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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콧물은 사회에 어떤 공헌을 할 수 있을까

몸이 아플 때는 그 부분이 중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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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점을 생각한다면 몸을 긍정한 철학자인 니체가 평생동안 매독에 시달렸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매독은 비염보다 훨씬 아픈 병이다. 감기몸살과 비슷한 증상에서 시작하여 심해지면 살이 썩어들어간다. 그러니까 니체는 건강한 사람보다 훨씬 ‘몸’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환절기면 찾아오는 콧물, 코막힘

에이 취. 팽. 조용한 사무실. 정적을 깨고 인간은 육체적 존재라는 유물론을 증명하는 이 효과음은 십중팔구 나의 입과 코로부터 나온 소리다. 보통 사람이라면 한 해에 1~2번 정도 치르는 콧물과 전쟁을 나는 수없이 반복한다. 책상 위에는 언제나 휴지가, 가방 안에는 손수건이 대기 중이다. 2011년이 끝나가는 올해만 해도 크게 10여 차례 코감기 약을 복용한 듯하다.

이 정도면 병원에 갈 만한데 10세가 넘은 뒤로 콧물과 코막힘 때문에 이비인후과를 찾은 적은 없다. 어린 시절, 내가 들른 병원은 갈 때마다 정확한 이유를 대긴 했지만 각각 다 병명과 원인과 처방이 달랐고 주사와 약의 효과도 미비했다. 더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푸코는 근대의학이 진리가 오류에 승리하는 점진적인 과정으로 보지 않았고 몸을 대하는 권력-담론의 역사(진보도, 퇴보도 없는 역사관)적인 변화라는 관점에서 파악했다. 즉, 의학도 진리가 아니라 수많은 담론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푸코의 이론은 병원을 회피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사실은 칼과 주사가 두려워 병원에 가지 않는다.)


콧물은 눈물보다 더 지질지질하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콧물이 많다.

아, 내가 뱉은 말이지만 치부를 공개하고 나니 부끄럽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눈물이 많다’라는 문장과 불과 한 글자가 다른데 뉘앙스는 엄청 다르다. 눈물이 많다고 하면 왠지 감동, 감성, 로맨스, 정, 초코파이 등이 생각나는데 콧물이라 하니 다만 지질함이 느껴진다.

사실, 인간의 몸에서 나오는 물이라야 다 잡스럽다. 인간의 욕망을 떨치기 위해 승려들은 인간의 해골이나, 사람의 체액을 상상하곤 한단다. 침, 소변, 설사, 땀 심지어 눈물마저 눈곱과 화장과 버무려지면 혐오스러운 액체다. 그럼에도 콧물이 다른 물에 비해 더 지질하게 보이는 이유는 노출의 빈번함 때문이 아닐까? 콧물은 다른 체액보다 잘 보인다.

첫째, 콧물의 발원지인 코는 얼굴의 중심에 있다. 당연히 남의 눈에 쉽게 띈다. 둘째, 콧물은 이성만으로 조절하기가 어렵다.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면, 대부분은 괄약근 조절에 실패해 난처한 상황을 겪지 않는다. 그렇지만 웬만한 교육은 다 마친 성인도 쉴 새 없이 나오는 재채기는 자신의 의지로 멈출 수 없다.

책상 위에는 언제나 휴지가 대기 중이다.
콧물을 막기 위해서.



아플 땐 나도 마르크스주의자다

몸이 아플 때는 그 부분이 중심이 된다. 뇌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중심을 두뇌로 보는 사람이 많다. 고대 인도인은 가슴이야말로 인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뇌인가, 심장인가 하는 문제는 뇌사를 둘러싼 논쟁에 핵심이다. 나름 모두 일리 있는 말이지만 아프면 아픈 쪽이 내 중심이다.

그러므로 오랫동안 내 중심은 코였다. 환절기면 어김없이 코가 막혔고 막힌 코안에서도 신기하게 물은 흘렀다. 코는 뇌와 유일하게 연결된 신체인 듯했다. 이러한 이유로 아파 본 사람은 독일 관념론을 종결한 헤겔보다는 유물론의 우두머리 마르크스 쪽에 설 것이다.

이러한 점을 생각한다면 몸을 긍정한 철학자인 니체가 평생동안 매독에 시달렸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매독은 비염보다 훨씬 아픈 병이다. 감기몸살과 비슷한 증상에서 시작하여 심해지면 살이 썩어들어간다. 그러니까 니체는 건강한 사람보다 훨씬 ‘몸’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니체, 모든 인류를 따돌리다


썰렁한 유머 모음집에서 한 번쯤은 봤을 글이다. 세 명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프리드리히 니체는 독일 사상가다. 인문학적 풍토가 척박한 이 땅에서도 비교적 유명한 사람이다. 니체는 많은 사람이 그의 저작을 잘못 읽을 것으로 예상했다. 미쳐서 정신병원에 들어가기 직전에 쓴 『이 사람을 보라』에서 그는 “무엇보다 다른 사람과 나를 혼동하지 말라(189쪽)”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과 니체를 혼동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니체가 탄생했다. 하이데거와 야스퍼스는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로 니체를 읽었고, 푸코와 데리다는 탈근대의 징후로 니체를 파악했다. 헤르만 헤세는
『황야의 이리』『유리알 유희』와 같은 작품에서 니체를 연상시키는 인물을 묘사했다. 즉, 자기를 제외한 모든 인류를 따돌리는 절대고독, 절대정신으로 말이다.

실제로 그는 도덕, 종교, 사상 일체를 부정했다. 사회주의는 당연히 부정했고 한국 윤리 교과서가 인정하는 올바른 이데올로기인 민족주의와 자본주의, 자유주의 이 모든 걸 비판했다. 그가 21세기 한국에 살았다면 필시 감옥살이 몇 번은 했을 테다.

이런 식으로 모든 걸 부정하는 사상은 낯설게 느껴지지만 은근히 흔하다. 데이비드 흄도 이쪽 계열이고, 좀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그리스의 필론주의도 이쪽이다. 인도로 눈을 돌리면, 우리에게 용수보살로 알려진 인도의 사상가 나가르주나도 부정이 일상생활이었던 사람이다. 최근에는 데리다, 보드리야르, 폴드만과 같은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이 기존의 지적 권위를 부수려 했다.


몸을 긍정한 사람, 니체

21세기로 접어든 이 시점에서 밀물처럼 밀려왔던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는 썰물처럼 빠졌다. 사상계도 유행이 있고, 유행의 흥망성쇠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이 시들해진 이유는 간단하다. 대안이 없는 파괴였기 때문이다. 니체 예찬론자 하이데거라면 이 시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할지도 모르겠다.

“니체를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원으로 보는 행위는 잘못이다. 대안 없음이 대안인 포스트모더니즘과 니체는 확실히 다르다. 나는 이미
『니체와 니힐리즘』이라는 저서에서 이점을 지적했다. 니힐리즘(허무주의)은 예전에도 있었다. 쇼펜하워와 같은 허무주의자와 니체가 결별하는 지점은 그가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쇼펜하워가 소극적 허무주의자라면 니체는 적극적 허무주의자다!”

니체가 제안한 대안은 ‘초인’이다. 인간이 신을 죽였다면, 인간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 ‘신은 죽었다’라는 말이 니체의 18번처럼 인용된다. 간단한 말이지만 니체 사상의 많은 것을 담는 이 문장을 파고들면 복잡하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적 가치의 대립, 도덕과 형이상학의 계보, 권력에의 의지 등 니체가 그의 저서 곳곳에 숨겨 둔 핵심 개념을 모두 내포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걸 보지 않는다면 독자는 전혀 엉뚱한 니체를 만들어버린다. 이 글에서 이미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도덕의 계보』를 제외한 니체의 저작 대부분이 아포리즘(잠언)을 모은 형태라, 니체는 매혹적인 작가다. 배꼽에 꽂아도 피어싱, 귀에 걸어도 피어싱으로 우기기에 좋기 때문이다. 이때 학자 간의 합의가 중요할 텐데, 니체를 바라보는 합의된 지점 중 하나는 니체가 몸이라는 주제를 제기했다는 사실이다.

니체가 기독교적 가치를 비판한 대목 중 하나가 바로 ‘몸’에 대한 태도다. 기독교는 인간의 몸을 하찮게 여겼고 욕망을 죄로 봤다. 이러한 기독교의 입장은 다른 고전종교에서도 발견된다. 같은 유대 유일신교 전통인 이슬람은, 특히 여성의 욕망에 적대적이고 불교나 유교도 몸을 부정한다. 도교의 방중술마저도 욕망을 전적으로 긍정하는 게 아니라 조절할 것을 권유했다. 니체가 보기에 이런 태도는 멀쩡한 사람을 죄인으로 모는 ‘교수형 집행인의 형이상학(
『우상의 황혼』, 56쪽)’이다. 몸에 대한 니체의 생각은 지금 우리가 보기에 별 볼 일 없어 보여도 여전히 기독교적 가치가 우세한 시대상에서 파격이었다.

내 콧물은 무엇을 만들어낼까

고병권은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의 사상은 그의 질병과 밀접하다고 주장했는데,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앞서도 말했듯, 몸이 아프면 몸이 주인이니까. 지병이 있으면, 그 지병으로 말미암아 유물론자가 된다는 게 얼핏 보면 이 글의 주제 같지만 실은 이 글에는 주제가 없다. 니체와 반대되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소 잊혔지만 20세기 초반에 미국 심리학계를 쥐락펴락했던 윌리엄 제임스가 바로 그렇다. 그는 어릴 때부터 쇠약했고 평생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고상한 두뇌에 따라가지 못하는 몸을 가진 덕택에 윌리엄 제임스는 독서 활동조차 원활하지 못했다. 학자가 책을 읽지 못한다는 뜻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에게 키보드를 빼앗는다는 의미다. 책은 읽어야 하는데, 몸은 아프다. 그래서 제임스는 에너지가 가장 덜 소비되는 자세인, 누운 채로 책을 봤다고 한다.

니체는 아팠기 때문에 몸의 실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제임스는 반대였다. 그는 인간의 몸을 초월한 세계인, 성스러운 세계를 만난다. 앓으면서 황홀경이라는 신비주의 체험을 한 덕택이다. 이러한 그의 개인적인 경험은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이라는 명저를 쓰는 계기가 된다.

질병을 앓으며 평소에는 보지 못하는 세계를 인지하는 일은 제임스에게만 일어난 특별행사는 아니다. 성직자나 종교 사상가에게 자주 일어나는 사건으로, 신비주의 체험으로 유명한 힐데가르트와 같은 성녀들은 수시로 앓았다고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들』은 증언한다.

니체와 제임스. 위대한 사상가에게 아픔은 단순한 고통에 그치지 않고 인류 문명에 이바지하는 새로운 통찰로 이어졌다. 나의 콧물은 사회에 어떤 공헌을 할까. 아마도 별다른 기여를 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이 자리를 빌려 옆자리에 있는 분들께 양해를 구한다. 환절기가 지나면 코막힘, 콧물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잦아들 테니 그때까지만 용서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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