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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 뮤지컬 <셜록홈즈>에서 연기자 변신!
“공연이 끝나면 얼마나 허전하고 허무할까 벌써 아쉬워요!”
“새로운 세계죠. 극이 시작되면 저는 에릭과 아담으로 살아가면서 3시간 동안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제 역할이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슬픈 인물인데, 제가 살면서 남을 위해 그렇게까지 해본 적이 있나, 사랑을 위해 이렇게 희생해본 적이 있나 생각이 들면서 무대가 아니면 이런 사랑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공연하는 날은 일어나면 떨리고 긴장되지만, 분장을 받고 있으면 서서히 앤더슨이 돼 가는 것 같아요.”
말끔히 분장을 마치고 앉아 있는 테이 씨에게서는 그의 말처럼 긴장감과 차분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나저나 이 남자 배짱도 좋다. 아직 공연 초반이건만 시작 한 시간 전에 인터뷰라니.
“뮤지컬은 처음이지만 10년 가까이 활동했기 때문에 인터뷰가 크게 불편하지는 않아요. 여유 있고 자신감 있어서 다른 걸 한다는 게 아니라, 인터뷰도 작품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니까요.”
하긴 이렇게 작품 얘기를 하면서 긴장을 덜 수도 있겠다. 많은 관객들의 이목이 주목된 만큼 뮤지컬에 도전한 그 마음부터 정리해보자. 노래가 있지만 연기도 해야 하지 않던가.
“우스갯소리로 얘기하지만 제가 예전에 연기를 했잖아요. 그런데 그건 연기가 아니었죠(웃음). 그때 기획사 사장님이 연기를 시키고 싶어 했어요, 전 꿈이 그렇게 많은 친구가 아니라서 노래만 하고 싶었는데요. 그런데 드라마가 주말극이라서 9개월 동안 50부작으로 이어지는데, 선생님들과 함께 하면서 서로 눈빛을 주고받고 극에 빠졌을 때 짜릿함도 느끼고 새삼 연기의 재미를 알게 된 거죠.”
그렇다면 그 뒤에도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는 많았을 것이다. 테이 아닌가.
“작품은 많이 들어왔지만 하지 않았어요. 가수로서 프로라는 생각이 있는데, 연기에서 섣부른 모습을 보여드리기 싫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몰래 연기공부를 했어요(웃음). 테이가 ‘도전하다’가 아니라 ‘연기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올 연말에 입대가 예정돼 있어서 제대 후에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뮤지컬로 조금 일찍 보여드리게 된 거죠. 그래서 저는 굉장히 즐겁습니다. 계속 연습만 하다 무대에서 하니까 살 것 같아요.”
그런데 왜 하필 뮤지컬 <셜록홈즈>인가. NG가 없는 무대, 실수해도 끊어갈 수가 없지 않은가.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관심이 생긴 건 얼마 안 됐어요. 지난해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셜록홈즈>를 보고 에릭 역할을 꼭 해보고 싶더라고요. 워낙 멋진 배역이라서 어렵기는 하지만 많은 남자배우들이 탐을 낼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작품이 앙코르 공연 뒤에 시즌2로 넘어간다고 하니까 이번이 아니면 에릭을 맡을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오디션에 지원했죠. 평가는 어떨지 모르지만 저는 굉장히 좋아요”
탐내던 앤더슨은 쌍둥이인 에릭과 아담, 1인2역을 연기해야 한다. 테이만의 연기 포인트는?
“확연히 다른 두 성격인데, 앞서 했던 박인배, 조강현 배우님이 각기 너무 다른 색깔로 잘 해주셨다며, 연출님이 그 두 분의 중간쯤으로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더 어려울 것 같다!) 주문이 있으니까 더 어려운데, 그 중간쯤이 어딜까 생각하다 보니 또 다른 앤더슨이 나온 것 같아요. 저는 루시를 표면적으로도 사랑하는 느낌이 나요. 로맨스에는 집중이 안 되는 면이 있었는데, 미스터리가 로맨스가 진정성이 있어야 더 가슴 아프게 와 닿을 것 같아서 그 부분을 좀 더 부드럽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꼬박 한 달 넘게 연습에 매진해야 했을 텐데 기존 스케줄도 있고 힘들었을 것 같다. ‘나는 가수다’에도 출연하지 않았던가.
“5주 정도 연습했어요. ‘나가수’를 초반에 탈락하는 바람에 뮤지컬만 집중해서 할 수 있었죠(웃음). 사실 뮤지컬은 개인적인 욕심이고, 소속사에서는 콘서트를 많이 원해요. 제 욕심이기 때문에 바쁘다고 핑계 댈 수도 없고 투정부릴 수도 없고, 더 잘 해야죠.”
가수로서 활동할 때와는 전혀 다른 시스템, 낯선 사람들과의 작업이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저희 팀의 화합이 아주 좋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야 조금 어색했지만, 나중에는 정말 식구처럼, 또는 동료나 라이벌처럼 대해 주셨어요. 어떤 선배들은 학교 선생님처럼 아낌없는 조언도 주시고, 제가 기죽지 않게 잘해주시고요. 첫 공연을 운 좋게도 두려움 없이 따뜻한 곳에서 시작하네요.”
인터뷰 전에 트위터를 봤더니 공연을 앞두고 ‘깊게 짙게 집중’이라는 단어와 ‘벌써 아쉽다’는 말을 언급했다. 작품에 임하는 자세와 무대에 대한 애착이 대단한 것 같다.
“새로운 세계죠. 극이 시작되면 저는 에릭과 아담으로 살아가면서 3시간 동안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제 역할이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슬픈 인물인데, 제가 살면서 남을 위해 그렇게까지 해본 적이 있나, 사랑을 위해 이렇게 희생해본 적이 있나 생각이 들면서 무대가 아니면 이런 사랑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공연이 끝난 뒤에도 찌릿찌릿한 감정이 오래 남는데, 공연이 5월에 완전히 끝나면 얼마나 허전하고 허무할까 벌써 아쉬워요(웃음).”
올해 데뷔 9년차에 서른, 군 입대까지 앞두고 있다.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있을 법하다.
“특별한 감정 변화는 없는데, 단지 현실이 많이 보이죠. 어릴 때는 오로지 꿈 하나만 보고 달려왔지만, 나이가 더해지면 많이 힘들어하잖아요. 결과물이 무엇인가, 내가 달려온 게 고집인가, 이게 진짜 꿈일까, 이룰 수 있는 것인가... 현실과 부딪히는 시점인 거죠. 사실 다른 친구들보다는 보이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제 저도 무언가 부러뜨려야 하는 시점인 것 같아요. 뭘 하더라도 잘하고 믿을 만하다는 확신을 줄 수 있는, 책임감이 생긴 거죠. 이번 무대도 막연한 도전이 아니라 인정받고 싶은 욕심으로 선 거라서 잘 해야죠(웃음).”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윤하정> 저11,700원(10% + 5%)
공연예술계의 인물을 인터뷰한 윤하정의 책. 책은 그동안 진행했던 인터뷰를 기초로, 추가 인터뷰를 하면서 인물들의 진솔함을 더욱 끌어내고자 했다. 이 책 속에서 인터뷰한 인물들은 ‘배우, 연출가, 피아니스트, 하모니카 연주자, 미술해설가’라는 직업을 가졌다. 무대에 서는, 또는 무대를 만드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