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크송과 단발성 히트 댄스곡 천지인 요즘, 1990년대 알앤비를 탐구하는 신인이 등장했습니다. ‘보니’는 뛰어난 가창력을 무기로 알앤비를 구사하는 능력이 뛰어나죠. 두 번째 미니앨범이네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만난 태국 그룹 ‘스리라쟈 로커스(Srirajah Rockers)’ 와 음악으로 하나가 된 생생한 기록을 앨범으로 담아낸 ‘윈디 시티’, 애절한 보이스로 오랜 시간 많은 히트곡을 발표한 ‘박상민’의 리패키지 앨범도 소개합니다.
보니(Boni) - <1990> (2010)
콘셉트가 확실해서 좋다. 앨범 제목에서 눈치 챌 수 있듯, 1990년대 흑인 음악에 정 조준한 방향은 추억을 불러일으키며 그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준다. 2010년에도 이런 소리를 만날 수 있다는 게, 그걸 또 새로운 얼굴이 불렀다는 게 반갑다.
뚝심 있는 결정은 프로듀서의 몫이 컸다. 소울사이어티(Soulciety), 지플라(G.Fla), 소울맨(Soulman) 등 주로 흑인 음악과 연관된 음반에 참여했던 윤재경(Mbrica)이 전곡을 담당하며 설계를 구현했다. 능통한 이가 대표를 맡으니 그 깊이에 대한 믿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풍족한 배경에서 복고를 소개하는 이는 보컬이다. 1986년생인 보니(Boni)는 어린 나이임에도 시대의 무게에 기죽지 않은 채 곡을 장악한다. 흔히 알앤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가창력과 ‘필’이 충만한 가수다. 창법마저 천편일률적인 시기에서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인재임이 틀림없다.
특이점은 이미 같은 해 3월에
<Nu One>(2010)으로 신고식을 치룬 적이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미니 앨범이기도 한 이번 작은 이른 시간에 나왔다. 사정을 살피니 최근 <남자의 자격 - 하모니>에서 합창단 구성원으로 얼굴을 알린 상황. 강력한 홍보 자원과 함께 지금 후속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 시기적절한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소홀히 만든 앨범은 아니다. 오히려
<Nu One>보다 더 고집 있다. 전작이 알앤비의 전체적 모양을 펼쳐보려 했다면, 이번엔 보컬리스트 역량에 온전한 집중을 가했다. 과거를 떠올려주는 신시사이저 질감과 뛰어난 표현력의 목소리가 1990년대 입장을 안내한다. 가요라는 틀 안에서 알앤비를 갈구했던 이들에게, 다양성을 외쳤던 이들에게 찬사받기 충분하다.
대중들에겐 확실치 않다. 윤재경은 음반에서 혼자 너무 많은 짐을 짊어졌다. 그가 작곡가의 위치에서, 프로듀서의 위치에서 가져야 할 판단은 따로 구분되지 않아 보인다. 그러니 타이틀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를 정했다가 「기다릴게」로 바꾸는 등 혼선이 생겼고, 유행의 흐름 역시 명확히 읽어내지 못했다. 적어도 실력 있는 신인을 알리겠다면, 좀 더 흥행 요소를 고려한 참여진의 개방을 시도했어야 했다.
구석구석 살피면, 춤과 외모에 열중한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보배가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1990년대엔 이런 실력파들의 인기가 심심찮게 있었음에도, 지금은 왜 이리 주목받기 어려울까. 아이돌, 후크송이 대세인 시점에서 부족한 감독의 융통성이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지금 보니에겐 적절한 타협이 필요하다.
글 / 이종민(1stplanet@gmail.com)
윈디 시티(Windy City) <Windy City Meets Srirajah Rockers(EP)> (2010)
타이틀인 「Sweet reggae music」의 가사와도 같이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뾽’ 화합의 소리로 빛나는 앨범이다. 한없이 달콤하게만 들려서 얼핏 사회고발성과 반골성이 특징이던 원류 레게와는 그 맥이 다른 것도 같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레게 뮤지션다운 레게 뮤지션이라는 호평이 가능한 것은, 저항으로 날선 외침이든 평화적인 화합의 노래이든 그 뜻이 결국 ‘사랑과 평화’라는 하나의 점으로 귀결되어 같은 곳을 향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비행기를 탄 이유가 합동 앨범 작업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태국에서 열리는 레게 페스티벌 참가를 위해 낯선 땅에 온 멤버들은, 평소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의 음악에 호감을 표하던 태국의 그룹 스리라쟈 로커스(Srirajah Rockers)를 실제로 만나게 되었다고. 곧 의기투합하여 친구가 된 두 팀은 여행길에까지 서로의 동행이 되었고, 이내 음악으로 하나 된 즐거움을 레코드로 생생히 담아내기로 뜻을 모았다.
<Windy City Meets Srirajah Rockers>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이런 맥락이라면 Ep앨범으로 발매를 한 것도 이해가 간다. 굳이 트랙 수를 늘이거나 현지에서 정규앨범을 내기로 작정했다면, 그것은 여행이라기보다 고뇌를 동반한 창작의 여정이었을 것이고 이만큼 유쾌한 결과물을 내지는 못했으리라. 작업 방식 또한 삶의 여유를 노래함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은 물론이다.
앨범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곡은 「Sweet reggae music」보다도 「Dub sori」이다. 전형적인 레게밴드의 편성에 플루트가 곁들여져 완연한 이국의 정취를 담아냈다. 스리라쟈 로커스에서 보컬과 리듬 세션을 맡고 있는 윈(Win)은 멋진 비음으로 차분히 노래하다가, 터뜨려줄 때는 날을 세워 시원하게 긁어주는 카타르시스를 연출하며 김반장의 간드러진 목소리와 멋진 앙상블을 이룬다. 같은 뿌리에서 나고도 흩어져있던 코리안 레게와 타일랜드 레게가 반갑게 상봉하는 순간이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놓치고 있는 ‘무엇’을 자신들의 여행 이야기를 통해 돌아보게 한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이 작품은 값지다. 그 무엇은 인류적 화합과 평화라는, 아무나 쉽게 말은 해도 누구도 제대로 실천하지는 못하는 보편적이지만 고매한 가치, 그리고 삶의 여유다. 음악 하나를 매개로 서로의 언어를 잊고, 국경마저 허물 수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까지 보여주었으니 아낌없이 엄지를 들어 올려줄 만하지 않은가. 음악과 말(의식)이 일치하는 뮤지션은 흔치않다. 행동을 포함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글 / 여인협(lunarianih@naver.com)
박상민 <일 더하기 삼> (2011)
박상민은 의외로 천의 얼굴이다. 발라드를 좋아하는 골수팬이라면 「멀어져간 사람아」를 첫머리에 꼽을 것이고, 업템포를 선호하는 이는 「청바지 아가씨」나 「무기여 잘 있거라」를 흥얼거릴 법도 하다. 예능을 즐겨 보는 젊은 층에게는 추성훈이 불러 화제가 되었던 「하나의 사랑」, TV만화에 열광했던 추억이 있다면 「너에게 가는 길」이 노래방에서의 우선예약감이다. 디지털 싱글을 포함해 리패키지된 그의 13번째 앨범은 이러한 포용력을 전면에 내세우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탄탄한 이음새 역할을 맡고 있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수록곡들 앞에서 발라드 일색일 것이라는 선입견은 무용지물이다. 마치 카멜레온처럼 가지각색의 변화를 체감케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팔릴 것만 골라 파는 백화점식 구성’이라 치부하는 것은 큰 실례이다. 곡마다 조준점은 있지만 그렇다고 아예 특정층에 등을 돌리는 불친절은 없다. 하나의 큰 전략을 잡기 보다는 트랙 하나하나에 세세하게 관심을 기울인 ‘각개전술’이라 할 만하다.
그런 장악력은 자신의 보컬에 대한 강한 믿음에서부터 흘러나온다. 시시각각 분위기가 급변함에도 집중력을 유지해 그만의 캐릭터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 수확이다. 「한사람을 위한 노래」, 「사랑한 자의 부탁」 등에서 느껴지는 그만의 애절함에서 가수로서의 장점이 고스란히 배어나온다.
여러 장르로의 시도는 이러한 자신감을 기반으로 제 몫을 해낸다. 허인창이 얹어 놓은 랩과 걸쭉한 목소리의 하모니가 이색적인 「떠밀지마」, 소프트 팝록 사운드로 소녀시대 못지않은 에너지를 내뿜는 「Oh」, 브라스와 기타가 펼치는 펑크(Funk)로의 초대 「잘 가라 사랑아」 등에서 어설픈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엉킨 실을 풀어 매듭을 짓듯 자칫 불협화음을 낼 수 있는 조우를 멋지게 조율해냈다.
이처럼 세대 차이를 배제하려는 노력은 분명 두드러지지만 이를 반대로 보면 역기능으로도 비춰진다는 것이 불안요소이다. 명확한 콘셉트가 없다는 것이 오히려 산만함을 유발할 수 있고, 일정한 타깃만을 공략한 노래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여지도 존재한다. 이 허점을 최대한 잘 메워낸 흔적이 엿보이지만, 어쨌든 앨범 전체적인 인상에 있어서는 철저히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하는 수 없이 아이돌을 힘겹게 쫓아가는 부모와 옛 가요의 정취를 접할 곳 없는 자식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는 단비 같은 한 장이다. 격렬하게 진행되는 음악의 양극화를 잠시 쉬어가게 할 휴식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가족과 함께 가요프로그램을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예전과 달리 같은 브라운관에 시선을 주기가 불편해진 요즘 시대에, 모두가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동시대의 음악’이 바로 여기 있다.
글 /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제공: I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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