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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 얻으러 온 학생,“북한”이란 말에 겁부터 먼저…

“저기, 일본 카레 좀 나눠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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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공이었다. 소스 가쓰돈이나 우동을 만들었을 때처럼 모두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말없이 접시를 비웠다. 요리를 만드는 사람에게 이 이상의 칭찬은 없다. 동독까지 독일어 공부를 하러 갔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매일의 생활 중 배급소에서 구한 약간의 재료를 어떻게 잘 살려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가 최우선 과제였다.

 
셰프의 딸
나카가와 히데코 저 | 마음산책
『셰프의 딸』은 여러 나라를 삶의 무대로 삼은 한 코즈모폴리탄의 특별한 이야기를 담았다. 다양한 갈림길 앞에서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마음이 이끄는 곳을 택했던 사람. 그는 일상에 파묻혀 꿈을 접어둔 이들에게 ‘안주’와 ‘정체’ 대신 스스로 찾아가는 삶의 기쁨,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동독 유학 시절, 배급소에서 사 온 감자, 양파, 당근, 소고기, 그리고 일본의 카레 가루로 카레라이스를 만든 적이 있다. 카레 냄새를 맡았는지, 일본인이 카레를 만들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어느 아시아인 학생이 미하엘라만 있을 때 우리 방에 찾아왔다고 한다. 방으로 돌아온 내게 미하엘라가 이야기했다. “히데코, 좀 전에 너희랑 똑같이 생긴 남학생이 일본 식료품 중에 뭐였더라…… 왜 얼마 전에 만들어준 매운 거. 카, 카레? 그게 있는지 물어보러 왔었어.”

“그래? 누굴까? 로스토크에 일본인은 여학생밖에 없는데. 중국인? 몽골인?”
나를 만나러 온 아시아인 남학생이 누구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거의 잊었을 무렵, 그가 또다시 찾아왔다. 그는 독일어로 “저기, 일본 카레 좀 나눠줄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깜짝 놀란 나는 ‘이 녀석은 뭐지? 어디에서 왔는지, 이름이 뭔지는 알려줘야 하는 거 아냐? 이상한 애다’라고 생각했다.
“어…… 근데 너, 어느 나라 사람이야?”
“북한.”
‘KAL기 폭파 사건도 있었는데…… 어쩌지…….’
일본에서 나오던 북한 관련 뉴스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무서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저기…… 미안. 카레는 이제 하나밖에 안 남아서, 나도 필요하고. 미안해.”

그는 나에게 뭐라고 중얼거리며 난처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사실 카레는 다섯 개도 넘게 남아 있었다. 당연히 동독이었으니까 북한에서 온 학생이 있었던 거겠지만, 그가 어떻게 일본 카레를 알고 있었는지, 그 이유와 배경은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한국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일본에 있는 동포들이 북한에 살고 있는 친척들에게 일본산 카레나 다른 식품, 옷 등을 보냈던 것이다. 북한의 사정을 알게 된 이후, 그때 카레를 나눠주었다면 좋았을걸 하고 후회했다. 이렇듯 식생활을 중심으로 한 일들을 겪으면서 동독에서의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오늘은 토마토가 나왔다고 하더라” 하는 소문을 들었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토마토를 구하러 혼자서 배급소 순회를 시작했다. 대학교 근처의 배급소에 가봤더니 토마토는 없었다. 노면 전차를 타고서 다음 배급소, 그 다음 배급소를 헤맸지만, 토마토가 없다. 맥이 탁 풀려서 평소에는 가지 않는 낮은 건물이 늘어선 주택가를 터덜터덜 걷고 있자니, 누군가가 뒤에서 따라오는 듯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런 데서 누굴까…….’
뒤돌아보니 동독에서는 거의 못 본 흑인 청년이 따라오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 흑인이 아니더라도 동독처럼 스파이나 비밀경찰이 있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는 보통 때 다니지 않던 낯선 장소에서 낯모르는 사람이 뒤따라오면 몹시 긴장하기 마련이다.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 청년도 뛰어온다. 전속력으로 달아나도 계속 뒤쫓아 오기에 멈춰 섰다.

“헉, 헉…… 왜, 왜 쫓아오는 거야?”
“몽골 사람인줄 알고. 몽골인 유학생한테 물어볼 게 좀 있어서.”
“뭐? 난 몽골인이 아닌데.”
“그럼 중국인이야?”
동독에서는 외국인을 보아도 공산권 국가에서 왔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니, 일본인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일본인. 일본에서 왔어.”
“허, 일본인이라고? 왜 이런 나라에 있는 거야?”
“독일어 공부하러 온 거야!”
모르는 녀석이 끈질기게 질문해대니 화가 났다.

“그래? 지금 어디 가는 중인데?”
“오늘 토마토가 배급소에 나왔다고 해서 여기까지 구하러 왔어.”
“아, 토마토라면 요 앞 배급소에 있어.”
무서운 순간이었지만 그 말을 듣고서 긴장으로 굳었던 얼굴이 풀렸다. 미소가 절로 나왔다.

“당케 쉔!”
흑인 청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서둘러 그가 말한 배급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동독 변방으로 유학 와 있는 걸 보면 아프리카의 공산권 나라에서 온 청년일 것이다. 무슨 공부를 하러 온 걸까? 지나고 나서야 여러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우리 집 혈통은 아무리 봐도 일본인인데, 나는 몽골인처럼 보이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염원하던 토마토를 사서 기숙사로 돌아왔다. 기숙사 친구들 앞에서 나는 득의양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동독에서 토마토를 손에 넣었으니까. 배급제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 살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다. 아마 작은 토마토 여섯 개인가 일곱 개였을 것이다. 이 토마토로 어떤 요리를 할지 미하엘라와 일본인 친구들, 그들의 룸메이트들과 의논했다. 척 보기에도 아직 덜 익은 토마토는 그냥 먹기에는 개수가 부족했고 그리 맛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소스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미하엘라가 가끔씩 만드는 요리 중에 ‘잘 못 만든 펜네’가 있었다. 밀가루 냄새가 나는 펜네를 삶아 버터로 버무리기만 하는 요리다. 토마토소스를 만들어 그 ‘펜네의 탈을 쓴 밀가루 덩어리’에 버무리면 좋을 텐데. 하지만 여기는 동독이지 이탈리아가 아니다. 독일인도 맛있는 토마토소스 만드는 법을 모른다고 한다.
“그럼 내가 만들어볼게.”

후회해봤자 때는 이미 늦었다. 나는 아버지가 자주 만들어주셨던 토마토소스 스파게티를 떠올렸다. 살풍경한 부엌에서 오랜만에 토마토를 먹을 수 있다는 기대로 들뜬 기숙사 친구들에게 둘러싸였다. 양파와 당근을 가늘게 썰어 버터로 볶은 후, 대충 썬 토마토를 함께 넣고 익혔다. 여기에 화이트와인을 넣으면 감칠맛이 나지만 기숙사에 동독 맥주는 있어도 드라이 화이트와인은 없다. 사치스러운 소리를 하면 안 된다. 그렇지, 어머니가 보내주신 물건들 속에 매기 브이용(매기Maggi는 조미료 회사 이름, 브이용은 조미액을 건조해 큐브 형으로 만든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아, 있다, 있어! 고형 수프 가루. 프라이팬에 브이용 두 개를 넣고 물을 조금 부어 뚜껑을 덮고 10분. 마지막에 소금, 후추, 설탕으로 맛을 조절한다.

대성공이었다. 소스 가쓰돈이나 우동을 만들었을 때처럼 모두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말없이 접시를 비웠다. 요리를 만드는 사람에게 이 이상의 칭찬은 없다. 동독까지 독일어 공부를 하러 갔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매일의 생활 중 배급소에서 구한 약간의 재료를 어떻게 잘 살려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가 최우선 과제였다. 대학 과제는 그 다음 문제. 배가 고프면 요리를 했고, 먹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었다. 대학생 때 그런 행복을 느꼈는데도, 나는 요리의 길로 나아갈 결심을 선뜻 하지 못했다.


혼자 집에서 점심을 먹을 때, 가끔씩 미하엘라가 만들어준 ‘펜네를 흉내 낸, 버터로 버무린 밀가루 덩어리’를 과식해서 속이 쓰렸을 때의 느낌을 떠올리며 ‘진짜 펜네’를 만들어본다. 하지만 내가 만든 펜네에서는 그때의 맛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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