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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 뺨치는 조선시대 과학수사 -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자백만으로는 죄가 될 수 없다고 명문으로 규정해 온 지 이미 50여년이 지나고 있지만, 수사라고 하면 자백과 고문을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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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백만으로는 죄가 될 수 없다고 명문으로 규정해 온 지 이미 50여년이 지나고 있지만, 수사라고 하면 자백과 고문을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된다. 봉건시대와 군사정권 시대의 잔영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머무르고 있는 이유일지도 모르고, 수사과정이 여전히 범죄자와 수사기관의 대등한 입장보다는 강압수사 형식이 주를 이루고 있는 과도기의 민주사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최근에 과학수사 시리즈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이러한 상황과 맞물려서 등장한 측면도 없지 아니하다. 하지만 내용의 흥미진지함이나 긴박감은 오히려 단순한 추리소설을 읽는 것 이상의 기쁨을 준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치정자가 자신의 은덕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백성의 원을 풀어 주려고 어떻게 노력하였는지" 를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양반사회의 수사과정을 보여주는 1부를 읽다보면 절망감이 엄습한다. 대부분의 권력형 비리가 그러하듯 실세를 가지거나 치정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수사에서는 과학형 수사보다 정치적 논리에 의해서 수사가 흐지부지 종결되기 때문이다. 왕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가 있었지만, 생사여탈권을 임금이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전형적 봉건사회에서, 이러한 논리가 관철된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1부에서 펼쳐지는 양반들의 살인사건에서, 수사기관의 의지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허무하게 결말이 나는 것을 보면서, '법은 통치자를 위한 합법적 통제기구'인가 라는 암울한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권력자들이 배제된 사건을 다룰 때, 조선시대 과학수사의 지침서인 [무원록]이 어떻게 빚을 발하고 있는지 이 책은 보여준다. 원나라에서 보급되어 정조시대에 개정이 되기 까지 [무원록]은 포도청에서 주검을 검험(시체 조사)할 때의 지침서 역할을 한 책이다. 고문과 자백에 의해 모든 사건을 마무리 하였을 것 같은 우리나라 중세 사회에서 [무원록]이라는 현대판 법의학서를 통해 수사의 방향을 잡았다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증거 수집 차원에서 "시체가 말을 하도록 하기 위해" 포도청이 얼마나 노력하였는가를 엿 볼 수 있는데, 초검(최초 부검) 과 재수사의 형식을 취하는 복검의 결과가 일치하지 않으면 삼검, 사검까지 실시하여, 수사의 정확도를 높이기까지 하였다. 물론 이러한 수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치정자의 의지" 즉, 임금의 의지와 포도청의 유능함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16가지 살인 사건 중 법의학의 백미를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평산 박 소사 살인사건]이다. 근친상간의 죄를 뒤덮기 위해 목격자인 자신의 며느리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건으로, 수사기법과 과정은 현대판 CSI를 방불케 할 정도다. 과학수사의 백미를 장식하고 있는 이 사건을 2부에 배치한 것은 저자의 소설가적 기질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권력형 사건의 수사에서도 과학적 수사가 엿보이기는 하나, 결국은 권력자의 의지에 막혀 빛을 보지 못하는 허무함을 보여주는 데 반해, [박 소사 살인사건]부터는 "죽은 자를 말하게 한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제대로 알 수 있게 하여서, 이 책의 방향성을 가늠케하고 허무함 뒤에 오는 희열로 그 기쁨을 두 배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건을 소설가가 다루는 데에서 오는 한계를 상쇄시키고도 남는 이 책만의 장점이라 하겠다.

컨텐츠팀 이노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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