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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내지 않고 핀란드까지 박정석 저 | 시공사 |
모든 게 서툴렀던 스무 살의 배낭여행이 또렷하게 되살아나는 낯선 길에서, 그땐 미처 알 수 없었던 여행의 의미들이 성큼 와 닿는다. 스무 살의 여행은 빠르고, 터프하고, 거침없었다. 꼭 가봐야 할 명소들과 가이드북에 명기된 ‘Must List’를 먹어치우듯 여행했다.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려는 전투적인 여행이었다. 그렇게 세상 구경은 할 만큼 하고 바닷가 마을에서 지나치게 평온한-흡사 식물과 같은- 나날을 보내던 전직 여행가, 문득 다시 떠나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우연히 머리를 스친 핀란드. 가 보지도 못했고, 비싸고, 춥고, 빈틈없어서 쉬 마음이 가지 않는 그곳은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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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예고도 없이 소포 하나가 도착했다. 언젠가부터 집으로든 회사로든 내 이름 앞으로 배달되는 모든 물건은 예고된 것들 투성이였다. 내 손으로 직접 주문한 물건들, 어제 엄마가 보냈다던 밑반찬, 그리고 때가 되면 매달 빼먹지도 않고 속속 도착하는 각종 고지서들. 예상 가능한 그 수많은 배달물들 사이에서 이 책은 예상치 못한 친구의 소포라는 형태로 내 손에 쥐어졌다. “니가 읽으면 참 공감할 문장들” 이라는 메모와 함께.
스무 살 때는 알 수 없었던 여행의 의미. 나를 잘 아는 친구가 남긴 메모처럼, 책은 표지에 적힌 짧은 문구만으로도 이미 섣부른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화내지 않고 핀란드까지』는 말하자면 최소한으로 쓰면서 최대한 구경해야 했던 대학 시절의 배낭여행과는 조금 다른, 누군가는 격하게 공감하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다지 공감할 수 없을지도 모를, 그런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1년 반 전부터 서울을 떠나 동해안의 시골 마을에 집을 짓고 개와 닭을 키우며 살고 있던 저자는 어느 날 식물 비슷하게 변해버린 스스로를 발견한다.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살다 보니 스스로가 기계인지 사람인지도 헷갈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중증의 게으름과 동력 상실, 무감각의 합체쯤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 퇴행현상을 그녀는 ‘인지적인 병신’ 비슷한 상태라 지칭한다. 이런저런 일을 해야지 생각하고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고, 시간이 갈수록 무기력하고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 것에 대해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게 되었다. 최악은 바로 그 부분이다. 이른바 인지적인 병신에 이어 감각적인 병신마저 되어간다는 것.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매일 같은 시각에 출근을 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하며 하루를 보낸다. 어제와 오늘이 똑같았듯 내일 역시 다르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고, 어지간해서는 광기에 휩쓸리거나 획기적인 생활의 변화 같은 것이 일어날 가능성도 없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의 나 역시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며 비행기 티켓을 예약해두고선, 막상 출국날짜가 다가오자 여행 계획도 전혀 세우지 않은 채 ‘귀찮아 귀찮아’를 입에 달고 살고 있었다. 타인의 여행 에세이인가, 나의 일기장인가. 쏟아지는 문장 하나하나가 다 내 이야기 같아서 무서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결국 별다른 계획도 없이 출국해 여행지에서 이 책을 끝까지 읽은 나는 뒤늦게 ‘조금만 더 빨리 읽었더라면’ 하는 후회로 몸부림쳐야 했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비용을 아껴보고자 난생처음 호텔이 아닌 민박집으로 숙소를 잡았다. 하지만 홈페이지에서 본 사진과 비슷한 부분을 도저히 찾아낼 수 없는 방 구조, 옆방에서 나누는 대화에 언제라도 끼어들 수 있는 수준의 방음을 자랑하는 얇은 벽, 그리고 ‘방 바로 옆에 화장실이 붙어 있는1인실’이라는 그럴듯한 민박집 주인의 설명과 달리 샤워하러 갈 때마다 이미 다른 누군가가 사용 중이라 굳게 닫힌 화장실 문과 마주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거의 도망치듯 민박집을 빠져나와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다 어느 카페에서 펼쳐든 이 책에서 마침내 다음 문장을 발견했을 때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행에서 내가 바라는 사치 두 가지. 공유하지 않는 화장실. 그리고 맛있는 저녁식사.”
누군가에게는 사치일 수도 있겠다. 호텔방에서 혼자 유유자적하는 것보다는 조금은 불편할 지라도 민박집에서 세계각국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의 묘미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업무상 수많은 거래처와 통화할 일이 많은 나에게는 낯선 곳에서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절실했고, 한 끼 사먹을 돈을 아끼기 위해 저녁에 민박집으로 돌아와 라면을 끓여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에 나오는 어느 문장처럼 “내 나이쯤 되고 보면 화려한 사교 생활이나 국제적인 우정보다는 혼자 쓰는 화장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이번 여행 내내 나는 혼자 쓰는 화장실이 너무도 절실했다.
하지만 익숙한 일상을 남겨두고 굳이 비싼 돈 들여가며 낯선 곳을 향해 열 몇시간이나 날아가 여행을 하는 건 누가 떠밀어서도 아니고 오로지 스스로 자처한 일이다. 그러니 그 여행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고 해서 화를 내며 여행을 망치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게다가 나는 이미 일상 속에서 너무 많은 화를 내며 살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화내지 않기.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 한마디는, 그리하여 모든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여행의 룰이라고 할 수 있다.
매 끼니를 저렴한 맥도날드 햄버거로 때우기 일쑤였던 대학시절의 배낭여행과 사회인이 된 후에 떠나는 여행은 다를 수밖에 없다. 금전적인 여유도 물론 달라졌거니와,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처음 배낭여행을 떠났던 때보다 모든 것에 능숙해지고 여유로워진 것이다. 부지런히 움직여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매 순간이 새롭고 낯설었던,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한 달 내내 생활이 아니라 그야말로 여행 그 자체였던’ 스무 살의 여행 만큼이나, 가끔씩 게으름도 피우고 짧은 여행기간 동안 자주 가는 단골 카페도 생기는, 조금은 느슨한 서른 살의 여행 역시 소중하다는 말이다.
타인의 여행기를 읽는 이유는 각기 다를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관련정보를 얻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혹은 떠날 수 없어 글을 통해 대리 경험을 하고자 함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는 여행이 아닌, 얼굴도 모르는 다른 누군가의 여행에 온전히 공감할 수 있을 확률은 얼마나 낮은가. 무릇 여행이란 것이 그렇다. ‘좋은 여행’이란 그 자체로 모호하고 주관적인, 따라서 자신이 아닌 남에게는 적용할 수 없는 개념이기에 그대의 여행과 나의 여행은 다를 수밖에 없다. 심지어 같은 곳을 여행해도 스무 살의 나와 서른 살이 내가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 어쩌면 바로 그 지점에서 모든 여행기는 존재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닐까.
“모르는 게 더 나았을까? 세상에는 이런 곳도 있다는 것을?”아름다운 핀란드의 바닷가 마을, 자작나무 숲 속 통나무 오두막, 파란 호수 속에 축조된 오래된 성에서 열리는 오페라까지. 마침내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지나가고 저자는 일상으로 돌아온다. 여행을 떠났던 몇 주의 시간 동안 두고 간 일상이 변할 리는 없다. 그래서 다시 식물화의 위험이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겉으로는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도 내 안에서 무언가가 미세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혹은 변해야겠다는 생각이 꿈틀거리기 시작할 때, 그 때 다시 한번 생각하는 것이다. 여행을 하기를 잘 했다고. 그것은 떠나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그리고 이전의 나도 미래의 나도 아닌 지금의 나만이 알 수 있는 여행의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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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석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 노스웨스턴대학교와 플로리다대학교에서 영화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문학사상》으로 등단하고 소설 『33번째 남자』를 발표했다. 남미와 발리, 아프리카 등 60여 나라를 여행했고 그 기록을 담은 『쉬 트래블스』, 『용을 찾아서』, 『내 지도의 열두 방향』 등을 출간했다. 윌리엄 포크너의 영향을 받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여가 시간에는 존 스타인벡, 조지 오웰 등이 쓴 책들과 요리 서적을 번역하고 바다낚시를 한다. 술 내놓으라는 말을 10여 개 언어로 할 수 있다. 우연히 찾아간 동해안 마을에 반해 그곳에 집을 한 채 직접 짓는 이야기인 『하우스』를 썼다. 현재 그 집에서 3년 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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