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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국 음악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19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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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들은 나를 진정한 작곡가로 여기지 않고, 지휘자들은 나를 진짜 지휘자로 생각하질 않아. 게다가 피아니스트들은 나를 피아니스트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오늘의 클래식
김성현 저 | 아트북스
스트라빈스키부터 진은숙까지 현대 작곡가 40인 열전
우리 시대에 태어난, 우리 시대에 어울리는 클래식 음악은, 정녕 없는 것일까?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세기에 걸쳐 방대한 작품을 남긴 작곡가 가운데 40명을 소개한다. 클래식 음악 전문기자로 활동해온 저자는 현대음악을 어떻게 들어야 할까에 대한 좌표를 스스로 세운 후, 거기에 이르는 길을 독자에게 친절히 안내한다.
레너드 번스타인

1987년 7월 미국의 탱글우드 페스티벌에서 오케스트라와 리허설 중이던 예순아홉 살의 노지휘자가 휴식시간에 이렇게 한탄했다. “작곡가들은 나를 진정한 작곡가로 여기지 않고, 지휘자들은 나를 진짜 지휘자로 생각하질 않아. 게다가 피아니스트들은 나를 피아니스트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업종 분화와 전문화가 미덕으로 정착한 클래식 음악계에서 ‘만능 음악가’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토로했던 주인공은 레너드 번스타인이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같은 인기 뮤지컬 작곡가이면서 동시에 교향곡과 미사곡 등 진지한 클래식 음악을 여럿 남겼고, 뉴욕 필하모닉을 이끌던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이 다재다능한 음악인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참으로 난감한 노릇이다.

1958년부터 14년간 뉴욕 필하모닉에서「청소년 음악회」를 진행했고, 1972년에는 모교인 하버드 대학에서 강연을 맡아 『대답 없는 질문(The Unanswered)』이라는 책으로 묶어냈으니 방송인이자 교육자라는 직함도 추가할 법하다. 1956년 인터뷰에서 그는 우스갯소리로 “작곡가들과 있을 때는 지휘자라고 말하고, 지휘자들과 있으면 작곡가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1918년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난 번스타인은 20세기 초반 러시아에서 일어난 유대인 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계 집안 출신이다. 조부는 저명한 랍비였고, 아버지는 가게 점원에서 출발해서 가발과 미용 제품을 만드는 경영자로 성공을 거둔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유대교와 탈무드를 뼛속 깊이 새기며 자라난 번스타인의 음악 입문은 상대적으로 늦었다. 열 살에 처음으로 피아노를 배웠지만 쇼팽과 바흐의 쉬운 작품은 거뜬히 소화할 정도로 열심이었다.

번스타인은 1929년 벤저민 프랭클린과 존 F. 케네디 대통령 등을 배출한 300년 역사의 명문인 보스턴 라틴 학교에 진학할 정도로 학업 성적도 빼어났다. 학문의 길을 충실히 걷기를 바랐던 아버지와 음악에 뜻을 두고 있던 아들은 때때로 충돌을 겪기도 했다. 동유럽 출신 유대인에게 음악인이란 결혼식과 잔치에서 연주하면서 푼돈을 버는 거리의 악사에 불과했다.


훗날 음악가로 대성하자 아버지는 “그 녀석이 레너드 번스타인이 될지 내가 어떻게 알았겠소!”라고 반문했다. 1935년 고교를 졸업한 번스타인은 결국 일종의 타협책으로 하버드 대학에 입학해서 음악을 전공했고, 그 뒤 커티스 음악원에 진학해서 지휘자 프리츠 라이너를 사사했다.

번스타인은 스물세 살 때인 1941년 야외 콘서트에서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데뷔하는 동시에, 이듬해인 1942년에는 첫 교향곡인 「예레미야」를 완성해서 아버지에게 헌정했고, 1943년에는 에런 코플런드의 피아노 소나타를 초연하기에 이르렀다. 피아노와 지휘, 작곡으로 음악적 재능이 동시다발로 만개한 것이다.

아버지로 표상되는 엄숙하고 종교적인 유대인의 세계와 코플런드로 대표되는 뉴욕의 현대적인 예술계는 이후 번스타인의 삶을 떠받치는 거대한 두 기둥이 됐다. 성(聖)과 속(俗), 가족 중심의 보수주의와 지극히 개인적인 자유주의, 이성애와 동성애는 번스타인의 내면에서 때때로 갈등을 일으키면서 공존하기에 이른다.

1943년 뉴욕 필하모닉의 부지휘자로 임명된 번스타인에게 극적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같은 해 11월 14일이었다. 당초 지휘자로 예정됐던 브루노 발터가 이틀 전 급작스럽게 고열로 출연을 취소하자, 단 한 번의 리허설도 없이 번스타인이 대타를 맡은 것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 땅에서 태어나고 교육받고 훈련받은 젊은 지휘자의 첫 무대를 경험했다”는 안내 방송과 함께 당시 연주회가 라디오로 중계되고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언론의 1면을 장식하면서 번스타인은 전국적 스타로 급부상했다. 이러한 열광 이면에는 사실상 미국의 첫 지휘자를 배출했다는 자긍심과 ‘유럽 콤플렉스’가 병존했다.

1957년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가 빛을 보고, 이듬해인 1958년 미국 출신 지휘자로는 처음으로 뉴욕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에 취임하면서 번스타인은 탄탄대로를 걷는 듯 보였다.

테너 호세 카레라스, 소프라노 키리 테 카나와가 노래한 번스타인의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앨범

특히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초연 직후 732차례나 공연되고, 음반은 100만 장 이상 팔려나가면서 번스타인의 대표작으로 떠올랐다. 뉴욕 필하모닉 취임과 더불어 번스타인은 거슈윈과 코플런드, 아이브스 등 미국 작품을 대거 프로그램에 집어넣고 「청소년 음악회」를 진행하면서 혁신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뉴욕타임스>의 비평가 해럴드 숀버그는 “번스타인의 동작은 당대 지휘자 가운데 가장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인다”고 비꼬았지만, 그 열정적인 지휘 동작조차 새로운 청중 개발에는 톡톡히 효과를 보았던 것이 사실이다.

번스타인의 지휘 동작

충실한 민주당 지지자로 취임 이전부터 케네디 대통령과 각별한 우의를 보였던 번스타인은 미국 보수 세력과 길항(拮抗)을 겪기도 했다.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1951~52년과 1955~56년 시즌에 번스타인이 뉴욕 필하모닉에서 지휘를 맡지 못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매카시즘의 마녀 사냥이 기승을 부리면서 번스타인은 좌파적 성향과 동성애적 기질, 인종적 태생으로 인해 미국에서 실질적인 실직 상태를 보냈다”고 기술했다. 배리 셀데스 같은 정치학자는 FBI 문서를 토대로 한 걸음 더 나아가 번스타인을 정치적 좌파이자 급진적 행동주의자로 규정하기도 한다.

작곡가로서 번스타인은 1944년 한 해에만 첫 교향곡「예레미야」와 첫 뮤지컬인 〈온 더 타운〉, 첫 번째 발레 음악인 〈팬시 프리〉를 동시에 발표했고, 그 뒤로는 한 번도 멈추거나 뒤돌아보지 않았다. 1956년 12월 초연한 〈캔디드〉는 73회 공연한 뒤 두 달 만에 막을 내리는 참패를 겪었지만, “나는 살기 위해 지휘하고, 작곡하기 위해 산다”는 말러의 말은 그대로 번스타인의 신조가 됐다.

번스타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두 차례나 교향곡 전곡을 녹음하면서 ‘말러 부활’의 주역이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유대인이면서 작곡가 겸 지휘자로 활동한 말러는 번스타인이 평생 본보기로 삼았던 모델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세기말 빈의 말러는 신세기 뉴욕의 번스타인을 통해서 새롭게 부활했다.


1969년까지 뉴욕 필하모닉과 1,200회의 연주회를 열고 200여 장의 음반을 발표했던 번스타인은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작곡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1년간 뉴욕 필하모닉에 재직하면서 번스타인이 발표한 곡은 교향곡 3번 「카디시」와 「치체스터 시편」이 전부였기에 작곡에 대한 갈증은 그만큼 더할 수밖에 없었다.

작곡가로서 번스타인은 쇤베르크 중심의 음렬주의나 극단적인 실험을 줄곧 배격했다. 그는 “조성을 거부하는 것은 인간 존재와 정신, 가장 기본적인 감정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 누가 사랑과 우정, 믿음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대신 그가 자유롭게 넘나든 것은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였다. 재즈와 흑인 영가를 끌어안고, 오페라와 뮤지컬의 구분을 무너뜨리는 파격적인 행보에 스승 쿠세비츠키마저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하지만 번스타인은 “교향곡이 단지 교향곡이라는 이유만으로 좋은 노래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조성 파괴가 극에 이르렀던 1960~70년대 번스타인의 음악은 낡고 저속하며 상투적이라는 비판에 시달렸지만,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가 더 이상 뚜렷하지 않은 1990년대에 이르면 ‘외로운 선지자’로 재평가를 받는다.

이 ‘멀티플레이어’에게 단 한 명의 라이벌이 있었다면 역시 지휘자 카라얀일 것이다. 번스타인이 신대륙 미국을 상징한다면 카라얀은 본토 유럽을 대표했고, 번스타인이 말러를 재조명했다면 카라얀은 베토벤?브람스?브루크너로 이어지는 독일 교향악의 전통에 전념했다.

언젠가 카라얀과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번스타인은 “내가 10년 더 젊고, 5센티미터 더 크다는 것”이라고 위트 있게 받아넘겼다. 하지만 1989년 카라얀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자 번스타인은 파리에서 콘서트 도중, 프랑스어로 “동료이자 위대한 대가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추모하며”라고 청중에게 말한 뒤 묵념을 제안했다.

1959년 카라얀(왼쪽)을 만난 레너드 번스타인. 가운데는 뉴욕 필하모닉의 전임자였던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1973년 번스타인의 쉰다섯 번째 생일을 맞아 음반사 CBS에서는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첼리스트 재클린 뒤프레 부부,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피에르 불레즈 등 당대의 음악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하지만 밤이 깊어가자 번스타인은 동료 프로듀서 폴 마이어스의 어깨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숨질 당시의 베토벤보다 고작 두 살 어릴 뿐이야. 하지만 기억에 남을 만한 어떤 작품도 아직 쓰지 못했어.”

비록 자신은 제대로 발붙일 분야가 없다고 한탄했지만, 번스타인의 직접적 영향력 아래 성장한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머스(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마린 알솝(볼티모어 심포니), 젊은 시절부터 번스타인의 곡을 즐겨 연주했던 사이먼 래틀(베를린 필하모닉)과 켄트 나가노(몬트리올 심포니) 등 새로운 지휘자 세대가 속속 등장하면서 그의 음악에 대한 대접도 나날이 달라지고 있다.

나는 토스카니니처럼 언제나 50여 곡의 같은 작품을 들여다보면서 인생을 보내고픈 마음은 없다. 나는 지휘하고, 피아노를 연주하며, 할리우드를 위해서 작곡하고, 교향곡을 쓰고 싶다. 나는 훌륭한 말뜻 그대로 음악인이고자 한다.


이 말처럼 생전에는 비록 카라얀의 위세에 눌린 감이 없지 않다고 해도, 사후에는 ‘20세기 음악계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은 르네상스적 음악인이 바로 번스타인이다. 더구나 그에겐 아직도 ‘작곡가’라는 마지막 역전 카드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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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성현

조선일보 문화부, 음악 담당 기자다. 예술의 전당 월간지에 현대 음악 작곡가 시리즈를 기고하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 EBS FM 「한영애의 문화 한 페이지」에서 음악계 소식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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