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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현 “가장 탐나는 직업은 파일럿” - 뮤지컬 <캐치 미 이프 유 캔>
“잡을테면 잡아 봐!” - 뮤지컬 <캐치 미 이프 유 캔>으로 새롭게 흩뿌리는 박광현의 매력
“마음을 고쳐먹었죠. 사람들이 원하는, 박광현이 줄 수 있는 밝고 행복한 느낌도 중요하니까요. 그런데 하다 보니까 웃기고 밝은 이미지 안에 남자 땀 냄새도 있더라고요(웃음). 이제는 어리고 천진난만한 밝음이 아니라, 남자로서 밝게 다가가는 길들이 생긴 거죠. 1년쯤 뒤에는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분만 따지면 무척 좋아요. 좋고 설레고, 내일이라도 당장 공연하고 싶고. 그래서 너무 들뜬 마음에 중요한 공연에 집중을 못할까봐 기분을 가라앉히고 있어요.”
박광현 씨는 지난 3월 28일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에서 주인공 프랭크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우리가 만난 것은 공연 오픈 직전. 그는 무대에 서기까지 에너지를 배분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걱정이 많이 되지는 않아요. 그동안 연습해온 걸 무대에서 얼마나 맛있게 전달하느냐가 문제죠. 사실 시간이 너무 없었어요. 뮤지컬 시스템을 잘 모르니까 계획을 세울 수가 없더라고요. 처음이니까 알려주셔도 저만의 리듬을 만들어갈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계속 에너지를 몰아가다 중간에 집중력이 확 떨어진 적도 있고, 이미 마음은 2주 전에 공연에 들어갔어야 하는데 한 템포를 죽이고 들어가는 셈이에요.”
동명의 영화를 무대에 올린 뮤지컬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부모의 이혼 후 무작정 가출해, 교사로 기자로 파일럿으로 정부 비밀요원으로 현란하게 남을 속이는, 미워할 수 없는 사기꾼 프랭크의 행적을 쫓는다.
“진짜 어려워요, 미칠 것 같아요. 어제도 혼자 집에서 세 번이나 연습했어요. 밤에만 할 수 있는 연습이죠. 밤에는 거실 유리창에 제가 비치잖아요(웃음). 사기에는 양면성이 있는 것 같아요. 정말 사기를 치기 위한 행각인가,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행각인가. 진정성이 다르다고 할까요? 이 작품에서 프랭크가 거짓말을 할 때는 사기 치려는 게 아니라 그 순간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죠. 그걸 잘 표현하고 싶어요.”
극중 프랭크는 수많은 인물로 변신한다. 박광현이 가장 탐내는 직업과 가장 피하고 싶은 직업은?
“파일럿은 해보고 싶어요. 촬영 때문에 해외나 지방에 다닐 때가 많은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일로 다녀도 좋더라고요. 반면에 의사는 못하겠어요. 예전에 의학드라마 찍을 때 직접 수술방에 들어간 적이 있어요. 대장암 환자 수술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는데, 1~2년은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정말 의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영화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열연했던 프랭크를 뮤지컬에서는 박광현 씨 외에도 엄기준, 김정훈, 규현, 샤이니 등 무려 5명이 맡았다. 무대에 대한 부담이 분산되는 반면 또 다른 부담이 있을 법하다.
“다들 연기도 잘 하고 프랭크가 되려고 열심히 노력했어요. 프랭크로서 공통적으로 표현하려는 것이 있지만, 각자 색깔은 전부 달라요. 아무래도 사람들은 5명에 대해서 평가를 하겠죠. 바람이 있다면 어떤 순번이 아니라, 각자의 색깔로 평가됐으면 좋겠어요. 프랭크로 나오는 배우들과는 연습실에서는 함께 했지만, 공연 때는 함께 무대에 설 수 없다는 게 아쉬워요.”
그나저나 이 남자 올해 나이 36살인데, 참 동안이다. 여배우라면 ‘동안 비결’만으로도 기사를 너끈히 써낼 정도다.
“정말 모르겠어요. 피부과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로션 바르는 것뿐인데요.”
하지만 우리가 마냥 부러워할 동안 이미지가 배우이기에 그에게는 하나의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군대를 다녀왔는데도 더 어려졌다고 하니까요. 서른도 넘었는데, 뭔가 남자 냄새나는 역할을 못하는 거죠. 감독님들도 ‘박광현 씨는 마인드도 좋고 연기도 좋은데, 역할에 비해 너무 어려보인다’고 말씀하시고, 정말 어디 가서 성형을 해볼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성형해서 지금 이미지마저도 없어지면 평생 배우를 못하잖아요.”
1997년 SBS 톱탤런트로 선발돼 드라마와 영화는 물론 앨범까지 발표하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2007년 제대 후 30대라는 나이와 함께 그렇게 짧지 않은 슬럼프를 겪었다. 하지만 그 방황 덕분에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소중함과 연기의 폭은 좀 더 깊고 넓어졌다.
“마음을 고쳐먹었죠. 사람들이 원하는, 박광현이 줄 수 있는 밝고 행복한 느낌도 중요하니까요. 그런데 하다 보니까 웃기고 밝은 이미지 안에 남자 땀 냄새도 있더라고요(웃음). 이젠 어리고 천진난만한 밝음이 아니라, 남자로서 밝게 다가가는 길들이 생긴 거죠. 1년쯤 뒤엔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안경 쓰고 가려서 그렇지 많이 늙었어요. 잘못 웃으면 주름도 보이고 다크 서클도 있고(웃음).”
이미지 확장? 그렇다면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프랭크만한 인물이 또 있겠는가? 박광현이? 기존에 지니고 있던 이미지와 다른 데다 극중에서도 수많은 인물로 변신하지 않던가.
“그래서 더 잘 해내고 싶어요. 주인공을 보고 오는 관객들로 보자면 다른 프랭크에 비해 제가 티켓파워가 가장 약해요.
딱 보이잖아요. 아마 예전의 저라면 숨도 안 쉬고 거절했을 거예요(웃음). 그런데 힘든 시기를 겪고 나니까 자존심 때문에 기회를 날리면 안 되겠더라고요. 기회는 왔을 때 캐치해야죠(웃음). 이번에 정말 잘 해내면 또 다른 저를 보여드릴 수 있는 거고요. 또 제 인생에서 언제 뮤지컬을, 게다가 이렇게 좋은 극장에서 좋은 멤버들과 해보겠어요.”
그는 그렇게 또 다른 도약을 꿈꾼다.
“이번 공연 해보면 다음 무대가 결정되겠죠. 또 다른 무대로 연결될지, 아니면 다시는 뮤지컬을 못할지. 공연을 또 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고요. 올해는 새롭게 출발하는 기분이에요. 의지도 확고하고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하게 활동하는 모습 많이 보여드릴게요.”
밝고 행복한 이미지 안에서 베어 나오는 남자 땀 냄새. 박광현 씨를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누니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프랭크가 펼치는 ‘진정성 있는 사기’가 기대됐다. 그러고 보면 슬럼프라는 것도 인생에서 꼭 필요할 때 겪게 되는 것인가 보다. 뮤지컬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6월 10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공연된다. 나이도 주 무대도 연기선도 다른 5명의 프랭크. 당신은 어떤 색깔의 프랭크에게 속아 넘어갈 것인가.
관련태그: 박광현, 캐치 미 이프 유 캔, Catch me if you can,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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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계의 인물을 인터뷰한 윤하정의 책. 책은 그동안 진행했던 인터뷰를 기초로, 추가 인터뷰를 하면서 인물들의 진솔함을 더욱 끌어내고자 했다. 이 책 속에서 인터뷰한 인물들은 ‘배우, 연출가, 피아니스트, 하모니카 연주자, 미술해설가’라는 직업을 가졌다. 무대에 서는, 또는 무대를 만드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