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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의 나의 철학수업]그때 나에게 니체가 있었다

나의 철학수업은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를 읽기 이전과 읽기 이후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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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도 모르고 칸트를 읽었던 나에게 니체는 ‘철학’의 의미를 완전히 뒤집어 놓은 장본인이었다.

나의 철학수업은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를 읽기 이전과 읽기 이후로 나뉜다. 멋도 모르고 칸트를 읽었던 나에게 니체는 ‘철학’의 의미를 완전히 뒤집어 놓은 장본인이었다. 그렇게 온전하게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니체와 함께 지나갔다. 입시 공부는 뒷전이었고,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니체만 줄곧 읽었다.

당연히 담임선생님을 비롯해서 걱정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성적은 오르락내리락 널뛰기를 했지만, 니체의 음성이 뇌우처럼 울리던 나의 머리는 그의 책에 적혀 있는 말들 이외에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운 좋게도 주변에 나 같은 ‘니체 신도’가 꽤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L은 압도적인 니체주의자였다. 어쭙잖게 시랍시고 끼적거리고 있던 나에게 그는 언제나 전광석화 같은 비평을 가차 없이 던지곤 했다.

니체와 더불어,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와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절』은 우리의 경전이었다. 이런 책들에 등장하는 영웅적 주인공과 자기 자신을 일치시키면서 우리는 막막한 소년기의 한때를 통과하고 있었다. 그 시절에 나를 사로잡은 니체의 책은 『선악의 저편』이었다. 이 책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개진된 사상을 좀 더 개념적으로 다듬은 니체의 역작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보다 이 책을 더 좋아했던 것을 보면, 나는 형상보다도 개념을 더 좋아하는 취향을 가진 것 같다. 다음과 같은 니체의 말이야말로 혼란에 빠져 갈 곳을 몰랐던 나의 영혼을 단숨에 잡아끌었던 유혹이었다.


이해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시끄러운 사람들 사이에서, 즉 거북이걸음으로 걷거나, 잘해야 ‘개구리 걸음으로 걷는’ 느릿느릿한 사람들 사이에서 갠지스 강의 흐름처럼 유유자적하게 생각하고 산다면 이해되기 어렵다. 나는 정말이지 모든 것을 스스로 이해되기 어렵게 만들고 있는가? - 우리는 정말로 몇 가지 정묘한 해석을 해주는 호의에 진심으로 감사해야만 한다. 그러나 언제나 너무 편안하고 바로 친구로 편안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 ‘좋은 친구들’에 관해서는, 그들에게 처음부터 오해를 할 수 있는 놀이 공간과 놀이터를 허용하는 것이 좋다: - 그렇게 하면 우리는 여전히 웃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 좋은 친구들을 완전히 없앨 수도 있다. - 그래서 또한 웃을 수도 있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김정현 옮김. 서울: 책세상, 2002. pp. 54-55. )

이 ‘오만한’ 진술을 읽으면서 ‘철없던’ 내가 느꼈을 득의는 무엇이었겠는가? 남에게 이해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전혀 주눅 들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니체는 당당하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해를 구걸하는 행위 따위는 철학자에게 필요 없다. 철학자에게 좋은 친구인 척하는 이들이야말로 ‘편안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는 또 다른 장애물일지도 모른다. 이들의 비위를 맞춰주는 오해의 놀이터를 만들어주는 것도 좋겠지만, 귀찮으면 아예 없애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떤 경우든 철학자는 웃을 수 있다. 세상에! 이렇게 솔직한 직설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니체의 말들은 계속 이런 식으로 뻗어나간다. 사유의 파편들을 이어붙인 모자이크 같은 것이 니체의 책이다. 따라서 10대에 니체를 읽는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위험한 일’ 중 하나이다. 삶의 테두리가 일천한 나이이기 때문이다. 니체의 경구들은 깨어진 삶의 사금파리들이다. 따라서 니체는 이해하기 위한 철학자라기보다, 살아가기 위한 철학자이다. 니체를 읽은 자는 그의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니체 자신을 다시 살아야 한다. 이것이 니체의 철학이다.

다행히 나는 니체를 읽었을 때, 그 모든 것을 이해하기 어려운 나이였다. 그래서 나는 그의 말을 삶의 잠언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이해받기를 거부한 철학자였다는 것은 그래서 나에게 또 다른 행운이었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논리학자의 미신에 관해서, 나는 이러한 미신론자들이 기꺼이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사소하고 간단한 사실을 지치지 않고 매번 반복해서 강조하고자 한다. - 즉 하나의 사상은 ‘그 사상’이 원할 때 오는 것이지, ‘내’가 원할 때 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어 ‘나’는 술어 ‘생각한다’의 조건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그 무엇이 생각한다(Es denkt). 그러나 이러한 ‘그 무엇’이 바로 저 오래되고 유명한 ‘나’라고 한다면, 부드럽게 말한다고 해도, 단지 하나의 가정일 뿐이고, 주장일 뿐, 특히 ‘직접적인 확실성’은 아닌 것이다. 결국 이미 이러한 “그 무엇이 생각한다”는 것으로 너무나 충분하다. 이미 이러한 ‘그 무엇’에는 사유 과정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 함축되어 있으며, 과정 그 자체에 속한 것은 아니다.(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김정현 옮김. 서울: 책세상, 2002. pp. 35-36. )

니체는 여기에서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를 깨끗하게 거부하고 있다. 니체는 데카르트의 명제를 ‘미신’이라고 부르면서 비아냥거린다. 대단한 배포이지 않은가? 니체가 말하는 ‘그 무엇’이야말로 후일 프로이트가 ‘무의식’이라고 지칭할 개념이다. 이를 통해서 니체가 프로이트의 생각을 선취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은데, 프로이트 자신은 이런 주장에 대해 상당히 불쾌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니체의 말은 한마디로 우리가 자기 자신이라고 믿고 있는 ‘나’가 결코 생각하는 것과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생각의 주장일 뿐, 전혀 확실성의 근거일 수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항상’ 그렇게 생각의 과정 밖에 위치하면서, 그 생각 자체에 대한 하나의 해석을 제시한다. 좀 복잡한 말 같지만, 간단하게 생각하면, 생각하는 자를 생각하고 있는 또 다른 무엇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나는 생각한다’고 우리가 생각한다고 치자. 그러면 그 ‘나는 생각한다’라고 생각하는 그 꺡나’는 무엇일까?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고 있는 ‘나’라는 이중구조야말로 니체가 발견한 사유의 본질이었다.

눈치 빠른 이라면 벌써 알아차렸겠지만, 이런 니체의 발견에서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거의 모든 현대철학의 테제가 시작한다는 것은 명확하다. 20세기 철학에서 가장 영향력을 발휘한 철학자가 니체라는 말을 실감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전통적인 철학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과 우상파괴적인 태도는 니체의 전매특허이다. 특히 듣기에 따라 오만방자하기 그지없는 말투와 잠언에 가까운 표현들은 그의 철학을 사유하기보다 쉽게 숭배하게 만들기도 했다. 파시즘과 나치즘 추종자들이 그의 철학을 ‘오용’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치가였던 무솔리니가 젊은 시절에 니체를 열심히 읽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한동안 니체는 금기의 철학자였지만, 1960년대에 들어서서 극적인 변화의 계기를 맞이한다. 니체는 마르크스나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근대성의 모순에 정면으로 대적했던 ‘의심의 대가’로 다시 복권되었던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그의 철학은 근본적으로 ‘사유하는 주체’라는 근대적인 확실성의 범주를 의심하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이런 재조명은 여러모로 정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내가 니체를 처음 읽었을 때, 이런 대단한 의미들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당시에 나를 사로잡은 것은 특이한 니체의 이력이었다. 문헌학자로 출발했던 그가 철학을 하게 되고, 철학적 전통을 온통 거부하면서, 새로운 철학을 주창하게 되는 그 과정이 나에게 흥미진진했다고 할 수 있다. 사춘기의 치기였을 수 있겠지만, 이제 보면 자의식 과잉으로 보이는 니체의 말들이 오히려 멋있게 들렸던 것이 사실이었다.

돌이켜보면, 니체는 읽을 수 있는 철학을 했던 것이 아니었다. 후일 겉멋 따위에 상관없이 대학원 세미나를 위해 다시 니체를 읽으면서 나는 어떻게 그의 철학을 살 것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나에게 절박한 상황이었는데, 니체의 책들은 나에게 계속 공부를 할 수 있게 만들어준 매개였다. 지금도 니체의 책을 들춰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문헌학에 대한 해박한 그의 지식이 철학에 대한 계보학적 해체를 가능쿇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철학은 항상 외부를 통해 개입되어야하는 영역인 셈인데, 왜냐하면 그것이 곧 사유의 본질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유는 언제나 개입을 통해 우리에게 온다. 그리고 이 사유는 니체의 말처럼 ‘우리의 것’이라기보다 ‘그것’에 속한다. 내가 문화에 관심을 두게 된 것도, 그리고 지금처럼 모든 것을 의심하는 태도를 사유의 방법으로 삼은 것도 모두 니체 덕분이었던 것이다. 니체의 철학은 언제나 내 살갗 밑을 전차처럼 달려가고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 (1844~1900)


독일의 사상가이자 철학자이자 시인인 프리드리히 니체는 20세기를 연 문제적인 철학자이다. 1844년 독일 레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니체의 조상은 폴란드 계라고 알려져 있다. 5세 때 목사인 아버지를 사별하고 어머니와 누이동생과 함께 할머니의 집에서 자랐다. 14세에 슐포르타 기숙학교에서 엄격한 고전 교육을 받고 1864년 본 대학에 진학하여 신학과 고전 문헌학을 공부했다. 1865년 스승인 리츨을 따라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겨갔으며, 그곳에서 바그너를 알게 되어 그의 음악에 심취하였다. 이 두 대학에서 신학과 고전문헌학을 공부했다. 25세의 젊은 나이로 스위스 바젤 대학의 고전문헌학 교수로 임명되었고,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심취함으로써 철학적 사유에 입문했다.

28세 때 최초의 저작 『비극의 탄생』을 펴냈으며 이 저작에서 니체는 아폴론적인 가치와 디오니소스적인 가치의 구분을 통해 유럽 문명 전반을 꿰뚫는 통찰을 제시한다. 1873년부터 1876년까지는 독일과 독일민족, 유럽 문화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가하며, 위대한 창조자인 '천재'를 새로운 인간형으로 제시한 『반시대적 고찰』을 집필했다. 1879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재직중이던 바젤 대학을 퇴직하고, 이후 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요양지에 머물며 저술 활동에만 전념했다. 1888년 말부터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 니체는 이후 병마에 시달리다 1900년 8월 25일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했다. 니체의 정신병을 두고 원인이 분분하지만 젊었을 적 얻었던 매독이 발전되어 정신분열로 이어졌다는 설이 강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까지도 그의 유고들이 발굴되고 있으며 이 유고들은 니체연구 학자들에 의해 현재 독일에서 니체전집으로 출간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나올 예정이다.

* 더 읽어보면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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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택광

미술, 영화, 대중문화 관련 글을 쓰고 있는 작가.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영미문화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경북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에 자신을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구환경에 한동안 적응하지 못했으며 우주여행을 떠나는 그림을 그려서 꽤 큰상을 받기도 했다고 추억한다. 그는 자신의 모토를 "그림의 잉여를 드러내는 글쓰기" 라고 밝히며 글쓰기는 그림 그리기의 대리물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림에 대한 글을 계속 쓸 생각이라고 포부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1999년, 영화주간지 <씨네 21>에 글을 발표하며서 본격적인 문화비평을 시작한 이후, 다양한 저서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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