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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이장희 글,그림 | 지식노마드 |
우리는 서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서울의 또 다른 얼굴, 무채색의 도시에 빛을 입힌다. 역동적인 대도시, 쇼핑의 천국, IT 코리아에서 한 겹, 겉옷을 벗으면 이 땅에서 우리의 '시간'이 보인다. 아프지만 자랑스러운 역사도 있고, 안타까움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사연도 있다. 저자는 우리가 지친 하루를 기대어가는 도시, 그 너머의 새로운 서울을 들여다본다. 그는 소소한 서울의 모습을 담아낸 한 권의 스케치북으로, 구석구석 우리가 놓치고 살았던 이 도시의 이야기와 풍경으로 서울을 다시 말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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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흥례문이 있던 자리는 일제시대부터 조선총독부가 있던 곳이다.
조선총독부는 4층 화강암 건물로 일본을 상징하도록 위에서 보면 일(日)자형이 되도록 설계된 웅장한 건물이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시멘트 건물에 습식 공법으로 석판을 붙인 것으로 자체 완성도는 떨어지는 편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총독부의 위상을 살리려 많은 투자를 한 건물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당시 남산에 있던 조선신궁을 향해 건물의 방향을 5.6도 틀어 지었는데 후에 이 축선을 따라 세종로를 확장하는 바람에 여전히 세종로는 묘하게 삐뚤어져 있다.
그 건물이 국립박물관이었던 시절 총독부 앞마당에서 뛰어다니던 추억에, 지방에서 돌아오는 길에 총독부 철거부재를 전시하고 있다는 독립기념관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홀대전시’라는 듣도 보도 못한 전시 방법에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내용인 즉.
“전시의 기본적인 개념은 철거 부재를 역사 교육의 자료로써 활용, 전시하되 홀대하는 방식으로 배치하는 데 있다. 이에 따라 첨탑을 지하 5미터의 깊이에 매장하여 전시하는 형식으로 조성하였고, 독립기념관 주 건물의 서쪽(석양을 상징)에 위치시킴으로써 일제 식민지 시기의 진정한 극복과 청산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라고 안내판까지 해 놓았다. 이야말로 죽어서도 무덤을 파헤치거나 집 부수고 연못 만들던 조선시대 모습과 무엇이 다르랴. 총독부 건물이 사라진 이유는 오로지 하나, 위치적인 문제가 아니었던가. 경복궁을 밀어내고 서 있는 그 위용은 결코 그 자리에 존재할 수 없었음을 나 역시 공감한다. 하지만 진정 식민지 시기의 극복과 청산, 나아가 역사적인 교훈까지 얻고자 하였다면 일부라도 그대로 옮겨 일제침략의 전시물을 모아 박물관으로 사용하든지 했어야지 일제시대의 무엇을 홀대하겠다는 생각인 걸까.
수학여행 온 학생들은 쓰레기를 안에 버리고, 돌을 던지며 침까지 뱉으며 첨탑을 훼손하는 것을 자랑처럼 여긴다고까지 한다. 오히려 이런 모습들을 보며 우리나라가 일본에 대해 지금까지 이토록 피해의식이 컸나, 한숨만 나왔다.
이 건물은 조선총독부로 태어났지만, 우리 역사에서 많은 순간을 함께한 건물이기도 했다. 일본이 패전하면서 아베 총독이 미군 하지 중장 앞에서 항복문서에 조인하기도 했고, 미군정 청사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한국 전쟁 당시에는 서울 수복의 태극기가 휘날리기도 했다. 대한민국 대통령 집무실의 용도를 거쳐 정부기관이 모인 중앙청으로도 쓰였고 후에는 국립박물관이 되어 많은 이들을 맞은 적도 있다. 그 짧지 않은 2막의 역사는 무시한 채 광복 50주년을 맞아 영원히 없애버리고 말았다. 아니 오히려 깨끗하게 사라졌으면 더 좋았을 것을.
나는 첨탑만 남은 5미터 깊이의 구덩이에서 나와 저녁 무렵의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석양이 물든 하늘, 다른 건 몰라도 서쪽에 위치시킨 건 제대로 들어맞는구나, 싶어졌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빛깔의 서쪽 하늘도‥마찬가지로 우리나라가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