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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식객: 생명 한 그릇 자연 한 접시 SBS 스폐셜 제작팀 저 | 문학동네 |
2009년 4월, SBS스페셜 「방랑식객」 1편이 방송되었다. 자연요리연구가인 산당 임지호를 주인공으로 한 로드푸드 다큐멘터리였다. 길에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집 주위에서 나는 풀과 재료를 가지고 그 집의 도구를 사용해서 요리를 해준다는 다큐멘터리의 구성은 놀라움과 감동 그 자체였다. 좋은 환경에서 생산한 좋은 재료로 정성껏 조리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슬로푸드’를 넘어, 내가 살고 있는 근지역에서 자라난 유기농 식재료로 친환경 식탁을 꾸린다는 ‘로컬푸드’의 개념에서도 임지호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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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로 옆에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입간판 하나,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는 일본식 목조가옥…… 동네 밥집 같은 이 식당은 내가 일본에서 가장 만나고 싶어했던 자연요리연구가 나카히가시 히사오의 식당이다. 식당 이름인 ‘소우지키 나카히가시(草?なかひがし)’는 ‘풀을 씹어먹는 나카히가시’라는 뜻이다. 이름이 재밌다.
불과 다섯 평 남짓한 식당 안은 요리바로만 되어 있어서 요리사와 손님들을 1:1로 만나도록 한다. 여섯 달이나 예약이 밀려 있다는 이곳의 요리들은 가이세키 요리처럼 보이지만 해외에까지 널리 알려진 스타셰프 나카히가시의 자연요리들이다. 그의 요리는 신선한 식재료를 산지에서 직접 구입해 요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교토의 최고 료칸 중 하나로 꼽히는 ‘미야마소(深山?)’를 운영하는 유명한 나카히가시 집안 출신답게 전통과 기본을 지키는 데 익숙한 그의 별명은 ‘요리하는 철학자’다.
나카히가시는 명아주와 같은 재료는 채취하되 대부분의 채소는 일주일에 두 번씩 현지인들로부터 직접 구입해서 요리를 한다고 했다. 내 주변의 것은 모두 나를 위해 나기 때문에 그것들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와는 조금 달랐다. iso가 내 주위의 것을 채취해서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로컬푸드(local food)’를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한국에 갔을 때 가락동시장을 간 적이 있어요. 흙이 그대로 묻은 무를 보고 더욱 감동했어요. 일본 채소가게에 가보면 모든 채소가 깨끗하게 씻겨서 투명한 플라스틱 포장에 담겨 있죠. 자연에서 격리된 죽은 채소예요.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아요. 가락동에서 흙이 묻어 나뒹구는 무를 보면서 ‘저건 틀림없이 맛있는 무’라고 확신했죠. 그리고 채소를 포장한 박스들을 보았는데 ‘신토불이(身土不二)’라고 적혀있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일본에서는 그렇게 알려진 말이 아니거든요. 예전부터 깊이 공감해온 말이에요. ‘땅과 땅의 인연을 받아 태어나는 생명은 하나’라는 의미잖아요.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땅에서 생산된 채소와 고기로 만든 음식을 먹는 게 가장 몸에 좋다고 생각해요.”그는 요리방법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재료에 ‘어떻게 요리하면 되겠니?’라고 말을 건네면 답이 나오기 때문이란다. 재료를 쳐다보고 맛보다 보면 요리법이 자연스레 떠오른다는 뜻일 것이다. 그와 나, 국적은 달라도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음식하는 내내 얼굴에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조리법들도 단순히 맛있게 만들어내는 것만을 지향하지 않고 자연 속 재료가 가진 본연의 생명력을 그대로 담아내려고 노력하는 듯 보였다.
“인체는 1퍼센트가 염분이기 때문에 음식에 1퍼센트의 소금을 첨가했을 때 인체와 염분농도가 같아져 가장 맛이 좋아요. 양념이 지나치면 재료의 맛도 해치고 일단 맛이 없어져요. 음식이 맛이 없으면 그게 몸으로 들어갈 때 아무래도 편안하지 않죠.” 조미료 역시 다시마를 이용해 직접 만든 천연조미료만을 사용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그의 요리를 가이세키 요리라고 하지 않고 ‘자연요리’ ‘채집요리’ ‘약선요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는 내게 사계절을 담은 코스 요리를 만들어주었다. 맛은 한국의 맛처럼 강약이 뚜렷하진 않았지만 몸 안에서 편안해지고 고요해지는 맛이었다. 재료가 궁금하다고 하니 자신이 쓴 요리책을 보여준다. 책에는 요리뿐만 아니라 그 요리에 쓰인 재료에 대한 사진과 설명이 곁들여져 있었다. 나카히가시의 자연요리에 대한 매스컴의 관심은 뜨거웠다. 자연에서 찾아낸 새로운 식재료와 그의 즉흥요리를 두고 쏟아지는 일본사회의 찬사는 퓨전음식 일변도로 향하며 자연과는 멀어져가는 일본 음식문화의 현실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재료 그대로의 맛으로 맛있게 먹는 것이 요리라고 생각합니다. 재료의 본래 맛을 전혀 다르게 바꾸어버리면 그것은 재료에 대한 결례입니다. 재료의 맛있는 부분만을 떼어내서 먹어도 안 돼요. 재료를 있는 그대로 섭취해야 합니다. 그것은 재료에 대한 예의죠.” 재료의 가장 좋은 부분만을 요리한다는 일본음식의 트렌드와 배치되는 이야기다.
“들과 산에서 자라는 식물과 동물이 처음부터 인간에게 잡아먹히려고 태어났나요? 하지만 인간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의 영양과 기운을 섭취해야 하지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만든 음식은 약이 된다. 유명 셰프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부하는 자세로 요리를 하고 있는 나카히가시는 5평 남짓한 식당에서 오늘도 몇몇 손님만을 위한 특별한 요리를 만들고 있다. 요리는 바 안에서 나카히가시가 직접 한다. 안에 별도의 주방이 있지만 손님들이 요리과정을 지켜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가 만든 음식을 지켜보고 먹어본 사람들은 재료가 지닌 생명력이 먹는 사람 몸속으로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그의 요리를 먹고 실제로 몸이 좋아졌다는 손님들도 있다고 한다. 모든 종류의 쓰케모노(짠지)를 시장에서 살 수 있다는 일본, 공장에서 조리된 쓰케모노가 시장을 점령해버린 일본에서 나카히가시는 일본요리의 미래와도 같은 사람이리라.
그는 두릅 하나를 눈높이로 들어 한참을 쳐다봤다. 한무더기 쌓인 돌나물 잎을 하나 떼어 입으로 가져가더니 눈까지 치켜뜨고 정신을 집중해 씹어보았다. 그는 이런 식으로 채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풀을 씹어먹는 나카히가시’라는 이름을 왜 간판으로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말하자면 나도 풀에 미친놈인데, 일본에도 미친놈이 하나 더 있음을 이번에 알게 된 셈이다.
한국의 ‘미친놈’과 일본의 ‘미친놈’이 한적한 농촌마을을 찾아 각자가 요리할 풀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명아주네요.”
“우리는 나중에 이걸 지팡이로 써요.”
“우리는 이걸 불당에 올리면 천당 간다고 해요.”
“망초예요. 매운맛이 강하죠.”
“쓰네요.”
“나물은 대개 쓰죠. 그래서 한국에서는 삶아서 무쳐 먹어요.”내가 뜯어주는 풀을 먹어보는 나카히가시. 생각은 같되 재료를 이용하는 방식에서 그와 나는 차이가 있었다. 그 역시 들풀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주로 들풀을 장식이나 샐러드 정도로만 활용하는 모양이다. 일본사람들은 채소를 날것으로 잘 먹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카히가시는 생채소를 먹는 한국사람들에게 호감을 드러냈다.
일본에만 있는 고유한 풀들을 찾아볼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 대신 그에게 내가 알고 있는 풀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한국은 일찍이 풀들과 하나가 되어왔음을, 겨울을 이겨내고 파릇하게 땅을 뚫고 나오는 풀들이 어떻게 한국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고난을 잊게 해주었는지를 이야기해주었다.
“이건 곰취에요. 냄새를 맡아봐요.”
“네, 한국에 갔을 때 이걸 팔고 있었어요.”
“일본은 이거 안 먹어요?”
“안 먹어요.”
“얼마나 좋은지 몰라서 그래요.”우리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서로의 방식으로 바꿔서 요리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일본요리하세요. 내가 한국요리를 할게요.”
“그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어차피 교류이니까. 한국의 자연과 일본의 자연이 소통하는 것이기도 하고.”다시 그의 식당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자신의 방식대로 요리를 하되 상대방의 식재료만을 가지고 요리해보기로 했다. 이 순간만큼은 나도 한국의 대표요리사 임지호가 되기로 했다. 그래서 고구려 무사복을 상징화한 요리복까지 차려입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나의 사랑스러운 장들을 꺼내놓았다.
한국의 창조성과 일본의 고집나는 오늘 들에서 얻은 것들로 새로운 쌈밥을 할 예정이다. 일단 쌀에 순하고 단맛이 도는 흰 된장 ‘시로미소’로 간을 해두고 곰취는 데쳐놓는다. 버려질 곰췻대는 밥에 넣어 씹는 맛을 더한다.
“이게 곰췻대입니까?
“이거 맛있네요.” 곰췻대가 맘에 들었나보다. 시로미소와 곰췻대를 섞은 밥을 데친 곰취잎으로 싸 호롱불 모양으로 만들었다. 우리가 흔히 싸 먹는 된장쌈이 한국을 넘어 일본인들의 취향에 맞게 변신하는 순간이다. 우리네 일상에서는 쌈에 고등어조림 등이 보태지겠지만 세계인들을 위해 필요한 것은 저마다에 맞는 적절한 소스다. 물론 그 재료는 현지에서 얻은 것이어야 한다. 시로미소에 사케를 넣은 소스로 일본의 입맛을 찾아내볼 참이다. 소스를 곰취쌈에 끼얹는다. 그리고 붉은 고추와 감자채로 멋스러움을 더한다.
다음 요리는 호박잎 곰취찜. 먼저 호박잎을 살짝 태우고 칼등으로 두드려 부드럽게 만든다. 이를 밀가루에 반죽한 다음 매운맛을 내는 붉은색의 ‘아카미소’로 기본 간을 한다. 그리고 반죽을 찜통에 넣고 찐다. 입맛 없는 여름철, 집마당의 푸른 채소들로 끼니를 해결하던 우리 어머니들의 지혜를 빌렸다. 쪄낸 밀가루 호박잎을 썰어 미소와 사케에 무쳐내고 다시 데친 곰취에 싼 다음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감자채를 그릇에 깔고 자른 곰취찜을 올린다. 구수한 호박잎에 곰취향이 보태진 호박잎 곰취찜이 완성됐다.
나카히가시는 명아주를 오늘의 재료로 선택했는데, 내가 가지고 온 한국양념으로 요리를 하고 싶어했다. 나에게 순한국식 나물요리를 배워보겠단다. 첫 번째 요리는 된장으로 맛을 낸 명아주나물. 한국음식에 관심이 많은 나카히가시는 일본요리엔 잘 쓰이지 않은 들깨까지 갖추고 있었다. 데친 명아주에 곱게 빻은 들깻가루, 된장과 참기름을 넣고 무친다. 참기름 한 방울로 맛과 성질을 부드럽게 한 명아주나물이다. 이번에는 명아주를 고추장으로 무쳐보는 나카히가시.
“고추장을 넣은 것이 더 맛있습니다.” 고구마줄기를 먹는다는 사실도 그에게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줄기를 끓는 물에 살짝 삶아서 껍질을 벗기죠. 껍질이 질기니까. 이걸 말려놨다가 육개장 끓일 때나 해장국 끓일 때, 추어탕 끓일 때 써요. 생선젓갈을 이용해서 김치도 담그고 장아찌도 담그고요. ”
“잎은?”
“이파리는 안 먹어요.”고구마 줄기는 껍질을 까서 끓는 물에 데친 다음 팬에 간장을 아주 살짝 넣고 볶았다. 일본인들의 입맛을 고려해 마늘 없이 간장만 넣고 조리했다. 마늘향을 없앤 부드러운 맛이다. 나카히가시는 그 위에 흰 찹쌀떡 가루를 뿌려 멋과 맛에 변화를 주었다. 일본인답게 빨간고추를 잘게 썰어 올리는 시각적 포인트도 잊지 않았다.
철따라 나고 지는 풀들은 국적을 뛰어넘어 이렇게 하나의 공감이 되고 자유로운 음식으로 다시 태어났다.
“채소를 뿌리까지 먹는 한국의 정신은 지금의 일본에서는 없어졌습니다. 일본의 음식문화는 회전초밥집의 회전판에서 먹는 것처럼 먹고 싶은 것만 골라서 먹는 느낌입니다. 사는 데 있어 먹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한국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한국의 식탁은 서양과 일본의 식탁처럼 부드럽지 않다. 섬세하면서도 거친 자연 그대로의 밥상이다. 기본적인 단맛과 짠맛을 비롯해 매운맛, 신맛, 쌉싸래한 맛, 떫은맛 등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맛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맛에 대한 다양한 표현을 가진 나라도 없다. 달콤쌉싸래하다, 매콤하다, 달큰하다. 매옴하다, 신랄하다 등 자연의 모든 현상을 맛으로 표현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만큼 우리의 식탁은 창조적이다. 하지만 그 창조적인 식탁을 세계가 공감하는 보편적인 맛으로 끌어올리려면 아직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일본의 융통성과 고집을 함께 배워야 할 것이다.
◆ 곰취쌈밥곰취, 시로미소, 쌀, 붉은고추, 감자채1. 쌀에 시로미소로 간을 한 후, 밥을 한다.
2. 버려질 곰췻대를 잘게 썰어 맛을 더한다.
3. 곰취잎은 데쳐놓는다.
3. 시로미소로 간한 밥을 곰취잎으로 싸서 호롱 모양으로 동그랗게 만다.
4. 붉은고추와 감자채로 멋을 더한다.
◆ 호박잎 곰취찜호박잎, 곰취, 밀가루, 아카미소, 사케1. 호박잎을 살짝 태우고 두드려 부드럽게 만든다.
2. 호박잎에 밀가루를 넣어 반죽하고 아카미소로 기본 간을 하여 5분간 쪄낸다.
(콩가루, 멥쌀가루, 밥, 들기름을 넣고 섞은 후 믹서기나 체로 한 번 거른 다음 호박잎과 반죽하여 5분간 쪄내도 좋다)
3. 쪄낸 밀가루 호박잎을 썰어 아카미소와 사케를 넣고 무친다.
4. 김발에 곰취를 깐 다음 밀가루 호박잎을 올리고 돌돌 말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