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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cm 거구를 170cm 톰 크루즈가 연기한다고?

고독한 히어로 잭 리처, 첫방에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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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의 경우에는, 외양이란 게 무척이나 중요하다. 작가들이 직접 자신이 창조한 주인공에 대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라인업』을 보면, 리 차일드가 무슨 생각으로 잭 리처를 그런 거한으로 만들었는지 잘 알 수 있다. 미스터리와 스릴러 소설 애호가였던 리 차일드는 방송국에서 정리해고 된 후 직접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영화로 만들어지는 리 차일드의 스릴러 소설 『원 샷』의 주인공 잭 리처 역에 톰 크루즈가 캐스팅되었다는 기사를 봤다. 그 기사를 읽는 순간 약간 짜증이 났다. 내가 아는, 내가 책에서 읽은 잭 리처는 전혀 톰 크루즈와 닮지 않았다. 리 차일드가 직접 설명한 잭 리처의 캐릭터는 이렇다. ‘잭은 전직 장교이고, 미국인이며, 사람들로부터 소외됐고, 민간사회에 실질적으로 동참하려고 노력하며, 소박한 이름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는 거구다. 키 195센티미터에 체중이 113킬로그램인데 온몸이 근육질이다.’ 그동안 톰 크루즈는 < 미션 임파서블 >의 특수요원부터 군인, 킬러, 전투기 조종사 등 터프한 역할을 수도 없이 연기했지만, 잭 리처가 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사이즈에서.

 

결코 몸이 작거나 마르거나 한 것을 비웃으려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170센티미터가 되지 않는 톰 크루즈는 한때 최정상의 배우였고, 크고 힘센 악당들을 무술로 물리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액션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러니 톰 크루즈가 새로운 액션 영웅을 연기하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다만 잭 리처와는 너무나도 먼 거리에 있다는 것이다.

리 차일드가 잭 리처에게 요구한 것은, 단지 사건을 해결하는 터프한 영웅만이 아니었다. 그는 보는 순간 위압감을 느끼는, 뭔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만한 거구의 인물을 원했다. ‘프로 (미식) 축구 선수들처럼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거대한 체격에 적당히 느긋하면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사나이’가 리 차일드가 원한 잭 리처였다. 내면적으로 강하고, 직접 맞붙어 보니 만만치 않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직면하는 순간 느껴지는 ‘강렬한 육체적 존재감’을 원했던 것이다. 그러니 톰 크루즈가 『원 샷』에 출연하여 잭 리처를 연기한다면, 그것은 내가 읽은 소설과는 다른 뉘앙스의 영화가 될 것이 분명하다.

지나치게 인물의 외양에 집착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잭 리처의 경우에는, 외양이란 게 무척이나 중요하다. 작가들이 직접 자신이 창조한 주인공에 대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라인업』을 보면, 리 차일드가 무슨 생각으로 잭 리처를 그런 거한으로 만들었는지 잘 알 수 있다. 미스터리와 스릴러 소설 애호가였던 리 차일드는 방송국에서 정리해고 된 후 직접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다른 영웅들과 명백히 구분될 수 있는, 자신만의 주인공을 만들어내기로 했다. 유행을 따르지 않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유형의 인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스포츠로 비유하자면 손톱을 깨물면서 초조하게 경기를 지켜보다 9회 말에 역전승을 거두는 그런 경기보다는 처음부터 압도적으로 이기는 그런 편을 선호했다.

 

예전 홍콩 무술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악당에게 마구 두들겨 맞다가 분노 혹은 새로운 기술로 역전하여 결국에는 상처뿐인 영광을 얻는 주인공은, 전혀 리 차일드의 취향이 아니었다. 리 차일드는 처음부터 압도적으로 악당들을 때려눕히는 영웅을 원했다. 성룡이 아니라 이소룡이 리 차일드의 취향이었다.

‘나는 나쁜 놈들이 그들보다 더 크고 힘센 정의의 사나이에게 묵사발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었다……나는 리처가 우리 모두 직접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주길 원했다. 당당하게 맞서서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 결코 물러서지도, 포기하지도 않으면서, 항상 영악하게 대응해주길 바란 것이다.’ 그래서 리 차일드는 군대에서 모든 전투기술을 배우고 나온 거구의 영웅 잭 리처를 만들어낸 것이다.

또한 잭 리처의 영혼도 육체처럼 강인해야 했다. ‘가슴에 상처를 안고 괴로워 죽겠다고 앓는 소리를 하’는 주인공은 질색이었다. 리 차일드는 잭 리처가 나락에서 겨우 돌아온 고뇌하는 영웅이 되기를 원치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고뇌도 없고, 모든 것이 완전무결한 주인공을 원하는 독자는 없다. 심지어 슈퍼히어로조차 고뇌가 필요한 현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뭔가 뒤틀린 것이 현실적인 주인공에게는 존재해야만 했다. 잭 리처는 서베를린의 미군기지 내에서 태어났고, 평생을 군 기지 내의 학교와 부대에서 생활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구조조정으로 ‘거칠기 짝이 없는 군대라는 세계에서 나온 주인공은 민간인의 삶에서 물밖에 나온 고기처럼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정신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실제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원시인과도 같은 존재다. 휴대전화도 없고, 이메일도 모르고, 옷은 며칠 입고 버린 후 새 것을 사서 입는다. 전혀 다른 세계에서, 여전히 군대의 사고와 행동양식으로 살아가는 남자. 잭 리처는 군대에서 배운 것이 이런 태도였다고 말한다. ‘자제하면 죽을 것이라고 가르쳐주었다. 빨리 치고 세게 쳐라. 첫방에 죽여라. 먼저 보복하라. 속여라.’ 정신과 육체는 너무나 강인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너무나도 미숙하고 어린애 같은 남자. 그것이 그의 단점이지만, 한편으로 그는 자신의 단점에 대해서 별 의문이 없다. 필요한 것은 고뇌가 아니라, 구체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실업자가 된 잭 리처는 미국 전역을 여행하기로 한다. 일단은 좋아하는 재즈와 블루스 뮤지션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행을. 떠돌이 이방인인 잭 리처는 여행 도중에 사건을 만나게 된다. 『추적자』에서는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살인범이라는 오해를 받고 유치장에 갇히게 되고, 『탈주자』에서는 난데없이 괴한들에게 납치되어버린다. 만약 잭 리처가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잭 리처는 영웅, 그것도 보통 사람들이 꿈꾸는 거의 초인에 가까운 영웅이다. 잭 리처는 난처한 상황에서 단지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사건을 해결해 버린다. 즉 잭 리처는 중세의 떠돌이 기사나 서부극 < 셰인 >에 나오는 것 같은 떠돌이 영웅의 현대적 변용인 것이다.

잭 리처에게 뭔가 거대한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딱히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도 없다. 그의 동인은 이를테면 이 정도다. ‘단지 덩치들을 싫어한다는 거지. 자기는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잘난체하는 덩치들을 싫어한다는 말이오.’ 군대에서 헌병을 했던 것도, 그런 덩치들을 합법적으로 혼내주기 위해서였다. 약자를 괴롭히는 악당들이 밉다기보다는, 악당들이 내뿜는 기운 자체가 싫은 남자라고나 할까. 리 차일드의 말처럼, 잭 리처가 등장하는 소설은 거만한 영웅과 거만한 악당이 싸우는 이야기다. 하지만 살아있는 인간처럼, 뛰어난 작가가 창조한 캐릭터 역시 성장해 간다.


지금까지 국내에 출간된 잭 리처 시리즈는 『추적자』『탈주자』 그리고 9번째인 『원 샷』, 13번째인 『사라진 내일』이다. 『원 샷』에서는 인디애나의 한 소도시에서 무차별 총격이 벌어지고 범인이 잡히는데, 그가 잭 리처를 만나기를 원한다. 『사라진 내일』에서는 지하철을 타고 가던 잭 리처는 한 여자를 보고 자살폭탄 테러리스트라고 의심한다. 망설이다가 여자에게 다가가지만, 그녀는 총으로 자살을 하고 만다. 『추적자』『탈주자』가 우연히 상황에 휘말리게 된 남자가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평정해가는 이야기라고 한다면 『원 샷』『사라진 내일』은 잭 리처가 더욱 능동적으로 개입해야만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사라진 내일』에서 잭 리처는 자신의 의지로 사건의 중심으로 점점 들어가게 된다. 단순히 거만한 악당이 기분 나빠서가 아니라, 그들이 미래에 할 행동을 예측하고 미리 움직이는 것이다. 9.11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리 차일드의 말을 유추해본다면, 이제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잭 리처가 미래를 예측하고 행동하게 된 것이다. 악당들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팔을 꺾어버린다고나 할까. 떠돌이 이방인이었던 잭 리처도 조금은 사회의 규칙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의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잭 리처는, 변하지 않는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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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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