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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도스또예프스끼가 추구했던 진정한 ‘아름다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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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름다운 얼굴이군요!” 하고 공작은 대답했다. “이 여자의 운명은 평범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얼굴은 명랑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는 끔찍한 고통을 받았을 겁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 눈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눈 밑과 볼 위에 보이는 이 두 개의 광대뼈만 보아도 능히 알 수 있어요…”

『백치』를 집필하다


두번째 아내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와 함께 유럽에 체류하면서 도스또예프스끼는 『백치』를 구상하고 집필했다. 『백치』의 근본 사상에 대해서는 도스또예프스끼가 조카딸 S. 이바노바에게 보낸 편지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내 소설의 이념은 내가 일찍부터 아끼고 사랑하던 것으로 너무 힘들어서 오랫동안 손을 댈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란다. 이번에 착수한 것은 내가 이 작업에 필사적으로 매달렸기 때문이다. 이 장편의 주요 사상은 완전히 아름다운 인간을 그리는 것이다.



『백치』의 첫 장면은 스위스발 뻬쩨르부르그행 기차 3등석 객실이다. 주인공 미쉬낀 공작은 기차 안에서 자신의 연적이 되는 로고진을 우연히 만난다. 미쉬낀의 외모나 행동은 귀족과는 거리가 멀다. 스물여섯 젊은이인 주인공은 움푹 들어간 볼에 희고 짧은 턱수염을 기르고 있다. 미쉬낀은 간질병과 정신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4년 동안 스위스에 머물다 러시아로 돌아오는 중이다. 로고진은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무분별하고 정열적인 스물일곱 청년으로, 나스따시야 필리뽀브나에게 매료된다. 그는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막대한 유산의 상속인이 되어 뻬쩨르부르그로 돌아가는 중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오직 나스따시야에 대한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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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의 주인공들, 왼쪽부터 미쉬낀, 나스따시야 필리뽀브나, 로고진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의 원인이 되는 나스따시야 필리뽀브나는 절세의 미인으로 오만하고 자존심이 강한 여인이다. 귀족 신분이었으나 일찍 양친을 여읜 그녀는 이웃의 돈 많은 지주 또쯔끼에게 농락당하고 9년 동안 그의 정부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런데 또쯔끼는 벼락부자가 된 예빤친 장군의 장녀 알렉산드라와 결혼하려는 목적으로 나스따시야를 예빤친의 비서인 가냐와 결혼시키려고 궁리중이다. 여기에 나이 든 예빤친 장군조차 나스따시야를 탐내고 있어 그녀를 둘러싼 갈등 구조는 더욱 복잡해진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백치』의 주제는 미쉬낀이 반복적으로 내뱉는 말, 즉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는 믿음과 깊은 연관이 있다. 나스따시야는 바로 이 아름다움의 현세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모출스끼는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도스또예프스끼의 여주인공은 ‘악마’에 의해 포로가 되어 감옥에서 자신의 구원자를 기다리는 ‘순수한 아름다움의 형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나스따시야의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기는커녕 더 혼란에 빠뜨리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도 파멸로 이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나스따시야의 아름다움은 도스또예프스끼의 입장에서 보면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닌 셈이다. 그러면 도스또예프스끼가 그리는 나스따시야는 어떤 모습인가.


“정말 아름다운 얼굴이군요!” 하고 공작은 대답했다. “이 여자의 운명은 평범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얼굴은 명랑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는 끔찍한 고통을 받았을 겁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 눈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눈 밑과 볼 위에 보이는 이 두 개의 광대뼈만 보아도 능히 알 수 있어요. 오만한, 아주 오만한 얼굴이에요. 그렇지만 원래는 착한 사람인지도 모르지요. 아 아, 정말 착한 사람이면 좋으련만! 그렇다면 구원받을 수 있을 텐데!”



미쉬낀은 나스따시야의 이러한 인상을 “이 얼굴 속에 숨어 있는 수수께끼 같은 그 무엇”이라고 표현한다. 나스따시야의 아름다움이 수수께끼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녀의 아름다움이 선과 악이 뒤엉킨 무정형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직 평온(안식)을 구하지 못한 아름다움이며, 그렇기 때문에 항상 소름 끼치고 무서우면서 동시에 신비롭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아직 혼돈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이 어떻게 카오스를 통과하여 세상을 구원할 것인가? 아름다움은 애초에 카오스적 성격을 지닌 것은 아닌가?


아름다움의 두 가지 정의


도스또예프스끼는 애초에 아름다움에 대한 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어에서 ‘아름답다’를 의미하는 말이 두 가지가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하나는 ‘끄라시비красивый’이고, 다른 하나는 ‘쁘레끄라스니прекрасный’이다. 일본의 저명한 도스또예프스끼 연구자인 요네가와 마사오米川正夫는 도스또예프스끼가 ‘아름다운 인간прекрасныйчеловек’을 언급했을 때 그것은 후자에 해당된다고 말한다. ‘끄라시비’는 주로 외형적인 아름다움을 가리키지만 ‘쁘레끄라스니’는 외형적, 내면적 아름다움 모두를 뜻한다.

결국 도스또예프스끼는 주인공 미쉬낀을 ‘아름다운 인간’의 형상으로, 나스따시야를 ‘미인’으로 설정한 것이다. 나스따시야의 아름다움은 내면까지 완성되지 못한 불안정한 것이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이런 이유로 나스따시야의 비극적 운명을 제시한다. 나스따시야의 아름다움은 그녀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파멸시킨다. 그녀를 사랑했던 로고진은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고 미쉬낀은 다시 백치가 되어 스위스로 되돌아간다.

결국, 도스또예프스끼는 지상의 아름다움을 선과 악의 경계선 위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 무정형의 아름다움은 선한 정신에 의해 평정을 되찾을 때만 세상에 구원의 빛을 선사할 수 있는 것이다. N. 까쉬나의 지적대로 도스또예프스끼 문학에서 “정신적인 것이 아름다움을 진실하고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며, 아름다움에 윤리적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나스따시야의 운명은 현실의 아름다움이 거쳐야 할 필연적 궤적일 수도 있다. 우리가 사는 삶은 아름다움이 실현된 세계가 아니라 그것을 끊임없이 실험하는 가운데에 있는 경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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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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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이병훈 저 | 문학동네

저자가 모스끄바 국립대학 재학 시절 도스또예프스끼 세미나에 참여하면서부터 모아온 방대한 자료와 더불어, 2009년과 2010년 여름, 도스또예프스끼가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모스끄바, 대부분의 작품활동을 전개한 뻬쩨르부르그, 10년간의 시베리아 유형 중 4년간 감옥살이를 한 옴스끄, 말년에 가족과 전원생활을 즐긴 스따라야 루사 등 직접 취재한 기록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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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병훈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모스끄바 국립대학에서 러시아 문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기초교육대학 강의교수로 재직중이며, 같은 대학 의대에서 '문학과 의학'을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모스끄바가 사랑한 예술가들』『백야의 뻬쩨르부르그에서』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미하일 부가꼬프의 『젊은 의사의 수기.모르핀』, 벨린스끼 문학비평선 『전형성, 파토스, 현실성』(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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