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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를 지켜라>가 줄 수 있는 최선의 해피엔딩

뻔한 드라마 공식 위에 캐릭터로 승부수를 띄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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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가면 남친 생긴다’는 어불성설은 전국의 고3 부모님들이 만들어낸 거짓말이고, ‘회사의 훈남 상사와 신입사원과의 핑크빛 로맨스’ 판타지는 직장 여성들을 위무하기 위한 드라마의 거짓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안다. 노은설이 DN그룹에 입사하는 순간, 차지헌 본부장과 그렇고 그런 사이로 발전할 것임을.


여비서 노은설의 보스 지키기 프로젝트

 

처_ SBS

근력과 깡 밖에 없는 비서와 모든 걸 다 가진 재벌 3세의 로맨스 <보스를 지켜라>



한때 ‘발산동 노전설’로 불리던 날라리, 온갖 알바를 섭렵하며 ‘우리의 소원은 취직’을 목놓아 부르던 백수 노은설(최강희 분)이 마침내 DN그룹에 취직한다. 하지만 취직은 노은설의 인생에 놓인 작은 산에 불과했다. SBS 드라마 <보스를 지켜라>는 DN그룹의 후계자이지만, 누구도 감당하지 못하는 문제아 차지헌(지성 분) 비서로 취직한 노은설의 고달픈 ‘보스 지키기’ 프로젝트다.

‘대학 가면 남친 생긴다’는 어불성설은 전국의 고3 부모님들이 만들어낸 거짓말이고, ‘회사의 훈남 상사와 신입사원과의 핑크빛 로맨스’ 판타지는 직장 여성들을 위무하기 위한 드라마의 거짓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안다. 노은설이 DN그룹에 입사하는 순간, 차지헌 본부장과 그렇고 그런 사이로 발전할 것임을. 그렇다면 이제 드라마의 관건은, ‘어떤 러브스토리인가’가 아니라 ‘어떤 캐릭터’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다.


살아있는 캐릭터가 주는 통쾌한 리얼리티

처_ SBS

노은설은 여느 여주인공보다 강한 캐릭터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강하다



<보스를 지켜라>는 뻔한 드라마 공식 위에 캐릭터로 승부수를 띄운 작품이다. 최강희가 연기한 노은설 캐릭터는 일찌감치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노은설은 드라마의 모든 서사를 이끌어간다. 대기업 취직부터 회사에 적응하기까지 모든 것은 노은설이 선택하고 취해서 이룬 일이었다. 이상한 소문을 내는 선배들을 손수 응징하고, 말도 안되게 괴롭히는 상사는 근성으로 버텨내고, 자신에게 온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고, 모르는 게 있으면 공부한다.

두 본부장이 동시에 고백을 하는 “눈물 나게 고맙고 복 터진 상황”속에서 사랑을 선택하는 것도 노은설이다. 어떤 불가피한 상황에 떠밀려, 혹은 좀더 적극적으로 나오는 남자가 그녀를 리드하는 게 아니다. 그녀는 신중하게 고민하고 마음을 정하고, 상황을 정리한 후에 원하는 사람에게 간다. 노은설 말대로 그녀는 실로 ‘갑’이다. 때문에 드라마는 속을 끓이는 답답함이 없다. 어처구니 없이 상황을 유예하거나, 엇갈리는 법 한번 없다. 그런 아슬아슬함 없이 어떻게 극적 긴장감을 유지할까 싶지만, 대신 여느 드라마에 없는 통쾌함이 있다. 현실감이 주는 리얼리티가 거기 있다.


노은설이 ‘갑’이 될 수 있는 까닭

처_ SBS

‘발산동 노전설’로 불리던, 확 묻어버리고 싶은 과거의 모습



노은설이 ‘갑’이 될 수 있는 결정적인 까닭은, 그녀가 스스로 제 몸 지킬 줄 아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로맨스는 항상 ‘강한 남자’와 ‘지켜주고 싶은 여자’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다. 무림고수의 딸로, 학창시절에 일진이었고, 데모, 선동 등의 과거를 가지고 있는 그녀가 ‘갑’일 수 있는 중요한 이유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고, 그녀가 당한 만큼 갚을 수 있는 힘(그리고 배짱)이 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깡패를 만나거나, 상사에게 추행을 당했을 때 - 그러니까 본부장님이 짠하고 등장해 사건을 해결할 법한 타이밍에 그녀는 직접 그들의 손목을 꺾고 제압한다.


자신이 원하는 걸 아는 ‘갑’이 쟁취한다

처_ SBS

요즘의 재벌 3세들은 고민한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최근 로코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은 점점 씩씩해지고 강해지고 있다. 반면 부족한 것 없이 다 갖춘 재벌 남들은 어리버리하거나 유약해지고 있다. 계급에 대한 욕망보다 자신이 원하는 삶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 재벌 남들은, 배신과 음모가 넘치는 재벌 계에 환멸을 느껴 업무에는 시니컬하지만,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문제아로 등장한다.

때문에 이들은 지켜주고 싶은 여자에게 끌리지 않는다. 요즘의 재벌 3세들의 연애는 호기심으로 시작한다. 그녀가 이상해서 생각나고, 생각나는 게 또 이상한 거다. 재벌 3세가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의 회전 속에 쳇바퀴를 굴리고 있을 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아는 현실적인 여자주인공 들은 결국 얻어낸다. 일도 사랑도. 노은설도 차지헌도 마찬가지다. 노은설은 자신의 업무에 최선을 다해 결국 ‘그녀 없이는 어디도 갈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차지헌을 만들어낸다.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신분차이나, 주변 사람들의 외압이 아니다. 오해, 엇갈림 등 소소한 장애물들이 그들에게 덤비지만, 인물들은 휘둘리지 않고, 자기 성격과 스타일대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이 두 사람의 관계를 뒤흔드는 것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고유한 성격 그 자체다. 종영 2회를 앞두고 있는 지금, 차지헌은 자신이 ‘찌질한’ 남자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순간 사랑 앞에 두려움이 생겼고, 노은설은 그 불타는 정의감 때문에 차지헌과의 갈등을 만들어냈다.


드라마가 구현하려는 최선의 해피엔딩

처_ SBS

악역이 없는 드라마. 이 드라마에서 인물들이 극복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이 드라마에서 노은설에게 주어진 미션은 두 가지였다. 초반에는 ‘①노은설이 공황장애를 가진 보스(의 사랑)를 어떻게 자리에서 지켜낼 것인가?’였고, 지금은 ②DN그룹에 비리를 알게 된 노은설이 어떻게 보스(의 사랑)를 지켜낼 것인가’라는 미션에 고군분투 중이다. 누군가는 드라마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과 재미가 떨어진다고도 얘기한다. 12화에서 (벌써)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난 이후 대기업 비리문제로 사건의 축이 갑자기 이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내게 이 드라마는 매력적이다. 하나같이 철부지 인물들이 어른 노은설을 통해 성장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나답게 살아야지’ 단단한 삶의 철학을 가진 노은설이 위기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통쾌하다. 무엇보다도, 어떠한 난관 속에서도 차지헌과 노은설이 고유한 개성과 매력을 잃지 않아서 재미있다. 즉, 단번에 (반성하고 급) 변신하지 않는다. 못한다.

‘상초딩’에 철부지인 차지헌이 돌연 성숙한 남자가 되거나, 함무라비 법전 뺨칠 만큼 확실한 보복을 일삼는 노은설이 사랑에 빠졌다고 돌연 삶의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그들은 조금 나아질 뿐이다. 이게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최선의 리얼리티다. 그렇게 좀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그로 인해 그 동네가, 공동체가 좀더 나아지는 것이 이 드라마가 보여주려고 하는 해피엔딩이다.


못난 놈 있어도 나쁜 놈 없었던 드라마

처_ SBS

과연 노은설은 어떻게 보스를 지켜낼까



<보스를 지켜라> 재벌의 보복폭행, 수사만 받으면 휠체어를 타는 재벌, 관행처럼 이뤄지는 비리사건 등 그야말로 현실적인 이슈를 거울처럼 옮겨놓은 배경 속에 그야말로 드라마 속에나 있을 법한 인물들을 맛깔 나게 뒤섞었다. 알고 보면 나쁜 놈 없다는 말처럼, 살펴보면 이 드라마 속에 못난 놈은 있어도 정말 나쁜 놈은 없다.

하나같이 사는 일에 서툴기만 한 캐릭터들이다. 게다가 박영규, 차화연, 김영옥 등 조연의 열연으로 인물들의 개성은 한껏 살아났고, 사랑스럽다. 그런 인물들이 “약한 사람 괴롭히지 마라.”“나누는 것. 남 모자란 것, 부족한 것 판단하면서 채워주다 보면 나한테 다시 돌아오게 돼 있다”며 도덕책에나 나올법한 얘기를 나누는데도 울림이 있다. 멋있는 건 둘째치고, 소중한 사람 앞에서 ‘쪽 팔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웃음과 눈물이 억지스럽지가 않다.

이제 결말이다. 심상치 않게 예고되어 온 차회장의 병 앞에서 인물들이 호들갑스럽게 변신하지 말고, 그들답게 극복해냈으면 좋겠다. 부족한 모습 그대로, 개개인의 인물들이 지난 주 보다 나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캐릭터에 감정 이입되고, 그 성격이 전이되는 듯 따라 하고 싶어진다. 노은설을 보면서, ‘나다운 건 뭘까’ 한번쯤 생각해보고, 차지헌을 보며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하게 만들었던 이 드라마, 좋지 아니했나. 간만에 청정 무공해 에너지 불어넣어준 그들이 내 수, 목요일을 지켰다. 그 동안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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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연답게 잘, 헤쳐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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