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로니카
크로미오(Chromeo) <Business Casual>
요즘 시대에 크로미오만 한 팀이 어디 있을까? 찬사를 금할 수 없을 정도로 이들은 1980년대 이후 주류 음악계에서는 맥이 끊겨 버린 일렉트로 펑크(electro funk)를 아주 멋스럽게 구현한다. 전작들에 비해 반동의 강도가 많이 떨어지긴 했으나 오버하지 않는 전자음, 탄력적인 펑키 그루브, 뚜렷한 선율로 이번에도 훌륭하게 일렉트로 펑크의 순수성을 지키면서 흥과 작품성을 획득해 냈다. 썩어도 준치다.
리르 르 떵(Lyre Le Temps) <Lady Swing>
프랑스의 신예 퓨전 밴드 리르 르 떵의 데뷔 앨범. 클럽 디제이로 내공을 쌓은 이들답게 몸을 흔들기에 좋은 격정적이고 흥미로운 대기를 조성한다. 리르 르 떵의 노래에는 음악이 흐르는 곳을 바로 클럽으로 만들 만큼의, 팔과 다리를 움직이게 하는 마법의 에너지가 충만하다. 재즈와 힙합을 기반으로 팝, 록, 일렉트로니카 등 다양한 장르를 버무린 하이브리드 스타일은 어긋나는 데 없이 조화를 이루며 이러한 지향으로 얻은 의외성과 독특함은 또 한 번 듣는 이를 즐겁게 한다.
알제이디투(RJD2) <The Colossus>
힙합과 앰비언트, 트립 합을 넘어 일렉트로팝과 록으로 가지를 확장했으나 알제이디투의 매력은 변함이 없다. 연주곡에서는 기승전결이 있는 구성으로 청취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노래가 들어가는 곡에서는 뚜렷한 선율로 듣는 재미를 준다. 다양한 장르를 추구한 탓에 일관성이 다소 떨어지긴 하지만 어떠한 형식에서도 짜임새 있는 구조를 완성하는 그의 섬세함이 이번에도 빛났다.
카리부(Caribou) <Swim>
테크놀로지와 말초적 자극을 목적에 둔 작위적 편곡에 골몰하지 않고 카리부는 이번에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조촐하고 소담스러운 일렉트로니카 세계를 재현했다. 마치 동향에는 별 관심 없다는 듯한 심드렁함까지 느껴지는 그의 음악은 전자음악다운 소리 내기에 급급하기보다는 다른 장르로까지 표현의 팔을 뻗어 사이키델릭의 환각 분위기와 팝의 순편함도 수용한다. 앨범 타이틀처럼 유영하는 기분을 들게 하는 신기하고 묘한 음악이었다.
제이디세븐티쓰리(JD73) <Pure Gold>
영국의 작곡가 겸 프로듀서 제이디세븐티쓰리의 데뷔 앨범을 일렉트로니카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사실 곤란하다. 아니, 일렉트로니카 앨범이 아예 아니다. 엄밀히 규정하자면 전자음악도 하는 이의 전자음악의 요소가 약간은 가미된 애시드 재즈, 펑크(funk), 소울 앨범이다. 그렇게 적은 양만 들어갔음에도 명징한 선율을 써 내는 작곡 능력과 품위 있으면서도 태가 나는 흥을 조성하는 수려한 프로듀싱 실력은 앨범을 도저히 간과할 수 없게 만든다. 많은 사람에게 익은 이름은 아니지만 몇몇 수록곡에 참여한 객원 보컬들의 목소리 또한 앨범의 풍미를 올려 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Pure Gold>는 전자음악의 요소가 약간 가미된 ‘정말 근사한’ 애시드 재즈, 펑크(funk), 소울 앨범이다.
글 / 한동윤 (bionicsoul@naver.com)
힙합케이노(Kno) <Death Is Silence>
힙합과 타장르 간의 결합은 실연(實演)을 통해 이뤄지기도 하지만, 샘플링 작업을 거쳐 접점이 마련되기도 한다. 힙합 트리오 커닝링귀스트(Cunninlynguist)의 지휘관인 케이노는 후자인 경우다. 의아한 점은 흑인 음악의 색채가 옅다는 것. 샘플링의 모범사례로 통용되는 소울, 블루스를 배합한 빈티지적 요소가 희미하다는 말이다. 멜라니 사프카(Melanie Safka)의 「I really loved Harold」와 포레스트(Forest)의 「Graveyard」 등의 히피적 우울함을 앨범을 관통하는 ‘죽음’이라는 주제어로 귀속시켰다. 주제담론과 음악 스타일의 치밀한 연대로 인해 인디 힙합 신의 종다양성을 역설하는 수작이다.
디제이 머그스 VS 일 빌(DJ Muggs VS Ill Bill) <Kill Devil Hills>
디제이 머그스만큼 일관된 기조로 저작물을 쌓아온 프로듀서도 드물다. 사이프러스 힐(Cypress Hill)에서부터 지금까지 그의 숨소리에는 언제나 음침한 장송곡이 새어나왔다. 이번에도 역시 시타르 연주와 기이한 자장가 등의 요소를 접합하여 고딕 풍의 호러무비를 연상케 하는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표면적으로는 일 빌과 규합한 조인트 앨범처럼 보이지만, 실은 여태까지 그가 초대한 장례식에 참석했던 낭인들을 소집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혹여 난잡하지 않겠는가라는 우려도 각 트랙에 부여한 테마 안에서 흐트러짐 없이 가사를 쏟아 붓는 집중력으로 기우에 그치고 만다. 분위기뿐만 아니라 짜임새로도 올 여름, 어느 앨범보다도 등골을 서늘하게 한 납량특집작.
셀프 타이틀드 & 벅와일드(Celph Titled & Buckwild) <Nineteen Ninety Now>
위키리크스는 외교가의 뒷이야기를 공개하며 주목을 끌었다면, 벅와일드는 15년간 묵혀두었던 비트를 공개하며 힙합의 초기 황금기를 그리워하는 팬들을 만족시켰다. 중압감이 실린 드럼과 베이스라인, 군더더기 없이 은은한 효과를 자아내는 키보드의 음색은 1980년대 말~1990년대의 운치를 회상하기에 충분하다. 그런가하면 주석과의 공동 작업으로 우리에게도 낯익은 미스타 시니스타(Mista Sinista)의 스크래치가 적재적소에서 폭발하니 귀가 성찬 할 따름이다. 트렌드에 대한 의존성 여부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 있지만 작법의 타이트함은 오히려 현재 작들을 능가한다. 시류에 흔들려 생명력이 단축되곤 하는 힙합 프로듀서 신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켜왔기에 가능한 프로젝트다.
리플렉션 이터널(Reflection Eternal) <Revolutions Per Minute>
10년 만에 다시 뭉친 디제이 하이테크(DJ Hi-Tek)과 탈립 콸리(Talib Kweli)는 각자에게 기대되는 특화된 자질을 십분 발휘했다. 미국 사회에 외치는 탈립 퀠리의 쓴소리는 여전히 날이 서려있다. 소울계의 참여시인이었던 질 스코트 헤론(Gil Scott Heron)의 계보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셈이다. 앨범 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LP시대의 음향들을 들춰낸 하이테크의 고집은 친숙함과 신선함의 경계를 넘나들며 진보적인 가사와 묘한 결속을 자아낸다. 진지한 사회고발도 유쾌한 놀음과 어우러질 수 있음을 명징하게 나타내는 앨범이다.
빅 보이(Big Boi) <Sir Lucious Left Foot: The Son of Chico Dusty>
올해 빅 보이의 독자적인 운영능력에 놀랐다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까. 아웃캐스트(Outkast)의 음악성에 정점을 보여준
<Speakerboxxx / The Love Below>에서 더블앨범의 반쪽을 담당하며, 이미 혼자만으로도 온전히 풀 앨범을 축조할 수 있는 역량을 증명했다. 오히려 이번 첫 솔로 앨범이 늦은 감도 든다. 기다린 이들을 위해서라도 토크박스가 곁들어진 펑크(Funk), 소울, 게다가 웅장한 규모의 클래식까지 장르의 대융합을 한 앨범에서 펼쳐낸다. 광대한 장르 이해도뿐만 아니라, 초대 손님들과의 랩 대결에서도 존재감이 꺾이지 않는 아우라는 안드레 3000(Andre 3000)에 가려 그에 대해 무신경하던 청자들의 인식에 일격을 가했다.
글 / 홍혁의 (hyukeui1@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