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있다. 첫 번째, 이 영화는 <헬보이>, <판의 미로>의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 아니다. <줄리아의 눈>이 그랬듯이, <돈 비 어프레이드>는 길예르모 델 토로가 제작에 손을 댄 작품이다. 물론 그의 입김이 영화에 어떤 영향을 줬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아니, 솔직히 영화가 주는 이미지는 그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전작들과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외곽에 위치한 거대한 저택. 아직은 어색한 새로운 가족. 그리고 갈등. 소녀의 등장. 스멀스멀 퍼져오는 공포. 콘트라스트가 강한 미술과 조명. 어떻게 봐도 딱 길예르모 델 토로의 스타일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딱 두 가지다. 첫 번째 외로움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갈등을 겪는 소녀가 있다. 이 소녀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외딴 저택을 찾는다. 그리고 그 곳에는 엄마를 대신할 다른 여자가 있다. 소녀의 눈에 그녀는 엄마와 아빠 사이를 갈라놓은 불편한 존재다. 당연히 그녀가 싫다. 그녀가 의지할 데는 한군데도 없다. 외롭다. 그런 그녀에게 달콤한 목소리가 유혹한다. 친구가 되어달라고. 소녀가 의심과 두려움 속에서 이빨 요정의 봉인을 풀어 버린 이유는 바로 그 외로움이다. 지독한 외로움.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쓸쓸함. 영화의 속에서 보여지는 거대한 저택의 웅장함은 소녀가 가진 외로움의 크기와 비례한다. 고풍스럽고 아름답지만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색감의 콘트라스트 역시도 영화의 무게를 더한다. 그 무게란 바로 외로움이다. 그리고 그 외로움이 공포를 낳은 것이다.
두 번째 믿음이다. 소녀는 친구가 되자는 달콤한 목소리에 취해 이빨 요정의 봉인을 풀어 버린다. 하지만 누구나 짐작 할 수 있듯 이빨 요정의 존재는 공포다. 소녀를 해하려는 이빨요정들의 공격이 집요해질수록 소녀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는 강해진다. 소녀는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누구도 그 진실을 쉽게 믿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다그치거나 직접적으로 믿지 않음에 대해 소리친다.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이빨 요정의 존재를 증명하는 길 밖에 없다. 하지만 소녀는 가녀리고, 아직 어리다.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상황. 그것은 외로움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더 크고 끔찍한 공포가 된다. 철저히 혼자가 되어버린 소녀. 소녀는 두렵다. 낯선 환경,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상황이 너무나 무서워 울음을 터뜨릴 수 밖에 없다.
놀랍게도 외로운 소녀를 보듬는 것은 그녀의 새엄마다. 소녀의 말을 진실로 받아 들이고 사건을 해결하려는 인물 역시 새엄마다. 케이티 홈즈가 연기하는 새엄마의 캐릭터는 소녀에게 유일한 보호막 같은 것이다. 소녀와의 관계가 개선 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그 믿음과 외로움에 대한 이해였다. 마음을 열어간다. 화면은 조금씩 따듯한 기운을 찾고, 색감은 화려해진다. 하지만 어둠이 다가올수록 그 공포가 화해의 분위기를 좀먹는다. 저택의 모든 공간에 스며든 어둠의 기운은 새롭게 이루어진 가족의 행복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한다. 필연적인 귀결이다.
<돈 비 어프레이드>는 여타 공포영화들처럼 유혈이 낭자하거나, 장면 장면을 깜짝 쇼로 채우지 않는다. 대신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따라가며 상황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공감대의 형성이 관객들의 심장을 떨리게 만든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외로움의 공포와 불신의 두려움이야 말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무서운 요소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가족이라는 가장 작은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갈등은, 지금 내 자신이 겪고 있는 존재의 부정과 믿지 않음의 선언으로 동화되며 현실과 영화를 연결한다. 영리한 선택이다. <판의 미로>를 기억한다면, 관객들은 정말 ‘길예르도 델 토로’스러운 선택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의 시작은 꽤나 충격적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공포보다는 드라마에 가까운 설정으로 스토리텔링에 집중한다.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이 피어스와 케이티 홈즈의 앙상블은 훌륭하다. 여기에 가이 피어스의 딸로 등장하는 아역배우의 연기는 아주 좋다. 이빨요정이 등장하면서 극의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은 이빨요정에 대한 한국인의 정서가 낯설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짜릿한 공포를 기대하며 늦더위를 떨쳐버리기에는 약간 부족한 면이 있지만, 관계와 심리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슬픈 엔딩은 오락영화 그 이상의 즐거움을 관객들에게 전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나의 이야기를 보는 듯 생각이 많이 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