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은 쌀국수가 아니라…
베트남의 과거를 이해하려면 ‘반미(Banh Mi)’를 먹어라! 한국에 부대찌개가 있다면, 베트남엔 반미(Banh Mi)가 있다?!
19세기부터 약 100년간 베트남을 점령했던 프랑스의 영향은 디너의 가격대가 베트남인의 평균 월급을 훌쩍 넘어서는 고급 프렌치 식당들보다는 오히려 길거리에 즐비한 소박한 가게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인이 베트남에 들여온 것들 중에 맥주, 아이스크림, 카페오레, 그리고 바게트가 있다.
가난하던 옛날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햄과 소시지는 단백질에 굶주린 한민족이 어떻게든 수용해야만 하는 귀중한 영양원이었다.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엄청난 느끼함을 기어코 중화하기 위해 그 무렵 한국인들은 신 김치를 이용했다. 오늘날 우리가 즐겨 먹는 별식이 된 부대찌개는 대한민국의 슬픈 근대사가 녹아 있는 역사적인 음식이다.
“길거리에서 많이 파는데 아마 500원쯤 할 거야. 눈에 띄면 한 번 먹어보도록 해요.”
베트남 미식 여행을 떠나며 조언을 구한 지인에게 내가 추천한 것은 요리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초라한 음식, 제대로 된 식당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길거리 음식이다. 바로 베트남식 샌드위치인 ‘반미(Banh Mi)’.
중국과 태국, 라오스와 캄보디아 등 이웃 세력 말고도 베트남의 음식 문화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또 하나의 국가가 있었으니 멀고 먼 유럽의 프랑스. 오늘날 베트남 요리는 와인과 가장 잘 어울리는-어쩌면 유일한- 아시아 음식이다.
19세기부터 약 100년간 베트남을 점령했던 프랑스의 영향은 디너의 가격대가 베트남인의 평균 월급을 훌쩍 넘어서는 고급 프렌치 식당들보다는 오히려 길거리에 즐비한 소박한 가게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인이 베트남에 들여온 것들 중에 맥주, 아이스크림, 카페오레, 그리고 바게트가 있다.
그중에서 바게트. 프랑스의 상징과도 같은 길쭉한 모양의 담백한 빵이다. 오늘날 베트남 어느 시장에 가나 한 귀퉁이에서 이 빵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파는 것을 볼 수 있다.
30센티미터가 좀 안 되는 길이의 바게트다. 빵집도 아니고 시장통에 쌓아놓고 파는 바게트. 그러나 우습게 보는 것은 금물이다. 프랑스 본토 바게트의 그저그런 아류가 절대 아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아주 부드럽다. 서울의 웬만한 빵집에서 파는 바게트보다 훨씬 훌륭하다면 믿으시겠는지. 한 개에 100원 이하.
반미는 이 바게트를 이용하여 만든 샌드위치다. 오늘날 베트남 길거리에서 찾아볼 수 있는 프랑스 식민 시절의 가장 뚜렷한 흔적이다. 미국에 햄버거가 있다면 베트남에는 반미가 있다. 베트남 어디를 가나 길모퉁이에, 나무그늘 아래, 시장 입구에서 반미를 만들어 파는 이동식 가게를 볼 수 있다.
반미를 먹어보자. 우선 재료를 담은 유리 상자를 얹어놓은 노점을 찾아야 한다.
저기 하나 보인다. 반미 장수는 친구와 잡담하다가, 허리를 굽히고 또깍 발톱을 깎다가, 혹은 샌드위치 재료를 손질하다가 손님이 다가오면 주문을 받는다.
준비되어 있는 재료들로 즉시 만들기 시작한다. 무딘 칼로 쓱싹쓱싹 빵가루를 날리며 바게트를 옆으로 가른다. 아래위로 얇게 버터를 바르는 것까지는 프랑스식과 다를 바가 없다. 스타일이 달라지는 것은 그다음부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햄 대신 베트남식 기름투성이 햄 조각을 끼우거나 돼지고기의 어느 부위로 만들었는지 정체가 모호한 파테를 잼처럼 마구 바른다.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좀 더 고급으로 가면 숯불에 구워낸 돼지고기를 잘게 썬 것, 또는 토마토소스에 부글부글 조려낸 고기 완자를 넣기도 한다. 저게 과연 바게트에 어울릴까?
상추, 그리고 고수도 약간 집어넣는다. 얇게 썬 오이 몇 조각과 베트남 요리의 단골 재료인 푸른 쪽파를 첨가한 후 마지막 비법처럼 뭔가를 듬뿍 뿌려 완성한다. 구리구리한 냄새 물씬 풍기는 피시소스, 느억맘이다.
바게트에 쪽파로도 모자라 멸치액젓이라니, 얼마나 괴상망측한 맛이냐고?
“대체로 다 맛있었어요.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맛나게 먹은 것은….”
베트남 식도락 여행을 무사히 마친 지인이 귀국했다. 하노이의 유명 국수집인 ‘포 24’, 가격 대비 뛰어난 뷔페 음식으로 이름난 ‘브러더스 카페’, 달착지근한 가물치 요리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차카라봉’ 등을 계획대로 방문, 식사를 했다고 한다.
영광의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반미.
프랑스가 자랑하는 바게트의 맛에 베트남 향기 짙게 풍기는 동양적 재료가 절묘하게 녹아들어 그야말로 환상적인 맛이었다고.
“노점에서 사다가 하루에 두 번씩 먹었어요. 너무 맛있어서, 아예 식당은 가지 말고 이걸로 때워버리고 말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니까요.”
이쯤이면 혼혈 샌드위치의의 맛에 대한 설명은 충분히 되었으리라. 베트남의 과거를 이해하기 위해 놓쳐서는 안 되는 식도락 경험이다.
요리의 기본은 재료의 특징을 이해하고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반미는 한국의 부대찌개가 그런 것처럼 프랑스와 베트남의 절충점을 찾아서 맛의 특징이자 장점으로 삼아버린 음식이다.
정치인보다 요리사가 몇 배 더 평화주의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태국과 베트남은 서민이 즐겨 먹는 메뉴를, 가장 와일드한 나라 인도네시아에서는 모험적인 미식 경험을, 가장 불쌍한 나라 버마에서는 변변한 요리 없이 힘겹게 끼니를 이어가는 그곳의 상황을 소재로 인간애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음식은 직접 먹고, 냄새를 맡아야 제맛이지, 그에 대한 글을 읽는 것으로 좀처럼 감동을 얻기는 어렵다는 편견이 『열대식당』에는 통하지 않겠다. 탁월한 에세이스트의 역량은 '상상하게 만드는 문장'에서 정점을 찍는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 노스웨스턴대학교와 플로리다대학교에서 영화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문학사상》으로 등단하고 소설 『33번째 남자』를 발표했다. 남미와 발리, 아프리카 등 60여 나라를 여행했고 그 기록을 담은 『쉬 트래블스』, 『용을 찾아서』, 『내 지도의 열두 방향』 등을 출간했다. 윌리엄 포크너의 영향을 받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여가 시간에는 존 스타인벡, 조지 오웰 등이 쓴 책들과 요리 서적을 번역하고 바다낚시를 한다. 술 내놓으라는 말을 10여 개 언어로 할 수 있다. 우연히 찾아간 동해안 마을에 반해 그곳에 집을 한 채 직접 짓는 이야기인 『하우스』를 썼다. 현재 그 집에서 3년 넘게 살고 있다.
<박정석> 저12,600원(10% + 5%)
어떤 여행자도 배고프거나 쓸쓸하지 않은 곳, 모든 여행자가 왕이 되는 곳 조용히 내미는 밥 한 그릇의 온기가 때론 먼 바다를 건너게 한다 열대만큼 여행자에게 너그러운 땅도 없다. 돈이 있든 없든, 그곳에 익숙하든 낯설든, 모든 걱정은 무거운 배낭과 함께 내려놓고, 무덥고 조촐한 식당으로 간다. 편견 없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