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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이후 홍성 우시장 직접 가보니

충청남도 홍성 광천 우시장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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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의 거친 음성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집채만 한 황소 한 마리가 거친 숨을 내쉬며 달려온다. 아슬아슬하게 몸을 날려 길을 내줬지만 어찌나 놀랐는지,

 
소도시 여행의 로망
고선영 글/김형호 사진 | 시공사
이 책은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시간을 내어 자신을 다독이고 위안하는 여행을 떠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 목적지는 잘 꾸며진 관광지가 아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소박하고 정겨운 우리의 ‘소도시’들이다. 그곳에서 푸근한 동네 사람들의 노변정담에 끼어 보고, 맛나는 지역 음식도 맛보고, 역사를 품고 있는 오래된 건축물도 둘러보면서 여행자는 일상에서부터 가져온 묵직한 스트레스를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놓아 버린다. 녹록지 않은 일상에 갑자기 찾아온 휴식같은 시간. 여행자는 길 위에서 새삼 인생의 ‘소소한 행복’을 깨닫는다.
젖은 새벽에 소 울다


“소, 소, 소, 소!” (빠르게 외친다.)

“큰 소, 소, 소, 소!” (더 빠르고 더 크게 외친다.)

사내의 거친 음성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집채만 한 황소 한 마리가 거친 숨을 내쉬며 달려온다. 아슬아슬하게 몸을 날려 길을 내줬지만 어찌나 놀랐는지, ‘소, 소, 소’ 하고 외치는 소리만 나면 반사적으로 몸이 움찔한다. 새벽 5시에 이렇게 놀라기는 처음이다. 이곳에서 ‘소, 소, 소’ 하는 소리는 소가 지나니 비키라는 뜻이다. ‘큰 소, 소, 소’ 하고 더 빠르고 크게 외치는 것은 큰 소가 뛰니 냉큼 몸을 피하라는 뜻이다. 자칫 성난 소의 뿔에 받힐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온 사방에 울려 퍼지는 소 울음소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쇠전에서의 호된 신고식을 그렇게 마쳤다.

새벽 4시. 광천읍에서 홍성읍으로 가는 21번 국도변은 이미 소를 싣고 온 트럭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우시장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트럭들이 양쪽 입구를 향해 1km 이상 줄을 섰다. 한 200대도 넘는가 보다. 그리고 차 안에는 눈만 끔뻑끔뻑하는 누렁소들이 타고 있다. 5시가 되고 우시장 문이 열리자 트럭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전 안으로 들어간 차에서는 끝도 없이 소가 내려졌다. 이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이내 우시장은 소들의 울음소리와 사람들의 흥정 소리에 휩싸였다.

오늘 장에 나온 소들은 대략 300마리다. 오랫동안 구제역 때문에 전국의 우시장이 문을 닫았다가 다시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광천장은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이름난 소시장이다.

“대한민국 황소 값은 여그서 결정돼유. 우리 광천장은 100년도 넘은 역사를 가진 곳이에유.”

홍성축협에서 일하는 김종호 씨가 광천 우시장 자랑을 늘어놓는다. 본래 광천 우시장은 4, 9일, 광천 5일장이 서는 날 함께 열렸지만, 최근 홍성 우시장이 통합되면서 1, 6일에도 열리게 되었다. 장이 서는 날에는 홍성뿐 아니라 인근 부여, 논산, 서산, 청양 등 7~8개 군과 멀리 광주나 해남에서도 소가 올라온다. 홍성에서만 7~8만 마리의 한우가 사육된다고 한다.

“8,800원 어때유?”

그러자 소를 살 사람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거간꾼이 다시 흥정을 붙인다.

“아, 이럼 안 되는디, 그럼 얼마가 좋겠시유?”

“생각보다 비싸구마. 8,000원 생각하고 왔는디…”

소 살 사람이 말끝을 흐린다.

“그럼 8,400원에 해유. 아, 소 안 잡아 봤남유. 이 소는 무조건 잡아도 돼유. 사유.”

8,400원에 거래가 성사된다. 거간꾼이 은색 물감으로 누렁소 엉덩이에 ‘고구려’라고 쓴다. 그런 뒤 누렁소는 몸무게를 재는 곳으로 떠난다.

우시장에는 중개인이 따로 있다. 거간꾼이다. 이 광천장에는 노란 조끼를 입은 22명의 거간꾼이 있어 모든 거래가 그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거간꾼은 미리 소 주인에게 가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매도인과 매수인 중간에서 흥정을 붙이고 거래를 하게 한다. 암소인지 거세소인지, 또한 크기에 따라서도 가격이 달라진다. 이 날은 대략 kg에 8,300~9,000원 선에서 거래가 이루어졌다. 물론, 등급이 좋은 암소는 kg당 9,300원까지도 몸값이 매겨졌다.


거래가 끝난 소들은 엉덩이에 새 주인의 표식을 달고 무게를 재러 간다. 이 때 구경꾼을 비롯해 우시장 안 사람들은 주의해야 한다. 광천장에서 거래되는 대부분의 소들은 고깃소로 이용되기 때문에 농우農牛처럼 코뚜레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 번 버티기 시작하면 영 애를 먹는다. 이 때 소 주인은 꼬랑지를 말아 쥐고 엉덩이 부분에 야릇한 자극을 주어 민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가끔 콕 쥐어박기도 한다. 더 힘든 상황은 흥분한 소가 달리는 일이다. 소가 우지끈 힘을 쓰기 시작하면 주변 사람들은 재빨리 몸을 숨겨야 한다. 잘못하다가는 뿔이나 머리로 들이받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소가 계체량기에 올라서면 소 주인은 좌불안석이다. 몸무게가 더 나가야 값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날 거래된 소들의 몸무게는 대략 550~650kg 사이. 그 중 많은 이의 이목을 집중시킨 소가 있었으니, 예산에서 온 이언복 씨의 소다. 이 씨의 소가 계체량기에 올라서자 전광판에는 ‘957kg’이라고 뜬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kg당 8,100원에 거래했으니 소 값은 총 775만 원이다. 모두 부러워하는 눈치다.

“집에서 쟀으면 1,000kg은 나갔을 거예유. 한 시간 걸려 여기 오느라 그새 무게가 많이 빠졌네유. 이 소는 종자가 참말로 좋은 거예유. 이렇게 큰 소는 흔치 않지유.”

이 씨는 시원섭섭한 듯한 말투로 소 등을 쓰다듬으며 담배를 한 개비 빼어 문다. 이 씨의 옆에 서 있던, 데려온 5마리의 소 중 2마리를 팔았다는 허영 씨는 섭섭한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650kg짜리 암소를 9,300원씩에 팔았죠. 가격을 잘 받아 기분은 좋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짠해요. 집에서 기르던 소를 내다 판다는 것이 즐겁지만은 않으니까요”


불현듯 옛 생각이 났다.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던가, 안동의 작은 농촌 마을로 농활을 간 적이 있었다. 열흘이 넘는 긴 일정 동안 묵은 곳은 청년회장의 집이었다. 어느 적막한 새벽, 주인아저씨의 울음소리를 들었더랬다. 집에 무슨 큰일이 났나 싶어 걱정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저씨가 그날 새벽 우시장에 나가 기르던 암소 한 마리를 내다 팔았단다. 두 해 가까이 매일 아침 쇠죽 끓여 등 긁어 주며 먹인 소를 팔고 받은 돈 500만 원을 들고 돌아오는 길에 아저씨는 그렇게 눈물이 났다고 했다.

이곳에서 거래된 소들은 홍성의 도축장으로 곧바로 이동한다. 그리고 고기로 변신한다. 예전 우시장에서는 집에서 기르거나 농사일을 시키기 위해 소를 사 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어린 송아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도축장으로 직행한다.

보령의 오천에서 온 조종식 씨는 한우 서른 마리를 기르는 농부다. 그는 이날 맨몸으로 장에 왔다. 장 분위기를 파악하고 시세도 알아보기 위해서다.

“한 6개월 장이 쉬었다가 다시 열린다고 해서 구경 나왔지요. 구제역 전에는 가격이 괜찮았는데 지금은 그럭저럭이네요. 한우는 가격이 너무 좋아도 못써요. 적당한 가격에 안정적인 게 제일 좋은 거죠.”

깜깜할 때 시작한 우시장에 어느새 해가 들기 시작한다. 거래가 끝난 소들은 새 주인의 트럭에 옮겨 타고, 흥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떨이 소 몇 마리만이 남았다.

- 본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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