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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 1위

토르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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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모든 사람이 먹는 것 -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나는 몇백 개의 토르티야를 만들어왔던가. 몇백 개는 과장일지 모르지만, 기분상 그 정도는 만든 것 같다.

 
셰프의 딸
나카가와 히데코 저 | 마음산책
『셰프의 딸』은 여러 나라를 삶의 무대로 삼은 한 코즈모폴리탄의 특별한 이야기를 담았다. 다양한 갈림길 앞에서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마음이 이끄는 곳을 택했던 사람. 그는 일상에 파묻혀 꿈을 접어둔 이들에게 ‘안주’와 ‘정체’ 대신 스스로 찾아가는 삶의 기쁨,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나는 20년 전 바르셀로나에서 사비나를 만났다. 그리고 사비나가 만들어준 토르티야는 2년 반의 바르셀로나 생활 중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기억에 남았다. 잠재의식 속에는 싫은 기억도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이란 자기에게 좋았던 일, 감동한 일 등 긍정적인 추억만 기억하는 존재다. 그리고 그런 기억 중 하나가 바로 사비나의 토르티야다.

동독에서 교환학생으로 있던 시절, 괴테의 고향 바이마르에서 독일어 하계 강습이 있었다. 그때 금발에 푸른 눈을 한 공산 국가의 게르만족 청년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져 결국 ‘결실 없는 사랑의 슬픈 결말’을 맛보게 되었다……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바르셀로나에서 온 문학청년과 사랑에 빠졌다. 괴테를 사랑하는 문학청년 자우마는 내가 그때까지 상상했던, 셔츠 단추를 세 개쯤 풀어헤쳐 가슴 털이 보이는 플라멩코 댄서 같은 스페인 남자와 전혀 달랐다. 자우마와의 만남으로 독일학 학자를 향한 내 꿈은 조금씩 멀어져갔다. 언젠가 꼭 스페인에 가게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우마와의 관계는 하계 강습이 있었던 한 달간의 사랑으로 끝나버렸다. 그는 바르셀로나의 대학으로 돌아갔고, 나는 바이마르 북쪽에 있는 로스토크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나름대로 충실한 유학 기간을 보내고 대학교 3탇년 2학기 때 도쿄로 돌아왔다. 졸업 후 진로에 대해 망설임을 느끼면서도 열심히 앞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는 ‘바르셀로나에 가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결정을 내리는 신중한 성격이 아니었다. 생각하는 도중에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도 결국 1991년 3월에 대학을 졸업하고 4월에 바르셀로나 공항에 당도했다.

바르셀로나에서 자우마의 대학 친구인 사비나를 알게 되었다. 그녀가 만들어준, 감자가 듬뿍 든 토르티야는 지금도 곧잘 만들뿐더러 요리 교실의 간판 메뉴이기도 하다. 사비나는 대학원생이긴 했지만 결혼을 해서 스페인 가정 요리도 잘 만들었다. 물론 사비나가 주부 경력 20년의 베테랑은 아니니 다양한 요리를 배우지는 못했지만, 그녀에게는 무엇이든 맛있게, 센스 있게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었다. 그녀가 주최하는 파티의 요리에는 세련미가 넘쳤다.

부모님의 의견을 묻지도 않은 채 멋대로 집을 나와 바르셀로나에서 생활하기로 결심했던 나의 스물넷 새로운 인생은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한 사람의 어엿한 어른으로 살아가야 했던 험난한 생활 가운데 사비나는 여러 가지를 가르쳐주었다.

토르티야라고 하면 멕시코를 중심으로 한 중앙아메리카의 요리인 타코스나 부리토에 쓰이는, 으깬 옥수수로 만든 얇게 구운 빵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스페인의 토르티야는 스페인식 오믈렛을 가리킨다.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두었던 16세기, 스페인 사람들이 인디언 전통 요리인 얇게 구운 빵을 보고는, 자기 나라의 오믈렛과 닮았다고 하며 토르티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스페인어도 제대로 못하는 나에게 사비나가 구워준 토르티야는, 어릴 적 아버지가 아침 식사 때 만들어주셨던 양파, 치즈, 햄이 든 호텔식 오믈렛이나 도시락의 계란말이와 달랐다. 프라이팬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는 동그란 키슈(파이 위에 치즈, 채소, 어패류, 햄과 같은 소를 얹고, 달걀과 우유로 만든 소스를 뿌려 구운 요리) 같은 오믈렛이었다.

기본적인 토르티야는 토르티야 데 파타타(Tortilla de Patata), 즉 감자로 만든 오믈렛이다. 충분한 양의 올리브 오일로 얇게 썬 감자를 볶다가 달걀을 넣어 오믈렛으로 만드는 아주 단순한 요리다. 소량의 양파를 넣거나 피망을 넣는 등 취향에 따라 맛이 달라지지만, 원래는 어디까지나 감자만 넣는 요리다. 스페인에서 실시한 어느 설문 조사에 의하면, 최근 몇 년 동안 ‘스페인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 1위’는 ‘토르티야’, ‘가장 맛있는 요리’는 ‘어머니 혹은 배우자가 만든 토르티야’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토르티야야말로 스페인의 ‘엄마의 맛’인 것이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생활도 익숙해질 무렵, 저녁 준비를 하는 시간에 부엌에 서 있으면 열린 창문으로 여기저기서 ‘샤락샤락샤락’ 하는 리드미컬한 소리가 들렸다. 대도시라면 어디든 그러하듯이 바르셀로나의 중심가도 피소(piso)라고 하는 5, 6층짜리 아파트로 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어느 집이라도 안뜰 쪽에 부엌이 있어 치익치익 하고 요리를 하는 소리가 다른 집에까지 들린다. 처음 ‘샤락샤락샤락’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포크나 스푼으로 접시나 볼 안에 있는 무언가를 섞는 소리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었다. 그 소리가 얼마간 계속된 다음에는, 가열한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무언가를 볶거나 굽는 고소한 냄새가 났다.

‘스페인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반찬을 먹는 걸까…….’

신경이 쓰여서 견딜 수가 없었다. 스페인에는 점심시간 후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낮잠을 자는 시에스타가 남아 있어서 저녁식사 준비를 밤 8시경에 한다. 따라서 외식이나 주말 파티가 아닌 한, 일반 가정에서는 간단하게 저녁을 먹는다. 그때 주로 먹는 음식이 따끈한 감자 토르티야인데, ‘샤락샤락샤락’ 하는 소리가 토르티야에 쓸 달걀을 푸는 소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어느 날, 사비나가 우리 집에 놀러 온다고 하기에 “아직 잘 못 만들긴 하지만 일본인이 만든 토르티야를 맛보게 해줄게” 하고 약속했다. 아버지가 언제나 젓가락으로 달걀을 풀었기 때문에 나도 똑같이 달걀을 풀고 얇게 썬 감자를 삶은 후 프라이팬에 양파를 볶았다. 나의 요리 과정을 지켜보던 사비나는 “히데코, 아니야, 아니야. 달걀은 포크로 풀어야지. 봐, 결이 부드러워지지? 그리고 감자는 삶으면 안돼! 같은 프라이팬에 올리브 오일을 듬뿍 넣어서 튀기듯이 익혀야 돼!”라고 훈수를 두다가 결국 보다 못해 요리 도중에 끼어들었다. 그날은 감자가 아까워서 다시 만들지 않은 나의 실패작, 다소 일본풍인 담백한 토르티야에 레드와인을 곁들여 먹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나는 몇백 개의 토르티야를 만들어왔던가. 몇백 개는 과장일지 모르지만, 기분상 그 정도는 만든 것 같다. 스페인 요리를 가르치는 입장이 된 지금, 나의 토르티야는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스페인 길모퉁이에 있는 타파스 바 쇼케이스에 진열해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다.

아버지께도 포크로 달걀 푸는 비법을 알려드렸는데, 물론 그런 것쯤이야 이미 옛날부터 알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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