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뷰트 밴드’라는 말이 아직 생소하신가요? 이젠 전설이 된 그룹, 그들의 음악을 여전히 리얼하게 듣고 싶은 대중들이 있는 한 트리뷰트 밴드는 계속 존재하죠. 최근 2집을 발표한 ‘멘틀즈’는 바로 ‘비틀즈’의 헌정밴드입니다. 이번에는 히트 넘버들보다 비교적 덜 알려진 곡들을 중심으로 앨범을 채웠네요. 그리고 아이돌 음악의 한계를 잘 극복했다는 평을 듣는 에프엑스의 신작, 마지막으로 ‘펑크’라는 토대 위에 다양한 접근 방식을 취한 ‘퓨너럴 파티’의 앨범도 소개합니다.
멘틀즈(The Mentles) <Nowhere Mentles: Tributes To The Beatles, Vol. 2> (2011)
비틀즈(The Beatles)를 향한 애정과 존경 그리고 퀄리티까지 갖춘 앨범이다. 연주력은 물론 하모니와 창법 등 디테일한 면까지 꼼꼼하게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우리나라의 트리뷰트 밴드 멘틀즈(The Mentles)는 탄탄하게 구성된 두 번째 작품을 통해 패브 포(The Fab Four)에게 또 한 번 경의를 표했다.
트리뷰트 밴드는 독창성을 갖춰야 인정받는 여타 뮤지션과 사정이 다르다. 팬들 앞에서 원전(原典)을 말끔히 재현할 의무가 있으며, 이를 통해 감동을 선사해야할 책임도 있다. 최대한 오리지널에 가까울수록 인정받는 셈이다. 탄탄한 연주력을 기반으로 꾸준히 활동 중인 멘틀즈. 이들은 상기한 결성 취지에 충실히 부합되는 밴드다.
열렬한 지지를 받는 헌정 밴드라 해도, 음반을 내면 필연적으로 안게 되는 고민이 있다. 바로 ‘어떤 방법으로 대중의 흥미를 끌 것인가’ 하는 점이다. 공연에선 연주를 통해 호응을 얻지만, 활동 영역이 앨범으로 확장되었을 경우 가장 큰 경쟁자는 비틀즈(의 카탈로그)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멘틀즈가 택한 무기는 선곡의 차별화다.
비틀즈의 히트 넘버들보다 비교적 덜 알려진 곡들을 중심으로 꾸린 것은 평범함을 타파하려는 시도다.
<Rubber Soul>에 실린 「Nowhere man」과
<Help!>에 수록된 「You're gonna lose that girl,」 「It's only love」를 비롯해 「I wanna be your man」(
<With The Beatles> 수록곡), 「The one after 909」(
<Let It Be> 수록곡) 등은 비틀즈 노래들 중 조명이 덜했던 편이다. 이런 레퍼토리를 통해 선곡의 진부함에서 탈피했고, 또 대중에게 소개하는 측면도 있다. 생소한 곡들 사이에 히트 넘버 「Can't buy me love,」 「Help,」 「I saw her standing there」 등을 배치해 친숙함을 더했다. 중간 중간 흥미를 끌만한 곡들을 포진시킨 점은 영리한 선택이다.
무엇보다 김준홍(존 레논 파트), 박승혁(폴 메카트니 파트), 손보성(조지 해리슨 파트), 장석원(링고 스타 파트)의 연주 실력과 보컬이 작품의 원활한 표현을 가능케 했다. 열성팬만이 캐치 가능한 섬세한 떨림, 감정 표현 등 뛰어난 곡 이해력을 통해 원곡을 충실히 재현해낸 것이 특장점이다.
일반적으로 활동 범위가 공연에 그치는 점을 감안했을 때, 멘틀즈의 작품은 의지의 산물이요, 비틀즈를 향한 애정의 결과물이다. 이와 더불어 음악을 음반화(化) 해낼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문적인 뮤지션이 아닌 멤버들의 상황 하에서 이런 결실이 나온 점은 고무적이다. 비틀즈를 사모했던 멘틀즈 네 멤버의 열정과 꿈이 진하게 녹아있다. 앨범에서 그 진심이 느껴진다.
글 / 성원호 (dereksungh@gmail.com)
에프엑스(F(x)) <Pinocchio> (2011)
난해한 콘셉트로 대중성 없는 아이돌이라는 아이러니한 핀잔을 들어왔던 이들의 첫 작품은 중간점을 잘 잡아냈다. 「Nu ABO」처럼 너무 막나가지도 않고, 여타 걸그룹 마냥 적나라하게 자신들의 노래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대신 한걸음씩 여유 있게 치고 들어오는 은근함이 있다. 쉽게 질리지 않도록 하는 그 미묘한 경계를 캐치해낸 모습이다.
이제까지 그룹이 제시해 왔던 함수식은 풀이방법의 명확함과는 달리 접근방식이 생소해 큰 파급력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물론 이러한 노선은 소녀시대라는 보험을 매개로 한 의도된 실험이었지만, 실적 중심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보다 뚜렷한 한방이 요구되던 시점이었다. 10곡이라는 부피로 인한 부담 역시 모험 일로를 향한 여정을 막아섰다. 가시적인 성과를 위한 감상난이도 하락은 이러한 점에서 예측 가능했다.
타이틀 「피노키오(Danger)」를 보면 전체적인 조감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성과를 위시한 탓에 몰개성의 덫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걷어내고 다행히 그동안 쌓아왔던 캐릭터를 잘 담아냈다. 좋은 곡들로 차근차근 상승세를 밟다가 「Triangle」로 최악의 선택을 했던 동방신기의 예를 비추어 보면 역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절로 나올 법하다. 다소 강한 일렉트로니카 성 비트에 날카롭게 신경을 긁는 기타소리가 오감을 자극하며, 드디어 ‘들리는 멜로디’를 탑재해 냈다는 것이 눈에 띄는 변화점이다.
「Nu ABO」의 방향성을 잇는 「빙그르(Sweet Witches)」는 흔히 만날 수 없는 재미있는 트랙이다. 하나의 키보드 루프와 빠른 템포의 비트, 이펙트를 건 보컬 톤의 조합으로 일관된 흐름을 유지한다. 「빙그르」라는 소절만 반복으로 생겨날 뻔했던 지루함은 적재적소의 악기배치로 자연스레 상쇄시켰다. 서서히 빠져들게 만드는 불친절한 ‘나쁜 여자’의 매력을 완성시키는 키포인트 트랙이라 할 만하다.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날아오는 변화구도 체감할 수 있다. 자신들만의 물기를 살짝 빼 건조시킨 레트로 팝 「아이(Love)」는 감소된 개성만큼 확실한 흡입력을 갖추었다. 감각이 절정에 오른 한재호, 김승수 콤비의 솜씨는 카라든 티아라든 상관없이 누가 불러도 일정 퀄리티를 유지하는 ‘스탠더드 팝’으로 귀결되는 인상을 준다. ‘가장 꽂히는’ 선율을 갖추었음에도 단지 수록곡으로서만 활용한 선택은 정규작이기에 부릴 수 있는 호기이다.
이처럼 정체성과 트렌드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시도와 노력은 러닝타임을 관통한다. 명징한 어쿠스틱 사운드만으로 페퍼톤스(Peppertones)의 손길이 들어갔음을 감지할 수 있는 「Stand up」 역시 인디 아티스트와의 합작이라는 의미 외에도 프로모션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좋은 곡을 만나 볼 수 있다는 것에서 풀 렝스(Full length)의 장점이 다시 한 번 살아난다. 다만 구색 맞추기 용 발라드인 「Beautiful goodbye」와 「So into U」 대신 전작에 실려 있었던 「Mr. boogie」, 「Ice cream」이 들어갔다면 더욱 완벽한 콘셉트 앨범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한 가지 문제 삼을 만한 것이 메시지 전달의 측면이다. 사운드에 무게중심을 지나치게 둔 탓에 문장으로서의 인식이 어렵다. 각 글자가 분해되어 소리 위를 부유하는 느낌이랄까. 노랫말이 가질 수 있는 운율이나 억양이 가지는 측면을 너무 간과한 느낌이다. 10대들의 언어를 가감 없이 삽입하는 것 역시 좋게 보기는 힘들다. ‘이야기’조차 공감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다른 세대의 박탈감으로 이어져 스스로 한계를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소속사의 누구처럼 ‘오 오 오 오 오빠를 사랑해’까진 아니더라도 좀 더 쉽게 풀어갈 필요성이 분명해 보인다.
비교적 자신들의 이미지가 선명하다는 것, 무엇보다 ‘음악적인 기대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별점이자 경쟁력이다. 싱글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앨범’에 대한 극진한 대접이 그룹의 첫 번째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써내려 갈 수 있게 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에스엠(SM)이란 두 글자를 미워하려해도 미워할 수가 없다. 필시 애증(愛憎)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글 /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퓨너럴 파티(Funeral Party) <The Golden Age Of Knowhere> (2011)
스트록스(The Strokes), 티브이 온 더 라디오(TV On The Radio), 뱀파이어 위켄드(Vampire Weekend), 예예예스(Yeah Yeah Yeahs) 등 요즘 잘 나가는 미국 인디밴드들의 본거지는 뉴욕이다. 어찌 오늘만의 이야기겠는가. 1960년대 사회 참여적 포크 아티스트의 요람이었던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 1970년대 미국 펑크(Punk)의 출발지였던 시비지비(CBGB)가 위치한 곳도 역시 뉴욕이다. 그야말로 뉴욕은 세계 경제, 정치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대중음악의 조류가 탄생하는 발원지였던 셈이다.
이쯤 되면 미국에서 인디 록을 하려면 성지인 뉴욕에 필수로 입성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대중 음악사에 있어서 뉴욕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 지역의 성역화는 곤란하다. 이처럼 콧대 높은 뉴요커들이 뜨끔할 만한 메시지를 퓨너럴 파티가 날린다.
엘에이 출신의 펑크 키드들은 트렌드를 항상 선도하는 뉴욕의 음악도 결국에는 타 지역의 사운드와 더불어 과거의 유산에서 빌린(혹은 훔친) 것에 불과하다고 호언한다.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New York City moves to the sound of LA’에서 이들은 현재 음악은 결국 이전의 결과물과 다를 것이 없고 미래의 음악도 역시 그러할 것이라며, 여기에 단지 트렌드만을 취하면 된다고 냉소한다. 어찌 보면 뉴요커보다 더 고약한 냉소를 품고 있다.
반골기질은 멤버들이 처해있던 환경에 기인한다. 엘에이하면 비가 내리지 않는 따뜻한 햇볕과 할리우드와 라스베이거스처럼 휘황찬란한 관광지를 떠올리지만,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구질구질한 변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음악을 선택했다. 선택지에 남은 장르는 결국 펑크였고, 유명 밴드와의 교류를 통해 경험을 쌓은 뒤 첫 정규 앨범을 발매하기에 이르렀다.
보컬을 담당하는 채드 엘리엇(Chad Elliott)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분명 펑크에 기인하고 있지만, 밴드의 사운드는 순화 과정을 거친 멜로디컬한 면모를 지닌다. 즉 거친 슬램보다는 춤을 출 수 있는 펑크다. 후렴구에 내달리는 빠른 비트에 명료한 리듬이 매력인 「Giant」와 「Youth & poverty」같은 곡들의 예에서 보듯이 폭넓은 수용자를 확보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 곡의 후미를 장식하며 착란적인 기타 연주가 강력한 인상을 주는 「Car wars」에서는 일면 사이키델릭의 취향도 드러날 정도로 펑크라는 토대 위에 이들이 빨아들인 사운드의 재료들은 다채롭다.
되는대로 음악 한다는 인디 밴드에 대한 선입견은 일찍이 폐기된 지 오래다. 지속적인 실험과정으로 사운드의 두께를 넓혀가면서, 형이상학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인디 밴드들이 조명 받는다. 하지만 퓨너럴 파티는 애초부터 우월적인 태도를 버려서인지 인상 쓰고 무게 잡는 모습보다는 활발한 에너지가 앨범에 만연하다. 무대에서 내려와서 몸을 부딪치는 소규모 공연장을 이들이 선호하는 것도 단지 질펀하게 함께 놀아보자는 마인드가 박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데이비드 레터맨의 레이트 쇼(Late Show with David Letterman)의 클로징 무대에 오른 일은 상징적이다. 흥겨운 펑크 파티에 참석하려는 손님들이 더욱 늘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글 / 홍혁의 (hyukeui1@nate.com)
제공: I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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