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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자격: 고씨 부자의 유럽 42일 생존기 고형욱,고창빈 공저 | 사월의책 |
아빠와 아들, 절친이 되다! 대책불가 사춘기 아들을 변하게 한 아빠의 고군분투기 요즘 아빠는 돈 버느라, 아들은 학원 다니느라 바쁘다. 일주일에 한두 번 얼굴 보는 게 전부이고, 가족 간의 대화도 사라진 지 오래다. 이대로 괜찮을까? 아빠는 결심한다. 사춘기 아들을 위해 선물을 해주기로! 바로 아빠와 함께하는 유럽 여행이었다. 그것도 42일간의 긴 서유럽 일주. 1,000시간 동안 아들과 단둘이 지내다 보면 아들도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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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힘든 여행이었다. 유럽은 늘 혼자 다니던 곳이었고 알 만큼 안다고 자신하다보니 아들을 데리고 떠난 여행이 더욱 힘들었다. 아이가 보이스카우트 캠핑도 다녀오고 했으니 혹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은 산산이 깨졌다. 모든 일을 다시 확인해야 했다. 한 눈으로는 소매치기나 위험한 일이 없나 살펴봐야 했고, 다른 한 눈으로는 애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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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고형욱 | |
이렇게 하는 일 없이 바쁜 여행은 처음이었다. 내가 전혀 인자한 아빠가 아니라는 것, 참을성이 없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하지만 여행을 데리고 나온 건 나다. 애가 뭘 보고 싶다고 한 적이 있나? 책임은 나한테 있었다.
아침마다 같은 풍경이 반복되었다. 늦었으니 빨리 준비해서 나가자고 말한다.
“응….” 몇 분을 기다린다.
“다 안 됐니?” 느린 목소리로 대답이 돌아온다.
“다 돼 가.” 또 몇 분이 지난다.
“아직 다 안 됐어?” “다 됐어.” 한번 나가려면 평균 30분은 기다려야 한다. 세수하고, 로션 바르고, 선크림 바르고… 모든 게 느릿느릿이다. 바쁜 건 부모이지 아이가 아니다. 더구나 요즘 중3 아이들은 아빠들 자랄 때보다 훨씬 더 외모에 관심이 많다.
중3이면 남자애들은 보통 170센티미터가 넘어간다. 짐짝치고는 대단히 무거운 짐짝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고딩보다는 머리가 덜 돌아가고, 덩치도 작고, 반항기도 적으니까. 나이가 나이인 만큼 쉬운 것부터 맡기기로 했다. 너는 요리를 해라, 나는 설거지를 할 테니. 너는 카메라를 챙기고 사진을 찍어라, 아빠는 길을 찾고 준비를 할 테니. 관심 가지는 부분을 맡겨놓으니 제법이다. 여행 사진 대부분은 창빈이가 직접 찍은 것이다. 하지만 저녁 때 찍은 결과를 확인해보면 관심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평가를 해주면 다행히 알아듣는 듯하지만 다음 날이 되면 도로아미타불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 매일 새로운 시작이었다.
창빈이는 평범한 아이다. 여행을 떠나면, 유럽에 가면, 배울 게 많을 거라는 걸 아는 ‘뛰어난’ 학생이 아니다.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아하고 컴퓨터 게임에 미쳐 있다. 핸드폰 문자질의 귀재이며, 학원보다는 땡땡이치는 걸 훨씬 좋아한다. 친구들과 있을 때는 떠들고 웃지만, 아빠를 보면 무뚝뚝하게 입을 다무는 사춘기다. 휴우, 사춘기의 아들이라니!
문제는 아들놈들이다. 초등 5~6학년이 되면 더 이상 엄마의 안테나는 효과를 보지 못한다. 딸이라면 매일 싸우건 말건 아직 엄마의 반경에 한 발 걸치고 있지만, 아들은 이때부터 아빠가 떠맡아야 한다. 하지만 아빠라는 존재는 또 어떤가? 일 핑계, 돈 핑계, 술 핑계…. 그러나 아빠라는 죄가 있기에 어떻게든 시도해보고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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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고창빈 | |
“오늘 뭐 했어?”
“그냥….”
“누구 만났냐?”
“현성이…, 승명이….”(친구 이름을 웅얼거리지만 아빠가 알까?)
“뭐하고 놀았는데?”
“학원 갔다구!” 땡! 이쯤 되면 상황 종료다. 부모들은 학원, 공부, 내신, 몇 마디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만다. 성적이라는 말로 부모 자식 간에 적당한 핑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친구들을 만나서 술을 마시다가 얘기를 들었다.
“너네 애는 얼마나 하니?” “성적?” “응.” “중간쯤?” “중학교 때 중간이면 서울에 있는 대학은 그른 거 알지?” ‘그렇군… 창빈이도 대학 가기 힘들다는 얘기군….’ 아, 그런 것도 모르고 난 도대체 뭐하는 아빠란 말인가. 아빠의 자격이나 갖추고 있는 건가.
그래서 아들에게 뭔가 자극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어떤 계기를 만들 수는 없을까 고심하게 되었다. 반드시 대학 때문은 아니었다. 이제 고등학교에 가면 아들은 더 바빠질 것이다. 성적과 학원은 더 강력한 핑계가 될 것이고, 다 자란 아들은 아빠와 아무런 경험도 추억도 공유하지 못한 채 영영 제 갈 길로 가버릴 것이다. 서먹서먹하고 불편한 채로 아들은 청년이 될 것이고 아버지는 늙어갈 것이다.
그렇게 고안해낸 것이 아들과의 유럽 여행이었다. 어느 날 나는 아이가 다 자란 후로는 제대로 된 여행을 한 번도 못 했다는 걸 깨달았다. 지난 15년간 애비는 일 년의 반 이상을 집을 나가 싸돌아다니고, 집에 있어도 아들과 대화 나누는 것이라곤
“밥 먹었니?” “공부해라”뿐이었으니, 남을 위한 여행서를 몇 권이나 쓰고도 정작 아들과는 벽이 생긴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아들에게 조심스레 운을 떼었다.
“창빈아, 여름방학 때 여행가자.”
“어디로?” 이런 대답이 나오길 바라지만 오산이다. 실제 대답은,
“안 돼~.”
“왜에?”
“친구들은 다 학원 간단 말이야.”
“그래도 머리 좀 식히고….”
“아빠가 책임질 거야?” 땡! 첫 번째 대화는 이렇게 끝났다. 두 번째 방법은 강압이었다.
“방학이래야 너는 또 PC방에 죽칠 거고 아빠는 너 쫓아다니느라 시간만 허비할 텐데, 그보다는 낫잖아!” 열심히 설득하는 아빠의 말에 아드님의 반응은 딱 한마디,
“응.” 아마 창빈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서울에서 노느니 유럽에서 놀자!’ 아니었을까? 여행 중에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를 본 적이 있다. 중학생 정도, 창빈이랑 비슷한 또래다. 무서웠다. 밥 먹는 동안 한마디 안 함…. 밥 먹자마자 일어서서 나가버림…. 억양 없는 목소리로
“잘 먹었습니다”하면 그나마 다행…. 여행을 다니면서 대화가 없는 부모 자식들을 보니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창빈이에게 다짐을 받아두었다. 별 의미 없는
“응…” “글쎄…” 식의 대답은 하지 말 것. 아빠가 물을 때면
“아무거나 아빠 하고 싶은 거…”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 것. 매일 똑같이 이런 대화를 하다보면 부글부글 끓다가 폭발하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여행 내내 가슴에 참을 ‘인’(忍) 자를 새기면서 다녀야 했다. 덕택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많이 다투기도 했다.
어른이 좋아하는 것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 가이드북에 나온 것들 대부분은 어른들이나 좋아하는 것들이다. 어느 도시에나 있는 오래된 교회, 명작들이 헤아릴 수 없이 걸려 있는 미술관, 웅장하고 화려한 고성…. 아드님 입에서 의젓하게
“난 우피치 미술관에서 본 <프리마베라>가 정말 좋았어요”라는 말이 나올까?
“역시 대영박물관에 가니까 볼 것도 배울 것도 많았어요”라고 할까? 꿈 깨세요, 꿈 깨!
중3짜리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시련이 참 많았다. 아빠의 꿈과 상상력은 우리 아들이 이번 여름 동안 ‘눈에 띄게 성장하기’였지만, 창빈이는 돌아오자마자 그동안 못 만난 친구들 만나느라 바빴다. 42일간의 여행 후에 창빈이한테 물어보았다.
“넌 뭐가 제일 좋았니?” “음…(골똘히 생각한다)…, 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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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만 사주면 만사 ok | |
여행 중 정작 힘들었던 것은 단기간에 약발이 먹히지 않을까 하는 나의 기대감이었는지 모른다. 모든 부모들 마음은 ‘여행 다녀오면 애가 뭔가 바뀌겠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영화와 소설 속의 이야기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이번 여행에서 깨달은 것은 한 가지다. 우린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할 뿐 아니라, 빨리 바뀌기를 바라는 조급증까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창빈이가 이번 여행에서 뭔가를 느낀다면 그것은 당장이 아니라 시간이 한참 지난 후일 것이다. 언젠가 아이는 기억할 것이다. 아빠와 유럽에서 보냈던 그 긴 여름을. 그리고 자기와 꼭 닮은 아이를 보며 다시 생각할 것이다. ‘우리 아버지가 날 위해 그 여름, 유럽을 보여주셨지….’
아들과 1,000시간을 함께 지내다보니 즉각적인 소득도 없지 않았다. 여행 첫날 다소 무뚝뚝했던 우리 부자의 모습은 여행 마지막 날 공항에서 샴페인을 부딪치며 축제처럼 마무리되었다. 여행 초반에
“어휴, 이놈의 새끼가!” 하던 한탄이
“아이고 내 아들~” 하는 말로 바뀐 것이다. 또 한 가지, 여행을 다녀온 후 고1이 된 창빈이는 첫 번째 시험에서 전교 2등을 먹었다.(곧 원상 복귀하겠지만….)
무엇이 아이를 그렇게 변화시켰는지 모르지만 나는 여행의 역할이 컸다고 굳게 믿는다. 무엇이건 애쓰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걸까?
이제 나는 창빈이가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안다. 그건 스쿠터다. 올해부터 스쿠터 면허를 딸 수 있는 나이라고 한다. 스쿠터를 몰고 둘이서 함께 여행을 떠나면 어떨까 물어보았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여행 때문이 아니라 스쿠터 때문이다. 이번에도 아드님이 함께해 주신다면 어디를 갈까? 아빠의 고향 제주도 구석구석을 스쿠터로 일주해볼까? 아니, 아예 전국 일주를? 올해는 대화가 조금 더 통하겠지. 한 번 겪어보았으니 작년보다야 낫겠지.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