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고경태의 아버지의 스크랩
올 것이 왔다! 만국의 ‘바지사장’이여 사표를 써라
해병대와 헌병대 사이 치열한 총격전 생생한 증언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9월8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추석맞이 특별 방송대담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안철수 현상’에 관한 사회자의 질문에 답변을 하며 이렇게 서두를 꺼낸 것이다.
안철수와 박정희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9월8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추석맞이 특별 방송대담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안철수 현상’에 관한 사회자의 질문에 답변을 하며 이렇게 서두를 꺼낸 것이다.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한다.” 당연하다는 말인가? 자기만 쏙 빼놓고 정치권이 후져서 그렇다는 뜻인가? 50년 전 윤보선 대통령의 발언이 자동으로 떠올랐다.
그는 1961년5월16일 낮 청와대로 찾아온 박정희 소장과 현석호 국방장관,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첫마디를 이렇게 꺼냈다. “올 것이 왔다.” 그날 새벽에 일어난 군부 쿠데타를 오매불망 기다려왔다는 말인가? 자기만 쏙 빼놓고 정치권이 무능하고 부패해서 그렇다는 이야긴가? 50년 간격으로 두 대통령이 입 밖에 낸 “올 것이 왔다”는 말은 수많은 논란을 불렀다. 안철수와 박정희는 대한민국 정치권을 강타한 두 ‘올 것’의 주인공이 되었다.
박정희는 아버지의 스크랩 제4권(1961. 5. 16~1962. 1. 13)에서 처음 ‘데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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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효군부(今曉軍部)서 ‘쿠데타’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 수도 ‘서울’을 완전점령 행정?입법?사법부 장악 장도영 중장?박정희 소장?김윤근 준장 지휘 해병제1여단과 2개 공정대대(공수부대를 말함-필자 주)를 선봉세력으로 삼은 혁명부대는 16일 새벽을 기해 수도서울 일원을 완전히 점령하여 모든 지배권을 장악했다. 집권 9개월째 되는 장면정부를 불신임하는 이 군부쿠데타 때문에 삼부의 기능은 일체 마비되어버렸으며 군사혁명위의 포고에 따라 금융기관도 일체 동결, 문을 닫은 채 삼엄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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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겪은 전국치안은 평온 ‘서울까지 불과 35분!’ 기자가 본 혁명군입성 북한강파출소 남방서 첫 총격 다음 수기는 본사 기자가 군부혁명이 성공한 십육일새벽 김포방면으로부터 서울로 진격해오는 해병대군인들과 이를 저지하려던 해병대간에 있은 야간의 총격전 및 혁명궐기군이 서울에 입성할 때 본 모습 등이다. 그리고 서울에 입성한 해병대장교와의 대담 등인데 이것은 본사기자가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것이다(서병현 기(記)) 16일 새벽 2시 50분. 야근을 마치고 집(흑석동소재)으로 돌아가기 위해 회사 ‘찝’차를 몰았다. 한강 인도교에 다다르자 북한강파출소남방5미터 지점에 무슨 공사를 하는지 땅이 패여 있고 군인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페루 대통령의 내한에 대비해서 길을 닦는 것일까?” “그러나 갑작스레 밤중에 길을 닦다니 좀 이상한데”하는 생각을 하며 이곳을 스쳤다. 다음순간 갑작스럽게 뚱뚱한 헌병대위를 필두로 십여 명의 헌병이 뛰어나와 통행을 막으며 “사고가 났으니 되돌아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차를 돌리고 북한강파출소에 들어가려고 차를 내리려는 순간 ‘팡! 팡!… 팡!’ 인도교남쪽에서 수십 발인지 수백발의 총탄이 날아왔다. 헌병들은 이내 몸을 피했다. 차는 다시속력을 내어 삼각지에까지 다다랐다. 총성은 뒤에서 계속 들렸다. 삼각지파출소에 들어가 무슨 일인지 물었으나 입초 순경은 그도 모른다고 했다. 경비전화로 용산서와 시경 및 북한강파출소에 물었으나 그들도 모른다는 대답이었다. 약10분후 2백여 명의 해병대원이 헌병들과 충돌한 것이라는 ‘뉴스’를 경비전화로 입수했다. 잇달아 서울역 쪽에서 완전무장한 군인(나중에 해병대로 밝혀짐)들이 10여대의 ‘추럭’에 분승하여 육군본부쪽으로 들어갔다. 총성은 남쪽에서 계속 울리고-“군인끼리 싸움에 이렇게 심한총질을 할 수 있을까?” 군부 ‘쿠데타’란 염두에도 못 둔 기자는 그때까지도 단지 군인들끼리의 싸움을 헌병이 막으려고 시도하는 줄 알았다. 심상치 않은 동태에 놀란 기자는 신문사에 조간개판(改版)준비를 부탁하는 한편 ‘데스크’에 연락한 후 곧 용산서로 차를 몰았다. 용산서에서도 숙직계장이하 10여명의 경관들이 무슨 영문인줄 몰라 서성거리고 있었다. 새벽 4시 5분경 시경에서 관하경관 비상소집령이 내렸으며 30분경이 되자 총성이 또 울리고 수대의 ‘추럭’이 경찰서쪽으로 진격해오는 것 같았으나 경찰서를 점령할 줄은 몰랐다. |
구국일념으로 궐기했소 부상한 해병 선봉중대장과 문답 급작스런 고함소리와 함께 1개중대의 해병대원들이 용산서를 포위 문을 차고 들어왔다. 경찰관들은 이층, 삼층으로 몸을 피했다. 군인들이 총을 겨누며 몰려왔고 나는 중대장(대위)에게로 인도되었다. “뭐냐?” “민간인이요.” “우리는 경찰도 해치진 않소.” 그는 나의 윗 ‘포케트’에서 신분증을 꺼내보고 내가 신문기자임을 알자 “안심하시오. 이젠 다 끝났소. 백만 명이 동원되었소. 우리의 행동을 잘 보도해주시오.” 라고 당부했다. 이때야 직감적으로 ‘쿠데타’임을 안 기자는 사람을 다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쾌히 승낙했다. 곧 이층, 삼층에 숨었던 경찰관들이 나오고 무장을 해제당했다. 이제 30을 갓 넘었을 전기중대장은 경찰서 내에 있던 모든 인원을 정문 앞에 앉히고 부하들에게 폭행을 하지 말도록 명령했으며 지나가던 차량을 징발하여 경찰서 앞에 ‘바리케이트’ 를 쌓았다. 중대장은 그들이 취한 행동을 “어떤 정당이나 단체의 조종에 의한 것이 아니고 불안정한 이 나라 정세를 바로잡자는 구국의 일념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한 후 “우리가 일선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35분 걸렸다. 괴뢰가 휴전선을 넘어 서울까지 오는데 30분이면 충분하다. 그런데도 저 썩어빠진 정치인들은 정쟁에만 여념이 없으니 이 나라를 그냥 둘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 일에 가담, 아니 상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지만 군부가 정권을 잡아 이 나라를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제삼 강조했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문 : 이 일은 해병대 단독인가. 딴 군에서도 가담했는가. ▲답 : 딴 데서도 가담하고 있다. 조금 후에 항공기가 서울 상공을 날을 것이며 오늘 낮에는 인천 앞바다에 함정이 도착할 것이다. 이는 3군이 합동한 것을 뜻한다. ▲ 문 : 3군의 고급장성도 이 일을 아는가? ▲ 답 : 알고 있다. ▲ 문 : 한강에서 사상자가 났는가? ▲ 답 : 헌병들이 저항해 와서 내 부하가 한 명 사망하고 나는 발 뒤꿈치에 총탄을 맞았다. 그는 ‘포케트’에서 돈을 꺼내 경찰서 앞 약방에서 ‘마이신’을 사먹고 병원에 가자는 부하들의 권고를 그럴 시기가 아니라는 이유로 물리쳤다. 새벽 5시가 되자 비상소집에 응해 달려온 경관들이 무장해제를 당한 채 계속 붙들려왔고 민간인들은 도로 보내주었다. 아침 6시가 되어 서울 전역을 군부가 장악했다는 방송이 있자 우리 신문사원들은 이름을 적어놓고 풀려나왔다. 헤어질 때 그 중대장은 부상으로 쩔뚝거리는 다리를 끌며 굳게 악수한 후 “우리의 의도를 국민에게 잘 알려 달라”고 거듭 부탁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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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바람’에 군법의 심판 수의에 창피한 듯 얼굴 수그리며 눈물까지 흘려 우리나라 고유의 순풍양속을 주름잡던 ‘춤바람’에 대한 첫 군재가 개정되었다. 서울?경기지구계엄고등군법회의 첫재판은 23일 상오10시 경기도청 의사당자리에서 열려 남녀 ‘땐스’광 47명에 대한 포고령1호(옥내집회금지) 및 계엄법 13, 15조 위반피고사건을 심리했다. 이날 첫 군재의 재판관석에는 재판장 안익섭 중령을 중심으로 심판관 이우현 중령 법무사 박윤상중령이 좌우로 자리잡고 검찰관 김양균 대위 관선변호인 양권 중위가 관여했다. 푸른수의에 수갑을 차고 법정에 끌려나온 남자24명 여자23명의 피고인들은 얼굴을 무릎사이에 묻어 두 손으로 덮고 있었으며 특히 여자들은 어깨를 들먹이며 울기까지 했다. 지난20일하오 2시30분경 서울시내 종로2가 17 최산부인과건물3층에 있는 무허가 ‘땐스?홀’에서 춤에 미쳐 돌아가다가 검거된 이들은 인정심문에서도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는데 변호인의 무죄항변으로 그중 ‘조재연’(30)등 5명(남2여3)이 자신에 대한 증인으로 채택- “춤추러간 것이 아니라”고 변명하다가 “왜 그런데 접근을 했는가”고 법무사로부터 훈시조의 추궁을 당하기도 했다. 이날 공개리에 진행된 재판을 방청하기 위하여 9시경부터 경기도청에는 천여명의 시민이 몰려들어 뒤뜰에서 ‘마이크’를 통해 공판 진행상황을 듣고 있었다. 좁은 법정 안에 입추의 여지가 없이 들어선 백여 방청객들도 ‘지각없는 탕아?탕녀들의 심판’을 주시하고 있었으며 기자석에는 외인기자들까지 긴장된 표정으로 이 공판을 방청하고 있었다. 군재는 상오 11시50분 일단 휴정-하오 1시30분 속개될 예정이다. (<동아일보>5월24일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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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하오2시 청와대에서 거행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육군대장 진급식에서 윤 대통령(좌)과 송 수반(우, 송요찬을 가리킴-필자 주)이 박 의장(중)에게 대장진급장을 달아주고 있다. 이 자리에는 이주일 최고회의 부의장, 분과위원장 전원, 김 내각 사무처장, 삼군참모총장, 해병대사령관, 그리고 멜로이 유엔군 사령관등이 배석하였다. 2일 하오 법정에서 구속되어 형무소에서 첫밤을 보낸 ‘장도영’ 피고는 푸른 수의에 고무신을 신고 개정하기 10분 전 형무관들에게 묶여 들어왔다. 가슴에 ‘1265’라는 번호에 ‘도’라는 기호가 적힌 ‘명찰’이 붙여있었다. 이제는 푸른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지난날의 3성장군은 자리에 앉자 검은테 안경 밑으로 지그시 눈을 감고 팔짱을 낀채 몸을 까딱도 하지 않았다. (<한국일보>11월3일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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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에디터. 「한겨레21」「씨네21」편집장과 한겨레 esc 팀장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 『글쓰기 홈스쿨』(2011)과 『유혹하는 에디터』(2009), 『직설』(공저, 2011)이 있다. 가족을 사골국물처럼 글감으로 우려먹는다는 비판에도 굴하지 않고 아버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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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앞에서 민족은 무엇인가!" 이승만, 박정희, 김일성 등 광복과 분단, 독재의 명암이 교차하는 한국현대사 인물열전! 「인물로 읽는 한국사」 시리즈 열 번째 권으로, 저자는 근대와 현대에 활동한 열 명의 정치가들을 탐구한다. 이들은 모두 한국 근대와 현대의 주역이거나 그에 맞선 인물들로, 총 네 부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