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그대로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 도스또예프스끼 사망
1881년 1월 28일 오후 8시 38분 수요일, 별이 지다…
1881년 1월 26일 도스또예프스끼는 폐동맥 파열로 피를 토하며 서재에서 쓰러졌다. 급히 의사가 달려왔다. 하지만 그의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1월 28일 도스또예프스끼는 시베리아 감옥에서 읽던『성서』를 펴서 읽어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했다. 죽음이 임박했음을 예감한 것이다…
임종의 순간
요한이 제지하며 말하기를, “제가 당신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찌 당신께서 제게로 오시나이까”.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답하여 가라사대, “그냥 두어라, 우리가 이렇게 하여 위대한 정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뿌쉬낀 축전을 마치고 모스끄바에서 돌아온 도스또예프스끼는 다시 『작가의 일기』와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작업에 혼신을 다했다. 1880년 말 그의 건강은 극도로 나빠졌다. 그는 말년에 폐기종으로 고생했다. 과도한 집필, 만성적인 수면 부족, 신경쇠약 등이 그의 지병을 더욱 악화시켰다. 1881년 1월 26일 도스또예프스끼는 폐동맥 파열로 피를 토하며 서재에서 쓰러졌다. 급히 의사가 달려왔다. 하지만 그의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1월 28일 도스또예프스끼는 시베리아 감옥에서 읽던 『성서』를 펴서 읽어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했다. 죽음이 임박했음을 예감한 것이다. 안나 그리고리예브나는 『성서』를 펴고 「마태복음」 3장 14~15절을 읽었다.
부인이 이 대목을 읽자, 도스또예프스끼는 말했다. “여보, 알겠지. 이제 그냥 두라는 건, 내가 죽는다는 얘기야.” 이 예감은 얼마 안 가서 현실이 되었다. 죽기 두 시간 전에 도스또예프스끼는 그 『성서』를 아들에게 주라고 유언했다. 저녁 6시 30분, 마지막 출혈이 시작되었고 도스또예프스끼는 곧 실신했다. 8시 38분,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는 예순 살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도스또예프스끼가 각혈을 하며 쓰러졌던 서재에 가면 유독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작가가 운명한 시간을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는 시계다. 1881년 1월 28일 오후 8시 38분. 그날은 수요일이었다. 도스또예프스끼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꾸즈네치니 골목 5번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자신들이 존경했던 작가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화가 I. 끄람스꼬이는 임종을 맞이한 도스또예프스끼의 마지막 모습을 실물 크기로 화폭에 담았다.
저자가 모스끄바 국립대학 재학 시절 도스또예프스끼 세미나에 참여하면서부터 모아온 방대한 자료와 더불어, 2009년과 2010년 여름, 도스또예프스끼가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모스끄바, 대부분의 작품활동을 전개한 뻬쩨르부르그, 10년간의 시베리아 유형 중 4년간 감옥살이를 한 옴스끄, 말년에 가족과 전원생활을 즐긴 스따라야 루사 등 직접 취재한 기록을 담았다...
관련태그: 도스또예프스끼,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작가의 일기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모스끄바 국립대학에서 러시아 문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기초교육대학 강의교수로 재직중이며, 같은 대학 의대에서 '문학과 의학'을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모스끄바가 사랑한 예술가들』『백야의 뻬쩨르부르그에서』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미하일 부가꼬프의 『젊은 의사의 수기.모르핀』, 벨린스끼 문학비평선 『전형성, 파토스, 현실성』(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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