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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치킨 없는 크리스마스는 견디기 힘들다

붉은 리본의 로스트 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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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나 크리스마스, 축제 같은 이벤트가 있으면 붉은 리본으로 다리를 묶은 로스트 치킨을 만드셨다. 칠면조일 때도 있었겠지만 내 눈에는 언제나 로스트 치킨으로만 보였다.

 
셰프의 딸
나카가와 히데코 저 | 마음산책
『셰프의 딸』은 여러 나라를 삶의 무대로 삼은 한 코즈모폴리탄의 특별한 이야기를 담았다. 다양한 갈림길 앞에서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마음이 이끄는 곳을 택했던 사람. 그는 일상에 파묻혀 꿈을 접어둔 이들에게 ‘안주’와 ‘정체’ 대신 스스로 찾아가는 삶의 기쁨,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엄마, 다녀오겠습니다! 츄~스!” 매일 아침 7시에 어머니가 싸주신 일본 주먹밥, 생소한 독일 샌드위치에 사과 한 알이 든 가방을 비스듬히 메고서 독일 본(Bonn)에 있는 유치원에 통학했다. 커다란 나무가 늘어선 가로수 길을 롤러스케이트로 씽씽 내달렸던 기억, 롤러스케이트를 탄 감촉이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 가족은 내가 여섯 살 때부터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독일에서 살았다. 당시 도쿄 임페리얼 호텔에서 프랑스 요리 셰프로 근무하던 아버지가 서독의 일본대사관 전속요리장으로 파견된 것이다. 그래서 가족 모두가 독일로 이주했다.


도쿄 친정에 갔을 때, 독일의 어린 시절 사진을 정리했다. 암갈색으로 바랜 사진들 중에 붉은 리본으로 다리를 묶은 로스트 치킨 사진이 있었다. 생일 파티 때인 것 같다. 독일에서 다녔던 초등학교의 친구들이 테이블을 둘러싸고 있으니, 여덟 살 생일일 것이다. 아니, 네 살인 남동생이 한가운데 앉아서 생긋 웃고 있는 걸로 봐선 남동생의 생일을 축하하는 장면인 걸까? 사진을 보아도 기억이 흐릿하다. 붉은 리본을 묶은 로스트 치킨의 구수한 맛만 기억날 뿐. 독일로 이사 가 처음 1년간은 숲 속 유치원에 다녔다. 독일어를 잘 못했지만 금방 원래의 말괄량이 기질을 발휘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말이 안 통하는 스트레스로 등교 거부를 하거나 환경에 적응 못하고 유치원에서 늘 훌쩍거리며 집에 가고 싶어 안달인, 한마디로 걱정을 끼치는 딸은 아니었다.

한번은 유치원 정원 그네에 독일인 남자아이를 앉히고 내가 그 뒤에 서서, 당시 좋아했던 TV 방송 <말괄량이 삐삐>에 나오는 삐삐가 된 기분으로 하늘 높이 오르도록 발을 굴렀다. 그런데 그네의 탄력으로, 서 있던 내가 아닌 앉아 있던 남자애가 잔디밭으로 굴러 떨어졌다. 다행히 큰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남자애의 이마에는 커다란 혹이 생겼다. 몸집이 큰 원장 선생님께 야단맞긴 했어도 부모님을 호출하는 큰 소동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원장 선생님은 남자애 이마에 맛있는 독일 버터를 듬뿍 바르며 “혹에 버터를 바르면 붓기가 빨리 빠진단다”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맛있는 버터가 아까워서 혹에 발라본 적은 없다. 얼마 전에 이 일을 한국인 친구에게 이야기해주자, “어머, 한국에서도 혹이 생기면 할머니나 어머니가 담근 된장을 바르는데”라고 했다. 실제로 혹에 된장을 바른 사람은 본 적이 없으니 꽤나 옛날 풍습일 거라고 생각했다. ‘맛있는’ 버터와 된장이라는 데서 묘한 공통점을 느꼈다.

독일에 산 지 2년째 되던 해, 나는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던 이펜도르프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말괄량이 기질은 변하지 않았다. 당시 독일 학교는 바깥이 어슴푸레한 새벽 6시 반에 등교하여 저학년은 오전 9, 10시가 되면 집에 돌아갔다. 아침 9시에 수업이 끝나는 날에는 친구들 몇몇이 내 뒤를 졸래졸래 따라왔다. 자그마한 숲이 있는 일본 대사관의 커다란 정원에서 놀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친구들이었다.

독일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2년간, 아버지는 매일같이 놀러왔던 친구와 나에게 시간이 나면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주셨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축제 같은 이벤트가 있으면 붉은 리본으로 다리를 묶은 로스트 치킨을 만드셨다. 칠면조일 때도 있었겠지만 내 눈에는 언제나 로스트 치킨으로만 보였다. 붉은 리본의 로스트 치킨은 일본에 돌아와서도 남동생과 나의 생일이나 크리스마스가 되면 반드시 등장했다. 붉은 리본이 묶여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먹기 쉽도록 가끔은 치킨의 두 다리 끝이 포일로 감싸져 있었다. 소금과 후추로만 밑간을 하는 심플한 로스트 치킨.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로스트 치킨 말고는 치킨을 먹지 못했다. 아버지가 해주신 치킨이 맛있어서라기보다, 통째로 구운 치킨을 보면 살아 있는 닭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특히 닭의 ‘다리’를 보면 닭살이 돋는다. 그래서 어머니가 해주신 김말이 닭튀김 말고는 닭고기를 즐겨 먹지 않았다. 외식 때 로스트 치킨을 주문하는 일도 없고, 지금도 서울의 길가에서 자주 보는 ‘전기구이 통닭’도 사본 적이 없다. 길을 걸을 때 풍겨오는 구수한 치킨 냄새에 코가 간질간질하지만, 전기 오븐 속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전기구이 통닭은, 보기만 해도 먹고 싶은 기분이 사라진다. 역시 나에게는 붉은 리본이 필요하다.


붉은 리본의 로스트 치킨은 대학생이 된 이후 거의 먹을 기회가 없었다. 한국에 살고부터는 길거리의 전기구이 통닭 트럭을 볼 때 언뜻 붉은 리본을 떠올린다.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상업적이기도 한 한국의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옛날에 먹은 아버지의 로스트 치킨의 식감과 맛이 내 입속을 맴돈다. 일본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많아서인지, 한국의 크리스마스는 경건한 느낌이 든다.

독일이나 스페인의 크리스마스도 떠들썩한 느낌은 아니었다. 매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한국이나 일본의 설날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부모님 곁으로 돌아와 한 해 동안 있었던 일들이나 내년에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조용히 얘기를 나눈다. 평소보다 간단히 저녁을 먹은 후 늦은 밤 가족이 다 함께 교회에 간다. 외부인이었던 나에게는 즐거운 크리스마스는커녕 일본의 부모님이 생각나는 슬픈 날이었다. 크리스마스 음식으로 로스트 치킨이 없으니 더 견디기 힘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빵집 앞을 지나면 “루돌프 사슴 코는~” 하는 캐럴이 크게 흘러나오고, 24일 밤 9시경에는 가게 앞에 팔고 남은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산더미처럼 쌓인다. 호텔의 크리스마스 디너나 고급 레스토랑의 예약도 꽉 찬다. 당연히 나도 대학생 때는 그런 크리스마스이브가 즐거워서 남자친구에게 도쿄 아오야마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에 가자고 조른 기억이 있다. 남자친구가 열심히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나에게 한턱냈을 크리스마스 디너의 메뉴와 맛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프랑스 요리 셰프인 아버지에게 크리스마스는 최고로 바쁜 날이었다. 아버지와 함께하진 못했어도, 우리 가족의 크리스마스이브 식탁에는 언제나 양쪽 다리를 붉은 리본으로 묶어 노릇노릇 구운, 특유의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로스트 치킨이 커다란 은 접시 위에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아무리 바쁘셔도 남동생과 내가 먹을 로스트 치킨은 단 한 번도 잊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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