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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연봉 레알 0천만 원?” 이게 대체 뭔 소리야 - 외계어를 가르쳐주는 직원

레알의 정체를 묻는 나의 물음에 직원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갑자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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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터넷에서 많이 쓰는 은어인데요. ‘진짜’라는 뜻이에요.

 
사장의 본심
윤용인 저 | 알키
승진, 해고, 보너스의 은밀한 함수관계를 결정짓는 책!
창업 10여 년차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현직 사장 윤용인이 사장의 본심을 모르고서는 승진, 해고, 보너스의 비밀을 결코 풀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며 이 책에서 그간 사장들이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속마음을 과감히 털어놓는다. 심리서를 집필했던 저자답게 사장이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깊은 속내까지도 심리학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하나하나 분석해 내며 사장의 행동과 결단의 이면을 환하게 알게 될 것이다.


신입사원 공채를 위해 지원자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읽어내는 일은 절반의 지루함과 절반의 기쁨을 준다. 취업을 희망하는 이들의 간절함과 꿈, 이것을 쓰는 데 얼마나 공을 들였을까를 생각하면 어느 하나도 건성으로 볼 수 없는 것이 또한 입사지원 서류다.

그러나 ‘엄격하신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사이에서’로 시작되는 천편일률적인 자기소개서를 만난다거나 아무리 들여다봐도 발로 쓴 것이 분명한 성의 없는 서류를 일일이 검토하는 일은 고역 중에서도 상고역이다. 반면 파워포인트와 포토샵 등의 기술을 이용해 화려하게 공들인 서류이거나 소박하게 썼지만 문장에서 재치와 기지가 묻어나는 개성적인 문서를 읽는 일은 재미 중에서도 으뜸 재미다.


레알 0천만 원?
이게 대체 뭔 소리야


그런데 재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 아주 가끔 해독이 불가한 단어 앞에서 망연자실하는 경우가 있는데 지난 상반기 공채 때가 그러했다. 한 지원자가 이력서의 희망연봉 부분에 ‘0천만 원’이라고 써온 것이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금액 앞에 붙어 있는‘레알’이라는 수식어가 내 고민의 시작이었다. 레알 0천만 원이라는 ‘이해불가 독해요망’의 희망연봉 앞에서 나는 정지선 앞의 자동차처럼 ‘우선멈춤’했던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팬이라는 뜻인가? 그런데 왜 연봉 앞에 축구팀 이름을 붙였을까? 아니면 우리 회사를 레알 마드리드와 같은 명문회사로 생각한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아주 기특한 지원자군, 그래.’

그러나 뭔가 석연찮은 느낌이 들어 메신저로 30대 후반의 후배에게 말을 걸었다.
“이력서 희망연봉 앞에 누군가 ‘레알’이라고 썼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홍대 앞을 제 앞마당처럼 들락거리며 술을 마시는 것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다니는 이 디자이너 후배는, 그러나 선배의 물음 앞에서 달걀을 품은 에디슨의 표정을 짓고 있음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그가 주르륵 보낸 메신저 단문이 온통 횡설수설이었기 때문이다.

“레알? 그건 또 무슨 알이야? 스페인어 같은데 자기는 에스파뇰espanol을 할 줄 안다는 뜻 아냐? 그러니까 희망연봉을 높게 적을 자격이 있다는 거 아닐까? 그거지 뭐. 그런데 형도 이제 늙었다. 그런 말도 이해를 못하는구나. 쯧쯧.”

나는 뭔가 개운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난데없이 나를 나무라는 후배의 꼬락서니가 보기 싫어 그쯤에서 메신저를 끊어버렸다. 내 방문을 열면 단번에 이 요상한 단어를 풀이해줄 20대 지식인들이 수두룩했지만 내가 그들을 호출하지 않은 것은 바로 메신저의 후배가 보이는 저 업신여김을 직원들에게 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래도 명색이 ‘한 센스, 한 유머’ 하며 “사장님이 회식장소에 안 계시면 심심해요”라는 말 정도는 듣고 사는 나였다. 설령 그 말이 100퍼센트 순도 높은 알랑방귀라 하더라도 아직까지는 저런 향기 나는 소리를 오랫동안 듣고 싶다. 그러니 행여라도 내가 “얘들아, 레알이 뭐니?”라고 물어보면 저것들이 일제히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나는 조선의 늙은 사장이다!”라는 선언이라도 들은 양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본 후에 저들끼리 찧고 까불며 나를 능욕할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놈의 성격이 워낙 찜찜함을 참아내지 못하다 보니 어쩌다 누군가의 이름이 기억날 듯, 날 듯 하다가 나지 않으면 온종일 그 이름만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레알을 완벽하게 분석하지 못하고서는 그 다음 이력서를 볼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하여 나는 “나 하나의 죽음이 전장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면…”이라 말한 충무공정신을 되뇌면서 일을 위해서라면 나의 자존심 정도는 포기하자는 대인배의 자세로 젊은 직원 하나를 호출했으니 후세의 역사가들은 이를 두고 살신성인의 결단이었노라고 증언하리라.


외계어가 세대 간의
즐거운 소통을 부르고


레알의 정체를 묻는 나의 물음에 직원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갑자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요즘 인터넷에서 많이 쓰는 은어인데요. ‘진짜’라는 뜻이에요. ‘예쁘다’도 ‘레알 예쁘다’라고 하면 정말 엄청 실감나게 예쁘다는 거고 ‘맛있다’도 ‘레알 맛있다’가 되면 맛있다는 뜻이 훨씬 강조되는 거죠.”

그러면서 그는 아주 신이 나서 요즘 유행한다는 여러 가지 말들을 하나씩 설명해줬는데 그것도 모자라는지 아예 ‘신조어 사전’이라는 것을 인터넷에서 찾아 인쇄해오기도 했다. 이로써 나를 괴롭혔던 괴상한 단어와의 싸움은 생각보다 후환 없이 끝이 났고 나는 이력서에 이런 외계어를 쓴 그 지원자를 레알 탈락시켰다(물론 외계어를 썼기 때문만은 아니고).

얼마 후 회식자리가 있었다. 나에게 레알을 속 시원히 알려준 그 직원이 소주 몇 잔에 벌게진 얼굴을 들이대고 나에게 말했다.
“사장님, 저는 사장님이 늘 너무 어려웠는데요. 그때 레알이 뭐냐고 물어봐주셔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무엇이든 다 알고 계실 것 같은 사장님이 그런 것을 모른다는 게 한편으로는 재미있었고요. 또 한편으로는 제가 사장님께 그걸 가르쳐 드릴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헤헤.”

아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고민도 아니요, 모른다고 두들겨 맞는 고딩 시절의 수학문제도 아닐진대 나날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젊은 아해들의 은어를 모른다는 것이 왜 스스로 두려운 일이었단 말이던가!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것들을 젊은이들에게 물어보는 것은 세대 간의 즐거운 소통이 될 수 있음을 나는 레알을 통해 배운 것이다. 그 이후로도 나는 요새 많이 쓰는 은어를 짬짬이 물어보고 직원들은 열심히 알려준다.

“어이 김 대리, 치맥이 뭐야? 월드컵 응원은 치맥과 함께라는데?” “하하. 치킨과 맥주의 줄임말이에요.” “그럼 오늘 다 같이 치맥이나 할까?” “감사합니다. 완소(완전 소중한)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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