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대학생 인문 독서 토론 2기의 두 번째 모임이 있었다. 이미 조별모임을 통해서 낯을 익혀서인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하지만 오가는 이야기는 사뭇 진지했다. 오늘의 화제는 바로 영어. 한국에서 공부하는 이들에게 언제나 골머리를 앓게 만드는 영어에 대해서 대학생 인문 독서 토론 참가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영어는 언제나 거대한 장애물로 존재했다. 처음 외우던 꼬부랑글씨는 어찌나 낯설던지, 오렌지인지 오륀지인지 들리는 대로 발음했는데 선생님은 왜 틀리다고 말씀하시는지, 어째서 대학교 학사 졸업에 전공 논문이 아니라 뜬금없이 토익 점수를 요구하는지. 이 죽일 놈의 영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은 많던 적건 영어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영어로 인한 스트레스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왜? 영어는 당연히 잘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모국어도 아닌 외국어가 어째서 이토록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영어를 잘 해야 한다는 압박에 쌓여 공부만 했을 뿐이지, 영어가 우리에게 어떤 것이고 왜 공부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을까.
[대학생 인문 독서 토론 2기] 두 번째 모임. 선정도서는 영문학자 윤지관이 책임 편집한 『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였다. 『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는 우리에게 영어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긴 논문들을 묶은 책이다. 쉽지 않은 책이지만 참가한 대학생들은 유진 강사의 손을 따라 조금씩 영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유진 강사는 자리를 재배치했다. 자리는 영어를 이 시대의 요구로 바라보는 입장과, 영어를 사회적인 억압으로 바라보는 입장으로 나누었다. 요구 팀과 억압 팀은 다음과 같이 분리되었다.
| | |
|
요구 팀 : 이완희, 김선모, 허은주, 권미영, 이정욱, 이동주, 오주영, 전수연
억압 팀 : 오선영, 박명본, 황지현, 김민선, 윤병호, 박형은, 허용기
| |
| | |
요구 팀과 억압 팀으로 나누어진 다음, 대학생들은 『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를 읽은 소감을 이야기해 보았다.
박명본 : 수록된 논문 중에서 최샛별이 쓴 「한국사회에서 영어실력은 문화자본인가」가 인상 깊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영어 공부를 했던 제 자신이 한심했습니다.
이완희 : 이제는 세계를 바라봐야 하는 글로벌 시대입니다. 이런 글로벌 시대이기 때문에 영어 공부는 시대의 요구라고 봐야합니다.
황지현 : 한국에선 영어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권력화 되어 있고 권력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권미영 : 저에게는 영어공부는 억압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문화 소통의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오선영 : 한국에서 영어 공부는 소질이나 동기에 상관없이 강요되기에 문제입니다. 취직을 위해서 토익 점수를 만드는 것도 영어에 소질이 없는 사람에겐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일괄적으로 어떤 점수를 요구하기 때문에 불공평합니다.
대학생들의 소감이 끝나고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되었다. 유진 강사는 첫 번째 화제로 “어떤 영어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한국에서 영어가 어떠한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취업과 떨어질 수 없는 대학생들이기에 논의는 취업 영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황지현 :
한국에서 영어는 취업을 위한 수단입니다. 하지만 취업 준비생들이 영어를 공부하지만 실무에서 영어를 활용하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이렇게 현실과의 괴리를 일으키는 영어 공부는 사회의 억압으로 작용합니다. 영어가 필요하다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정도로만 하면 되지 않을까요?
박형은 :
일반적인 인문대 학생들은 취직을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경영을 복수 전공 하던가 영어를 엄청 잘하는 것입니다. 취직을 위해서는 이 두 가지에 관심이 없어도 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하나를 잘 하는 것도 어려운데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는 건 더욱 어렵습니다. 시간이 부족해 졸업하기도 힘들지만, 그렇다고 휴학을 하기에는 눈치가 보입니다.
오주영 :
하지만 영어를 취업 영어로 바라보는 것은 취직을 대기업에 한정 지을 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의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영어가 필요하지만 한국의 98%는 중소기업이고, 그런 중소기업에 들어간다면 구지 영어를 잘 하지 못해도 가능합니다. 물론 이왕이면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취업 시장에서 뽑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러분들도 마트에서 장을 볼 때, 품질이 비슷하다면 이왕이면 덤을 껴서 주는 제품을 선택하지 않으시나요? 기업가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동주 :
물론 영어를 공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큽니다. 하지만 영어를 몰두하면서 얻을 수 있는 사회적인 편익도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영어 공부는 사회적 수준을 높이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진 강사가 던진 두 번째 질문은
“어떤 영어 교육 환경인가?”였다. 이는 어떤 영어 교육 환경이 이루어져야 영어를 더 잘 배울 수 있을까를 묻는 질문이었다. 논의는 영어 공용화 론, 영어 몰입 교육, 전공 영어 강의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김선모 :
저는 영어 공용화에 대해서 반대합니다. 제가 전공하는 IT 분야는 신기술이 외국에서 나오기 때문에 영어를 필수로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필요한 만큼만 배우면 충분하다고 보면 됩니다. 영어는 자기 전공에 맞게끔 배우면 그만이고, 영어를 공용화 하거나 일반 교육에도 적용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황지현 :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 몰입 교육을 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모국어는 교육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반면 외국어는 그렇지 않습니다. 태생적으로 원어민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영어 공부는 모국어를 잘 하게 된 다음에 공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모국어를 잘 익힌 다음에 외국어와의 차이점을 비교해가면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박명본 :
대학교 전공 영어 수업도 문제가 많습니다. 저는 졸업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영어 전공 수업을 5개를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해가 하나도 안 됩니다. 철학 수업은 한국어로 들어도 이해가 될까 말까 한데, 영어로 들으면 하나도 이해가 안 됩니다.
전수연 :
대학에서 진행되는 영어수업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교양 영어 수업이고 다른 하나는 영어 전공 수업입니다. 이 중 교양 영어 수업은 취지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영어는 언어이기 때문에 꾸준히 하지 않으면 늘지 않습니다. 교양 영어 수업은 영어를 꾸준히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전공 영어 수업은 진행하시는 교수님에 따라 달라집니다. 교수님이 영어를 잘 하신다면, 전공 수업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이 영어가 어눌하다면 별로입니다.
오주영 :
그런데 요새 대학 평가를 보면 국제화 지수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게 대학교입장에서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국제화 지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교환 학생 수와 전공 영어 강의의 숫자를 늘려야 합니다. 대학 평가가 높아지면 좋은 학생들을 받아들일 확률도 늘어나고, 대학에게는 여러모로 유리하게 작용됩니다. 학교의 입장에서는 전공 영어 강의를 옹호할 수 있습니다.
이동주 :
서울대학교가 서울에 사는 사람만을 위한 대학일까요? 아닙니다. 더 넓게 본다면 서울대학교가 한국인만을 위한 대학교도 아닙니다. 대학교는 학문을 배우려는 전 세계인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장소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에 있는 학생들을 보다 쉽게 받아들이기 위해서 전공 영어 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진 강사가 던진 마지막 질문
“어떤 영어 실력인가?”는 대학생들이 원하는 영어 수준에 대한 물음이었다. 이 질문을 통해 대학생들이 영어를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지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이동주 :
듣기와 읽기는 습득 능력입니다. 반면에 쓰기와 말하기는 표현 능력입니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다는 점에서 듣기와 읽기가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쓰기와 말하기는 전문 통역사의 힘을 빌리는 등, 다른 형식으로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완희 :
하지만 영어를 잘 배우려면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를 전인적으로 다 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정욱 :
저도 동의합니다. 이 네 가지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능력들입니다. 무언가 하나만으로는 안 됩니다.
전수연 :
네 가지 영역의 유기적 연결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떨어트려서 생각할 수 있나요?
이동주 :
영어는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선영 :
언어를 습득하는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네 가지 영역이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네 가지 영역이 골고루 사용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영어로 말할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도 있는 법입니다. 그러기에 듣기, 읽기가 중요한데 그 중에서도 읽기가 중요합니다. 학교교재나 영어논문 그리고 영어사이트까지, 상대적으로 영어 읽기 능력을 활용할 순간은 많습니다.
허용기 :
네 가지 영역 모두를 어느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공 영어 수업을 소화할 수 있는 기본기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전수연 :
저는 현재 교환 학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로 교과를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의 영어는 하고 싶습니다.
오주영 :
저는 제가 원하는 수준의 영어와 저에게 필요한 수준의 영어 사이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어쨌든 저는 영어를 아주 잘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클린턴만큼 연설할 수 있는 그런 영어 실력을 갖추고 싶습니다.
대학생들의 이야기가 끝이 나고 유진 강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또한 이 땅에서 영어로 인한 고민을 거듭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영어의 중요성이 매번 바뀌었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는 자신이 세우고 있는 영어 수준의 목표가 어찌 되느냐에 따라서 삶이 바뀌게 된다고 말한다. 영어를 잘 해야 한다는 내적 동기가 채워지면 영어에 자연스럽게 매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영어는 잘 하면 좋다. 우리 모두다 영어를 잘하고 싶다. 하지만 그것이 주변의 강요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의 내적 동기에 의한 것인지는 조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학생 인문 독서 토론 2기]에 모인 대학생들은 이 자리에서 자신에게 영어는 어떤 의미인지, 영어가 자신에게 얼마나 필요한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이야기하였다. 채널예스를 통해서 이 글을 읽는 분들 또한 자신에게 영어가 어떤 의미인지 다시금 고민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
- 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 윤지관 저 | 당대
우리사회의 과도한 영어 몰두 현상에 대한 분석과 대응을 모색하고 있는 책으로, 사회학자와 사회언어학자, 그리고 영어전문가들에 의해 저술된 책이다. 단순한 언어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영어의 식민지가 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