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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다시 올게” 나쁜 어른의 약속

무리했던 산행 탓인지 감기 기운을 느끼며 열흘간의 봉사활동 지원을 마치고 파라다이스로 돌아가야 할 시간, 아이들과 어느새 정이 들었음을 헤븐랜드를 나서며 알 수 있었다. 헤어짐이 일상이었을 아이들은 저마다 “꼭 다시 돌아와요.”라고 말하느라 목이 메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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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고달프면 마음이라도 편해야 하는 법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방 안에 홀로 누웠는데 감사하게도 평안함이 찾아왔다. 이런 고생쯤은 각오하고 왔던 길이라고 자신을 다독여서일까? 어찌 됐든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무리했던 산행 탓인지 감기 기운을 느끼며 열흘간의 봉사활동 지원을 마치고 파라다이스로 돌아가야 할 시간, 아이들과 어느새 정이 들었음을 헤븐랜드를 나서며 알 수 있었다. 헤어짐이 일상이었을 아이들은 저마다 “꼭 다시 돌아와요.”라고 말하느라 목이 메어 있었다. 하지만 확약을 얻지 못하거나, 한다 해도 헛된 약속이 되리라는 것을 이미 체득하고 있는지, 삐죽삐죽 입술만 오므리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녀석들도 있었다.

헤븐랜드에 도착하자마자 처음 인사를 나눴던 허리춤에 공책 보따리를 메고 있던 아이, 프리즈나는 퉁퉁 부어오른 얼굴로 꾹꾹 눌러 쓴 편지를 한장 쥐어주고는 땅바닥을 발로 툭툭 차댔다. 괜히 혼자 있어도 잘 견딜 아이에게 이별의 상처를 안기고 떠나는 건 아닌지 싶어 아이를 품에 안았다.

꼭 안긴 아이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새가슴 같은 어린아이의 들썩거리는 어깨 위에 눈물이 떨어졌다. 아이와 약속을 했다. 파라다이스 학교가 방학을 하면, 그때 다시 온다고……. 12월까지, 한 달만 기다려 달라고 손가락을 걸고 도장을 찍었다. 아이는 누군가와 이런 무의미한 약속을 숱하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잠깐 헤어지는 것이라고 자신을 스스로 위안하며, 아이에게 다시 미소로 약속했다.

파라다이스로 돌아온 후, 한번 달라붙은 감기를 떨쳐내느라 한 달 넘게 고생했다. 환경이 바뀐 탓인지 한국에서 가져온 감기약이 들지 않아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약까지 먹어봤지만, 효과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외국에 봉사하러 와서 제대로 자리도 못 잡아서 마음고생이 심한데, 몸까지 아프면서 심신은 점차 지쳐갔다. 그나마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던 감기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약간 회복할 기미를 보인 건 감사한 일이었다.

크리스마스 전날, 마침 카트만두 더르바르 광장에서 크리스마스 행사로 전통춤을 공연한다고 하여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그런데 한다던 공연은 취소됐는지 구경도 못하고, 넘쳐나는 외국인들 틈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시달리다 돌아와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서부터 뱃속이 뒤틀리고 아프기 시작하더니 두통까지 더해졌다. 설사와 어지럼증을 동반한 두통으로 도무지 일어설 기운이 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에 온종일 침대와 화장실을 번갈아가며 시간을 보냈지만 아무도 찾는 이가 없었다.

설사와 복통에 두통까지 한 묶음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봐도 알 수 없었다. 음식 탓일 거라고 생각은 해보지만, 달리 먹은 게 없었다. 전날에 먹었던 음식 탓일까 하고 따져봤지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음식을 먹었다. 감기 기운이 여전한데, 매연이 심한 도로를 배회하면서 먹은 음식이 영향을 줬을 거라는 정도가 진단할 수 있는 전부였다.


몸이 고달프면 마음이라도 편해야 하는 법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방 안에 홀로 누웠는데 감사하게도 평안함이 찾아왔다. 이런 고생쯤은 각오하고 왔던 길이라고 자신을 다독여서일까? 어찌 됐든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평안함을 찾고서, 네팔에 온 후 만났던 아이들을 떠올려봤다. 문뜩 헤븐랜드 아이들에게 12월, “방학에 다시 오마.”라고 약속했던 사실이 머리를 스쳤다. 편지를 한 장 쥐어주고는 손을 놓지 못하던 프리즈나의 들썩이던 어깨와 맑은 눈동자를 잊고 있었다.

“그래, 그래서 아이가 상처를 받아왔던 거야. 약속만 하고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이별에 익숙해지며 상처받았을 아이와 약속했는데, 하마터면 잊고 지나갈 뻔했어. 아프길 잘했어.”

‘아프길 잘했어.’라고 속으로 되뇐 말이 우습게 여겨졌지만, 몸이 낫는 대로 헤븐랜드로 달려가리라 마음먹었다. 설사와 복통, 두통은 연말까지 계속됐고 그동안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은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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