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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이장희 글,그림 | 지식노마드 |
우리는 서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서울의 또 다른 얼굴, 무채색의 도시에 빛을 입힌다. 역동적인 대도시, 쇼핑의 천국, IT 코리아에서 한 겹, 겉옷을 벗으면 이 땅에서 우리의 '시간'이 보인다. 아프지만 자랑스러운 역사도 있고, 안타까움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사연도 있다. 저자는 우리가 지친 하루를 기대어가는 도시, 그 너머의 새로운 서울을 들여다본다. 그는 소소한 서울의 모습을 담아낸 한 권의 스케치북으로, 구석구석 우리가 놓치고 살았던 이 도시의 이야기와 풍경으로 서울을 다시 말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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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대한 상업지역으로만 인식한다. 그 안에는 극장도 성당도 있지만, 선뜻 먼저 떠오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한때 명동은 문화와 예술의 중심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국립극장이 있었다. 그 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알려면 국립극장을 둘러 보라,는 말이 있듯 명동은 예술의 한 축이었던 것이다. 많은 예술인들이 국립극장의 단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고 그들을 보고픈 많은 이들이 모였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36년에 지어진 이 극장은 한국전쟁때 많이 부수어져 전후 다시 보수하긴 했으나 부족한 재정으로 인해 제대로 유지, 관리가 되지 못했던 모양이다. 냉방과 난방이 잘 되지 않아 여름에는 더워서 문을 닫고, 겨울에는 추워서 문을 닫아야 했다니 이걸 웃고 넘겨야 할지. 심지어 1967년 겨울에는 영국의 여류 피아니스트가 내한공연을 왔다가 공연 중 너무 추워 피아노를 치지 못하고 무대를 내려가는 일까지 벌어진다. 결국 1973년 극장 크기문제와 더불어 남산 밑 장충동에 새로운 국립극장을 번듯하게 짓고 이사를 나가니 명동의 국립극장은 역사속으로 잊혀져갔다. 그렇게 또 하나의 문화재가 사라지는구나, 싶었는데 다행히 문화관광부에서 인수하더니 2009년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명동예술극장으로 다시 탄생했다.
명동예술극장은 1956년 야당 대표를 지냈던 장면 부통령이 이 곳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저격 당한 사건으로도 ?사가 깊다. 다행히 경상에 그쳤고, 배후는 4.19혁명이후에야 밝혀졌는데, 지극히 당연스럽게도 독재시절 자유당 2인자 이기붕이었다.
또한 이 건물은 일본 도쿄에 있는 유명한 오가츠칸(大勝館)의 복제건물인 것으로 밝혀졌지만, 오가츠칸은 현재 없어진 상태. 사진으로 보니 정말 똑같았는데 일본의 것이 벽면에 붙인 타일 조각의 디테일이 더 훌륭한 듯 했다.
명동예술극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파출소가 있다.
근처 명동성당을 고려한 붉은 벽돌과 삼각형 지붕 디자인은 기존에 이 곳을 지나며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던 파출소의 존재를 조금은 더 부각시켜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가끔은 사람 북적거리는 도시의 대로에서 벗어나 뒷골목도 한 번 걸어 보자.
소란스러움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기에 한층 더 짙은 고요에 잠겨 있는 듯한 그 곳에서 어쩌면 작은 사색의 숨소리를 듣는 행운을 만날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