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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 비평가들이 지어준 조롱의 이름

아무리 그림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인상파나 인상주의라는 말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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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에 그리스·로마의 조각상이 그러했던 것처럼, 인상파는 이제 서양을 대표하는 하나의 ‘신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인상파, 파리를 그리다
이택광 저 | 아트북스
유럽 문화의 중심지이며 예술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는 대표 명소인 파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술을 사랑하며 문화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공간이 되어 주었던 파리. 인상파는 이러한 파리의 변화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낸 화가들을 칭하는 말이다. 지금 파리의 모습은 19세기 후반 오스망 남작의 지휘 아래에서 추진된 도시계획으로 완성 되었는데 이 때 인상파 화가들은 이 변화의 순간순간을 마치 스냅사진처럼 생생하게 그림으로 담아냈다.
「에트르타 절벽의 일몰」,클로드 모네,
캔버스에 유채, 55?81cm, 1883, 노스캐롤라이나 미술관, 롤리

아무리 그림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인상파나 인상주의라는 말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8세기에 그리스?로마의 조각상이 그러했던 것처럼, 인상파는 이제 서양을 대표하는 하나의 ‘신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만큼 인상파는 우리에게 친숙한 화가들이다.

드가의 무희와 르누아르의 누드, 모네의 풍경과 마네의 카페는 한 시대를 대표 하던 이미지를 넘어서, 서양의 문화 전체를 연상시키는 상징으로 거듭 태어났다. 또한 그런 이유로 우리가 유럽 여행을 갈 때 막연하게 그려보는 그곳의 이미지들이 인상파의 그림들에서 왔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드가의 무희와 르누아르의 누드, 모네의 풍경과 마네의 카페는 한 시대를 대표 하던 이미지를 넘어서, 서양의 문화 전체를 연상시키는 상징으로 거듭 태어났다. 또한 그런 이유로 우리가 유럽 여행을 갈 때 막연하게 그려보는 그곳의 이미지들이 인상파의 그림들에서 왔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인상파는 그냥 화가들의 모임에 불과하지만, 평범하게 보이는 이들이 이룩한 일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지만, 그 그림이 만들어내는 것은 현실과 다른 세계이다. 이제는 누구라도 동의할 이 사실을 깨닫도록 만들어준 이들이 바로 인상파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등장했을 때, 인상파는 ‘아방가르드’였다. 모든 새로운 것이 그렇듯, 인상파는 그 이름부터 비평가들이 작명해준 조롱의 이름이었다. 모네가 살롱에 출품한「인상-해돋이」라는 작품을 비웃으면서 비평가들이 붙여준 이름이 인상파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조롱은 오늘날 완전히 잊혀졌다. 인상파는 당시 배척 받았던 시장에서 승리했고, 상업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품목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인상-해돋이」, 클로드 모네,
캔버스에 유채, 48?63cm, 1872, 마르모탕 미술관, 파리

세상을 바꾸는 그림은 나름대로 이유를 품고 있는 법이다. 명화는 무엇일까? 쉽게 말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 그림이다. 가치라는 것은 사물의 중요성을 판단하게 하는 주관적인 믿음 체계라고 볼 수 있다. 그림은 경험의 감각을 바꾸어서 이런 믿음 체계를 뒤집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림이 그냥 그림 한 점으로 끝날 수 없는 까닭이다.

우리가 옛 그림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사물을 닮은 이미지라기보다, 그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낯선 가치 체계이다. 인상파는 근대의 초입에서 자본주의 산업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가치를 구현하려고 했던 화가들이었다. 인상파가 근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불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인상파 중에서도 나는 피사로와 모네를 특히 좋아한다. 물론 다른 화가들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딱히 꼽아보라면 이 둘이다. 피사로는 인상파의 사상을 정립하고, 끝까지 그 정신을 포기하지 않은 화가라고 할 수 있고, 모네는 인상파의 혁신을 대중적으로 전파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모네는 인상파 화가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아서, 인상파가 제도권 내에서 성공을 거두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말하자면 최후의 증인이었던 셈이다.

피사로는 사상적으로 견결하고, 예술적으로 혁명적이었는데, 이 말은 모네에 비해 훨씬 덜 복잡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문화비평가로서 판단하자면, 사실 피사로보다 모네가 더 흥미진진한 대상인 건 어쩔 수가 없다.

피사로가 공공연하게 아나키스트적인 정치적 입장을 표명했다면, 모네는 피사로처럼 직접적으로 자신의 정치 성향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르누아르나 드가가 공식적인 왕당파였다는 것과 대조를 이루는 침묵이었다.

그렇다고 모네가 정치적 입장을 갖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암묵적인 공화주의자였고, 이런 측면에서 가장‘프랑스적인 화가’라고 불러도 무방해 보인다.

어떻게 보면 모네는 그림을 그리는 일에서 정치성 자체를 발견한 화가인지도 모른다. 그가 몰두한 건 그림의 형식이었고, 그 형식의 혁신이 곧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걸 직관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수련이나 성당 같은 사물을 되풀이해서 그린 걸 보더라도 그의 예술 정신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늙은 악사」, 에두아르 마네,
캔버스에 유채, 187.4?248.3cm, 1862, 내셔널갤러리, 워싱턴 D.C.

「압생트」, 에드가르 드가,
캔버스에 유채, 92?68cm, 1876, 오르세 미술관, 파리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개념은 바로 ‘여가’였다. 이 여가는 마네나 드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카페 문화와 사뭇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모네의「에트르타 절벽의 일몰」을 보자. 이 화사한 풍경은 분명 마네나 드가가 그려내고 있는 우중충한 파리의 일상과 다른 것이다. 마네의「늙은 악사」나 드가의「압생트」는 이런 화사한 색채와 빛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마네와 드가에게 중요했던 춰이 ‘실내’였다면, 모네의 경우는 어디까지나 야외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바로 근대 자본주의를 살아가던 파리지앵의 생활방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와 농촌이라는 통합적 공간을 표현한 모네가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중간계급의 미학을 반영한다면, 마네나 드가는 도시의 거리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근대적 주체에 더 관심을 보였다. 물론 마네가 노동계급에 더 호기심을 두었다면, 드가는 부르주아에 더 마음이 가 있었다? 점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이런 까닭에 나는 모네야말로 인상파의 가치체계, 나아가서 근대 파리 중간계급의 가치지향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화가라고 생각한다. 인상파는 중간계급의 감수성을 미학적으로 표현하는 화가들의 집단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인상파와 함께 소풍을 떠나보자.




이택광
경희대학교에 영미문화 전공 교수로 재직 중
경향신문에 ‘이택광의 왜’ 연재 중
네이버 캐스트 '오늘의 미술'에 '인상파 아틀리에'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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