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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에 빠졌을 때 읽는 책 -『농담』

밀란 쿤데라식 ‘농담’으로 슬럼프를 탈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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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 갑자기 모든 것을 다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고 모든 근심들을 다 털어버리고 싶었다. 이해도 못하겠고 나를 기만하기만 하는 이 물질의 세계에 더 이상 머물러 있고 싶지가 않다. 다른 세계가 아직 존재하고 있다. 내 편안한 집일 수 있는 세계, 나를 다시 찾을 수 있는 세계…


농담| 밀란 쿤데라


체코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밀란 쿤데라의 처녀작이다. 사랑, 우정, 증오, 복수 등 사소하고 사적인 삶에서 시작하여, 선의로 출발한 이념일지라도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암시하며 절대 신념과 획일주의를 경고하고 있다. 1948년 체코 공산혁명 직후 혁명적 낙관주의가 강요되던 시대에, 주인공 루드비크는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여자 친구 마르케타에게 혁명의 낙천성을 비꼬는 농담을 적은 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암울한 시대에 던진 그 농담 한마디가 운명의 비극을 연출한다.



어린 시절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편이었고 또 혼자 있는 걸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부모님이 즐겨 들으시던 팝송 테이프를 듣거나 손에 잡히는 책을 읽거나 집 앞으로 지나가는 기차를 구경하며 시간 보내는 걸 좋아했어요. 스노우캣처럼 박스를 뒤집어쓰거나, 심슨 가족에서처럼 혼자 원반을 던지고 주워서 다시 던지며 노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따분하지 않게 시간 보내는 방법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죠.

30대가 된 지금도 어린 시절과 마찬가지로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특히나 일할 때 누가 옆에 있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성격은 그대로입니다. 그래서인지 어시스턴트도 없이 여전히 혼자 작업하고 있지요. 특별히 대인기피증까진 아니겠지만,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는 도통 말을 잘할 수 없는 인간형이긴 한 것 같습니다.

이렇듯 혼자 있는 것에 매우 익숙하고 편하게 느끼는 저이지만, 하는 일조차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 평소 바이오리듬이 깨지지 않게 시간을 관리하고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술가는 자고 싶을 때 자고, 놀고 싶을 때 놀고, 일하고 싶을 때나 일한다는 선입견이 많지만, 전 예술을 하는 게 아니어서 그런지 최대한 시간을 정리하고 계획해서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최대한 스케줄에 맞춰 움직이려 하는 것이죠. 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관리해도, 한 번 실타래가 끊어져 생활 사이클이 무너져버리면 절망적인 무기력과 의욕상실이 찾아오곤 합니다. 일종의 슬럼프라 할 수 있겠죠.

이런 경우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는데. 너무 무리한 일정을 한꺼번에 처리하면 찾아오는 피로성 후유증과, 어떻게 그려야 할지 자신조차 알 수 없을 때의 그 막연함이 부르는 절망감입니다. 이럴 땐 조금 쉬어주면서 긴장도 풀고 마음을 추스르는 게 많은 도움이 되긴 합니다. 그렇더라도 그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도 길어지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생활 사이클을 정상적인 루트에 올려놓으려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보곤 합니다.

닐 영이나 셰릴 크로우 그리고 펄 잼 같이 다분히 미국적인 강하고 심플한 사운드의 음악들을 실컷 듣는다든지, 언제 봐도 항상 즐거울 수밖에 없는 시트콤 <프렌즈>를 시청한다든지, 감정의 줄다리기를 최고의 연출로 표현해내는 아다치 미치루의 예전 만화를 다시 보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입니다.

얼마 전 무리한 스케줄로 몸 안의 배터리가 방전돼서 무기력해 있을 때 책장의 책들에서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던 부분만을(책에 낙서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밑줄을 그어두기보단 포스트잇을 사용했었습니다. 요즘은 그냥 전부 넘겨버리긴 하지만 말이죠.) 천천히 그리고 진지하게 훑어보며 힘을 냈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곳엔 문장과 함께 깊고 아름다운 저 자신만 알고 있는 풍경이 있었고, 향수에 젖은 비탄과 절망도 있었으며, 모든 것을 초월한 저만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긴 시간 많은 책들의 짧은 문장들을 곱씹었고 밀란 쿤데라의 『농담』 중 이 부분을 끝으로 깊은 사색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건강한 작업을 위한 충전도 튼실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피곤. 갑자기 모든 것을 다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고 모든 근심들을 다 털어버리고 싶었다. 이해도 못하겠고 나를 기만하기만 하는 이 물질의 세계에 더 이상 머물러 있고 싶지가 않다. 다른 세계가 아직 존재하고 있다. 내 편안한 집일 수 있는 세계, 나를 다시 찾을 수 있는 세계. 거기에는 길이 있고, 방랑객이 있고, 유랑하는 악사가 있고, 엄마가 있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런 생각을 떨치고 기운을 차렸다.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물질의 세계와 벌이는 나의 투쟁을 끝까지 밀고 나가야만 한다. 반드시 모든 오류와 미망의 저 밑바닥까지 들여다보아야만 한다.



밀란 쿤데라의 책은 시대적 상황과 사상적 문제에 관해서는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그만의 시적이고 무게 있는 글들은 항상 좋은 기운을 얻는 데 도움이 됩니다. 비록 전혀 다른 상황,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는 문장이라 할지라도 말이죠.

그나저나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고, 트루게네프나 도스토예프스키 아저씨들이 들으면 섭섭해할지도 모르겠지만, ‘밀란 쿤데라’란 이름의 음이 주는 뉘앙스는 문학인 중에 가장 철학적이고 멋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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