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센티미터짜리 킬힐! 누가 이런 것을 만들었을까?
특히, 구두만은 나를 배려해주는 곳에서 사고 싶다! 킬힐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킬힐이 막 유행하던 때에 구두 매장에 가서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골라 한번 신어본 적이 있다. 11센티미터짜리. 하이힐이 주는 장점 중 하나는 몸의 선을 드러내며 살려준다는 것이다. 다리도 길어 보인다. 누가 이런 것을 만들었을까. 나는 거울 속의, 킬힐을 신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자신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빨간 원피스 두 벌
옷 매장에서 눈을 먼저 사로잡는 것은 옷이 아니라 그 옷을 입고 있는 마네킹들이다. 아름답고 도도하고 차갑고 매력적이다. 옷보다 더 근사해 보이는 마네킹도 있다. 옷은 옷으로 자신을 말하지 않는다. 옷은 입고 있는 마네킹을 더 돋보이게 만들고 그게 옷의 역할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옷이 벗겨진 마네킹들도 있다. 깡마르고 춥고 허전해 보인다. 옷이 벗겨진 마네킹을 보고 있는 때 나는 슬픔을 느낀다. 어느 땐 그것이 꼭 실제로 구현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문장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은 불완전해서 비틀리고 주름지고 파묻히고 구부정해지며 옷은 바로 그런 점들을 고려한다고 피에르 상소는 말했다. 마네킹은 완벽해 보이는 체형을 갖고 있긴 하지만 옷 없이는 불완전해 보인다. 옷이 벗겨진, 팔다리가 떨어져나간, 가발도 벗겨진 몇 개의 마네킹들이 겹쳐 쓰러져 있는 장면은, 끔찍했다. 옷 매장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문득 마네킹의 기원이 궁금해진다. 사람은 왜 사람과 닮은 밀랍인형을 만들기 시작했을까.
혹시 나와 비슷한 궁금증을 가진 독자들에게라면 폴란드 작가 브루노 슐츠의 『계피색 가게들』에 수록된 「마네킹에 대한 논설」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불완전하긴 하지만 마네킹에도 생명이 깃들어 있다는 데 나는 동의한다.
옷 매장으로 성큼 들어간다. 오늘은 혼자가 아니다.
세 자매 중 바로 아래 동생이 언니 나 결혼할까봐, 라고 말했을 때 허를 찔린 것 같았다. 우리는 영원히 이렇게 같이 살 줄 알았다. 결혼을 하겠다는 동생을 앞에 두고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알 듯 말 듯한 감정이 둔중히 머리를 한 번 때리고 지나갔다. 축하한다는 말은 정말이지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축하라니. 나는 멀리 내던져진 것 같았다. 오래된 집에서 부모와 셋이 소리 없이 늙어가게 될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동안 독립할 기회를 틈틈이 엿보긴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했어도 경제적으로 나는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 동생이 결혼하고 그리고 막냇동생까지 결혼해버리고 나면 부모만 남는다.
두려움 뒤에 깊은 체념의 상태가 찾아왔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 체념은 신념으로 변했고 지금도 나는 부모와 같이 살고 있다. 그 신념은 맏딸로서 부모를 모셔야 한다, 라는 게 아니다. 이것이 나의 자연스러운 삶이다, 라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내 인생은 그렇게 진행되었다.
내가 두려워한 것은 동생들의 결혼이 아니라 그 결혼 때문에 일어나게 될 변화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모험심도 없고 대부분의 일과 관계들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모두들 가버리고 진화하고 움직이는데 나만 언제나 계속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 같다. 동생들이 결혼을 한다, 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자 비어 있게 될 동생들의 방과, 대화가 거의 없는 부모와 나 사이에 눈에 띄게 생겨날 무거운 침묵을 염려하기 시작했다.
동생들의 결혼으로 일어난 변화는 뜻밖에도 내 비관적 추측과는 달랐다. 하나둘씩 조카들이 태어나면서 ‘친정’이 된 우리 집으로 동생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일본 남자와 결혼하여 도쿄에 살게 된 둘째야 하는 수 없지만, 맞벌이인 막냇동생의 아이들은 친정엄마, 그러니까 내 엄마가 키워야 했고 그건 마땅히 나와도 같이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지금은 아직 조카들이 태어나기 전, 결혼식을 앞두고 있고 세 자매들은 옷을 고르는 중이다. 자신들의 결혼식에 ‘작가 언니’가 입고 나타날.
껌정은 무조건 안 돼!
동생들은 미리 못 박았다. 잠도 덜 깬 나는 고개를 끄덕거린다. 검은색이 안 된다면 대체 나한테 뭘 입으란 말인가, 항변할 기운도 없다. 계간지 여름호 원고를 마감하고 있는 중이었다. 공교롭게도 두 동생 모두 2002년부터 이 년 간격으로 오월에 결혼식을 치렀다. 한창 여름호 원고에 집중해야 할 시간인데, 나는 맥없이 중얼거렸다. 게다가 검은 옷도 못 입게 하고.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동생들 결혼식이다. 자매들이 원한다면 핑크 원피스를 입으라고 해도 들어주고 싶다.
자매들이 옷 매장을 잔뜩 어지럽히며 샅샅이 둘러보고 있다. 세 자매가 함께 백화점에서 옷을 골라보기는 처음이다. 매장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를 깨워 자매들이 눈앞으로 옷을 내민다. 눈에 불꽃이 탁 튀는 것 같다. 강렬한 붉은색 원피스다. 이거 입어봐, 언니. 동생들은 씩씩하고 즐거워 보인다. 불쑥 눈물이 날 것 같다. 한 방에서 부대끼며 지내야 했던 시간이 더 길었다. 너네 언니 요즘 뭐 하니? 누가 물으면 할 말이 없게 만들었던 시간도 길었다. 가장 어려웠던 순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함께 보낸 자매들이었다. 웃고 있지만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도 자매들 얼굴엔 기미가 끼어 있고 그 얼굴이 꼭 내 얼굴 같다. 결혼하지 말고 계속 이렇게 같이 살자, 이런 말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원피스를 움켜쥐곤 탈의실로 숨어버린다. 그런데 맙소사. 이런 새빨간 원피스를 입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게다가 민소매, 등도 V자로 푹 파였다.
비죽거리며 탈의실에서 나온 나를 보고 자매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오, 완전 잘 어울리는걸!
시간이 지난 지금,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런데 왜 레드였을까? 두 자매들 결혼식 모두 나는 디자인만 약간씩 다른 붉은 원피스를 입었다. 자매들 의견도 의견이었지만 나 역시 머뭇거리면서도 그 선택에 동의했고 결혼식 날, 그 옷이 나에게 제법 잘 어울렸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평소의 나였으면 일 초도 주저하지 않고 블랙을 선택했을 텐데.
지금도 믿고 싶지 않지만 우리나라 풍습에 동생이 결혼하는데 언니가 만약 싱글이라면 결혼식에 나타나지 않는 거라고 한다. 여행을 가거나 집에 있거나. 가까운 친지 중 누군가 눈치 없는 나에게 넌지시 알려주었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 자매들이 눈처럼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이라는 의식을 치르는 걸 왜 내가 볼 수 없다는 말인가. 그러니까 나보고 결혼식에 나타나지 말란 말이지? 어쩌면 그 약간의 불편한 마음과 반감이 작용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는 자매들의 결혼식 때마다 세상의 모든 색깔들 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고 격렬하며 가장 시끄럽다는 빨강을 선택한 것일까. 옷을 고르고 입을 때는 언제나 덜 새롭고 덜 과시적이고 덜 장식적이며 덜 개방적인 것을 선택하는 내가. 어찌 되었든 그날 나는 펄럭이는 빨간 원피스를 입고 하객들 사이를 휘젓고 돌아다니며 나의 새 페르소나를 유감없이 발휘했고, 자매들은 예뻤다.
이제 나는 열다섯 살 때 내가 뭣도 모르고 한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자매들의 결혼식 날, 그 빨간 원피스들은 내가 거기에 존재하는 것을 도와주었으니까. 안방에 있는 엄마 옷장에는 두 동생들 결혼식 때 입었던 나의 빨간 원피스 두 벌이 고이 걸려 있다. 집이 비면 슬그머니 안방으로 들어가 옷장 문을 열어보곤 한다. 내가 다시 그 빨간 원피스를 입게 될 날이 올지 오지 않을지 그건 아직 알 수 없지만.
하이힐과 부츠
백화점에 구두 수선실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이다. 양해를 구하고 들어가본 구두 수선실은 한 두어 평이나 될까. 짐작보다 좁은 공간에서 수선공이 거꾸로 세운 구두 굽을 망치로 두들기고 있었다. 별도의 수선실이라기보다는 간이시설 느낌이 들었다. 구두 굽 가는 데 보통 사천 원. 손님은 하루에 삼사십여 명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구두뿐만 아니라 핸드백과 가방 수선도 겸하고 있었다. 백화점에서 산 구두만을 수선하는 데가 아니라 여타에서 구입한 구두 수선이 필요한 손님들의 편의를 위한 임대매장이다. 주로 백화점 이층이나 삼층 코너에 위치하고 있다.
구두 수선실은, 내가 고객의 자격으로는 둘러볼 수 없으나 취재를 허락받고 볼 수 있었던 백화점의 많은 공간들 중 가장 협소한 곳이었다. 수선이 필요하지만 매장이 없어진 경우나 백화점에서 사지는 않았지만 수선해서 더 신고 싶은 구두들이 있다면 유용하게 이용할 공간이다. 혹여 몸에 닿아 벽에 걸려 있는 구두나 핸드백이 떨어질까봐 어깨를 웅크리고 구두 수선실을 나오다 말고 나는 문득 뒤돌아본다. 수선을 마친 그 구두와 핸드백들. 꼭 누군가 찾아가주길 기다리는 헌책방의 책들처럼 보인다. 겉은 낡았지만 아직은 쓸모 있고 누군가에게는 큰 영향을 미칠지도 모를.
구두 수선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나는 예전부터 그래왔듯 매장으로 간다. 그 수선을 맡길 당시에 구두 수선실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도 매장으로 바로 갔을 것 같다. 어쨌든 그 구두를 산 곳이니까 그 구두를 가장 잘 이해하고 수선에 필요한 적합한 부속품들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검증되지 않은 기대 때문에라도.
뭐 필요한 게 없느냐는 판매원의 질문에 나는 바로 돌아 나가지 못하고 매장을 둘러보는 척한다. 단연 킬힐과 부츠 종류들이 많다. 킬힐의 굽은 아찔하게 높다. 저런 것을 신고서도 걸을 수가 있나? 의심이 들 만큼. 내가 갖고 있는 최고로 높은 굽은 8센티미터.
소설가 조경란이 쓴 백화점을 직접 조명한 문화 에세이다. 백화점이라는 ‘장소’가 현대인들에게 갖는 의미와 기능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이 책은 현장 취재와 자료조사를 통해 깊이와 넓이가 더해져 오롯이 백화점을 다룬 최초의 논픽션이 되었다. 정신적인 삶, 물질적인 삶 사이에서 갈등한 저자의 고민이 엿보인다…
주변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인간의 고독과 우수를 부감시키며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깊이 있게 보여주는 작가 조경란은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년 후에 서울예대 문학창작학과에 들어갔다. 저서로는 소설집 『불란서 안경원』『나의 자줏빛 소파』『코끼리를 찾아서』 『국자 이야기』 『풍선을 샀어』, 중편소설 『움직임』, 장편소설 『식빵 굽는 시간』 『가족의 기원』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혀』, 산문집 『조경란의 악어 이야기』『백화점』 등이 있다. 문학동네작가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