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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치기가 내 짐을 몽땅 훔쳐가면 어쩌지…?

소심증에서 벗어나기 대작전?! 스페인으로 떠나기 전, 내 발목을 붙잡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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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날 일들은 내가 아무리 두려워해도 언젠간 일어날 테고, 내게 일어날 일이 아니라면 행운의 여신이 임하실 테니 그저 주어진 상황에 따라 나의 결정을 따르면 되는 것이다. 두려움에 뒤돌아보지도 말고, 가던 길에 주저앉지도 말며, 너무 많은 이들에게 답을 구하려 지체하지도 말고, 내게 다가오는 사람들과 새로운 사건들에 집중하고 앞으로 걷다 보면 지구는 둥그니(?) 온 세상에 내게 일어날 일들은 다 만나게 되겠지…

내가 용기 있게 뭔가 시도하는 것을 보며 어떤 이들은 모험을 즐기는가 보구나, 라고 하지만, 사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는 지독히도 소심하다. 두려움 때문에 새로운 것을 선뜻 시도하지 못하고 가슴에 한참을 품고 있다가 용기가 없어서 포기한 것들도 참 많다.

나의 첫 인상이나 무대 위에서의 캐릭터를 보면 강하고 대범할 거라 짐작할지도 모르겠다. 자유를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집시 여인 ‘카르멘’, 신탁을 받았으나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비운의 트로이 공주 ‘카산드라’, 깐깐하고 무서운 「스타일」의 편집장 ‘김지원’ 등등.

하지만 그건 아마도 본래 모습 속에 감추어진 무의식을 표현하고 있는 경우이거나 무대에서 끊임없이 약점이나 허점 등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여러 형태의 또 다른 나의 모습일 수도 있다. 특히 혼자 여행할 때 이런 소심증은 더욱 두드러지고 어떨 땐 가고 싶은 곳을 그냥 상상 속으로만 ‘갔다 치고’는, 혼자 만족할 때도 부지기수다.

앞에서 다짐했듯 큰 뜻을 품은 여행자처럼 그렇게 대범하게 출발했다면 얼마나 쿨하고 멋졌겠는가. 스페인으로 떠날 준비를 하면서도 출발 날짜는 다가오는데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음에 대한 불안감이 문득문득 엄습했다.

어떤 목적으로든 석 달씩이나 서울을 떠나본 적은 없었고, 그곳은 기본적인 영어도 잘 통하지 않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데다가, 떠나기 이틀 전까지 어디에서 묵을지 숙소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이다.

체류 기간과 어떤 집에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메일을 세비야sevilla의 부동산에 보냈지만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며칠째 감감무소식이다. 페리아feria 축제 기간엔 숙소가 없다고 하는데 내가 도착하는 날이 바로 그 직전인데다가 한 번도 여행해 본 곳이 아니라 도무지 그곳에서의 생활을 예측할 수 없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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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다니는 이 시대에 나는 왜 이리 나이를 거꾸로 먹는 듯 어릴 때보다도 더 겁을 내는가. 게다가 여행이 그리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 승무원을 하며 해외를 자주 드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무래도 난 모든 것이 안정된 상태에 너무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었던 모양이다. 활동하는 범위, 만나는 사람들, 일상생활의 공간, 심지어 고민의 종류까지도 말이다. 다가올 새로운 환경에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불안감의 원인은 지금까지 길들여진 익숙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서는 미련을 버려야만 가볍게 떠날 수 있거늘 미련이란 녀석이 미련하게도 자꾸만 내 발목을 잡는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가고 싶어 했던 곳인데, 자나깨나 생각하고 상상하고 꿈꾸던 곳인데 지금은 그냥 어디론가 숨고 싶기까지 하다.

게다가 하도 스페인에 소매치기가 많으니 조심하라는 얘기를 들은지라 나의 소심함에 고도로 발달된 상상력까지 날개를 단다.

‘숙소도 못 정하고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밤 10시가 훌쩍 넘어 깜깜할 텐데 비행기에서 내려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삐질삐질 땀 흘리며 커다란 짐을 끌고 이리저리 방을 구하러 다니는 나. 어디서 나타났는지 주변에 어슬렁어슬렁 소매치기들이 모여들어 날 에워쌀 뿐이고, 가진 거 다 털릴 뿐이고…… 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더 심각한 상황들이 떠오르니 그나마 조금 있었던 용기마저 없어진다.

다음날, 다행히도 부동산에 보낸 편지에 답장이 오면서 최소한 묵을 수 있는 곳이 정해지니 그 불안한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으며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함께라도 그랬을까? 그 옛날 집시들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곳을 매일 떠돌아다니며 어떤 심정이었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른다.

‘살아남기 위해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었겠지.’

그래. 일어날 일들은 내가 아무리 두려워해도 언젠간 일어날 테고, 내게 일어날 일이 아니라면 행운의 여신이 임하실 테니 그저 주어진 상황에 따라 나의 결정을 따르면 되는 것이다. 두려움에 뒤돌아보지도 말고, 가던 길에 주저앉지도 말며, 너무 많은 이들에게 답을 구하려 지체하지도 말고, 내게 다가오는 사람들과 새로운 사건들에 집중하고 앞으로 걷다 보면 지구는 둥그니(?) 온 세상에 내게 일어날 일들은 다 만나게 되겠지.

출발하지 않는다면, 두려움에 다리를 떨어가면서라도 시작하지 않는다면 지금 있는 그 자리에 그저 머물게만 될 것이니 말이다. 이것이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드니 소심해졌던 마음에 여유가 생기며 중요하지 않은 일들은 가지치기를 할 수 있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내게 익숙해진 시공간을 잠시 접어두고, 떠날 곳에 대한 생각과 그곳에 정착하는 일들이 우선순위로 떠오르자, 이전의 고민들은 지금 내 머릿속 저쪽으로 물러나 있는 상태다. 하나씩 하나씩 차근히 생각하자. 내겐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니 다녀오라고 등 떠밀며(?) 용기 주는 친구들이 있지 않은가.

친구들이 주는 용기를 동력으로, 소심한 나는 미지의 그곳, 오래도록 가슴에 품었던 세비야로 꿈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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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카르멘을 꿈꾼다 채국희 저 | 드림앤(Dreamn)

낯선 곳을 여행하며 낯설고 인상적인 것을 기록하는 일반적인 여행서가 아니다. 오히려 낯익은 광경들을 찾아가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영혼의 독백과 같다. 바람처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인 집시의 춤, 플라멩코를 배우기 위해 떠난 세비야행. 그녀는 세비야에 삼 개월 동안 머물렀고, 플라멩코를 알기 위해 뉴욕, 안달루시아의 도시들, 마드리드를 찾아갔다. 그리고 배우 채국희의 시선과 사색은 그녀 안에서 끓어오르는 열정과 자유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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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국희

나는 가끔 카르멘을 꿈꾼다

<채국희> 저11,700원(10% + 5%)

낯선 곳을 여행하며 낯설고 인상적인 것을 기록하는 일반적인 여행서가 아니다. 오히려 낯익은 광경들을 찾아가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영혼의 독백과 같다. 바람처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인 집시의 춤, 플라멩코를 배우기 위해 떠난 세비야행. 그녀는 세비야에 삼 개월 동안 머물렀고, 플라멩코를 알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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