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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치료에 대한 쌈박한 맛배기

정신치료, 너의 정체는 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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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히 필요성은 느끼지만 정신치료가 무엇인지,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알 수 없다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 나도 모르는 나의 내면이 드러나고 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콤보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책을 찾아보면 나아질까 찾아본다. 그러나, 대부분 정신치료나 정신분석의 이론을 설명하고 있거나, 정신치료의 대가가 일방적인 관점에서 쓴 환자의 사례집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도 상담을 좀 받아야할텐데”라고 말을 한다.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으면 “누구나 다 문제가 있지 않나요?, 사는게 너무 복잡해요” 라는 답이 열에 일곱이다. 반가운 마음에 꼭 한 번 해보시라고 권한다. 그러나, 제대로 정신치료를 받았다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필요해보이나, 막상 하기는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막연히 필요성은 느끼지만 정신치료가 무엇인지,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알 수 없다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 나도 모르는 나의 내면이 드러나고 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콤보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책을 찾아보면 나아질까 찾아본다. 그러나, 대부분 정신치료나 정신분석의 이론을 설명하고 있거나, 정신치료의 대가가 일방적인 관점에서 쓴 환자의 사례집들이다.

이런 막막함과 불안을 필리파 페리의『필리파 페리 박사의 심리치료극장』은 깔끔하게 풀어준다. 그렇다고 대단한 분량일 것이라 지레 겁먹지 말라. 책은 어이없을 정도로 가볍다. 펼쳐보면 페이지의 상단은 만화로 구성되어 치료자 펫과 환자 제임스 사이에서 일어나는 정신치료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하단에는 각 장면의 의미에 대해서 이론적 설명과 벌어진 상황에 대한 풀이가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여기에 있다. 치료자나 환자 어느 한쪽의 관점이 아니라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객관적으로 양측의 마음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독자에게 펼쳐보여줬다. 덕분에 독자들은 ‘아..이런 식으로 치료라는 것이 일어나는 것’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맛을 볼 수 있다.

도벽이 있는 변호사 제임스가 패트리사 필립스라는 상담사를 찾아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책에서는 잘나가는 상류층인 제임스가 자기를 낮추고 상담사를 처음 찾아가서 당황해하는 초기의 상황뿐 아니라, 상담사 펫도 ‘이 사람하고는 잘 안통하는 것 같아’ 라는 속마음을 말풍선으로 묘사한다. 실제 치료상황에서도 벌어지는 일이 만화의 말풍선과 등장인물의 표정을 이용해 간명하게 표현된다. 이 책은 상담사가 치료상황에 할 수 있는 실수를 가감없이 보여준다는 것이 또한 특징이다. 상담사의 지나치게 이른 개입, 참고 들으면서 기다려야하는데 뭐라도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 환자가 받아들일 능력이 안되는데도 과감히 해석을 한 ‘엄마-새 역전이’등이 묘사된다.

또 일상대화와 상담의 차이, 상담사가 알아낸 모든 내용을 그 자리에서 공유를 하지 않고 이론으로 담고 있어야한다는 ‘괄호치기’, 사람의 일생을 ‘하는 일, 함께 사는 사람, 사는 곳’의 세 가지 항목으로 나누고 이 안에서 무엇이 그의 증상을 유발하게 하는 갈등이 있는지 찾아내는 것, 환자의 자유연상안에서 경험있는 상담사의 직관으로 전혀 연관이 없어보이는 것에서 갈등의 꼬투리를 잡아가는 과정 등 실제 치료중에 벌어질 일반적 상황들이 잘 그려져 있고 각각의 상황에 대해 짧고 분명한 설명이 함께 한다.

제임스는 치료과정을 통해 점차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감정이 자신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이 자기가 나빠서 그런 것도, 틀려서 그런 것도 아니니 창피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고 도벽이라는 행동으로 옮기지 않게 되면서 치료는 성공적으로 종결된다.

이 책에서 서술되는 이론은 꽤나 다양하다. 프로이트의 고전적 정신분석 이론 뿐 아니라, 상담자와 환자사이의 주관적 견해와 느낌을 중요하게 여기는 상호주관이론, 집단역학에서 나온 브루스 터크먼의 5단계 이론, 매슬로우의 자기실현 욕구등 현대 정신분석나 정신치료의 여러 가지 이론들이 적재적소에 조금씩 맛배기로 소개되고 있어 지적 호기심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이 책은 한 가지 이론을 고집하는 이론의 교조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 실제로 오랜 경험을 가진 상담사가 만들어낸 현실에 근접한 이야기라고는 것이 책을 덮고 단 다음의 나의 결론이었다. 150페이지도 안되는 얇은, 그것도 반이 만화인 책이지만 내용만큼은 상담과 정신치료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아주 좋은 길잡이가 될 내공있는 책이다.

 


※ 연관컨텐츠

 

1)『카우치에 누워서』 : 어빈 얄롬

     정신분석가가 쓴 정신분석상황에 대한 재미있는 소설.

     생활인으로서 분석가의 속마음이 잘 드러난다.

 

2) 인 트리트먼트

     정신치료 과정을 소재로 한 미국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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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파 페리 박사의 심리치료극장 필리파 페리 저/준코 그라트 그림/김흥숙 역 | 서해문집

‘만화’라는 단어에는 어려운 개념도 쉽게 녹여내는 마력이 있다. 직관적인 표현으로 독자에게 거침없이 다가가 깊은 여운을 남기는 표현이 그 비결일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장점을 최대한 살려 실제로 상담이 이루어지는 과정뿐만 아니라 두 주인공의 생각까지도 명료하게 그림으로 보여주어 독자가 극장에서 한 편의 심리영화를 감상하듯 즐길 수 있게 만든다. 또한 본문 그림 아래 마련된 작가의 성실한 설명은 영화에 대한 감독의 코멘터리처럼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심리학 지식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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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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