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셰프의 딸 나카가와 히데코 저 | 마음산책 |
『셰프의 딸』은 여러 나라를 삶의 무대로 삼은 한 코즈모폴리탄의 특별한 이야기를 담았다. 다양한 갈림길 앞에서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마음이 이끄는 곳을 택했던 사람. 그는 일상에 파묻혀 꿈을 접어둔 이들에게 ‘안주’와 ‘정체’ 대신 스스로 찾아가는 삶의 기쁨,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 | |
|
요리 교실의 학생인 작가 분이 ‘행복’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주위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나도 행복에 관한 다섯 가지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막상 질문을 받으니 곧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어떤 질문에 망설였는가 하면, ‘언제 행복을 느끼는가?’ 하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질문이었다. 사람은 현재의 행복에 만족하면 자신의 행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일까.
‘내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아들이 수학 시험에서 100점을 받았을 때? 남편이 평소에는 안 해주던 다정한 말을 해줬을 때? 아, 어떨 때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만든 음식이 맛있다는 말을 들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다섯 시간을 들여 묵묵히 만든 요리가 5분 만에 없어질 때’.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나의 행복임을 깨달았다.
연희동으로 이사 와서 얼마 후, 자연스레 우리 집 부엌에서 요리 교실을 시작하게 되었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맛있는 음식을 만들거나 먹는 일이 가장 큰 관심사였지만, 어머니가 권유하셔도 직업으로 삼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관련 학과로 진학한다거나,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요리 학교에 들어가 수업을 받는다거나 하는 요리사의 정도(正道)를 걷지 않았던 나는, 요리로 보수를 받는 일이 아버지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졌다. 결혼 후에도 먹는 것을 좋아하는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요리의 즐거움과 누군가에게 요리를 만들어주는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작은 바람이 마음속에서 피어나긴 했다. 하지만 그 바람을 어떻게든 실현하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얼마 전에 먹은 파에야 말야, 나도 배워서 가족들에게 만들어주고 싶어! 맛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행복할 것 같고……. 요리 교실 같은 거 열어보지 않을래? 우리도 도와줄게.”가끔 내가 만든 요리를 먹었던 친구들의 권유에 힘입어 요리 교실을 시작했다. 마음속에서 키워온 나의 꿈은 이렇게 서울에서 소박하게 실현되었다.
요리 교실 ‘구르메 레브쿠헨’은 스페인 요리를 중심으로 한 지중해 요리가 메인 테마다. 요리 교실을 시작할 때, 그동안 노트나 메모지에 막연히 써두었던 레시피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작업부터 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먹은 맛을 되살리기 위해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대체하여 레시피를 다시 만들었다. 스페인 요리 풀코스 강습에 큰 관심을 보인 사람들은 일본인들이었다.
입소문으로 요리 교실을 알게 된 한국인들은 스페인 요리보다 스페인 요리를 가르치는 사람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에 흥미를 느낀 것 같다. 일본 가정 요리를 가르쳐달라는 요청이 대부분이라 나는 얼마간 고민했다.
‘일본 가정 요리라면 어머니가 평소에 집에서 만들어주시는 요리인데……. 왠지 마음이 무거운걸.’
일본 간장보다 버터나 올리브 오일을 잔뜩 뿌린 요리를 먹을 때 행복을 느끼는 내가 과연 ‘일본 가정 요리’를 가르칠 수 있을까……. 스페인 요리 때처럼 과거의 기억과 미각, 어머니의 ‘구전 레시피’를 생각해내려고 애썼다. 어머니가 만드는 일본 요리는 상냥한 맛이다. ‘일본인으로 태어나길 잘했다’라고 절실히 느끼게 하는 그런 맛. 스페인 요리 레시피를 만드는 것보다 어려웠다.
“그러니까 엄마가 말했잖니. 마음껏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으면 미소시루 만드는 법 정도는 제대로 배워두라고. 밖에 나가서 누가 일본 요리를 물어보면 일본인으로서 제대로 대답할 수 있도록 해야지. 그러지 못하면 스스로 창피할 거야.”마음은 이미 유럽으로 기울어 있는 딸에게 잔소리를 계속 하시면서 어떻게든 일본의 맛을 전하려고 했던 어머니였다. 그때 어머니의 요리를 제대로 배워둘걸. 궁리 끝에, 요리 교실에서는 스페인 요리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내 나름의 일본 가정 요리를 소개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돼지고기를 연실로 둘둘 감아 커다란 프라이팬에서 표면을 구운 뒤, 양념과 함께 큰 냄비에 넣고 한 시간 동안 끓이는 요리. 아버지께 전수받은 레시피 중 하나로 ‘차슈’라고 하는 돼지고기 요리다. 중국어로는 차사오라고 하며, 돼지고기 덩이에 양념을 해서 구운 중국 광둥요리가 원조다. 홍콩이나 광저우에서는 구운 차사오를 가게 앞에 매달아놓은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스페인의 하몬처럼 보존할 수 있는 식재료로 딤섬에도 쓰이는 재료다. 일본에서는 중국 차사오 스타일의 돼지고기 구이와 냄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돼지고기 수육, 두 가지 방법으로 차슈를 만든다. 구이보다는 부드러운 수육이 일본인의 기호에 잘 맞아서 ‘차슈 라멘’처럼 라멘 위에 얹는 재료로도 쓰인다.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레시피도 돼지고기를 삶아서 만드는 방법이었다.
아버지가 부엌에서 3킬로그램 이상 나가는 돼지고기 덩이에 연실을 둘둘 감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나는 어린 마음에 ‘아, 오늘은 오르되브르(서양 요리에서 식욕을 돋우기 위해 식사 전에 내는 간단한 요리) 세트 주문이 들어온 모양이네’ 하고 은색 쟁반에 2밀리 정도로 얇게 슬라이스된 차슈와 사프란라이스, 예쁘게 담긴 샐러드를 상상했다. 아버지의 레스토랑에는, 크리스마스나 섣달그믐 같은 날에는 차슈 오르되브르 세트 주문이 들어왔다. 가끔 로스트비프 주문도 있었지만, 돼지고기보다 소고기가 비싸서 아버지가 소고기 덩이에 연실을 둘둘 감는 모습은 아주 가끔씩만 볼 수 있었다. 나는 완성된 차슈나 로스트비프가 쟁반 위에 얇게 저며서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이에 몰래 부엌에 숨어들어 고깃덩이의 끝 부분을 아주 조금 떼어 먹어보곤 했다. 그래서 지금도 차슈의 가장자리 자투리 부분이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나도 아버지처럼 차슈나 오르되브르 주문을 받는데, 가장자리 부분은 아무래도 아들이나 남편의 입으로 들어가게 된다. 차슈는 비계가 충분히 섞인 어깨 등심이나 삼겹살 덩어리로 삶으면 더욱 부드러워진다. 한국의 보쌈 수육과 비슷하다. 단, 돼지고기 덩이에 연실을 둘둘 감아 삶는 과정은 같지만, 차슈는 간장, 미림, 청주, 설탕 등 일본 요리에는 빼놓을 수 없는 조미료를 같은 분량으로 섞어 만든 양념에 대파의 푸른 부분, 생강, 마늘을 듬뿍 넣고 삶아 만든다.
한국의 보쌈 수육은 김치 겉절이나 새우젓을 함께 내지 않으면 모처럼 품질 좋은 돼지고기를 준비해도 불평을 듣기 십상이지만, 차슈는 삶으면서 간을 하기 때문에 햄처럼 얇게 저미고 약간의 샐러드만 준비하면 접대 음식으로 충분하다.
돼지고기 3킬로그램분의 결코 싸지 않은 재료비에, 무거운 고깃덩이에 연실을 감고 프라이팬에 구운 후 다시 냄비로 옮기는 번거로움. 냄비에서 육수가 끓어 넘치지 않도록 부엌을 왔다 갔다 하길 한 시간. 하지만 곧바로 먹을 수는 없다. 냄비에서 꺼낸 차슈는 쟁반 위에서 다시 한 시간 정도 숙성시킨다. 그러고는 실을 제거하고 모? 신경을 손끝에 집중하며 잘 드는 부엌칼로 2밀리 두께로 얇게 저민다. 모두가 “와아” 하고 감탄하는 표정을 상상하며 큰 접시에 담는다.
“자, 어서 드세요.”다섯 시간을 들여 만든 요리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피로를 느낄 정도의 시간을 들여 완성한 차슈는 역시 5분 만에 사라졌다. 하지만 이런 것이 나의 행복이라고 느낀다.
맛있는 음식이나 새로운 요리를 접하면 ‘이 요리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 하고 궁리한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내가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까마득히 어린 시절부터 먹었던 요리는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요리를 잘하게 된 이유는 집안 내력이라는 둥, 어릴 때부터 단련된 미각 덕분이라는 둥 여러 이야기를 듣지만, 사실은 내가 단순히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강한 아이였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지금도 내가 만든 음식을 먹은 사람이 맛있다고 즐거워할 때나, 요리 교실에서 배운 음식을 집에서 만들었더니 가족들이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가장 좋다. 왠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매번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다.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요리의 즐거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