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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이 만난 사람들] “도시 건물의 적절한 층수는 4~5층 정도”

건축가 황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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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건축가만 찾아가지 말고, 가족과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 지역과 교류하고 싶어 하는 건축주가 있었어요. 제가 그랬죠. “마당의 3분의 1은 동네 분들과 공유하세요. 텃밭으로 분양하면 되겠네요!”라고요.왜 이런 말씀 드리냐면, 한 때 홈시어터가 유행했잖아요.

건축가 황두진이 꿈꾸는 도시는 이렇다. 일단, 일터와 집은 가까워야 한다. 걸어서 오갈 수 있는 거리면 좋다. 가끔은 걷고, 때로는 자전거도 타고. 그렇게 땅을 디디며 오가는 출퇴근 길을 상상한다. 고즈넉한 카페도 집 가까이에 있으면 좋겠다. 몇 걸음 걷다 보면, 커피 향 나는 카페가 보이고. 그 옆엔 아담한 갤러리도 있다. 그림을 보고 나선, 녹음 푸른 공원에 간다.

종로구 통의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소는 이런 상상을 재현해 놓은 꿈의 공간이다. 통유리로 보이는 선명한 녹음. 그 아래 펼쳐진 그림 같은 소공원. 층마다 다른 이야기를 간직한 복합 건물. 아담한 마당에 만들어진 경쾌한 연못. 그곳에서 숨 쉬는 물고기들. 자연과 도시가 하나 된 그 이상적인 공간에서 우린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집’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재승 교수(좌)와 황두진 건축가(우)

밀도, 복합, 구도심 - 도시의 세 가지 키워드

정재승 : 건축가 황두진에게 서울은 어떤 공간인가요.

황두진 : 아주 재미있는 곳이죠. 서울만큼 다양한 현상이 복합적으로, 빠르게 일어나는 도시가 없어요. 혹자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빨리 노령화되고 있는 곳’이라고도 하는데요. 건축가에겐 매우 흥미로운 공간입니다. 많은 실험을 할 수 있거든요. 게다가 6백 년 역사를 기억하는 곳이니,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어요. 자연과 사람의 연결고리가 중요한 곳이기도 하고요.

정재승 : 삶이 공간에, 또 공간이 삶에 영향을 주기도 하는데요. 좋은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황두진 : 도시는 적절한 밀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개인의 삶에서는 저밀도가 좋겠죠. 1,2층에 마당 있는 집이라면 다들 좋아 할 거예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인구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어요. 도시가 너무 옆으로 퍼져, 기능이 마비될 테니까요. 미국이 그 예인데요. 모두, 교외로 나가다 보니 엄청난 거리를 운전해야 하고 도시는 죽어가죠. 적절한 도시의 건물 층수는 4-5층 정도 같아요. 평균 밀도죠.

다음은 복합의 문제인데요. 주거문제를 바라보는 통섭의 시각이 필요합니다. 20세기에는 단일 용도의 건물만 지었어요. 여기서는 일, 공부, 살림 이렇게 공간의 역할이 정해져 있었죠. 저는 그걸 시루떡 같은 건물이라고 해요. 층은 여러 개, 다 같은 형태죠. 그런데, 어디 인간의 삶을 그렇게 분화시킬 수 있나요. 앞으로 도시 건물은 더욱 복합화될 거예요. 주거, 건물, 사무실이 모두 있는 공간이 늘어날 겁니다. 거시적으로는 직장과 주거의 거리를 단축해야 해요.

세 번째는 구도심의 문제인데요. 전에 시청 이전 얘기가 있었죠. 결과적으로 이전하지 않은 건 너무 잘한 일 같아요. 구도심이 움직이면, 도시 기능이 쇠락하거든요. 절대다수의 기억, 역사가 있는 곳이 바로 구도심입니다. 구도심이 몰락한 도시는 미래가 없어요. 구도심에 주거가 들어와야 하고요. 20세기에는 도심에서 사는 것에 대한 안 좋은 시선이 있었죠. 도시가 좋아 선택 했다기보다는 교육이나 취업 때문에 살게 된 사람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어요. 요즘 신세대들은 도시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죠. 이들에게 도시의 빌딩 숲은 제2의 자연입니다. 도시 안에 또 다른 생태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도시의 삶에 거부감이 없어요. 그러니, 지금부터 재미있는 걸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죠. 저에게 좋은 도시란 이런 거예요. 친구가 집에 놀러 왔어요. 그러면, 함께 집 근처 카페에 갔다가 갤러리에서 그림도 보고, 공원도 산책하고요. 이렇게 근처에서 원하는 걸 다 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홍대 그리고 가로수길이 재밌는 것은 적절한 밀도 때문

정재승 : 복합이 장점도 있지만 문제점도 있을 것 같아요, 현대인의 일상은 일과 가정이 분리가 잘 안 되어 있고 그것이 삶의 질을 황폐화하잖아요. 저만 해도 출퇴근이 불분명하니, 그걸 누가 끊어주어야 하거든요. 푹 자지 못하고,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의 밀도도 떨어지고요.

황두진 : 그래서 층 분리가 필요하죠. 일터와 집이 멀면 출퇴근이 힘들겠죠. 만약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다면요? 에너지, 건강, 생활 습관의 문제 많은 게 해결 되겠죠. 그래서 전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걸어 다니면서 일상의 대소사가 해결될 수 있다면 삶의 질이 굉장히 높아질 거에요. 그래서 전 세계 많은 도시가 보행자 중심의 도시를 만들려고 하는 거고요.

인터뷰가 진행된 황두진 건축 사옥 내 목련홀.
“영화의 힘: 영화배우 오달수 편” 촬영장소로도 활용됐다.

정재승 : 주상복합 건물도 좋게 보시나요?

황두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어요. 고층 주상복합 건물도 방법 중 하나죠. 제가 관심 있는 건, 저층 고밀도 복합건물인데요. ‘무지개떡’ 건물이라고 불러요. 층마다 다른 색으로 이루어진, 개성이 공존하는 형태죠. 우리는 흔히 고밀도를 만들려면 고층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면 건물과 건물 사이의 거리를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거든요. 너무 높지 않아도, 4층 정도로도 좋은 건물을 만들 수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안 좋은 케이스는 인사동이에요. 인사동은 상업 기능이 주거 기능을 완전히 몰아낸 경우에요. 처음 인사동을 개발했을 때 저층 고밀도 주거형태라는 개념이 성숙했다면, 지금 4층 정도 건물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을까요. 유럽도시는 저층 고밀도 복합건물이 많은데요. 유럽은 자동차 시대가 오기 전에, 충분한 도시적 밀도를 갖는 복합용도의 건물을 이미 만들어냈어요.



건축사 사무소 정원.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조화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황두진 대표가 서 있는 입구는 지하 목련홀과 이어진다.

정재승 : 주거와 공적 공간이 같이 있는 복합의 형태. 그 안에서 특성화된 공간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역의 특성화는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요?

황두진 : 좋은 질문입니다. 무지개떡 건물을 서울 전역에 적용하자는 건 아니고요. 그런 형태가 너무 적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 있지 않나 싶은 거죠. 서울은 여러 개의 산 사이에 앉아 있는 도시에요.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동네들의 집합 같아요. 예컨대 파리를 처음 가면 재밌거든요. 그런데, 조금 지나면 모두 비슷하게 느껴져요. 사실, 파리를 파리답게 만들어주는 건 박물관 같은 대형 건물이거든요. 유럽 도시의 획일성 때문이기도 하고요.

서울의 어떤 지역은 여전히 고층건물 위주로 되어 있고, 또 어떤 곳은 저층 복합 느낌 건물도 많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요.

가장 매력을 느끼는 곳은 홍대 그리고 가로수길이에요. 밀도가 주는 즐거움 때문이죠. 한마디로 적절한 밀도에요. 그런 형태를 미리 계획해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에게 부족했던 것은 관찰할 시간

정재승 : 최근 몇 년간 서울은 ‘디자인 서울’을 주장하는 서울시의 큰 계획 하에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건축가의 입장은 어떤가요?

황두진 : 건설의 시대에서 건축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도 성장기에서 안정기로 접어들었다는 뜻인데요. 서울이 개발의 시대에서 관리의 시대로 전환된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얼마 전 재개발, 재건축으로 지정됐다가 해제된 일이 있었죠. 그 지역에서 원하기도 하고, 사업주들이 포기하기도 했죠. 그게 바로 역사의 관성이라는 겁니다. 많은 지역이 그렇게 가려고 하다가, 이게 아니다 결심하게 되는 거죠. 다른 방식을 고려하는 거고요. 모두 하나의 방향으로 가진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찰이 필요한 것 같아요. 성찰이라는 단어를 사회에 적용하는 게 조심스럽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성찰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끌고 가는 것 같아요.


황두진 건축사 사무소 내부.
층마다 다른 이야기가 깃든, 다채로운 풍광을 보여준다.

정재승 : 더 이상 개발의 논리로는 갈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단 말씀인가요?

황두진 : 그렇죠. 앞으로는 좋건 싫건 조금 더 섬세하게, 다른 방식으로 도시를 대해야 해요. 제가 독립해서 일했던 11년. 제가 아는 한 건축에 있어서 가장 담론이 재미없었던 시대였어요. 정말 끔찍했어요. 막상 현역이 됐을 때, 세계의 큰 흐름은 다국적 자본을 기반으로 한 스타건축가 위주로 움직였어요. 국내에서는 턴키라는 방식으로 대형건축물을 지었기 때문에, 10명의 건축가가 10개의 중소규모 건설회사와 할 일을 하나의 대형건축회사가 하나의 대형건설사와 했죠. 건축의 논리나 가치체계보다는 시장 자본의 논리만 있었죠. 그게 너무 아쉬웠어요. 그나마 저를 비롯한 몇 집단이 담론을 중시한다는 게 희망이었죠.

정재승 : 건축 담론이 재미없었다고 하셨는데, 다른 분야도 비슷했던 것 같아요. 그 10년간 우리가 놓친 게 무엇일까요?

황두진 : 사람이 살아가는 바람직한 환경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그게 화두일 거에요. 거기서 중요한 건 관찰이에요. 관찰이 부족했다는 생각을 해요. 가장 시급한 것도 관찰입니다.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관찰할 시간이 부족했어요. 관찰을 통해, 인간이 살아가는 바람직한 환경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너무 관념적이었죠. 저는 모든 분야에서 과학적 태도가 필요할 것 같아요.

정재승 : 과학자적 마인드를 갖고 계신 것 같아요. 문장과 문장 사이의 논리도 참 촘촘하세요.

황두진 : 감사합니다. 과학적 태도가 인문학에 중요한 학문이라는 전제로 말씀드렸어요. 과학자들은 관찰의 결과가 마음에 드느냐 들지 않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죠. 그것과 무관하게 일해야 하기 때문에, 대상으로부터 자기를 분리해야 하잖아요. 모든 분야에서 그런 태도가 필요할 것 같아요. 선입관을 가지고 왜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아? 라고 분노하지 않고.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이런 태도로 관찰이 이어져야 할 것 같아요. 결론만 앞세우는 태도 말고요.

정재승 : 애정이 과도해서 그런가 봐요. 자기 객관화를 잘 못 하는 것 같아요.

황두진 : 맞아요. 20세기 적 경험이라고 하는데요. 공을 뻥 차고 쫓아가는 식이었어요. 자신의 희망, 바램을 투사해놓고. 그걸 이루기 위해서 달려갔던 시기가 20세기였죠.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많은 부분이 안정되어 가고 있고. 작은 단서에 큰 결과를 붙이는 태도는 조심해야겠죠.


* 이 기사는 정재승 교수와 건축가 황두진 씨의 대담 기사 중 전반부입니다. 전문은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건축가 황두진 대담 기사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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