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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서울서는 이런 맛을 워떻게 본다요”

목포 온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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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달동네 목포 온금동을 가다 - 목포역에 내려 곧장 역 앞 먹거리 골목으로 간다. 이상하게 기차 여행은 늘 출출하다. 쑥굴레 집에 들러, 쑥굴레 하나 포장이요, 외친다.

 
소도시 여행의 로망
고선영 글/김형호 사진 | 시공사
이 책은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시간을 내어 자신을 다독이고 위안하는 여행을 떠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 목적지는 잘 꾸며진 관광지가 아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소박하고 정겨운 우리의 ‘소도시’들이다. 그곳에서 푸근한 동네 사람들의 노변정담에 끼어 보고, 맛나는 지역 음식도 맛보고, 역사를 품고 있는 오래된 건축물도 둘러보면서 여행자는 일상에서부터 가져온 묵직한 스트레스를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놓아 버린다. 녹록지 않은 일상에 갑자기 찾아온 휴식같은 시간. 여행자는 길 위에서 새삼 인생의 ‘소소한 행복’을 깨닫는다.
온금동 사람들

목포역에 내려 곧장 역 앞 먹거리 골목으로 간다. 이상하게 기차 여행은 늘 출출하다. 쑥굴레 집에 들러, 쑥굴레 하나 포장이요, 외친다. 밤톨만 한 쑥굴레 열 개가 담긴 종이 그릇 위에 조청을 쪼르르 쏟아 붓고는, 조심조심 앙금이 떨어지지 않게 휘저은 후 얼른 한 개를 입 안에 넣는다. 조청의 달콤한 맛과 녹두 앙금의 쌉싸래한 맛, 그리고 쑥 찰떡의 부드러운 맛이 혀 위에서 나뒹군다. 참 맛나다. 이 맛에 여행을 한다. 대식가 김 선생에게 뒤질세라 얼른 얼른 씹어 부지런히 삼키지만 결국 그에게 절반 이상을 빼앗겨 버렸다. 후회가 밀려온다. 에이, 좀 더 많이 사올걸. 그릇에 묻어 있는 조청 한 방울까지 싹싹 핥아 먹어 보지만 아쉬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 쑥굴레가 무엇인고 하니, 목포 이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간식거리다. 쑥떡에 녹두소를 얹고 손으로 조물조물 뭉쳐 서로 떨어지지 않게 빚은 다음 달달한 조청을 끼얹어 먹는다. 본래 경상도 지역의 떡인데, 쑥굴레집(쑥굴레를 파는 분식집으로 가게 이름도 ‘쑥굴레’다.) 주인이 목포시장에서 팔던 것을 딸이 전수받아 아예 가게를 차렸다고 한다. 목포사람들만 몰래몰래 사 먹는다는 별미 중의 별미다.

유달산 자락 아래 유달동. 행정구역상으로는 그저 유달동이지만 예전에는 온금동, 서산동, 충무동, 중앙동 등 여러 동으로 쪼개져 있었다. 그 중 온금동은 유달산 자락과 아리랑 고갯길을 따라 가로로 길게 펼쳐져 있는 동네다.

“달동네는 뭣 하러 가는가?”

조선내화 공장 앞 뉴금동수퍼집 마당에서 노변 정담을 나누던 동네 어르신이 말을 걸어온다. 오래된 동네 구경 다니는 것이 취미라 말씀드렸더니 아예 가겟집 의자를 하나 내어 주시며 앉으란다.

“옛날에는 죄다 하꼬방(일본어로, 판잣집을 뜻함)뿐이었어. 요즘이야 세상이 좋아져 지붕도 고치고 집도 고치고 했지만 대부분이 옛날 그대로여. 공장 옆으로는 원래 바다였는디, 째보선창이라고 들어 봤는가? 공화당 때 땅을 메웠당께. 박정희가 째보수술을 해 준 거쟤.”

바닷가 일부가 푹 팬 지형을 ‘째보선창’이라 불렀는데, 이곳의 땅을 메워 평평하게 만든 것을 어르신은 ‘째보수술’이라고 표현했다. 이 말에 동네 어르신들이 껄껄 웃으신다. 옆에 앉아 있던 다른 어르신이 말을 잇는다.

“그래도 한 10년 전까지는 괜찮았당께. 이노므 공장이 포항으로 옮겨간 다음 동네가 썰렁해져 부렀으. 공장서 일하던 사람들이 동네에 많이 살았거등. 이 공장이 뭣하는 거인지 아는가? 해남 옥매산서 가져온 옥돌로 빨간 벽돌을 만들었는디 을매나 단단헌지 말도 못 하지.”

마을은 구한말 형성됐다고 했다. 온금동의 옛 이름인 다순구미 포구를 중심으로 자연스레 동네가 생겨났고, 주민들은 대부분 노동자이거나 뱃사람이었다고 했다.

“지금은 노인네들이 많어. 젊은 사람들이 여그서 살라고 하는가. 이전 시장이 동네를 싹 재개발해 준다고 혔는디 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암, 귀신도 몰러.”

어르신들은 동네가 개발된다는 말에 별 관심이 없으신 듯했다.


해가 잘 들어 늘 따뜻하다고 해 이름 붙은 온금동은 말 그대로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가파른 계단과 좁은 골목길 사이로 지붕 낮은 집들이 촘촘히 들어앉았고, 어느 집 마당이든 어느 길에서든 고개를 돌리면 바다가 보였으며, 조선내화 공장의 우뚝 솟은 굴뚝이 눈에 들어왔다. 집집마다 상추며 쪽파를 키우는 화분 두어 개씩을 가지고 있었으며, 서너 집 걸러 한 집은 비슷비슷한 생김새의 누렁이를 기르는 듯했다. 바닷빛 닮은 색으로 칠한 담장 밑에서는 이름 모를 들꽃이 바닷바람에 살랑살랑 잎을 흔들어 댄다. 노란색, 하늘색, 연두색, 오렌지색 등 각자의 취향대로 칠한 담벼락에는 빨래, 생선, 낡은 우산 등이 매달려 있다. 소라 껍데기를 줄줄이 담장에 얹어 장식한 집도 있다. 난잡하게 얽힌 전깃줄 마냥 동네의 좁은 골목길은 이리 저리 얽혀 있는데, 그 길을 헤매고 다니는 일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다.

“일루 와서 소주 한잔 하쇼잉.”

‘음부 바위’라는 민망한 이름이 붙은 커다란 바위 밑 평상에 온금동 사람들 서넛이 둘러앉아 있었다. 바위를 병풍 삼은 집의 주인인 김정님 씨가 동네 사람 몇을 초대해 조촐한 갑오징어 파티를 연 것이다. 배를 타는 막내 동생이 아침에 가져다 줬다는 갑오징어 몇 마리를 살짝 데쳐 내왔는데, 쫄깃하니 그 맛이 기막히게 좋았다. 염치불구하고 따라주는 소주도 한 잔 얻어 마셨다.

“아따, 서울서는 이런 맛을 워떻게 본다요. 많이 드쇼잉.”

마을 주민 임광철 씨가 바위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여그 있는 바위가 음부 바위요. 남자 거스그 바위는 저~그 바다쪽에 있지라. 이 동네 출산율이 괜히 높은 것이 아니랑께. 다 여그 두 바위들 때문이요.”

아낙들이 깔깔거린다.
평상에 눌러앉아 싱싱한 오징어로 한껏 배를 채웠다. 잘 먹었다고 꾸벅 인사를 하고는 다시 언덕길을 올랐다.

길 끝에 집 전체를 진한 파란색으로 칠한 소담한 집 한 채가 보였다. 담장 위 빨랫줄에 옷을 널던 할머니가 나와 김 선생을 보고는 급하게 손짓을 하신다. 영문을 몰라 그냥 서 있는데, 기어이 굽은 허리로 집 아래까지 내려오신다. 그러고는 가까이서 얼굴을 들여다본 뒤 실망한 듯 한숨을 내쉰다. 할머니는 우리가 당신 손자들인 줄 아셨던 것이다. 돌계단 위에 쪼그리고 앉은 할머니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손자가 몹시 보고 싶으셨는가 보다.

“여그 앉아 만날 고깃배들 다니는 걸 봐. 지금 들어오는 배를 보니 세 시쯤 됐는가 보네. 홍도 가는 배는 아침 아홉 시에 나가 밤 아홉 시에 들어오지. 난 시계가 필요 없어.”

마당에 묶여 있는 삽살개 한 마리,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손자가 가족의 전부인 할머니는 외출하는 일도 거의 없이 하루 종일 바다를 바라보는 게 낙이라고 하셨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참 동안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계단에 함께 앉아 있었다. 차마 그냥 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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