹는다. 추억을 음미하고, 마음을 위로받고 싶어서이다. 이 책은 이순재 신경숙 이승철 에드워드권 김대우 윤대녕 패티김 배병우 김수영 황주리 강수진 박찬일 이원복 하성란 이지나 배한성 서상호 이진우 진태옥 문훈숙 이왈종 장석주 조태권 이희 승효상 전무송 정끝별 안효주 김윤영 조은과 같은 이 시대 최고의 명사들과 함께 한 끼 식사를 나누며, 그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간절한 맛의 기억을 함께 음미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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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정선

1974년 3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태어났다. 고려대 언어학과를 어렵게 입학해 간신히 졸업했다. 2001년 8월 수습 41기로 조선일보에 입사해 날마다 책상에 머리를 찧으며 기사를 쓴다. 2011년 12월 현재 문화부에서 공연을 담당한다.

맛있다, 내 인생

<신정선> 저12,51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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