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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라면 하나 먹는데 최소 30분?

기다림을 감수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만큼 순수한 버마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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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에서 생활하는 것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이방인에게는 며칠간의 기다림이지만 이들은 평생 기다린다. 그것이 이 나라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다. 느리고, 불편하고, 어쩔 수 없다. 드디어 물이 끓는다. 하얀 김이 피어오르고, 곧 이어 부글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기다림이 기니 기쁨도 크다. 인생에 감사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버마에 한번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금까지의 삶이 행운으로 가득 찼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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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조림처럼 바깥세상의 영향에서 밀폐된 채 오랜 시간 선반 구석에서 잊힌 버마.
매사가 쉽지 않은 나라다. 컵라면 하나 먹는 것만 해도 그렇다. 3분이면 끝이 아니라 최소 30분은 기다려야 한다. 마침 뜨거운 물이 없다면.

핑우린의 숙소에 머물면서 나는 한국에서 가져간 컵라면을 먹고 싶었다. 뜨거운 물을 붓고 3분이면 오케이. 더운물만 한 컵 있으면 된다. 문제는 바로 그 더운물이다. 어디서 구할까. 숙소에서 일하는 젊은 여자에게 부탁하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너무나 상냥한 미소에 나도 모르게 따라 웃게 된다.

‘말라’라는 이름의 그녀를 따라 숙소 부엌으로 향한다.

“더운물은 어디?”

보온병 속에 있든지 아니면 새로 끓여야 하리라. 말라는 웃는 얼굴로 잠깐 기다려보라는 손짓을 한다.
물 끓이는 전기 포트 같은 것이 있으리라고 기대한 것은 아니다. 당치도 않다. 영국군이 남기고 간 100년도 더 된 기차가 만신창이가 된 쇳덩어리 몸을 이끌고 쥐어짜는 듯 비명을 질러가며 아직도 굴러다니는 곳이 아닌가. 뜨거운 물이 없다면 아마 풍로에 불을 붙여 새로 끓여야 할 것이다.

“잠깐만요….”

말라는 미안한 얼굴로 말하고는 갑자기 바닥에 쪼그리고 앉는다. 뭘 하나 넘겨다보니 부지깽이로 화로를 뒤지고 있다. 검은 재 속에 새빨간 것이 보인다.

저게 바로 불씨로구나. 불을 피우기 위해 필요한 씨앗. 여태 글로 읽거나 말로만 들어본 그것. 딸깍 하고 가스레인지 손잡이 돌리는 것에 익숙한 나에게는 신기할 만큼 지난한 과정이다.

라이터를 처음 본 원시 종족처럼, 그녀의 행동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다. 내가 속한 세상에서는 1초면 끝나는 일이 이쪽 세상에서는 그 몇 백 배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그녀는 불씨를 이용, 조심조심 숯불에 불을 붙인다. 후후 불자 빨갛게 달아오른다. 이제 됐다. 냄비에 물을 담아 그 위에 올린다.

“5분만….”

말라는 다시 나를 향해 웃는다. 우리는 함께 기다린다. 껌이라도 있으면 함께 씹고 있으면 좋으련만 마주보고 웃는 것 말고는 할 것이 없다. 뜨거워진 숯불이 무쇠로 된 주전자 바닥을 달구고, 그 열기가 다시 주전자 속 차가운 물을 덥힐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버마에서 생활하는 것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이방인에게는 며칠간의 기다림이지만 이들은 평생 기다린다. 그것이 이 나라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다. 느리고, 불편하고, 어쩔 수 없다. 드디어 물이 끓는다. 하얀 김이 피어오르고, 곧 이어 부글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기다림이 기니 기쁨도 크다. 인생에 감사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버마에 한번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금까지의 삶이 행운으로 가득 찼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버마에서 어느 순간 기다리게 되더라도 초조해하지 마시라. 아마 꽤 자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오래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궁둥이에 멍이 들 정도로 울퉁불퉁 엉망진창인 길을 달려가는 찜통 버스, 그 속에서 스무 시간 넘게 갇혀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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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버마인들은 나란히 같이 기다리기에 아주 좋은 상대다. 그들의 순진함과 친절, 정직함은 이방인들 사이에서 가히 전설적이다. 기다림을 감수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만큼 순수한 사람들. 전기 포트와 더불어 현대 문명이 고안해낸 수많은 종류의 타락 또한 이 나라의 국경선을 넘지 못한 것 같다.

손사래를 치며 극구 사양하는 여자에게 라면을 나누어주었다.
오래간만에 먹는 고향의 음식은 맛이 좋았다.

“맛있어요.”라고 그녀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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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식당 박정석 저 | 시공사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태국과 베트남은 서민이 즐겨 먹는 메뉴를, 가장 와일드한 나라 인도네시아에서는 모험적인 미식 경험을, 가장 불쌍한 나라 버마에서는 변변한 요리 없이 힘겹게 끼니를 이어가는 그곳의 상황을 소재로 인간애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음식은 직접 먹고, 냄새를 맡아야 제맛이지, 그에 대한 글을 읽는 것으로 좀처럼 감동을 얻기는 어렵다는 편견이 『열대식당』에는 통하지 않겠다. 탁월한 에세이스트의 역량은 '상상하게 만드는 문장'에서 정점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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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정석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 노스웨스턴대학교와 플로리다대학교에서 영화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문학사상》으로 등단하고 소설 『33번째 남자』를 발표했다. 남미와 발리, 아프리카 등 60여 나라를 여행했고 그 기록을 담은 『쉬 트래블스』, 『용을 찾아서』, 『내 지도의 열두 방향』 등을 출간했다. 윌리엄 포크너의 영향을 받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여가 시간에는 존 스타인벡, 조지 오웰 등이 쓴 책들과 요리 서적을 번역하고 바다낚시를 한다. 술 내놓으라는 말을 10여 개 언어로 할 수 있다. 우연히 찾아간 동해안 마을에 반해 그곳에 집을 한 채 직접 짓는 이야기인 『하우스』를 썼다. 현재 그 집에서 3년 넘게 살고 있다.

열대식당

<박정석> 저12,6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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