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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젊은 작곡가’로 사는 법

유희열 & 이그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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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주고받는다는 건 흐뭇한 일이다. 유희열에 대한 신뢰는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결국, 음악
나도원 저 | 북노마드
대중음악 평론가인 저자 나도원이 한국에 흘렀던 대중가요들 중에서 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 사랑받았던 음악을 책으로 엮었다. 많은 이들이 음악을 좋아한다. 그러나 음악을 듣는 사람에 비해 음악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물며 음악에 관해 글을 쓴다는 것은 더더욱 드문 일이다. 대중음악평론가 나도원의 음악을 향한 시선은 꼼꼼하고 우직하다. 그의 귀는 한대수에서 장기하까지, 주류무대를 주름 잡는 걸 그룹부터 홍대 앞 인디밴드를 오가며, 다양한 음악과 음악인을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선 세상을 읽어낸다.
믿음을 주고받는다는 건 흐뭇한 일이다. 유희열에 대한 신뢰는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일관되게 유지하는 음악의 수준과 감성이 하나, 자기 영역을 만들어놓고 젊은 음악인들과 기회를 나누는 역할까지 맡아준 것이 다른 하나이다(게다가 그의 팬들은 음반을 사고 공연장을 찾는다). 긍정적인 모델에 대한 믿음과 ‘적정한’ 기대치가 만난 자리에 <여름날>(2009)이 놓여 있다.

유희열은 공식적으로는 제4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통하여 데뷔했지만, 고등학생 때부터 작곡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윤정오와 함께 토이Toy를 결성하고 1994년에 <내 마음 속에>를 발표했으며, 홀로 남은 이후에는 송라이터, 프로듀서와 객원가수 체제로 토이를 이끌어오고 있다.

그동안 많은 아티스트들과 함께 프로듀서이자 작곡가로서 음악 작업을 해오면서 한국에 세련된 팝을 정착시키는 데에 일조했다. 2007년에 6년여 만에 발표한 6집 <Thank You>는 여의치 않은 음반시장에서도 좋은 결과를 가져왔고, 루시드 폴, 이지형, 조원선, 이규호 등 실력 있는 젊은 뮤지션들과 함께 에너지를 주고받음으로써 시너지를 발휘했다. 또한 ‘유희열의 음악도시’와 ‘유희열의 올댓뮤직’ 등에서 ‘호감형 DJ’로 팬들과 나눈 교감은 그를 더욱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친근함은 유희열을 ‘병든 차인표’처럼 아주 멋진 별명을 지닌 남자로 만들었다.

여름마다 TV 뉴스와 신문 기사가 보여주는 그 한결같은 해수욕장 풍경 대신 길가의 코스모스에 어울리는 바람이 성큼 불어온다. 본의든 아니든 간에 유희열의 두 번째 소품집은 무언가를 흘려보내고 ‘여름날’을 통해 가을날을 맞는 인사가 되어가고 있다. 많은 가수들과 함께하는 토이는 북적이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들이 저마다의 음색으로 노래한다 해도 유희열 없는 토이는 해리슨 포드 없는 「인디애나 존스」이며 아놀드 슈워제네거 없는 「터미네이터」이겠지만. 대신 <여름날>에 감도는 것은 호젓한 여유이다. 토이가 아닌 유희열이라는 이름과 어딘지 부담이 덜한 소품집이라는 형식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무난함일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유희열의 음악이라는 사실이니까.

유희열, 믿음과 위안을 주는 이름

유희열은 프로듀서형 뮤지션 그룹, 즉 담 안과 담 밖을 오가며 완성도 높은 가요-팝을 제시하고자 한 이들 중 하나였다. 이런 경우 편곡 방식의 모방이라든지 독창성의문제를 안기도 하지만, 유희열은 윤상, 김광진, 김현철, 김동률 등과 함께 성공적인 케이스였다. 이들을 좋아하는 코드가 있는데, 1990년대부터 문화적 세례를 받으며 성장하여 다양한 대중문화를 즐기고, 음악에서까지 심각해하고 싶진 않으면서도 남들과는 구별되는 취향을 원하는 성향이 존재한다. 그들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 유희열은 다양한 음악과 젊은 뮤지션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끊임없이 양분을 흡수했다. 어느 정도의 팬을 확보한 인디 음악인들과의 협업은 유희열을 ‘아저씨’로 만들지 않는 효과까지 있다. 작가적 뮤지션이었다면 오히려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김광진 같은 이가 하고 싶었던 것을 유희열이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그의 부표는 해변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에 띄워져 있다.

욕심을 부리지 않은 그의 어깨선은 더욱 느슨하다. 힘이 있다고 꼭 써야 하는 건 아니다. 가능하다면 해봐야 한다는 강박은 음악인을 망치기도 한다. 애초에 목적과 타깃이 분명한 일종의 기획 음반이고, 팬들이 원하는 수위도 그리 높지 않은 선에 걸쳐져 있다. 단출한 악기 편성과 사운드는 「공원에서」와 「우리 만난 적 있나요」, 그리고 기존 곡들의 다른 버전인 「즐거운 나의 하루」와 「그럴 때마다」에 가쁘지 않은 호흡을 담아낸다. 하림, 지누와 손을 나눈 「관계와 관계」에까지 이어지는 감성도 낯설지 않다. ‘좋아하는 층이 있는’ 페퍼톤스의 신재평이 참여한 「밤의 멜로디」와 「여름날」의 갑작스러움 덕분에 익숙함이 재차 확인된다. 혹 다르다 해도 우리와 비슷한 정서를 바탕으로 아기자기한 장치들을 숨겨놓은 어떤 일본 영화 정도랄까. 그렇다고 예전으로의 회귀는 아니다. 삶이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라지만,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변화하기 마련이니 불변이야말로 부자연스럽다.

적잖은 뮤지션들이 자기 영역을 만들지 못하고 휘둘리는 세상에서 유희열은 자신의 길을 잘 선택해왔다. 한 마디를 덜 말하고 한 문장을 덜 쓰기란 쉽지 않다. 때론 나지막이 말해야 들리는 말이 있다. 조곤조곤한 또는 헐렁한 이 소품은 아무렇게 드러누워 올림픽 개막식을 보며 듣도 보도 못한 나라들의 인구와 수도 따위를 공부하는 청춘들을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 그때 음악은 유희열이 듣는 이를 위로하는 것을 허락한다. 마냥 달리기보단 잠시 느리게 걷고 싶은 이들을 위한 정거장이거나, 조금 슬프긴 해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동화 같은 상상을 위한 배경음악이다. 힘들 땐 발밑만 바라보는 것도 방법이다. 자전거 페달을 빨리 밟으면 앞바퀴가 뒤로 감기는 듯한 순간이 있는 것처럼.

유희열은 그동안 많은 아티스트들과 함께 프로듀서이자 작곡가로서 음악 작업을 해오면서 한국에 세련된 팝을 정착시키는 데에 일조했다.
그는 1990년대 문화적 세례를 받으며 성장해 다양한 대중문화를 즐기고, 남들과는 구별되는 취향을 원하는 이들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팬을 확보한 인디 음악인들과의 협업은 유희열을 ‘아저씨’로 만들지 않는 효과까지 있다.

이그나이트, 낯선 이름과 낯설지 않은 무드

상쾌한 출발이다. 너무 화려하지도, 너무 심심하지도 않다. 대중가요에 적합하도록 완화된 일렉트로닉 효과를 입힌 소프트한 록을 중심으로 발라드와 알앤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녹여냈다. 자극적인 콘셉트와 얼굴을 내세우는 대신 곡 자체로 승부하는 점이 돋보인다. 일관성과 개성은 미진하다 해도, 앞으로의 걸음에 관심을 가져도 될 만큼의 의미는 있다.

신익주는 2002년 여행 스케치에게 「You & Me」를 제공하며 작곡가로 데뷔한다. 이후 많은 가수들에게 곡을 주었고, 2004년부터는 빅뱅(방승철)의 앨범 <Back Up>을 비롯하여 길건의 앨범들과 레이디의 1집 등을 맡으면서 프로듀서로서의 활동을 병행하게 된다. 또 영화 <내 사랑 싸가지> 의 OST 등에 참여?으며, <Listen Campaign OST>의 전곡을 작곡하고 프로듀싱했다. 이처럼 대중음악 동네에서 작곡가와 프로듀서로 활동해온 신익주는 자신의 곡들에 세션들을 참여시키는 이그나이트Ignite를 출항시킨다. 가수를 보조하는 작곡가에서 벗어나 음악적 중심에 서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2008년부터 싱글 <Ignite Spot>과 <Ignite Spot Ⅱ>를 발표하다가 첫 번째 정규 앨범 <Look So Good>(2009)을 발표한다.

어디로 갔을까? 전화 교환원, 승강기 안내원, 버스차장처럼 일상의 일부였는데 이젠 사라졌거나 있어도 눈치 채기 힘들어진 사람들이 있다. 가요계에서 작곡가의 얼굴 역시 점점 그늘 아래에 숨겨진다. 밴드인데도 보컬리스트의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일이 많았고, 아예 인기를 얻은 보컬리스트가 독립하면서 밴드가 깨진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장르에 상관없이 가수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가창력이 음악성의 기준인 양 말하는 풍조가 긍정적이라 할 수만은 없다.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다. 작곡가 중심의 ‘○○○ 사단’이 주름 잡던 시절이 있었고, ‘자로 손바닥을 때려가며’ 대형가수를 키워낸 이들도 있다. 하지만 ‘잘나가는’ 몇몇을 제외하면 곡을 납품하는 기능인이 된 작곡가들은 하고픈 음악을 움튼 싹을 잡아 뜯듯 미뤄둬야 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그동안 시도되어온 송라이터를 중심으로 한 프로젝트의 행렬에 이그나이트가 보기 좋게 합류한다. 후크송의 물결-무척 좋아한다. 아직 이해하려 노력 중이지만-에 덜 자극적인 감미료로 요리한 노래들을 띄우면서, 노래와 가수 사이에 어울리는 색을 찾으려는 본능도 함께 발휘한다. 「Look So Good」과 「Cuz I M Sorry」처럼 발랄한 소프트 록 네 곡을 앳된 목소리의 이지선이 부르고, 발라드들은 김지영이, 펑키함과 전자 음이 공존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는 성숙한 음성의 길건이 맡는다. 로킹한 「잘못 보셨습니다」는 누가 봐도 주주클럽 출신의 주다인의 이미지와 매치된다. 또 「Good Memories」 후반에 꽤 그윽한 기타 연주를 더한다거나, 아예 기타 연주곡인 「So what」과 건반이 강조되는 「Delight」에서 연주의 맛까지 살린 이 앨범은 변변하다. 그런데 이 충실함과 다양성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먼저 노래와 가수의 어울리는 만남은 적절한 캐스팅인 동시에 고정적인 이미지에 맞춘 것이기도 하고, 다양한 스타일이 들쭉날쭉 이어지며 놀이기구를 타는 느낌의 앨범이 되었다. 물론 요즘 걸핏하면 나오는 부챗살 같은 구성의 음반들에 비하면 담백하지만, 한국형으로 개조된 알앤비와 일렉트로닉스러운 분위기를 그대로 받아들인 부분은 이그나이트의 주민증을 확인시켜준다.

가사가 담은 이야기들 역시 흔한 표현 방식이 주를 이룬다. 정석 바둑은 최선이긴 해도 재미는 없다고들 하듯이, 지금 보편성이라 부르는 것들이 실은 이 시대의 상투성일 수도 있다. 충실함과 다양성이 여러모로 긍정적이면서도 상투성의 품을 벗어나진 못한 탓에 말쑥한 앨범이 젊은 작곡가의 재주와 관심사를 보여주는 포트폴리오에서 일단 주춤거린다. 살다 보면 낯설 것 없어지고 ‘낯선’이란 단어마저 익숙해지기 마련이지만, 간혹 가까이에 있어 중요하지 않게 여기던 구석에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눈으로 보는 농구 경기에 소리를 더해주는 나무 코트와 운동화가 만들어내는 ‘뽀득뽀득’ 소리처럼 사소하지만 매력적인 무엇이 있다. 이런 것들은 필요 없으니 걸러내라고 강요하는 시대에 비교적 친근하고 솔직한 매력을 손 모아 담아낸 <Look So Good>은 예쁘장하다. 자기를 사랑할 줄 알아야 남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은 음악인에게도 해당된다. 그래서 이앨범은 모나지 않은 출발이자 의미 있는 과정이다. 세상엔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어느새 바람대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있다. 그는 벌써 신발 끈을 다시 매듯 기타 줄을 갈아 끼우고 건반을 닦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중음악 동네에서 작곡가와 프로듀서로 활동해온 신익주는 자신의 곡들에 세션들을 참여시키는 이그나이트를 출항시킨다. 가수를 보조하는 작곡가에서 벗어나 음악적 중심에 서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너무 화려하지도, 너무 심심하지도 않은 그의 상쾌한 출발에 관심을 가져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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