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이대봐, 가까이 들이대봐”
카메라 클로즈업 놀이하는 것처럼 세밀하게 묘사해봐
빙글빙글 카메라가 돌아간다.
입술 죽인다. 클로즈업, 더더 클로즈업.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손에 밀착. 카메라 뒤로 뺐다가, 이번엔 발이다. 위로 위로 눈. 동작 좋고. 바로 밑 콧구멍 오케이. 다시 아랫입술 클로즈업~.
손·눈·코·입·발에 담긴 은서의 감정
진짜 동영상은 아니다. 눈으로 찍고 문장으로 출력하는 그림이다. 대충 스케치하면 다음과 같다. “식당 앞에서부터 초딩 은서는 어깨를 앞뒤로 흔들었다. ‘난 싫어. 국수 싫다고.’ 반강제로 앉았다. 평소보다 입 부위가 돌출한 상태. 아래 입술이 5mm가량 더 나왔다. 반쯤 감긴 두 눈은 45도 오른쪽 아래 방향만을 주시하고 있다. 왼손으론 턱을 괬다. 시간이 갈수록 아랫입술이 더 삐져나온다. 오른발은 10초 간격으로 식탁 다리를 찬다. 콧구멍은 5초 간격으로 벌렁벌렁. 젓가락을 주자 고개를 젓는다. ‘싫어. 안 먹는단 말이야.’ 이번엔 눈이 15도 위 방향으로 치떠진다.”
뭐 이리 복잡할 필요 있냐고?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줄여도 된다. “은서는 국수가 싫다고 투정 부리며 피자를 먹자고 떼썼다.” 짧은 설명만으로는 허전할 때가 있는 법. 앞에서는 “투정을 부렸다”에 그치지 않고 은서의 머리, 손, 눈, 코, 입, 어깨, 발의 움직임을 전했다. 각 신체기관의 변화가 꼬마의 감정을 반영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은서가 삐쳤다”는 상황을 더 깊이 받아들인다.
오늘은 ‘묘사’에 관해서 말하고자 한다. 흔히들 글쓰기 책에선 “서술하지 말고 묘사하라”고 권한다. 왜 그럴까. ‘실감’ 때문이다. ‘실감’이란 피부에 와 닿는다는 뜻이다. 귀동냥으로 전해들은 느낌보다 ‘보았다’는 느낌에 가깝다. 다르게 말하면 ‘생동감’이다. 정지된 스틸보다는 움직이는 동영상!
중딩 준석도 처음에는 실감나는 글을 썼다. 글쓰기홈스쿨을 처음 시작할 땐 묘사가 썩 괜찮았다. 가족여행 다녀온 소감문에서 남이섬 펜션에 있던 개의 미세한 움직임을 그린 게 탁월해 칭찬을 받기도 했다. 날이 갈수록 ‘불감’의 글로 변했다. 묘사하지 않고, 서술하고 논()하려고만 했다. 뭉뚱그려 설명하려고만 했다. 망하는 글의 지름길이다. 학교 수련회를 다녀온 준석에게, 다시 한번 ‘묘사’를 강조하면서 소감문을 적게 했다.
“(앞 생략)결국 한 놈이 걸렸다. 교관선생님은 역시나, 호되게 혼을 내셨다. ‘야 내가 정직하게 바로바로 내라고 말 했어 안했어!!!’ 아이는 고개만 떨구고 있을 뿐, 아무 말도 안 했다. 어쩌면 그 애는 교관 선생님보다 아이들의 따가운 시선이 더 무서웠을 것 같다. 결국 선생님이 ‘여러분, 제가 기회를 주었습니까, 안 주었습니까?’ 아이들은 당연히 ‘주었습니다.’ ‘소리가 길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그걸 알고도 약속을 지켰습니까, 안 지켰습니까?’ ‘안 지켰습니다!’ ‘모두 침을 삼켰다. 과연 어떤 벌을 줄 것인가.’(뒤 생략)”
로버트 카파에게 무엇을 배울 것인가
와이드샷이 아니다. 클로즈업이다. 2박3일 수련회 중 입소 과정에서 벌칙 받는 순간에 90% 이상을 할애했다. ‘묘사’는 글의 질서를 바꾼다. 2박3일을 다녀왔다고, 전체의 시간을 공평하게 보여준다면 오히려 산만하다. 단 1분에 불과하더라도,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집중묘사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인물이나 심리에 관한 묘사도 그렇다.
유명한 사진가 로버트 카파는 ‘있어 보이는’ 말을 남겼다.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이거다. “들이대라, 가까이 들이대라.” 들이대서 묘사해야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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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속에 내시경을 넣어봐
입 속으로 카메라가 들어간다.
어린이와 청소년 여러분은 경험할 기회가 드물다. 어른들은 일정 시기가 되면 정기 건강검진 때마다 입 속에 카메라를 쑤셔넣는다. 으아아악!!!! 입속에 들어가 뱀처럼 꿈틀거리며 식도를 넘은 카메라는 안테나처럼 쑥쑥 늘어나며 위()를 향해 밑으로 기어들어간다. 위 촬영 임무를 맡은 내시경이다. 카메라에 몸을 허락한 이들은 병상에 누워서 침을 질질 흘리기 일쑤다. 그래도 이건 양반이다. 똥꼬로 들어가는 카메라도 있지 않은가. 대장내시경이다. 으흐흐 생각만 해도 몸이 움찔움찔!
은서에겐 마음속에 내시경을 넣어보라고 했다. 쉽게 말해 ‘심리묘사’다. 감정의 변화를 촬영하고 기록하는 일이다. 앞에서 잠깐 묘사한 식당에서의 투정 사건을 상기시켰다. “그때 너의 생각을 행동에 옮기기까지 과정을 꼼꼼하게 적어봐.”
수제비 좀…담엔 피자, 콜?
| 식당에서 음식을 거부하고 삐쳐있던 은서의 표정. 입이 툭 튀어나왔다. 볼로 풍선을 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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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일요일에 교회 끝나고 점심시간에 점심 메뉴를 정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걸 하는지 안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흔한 일. 오늘은 아빠가 OO국수를 먹고 싶어 하신다.
하지만 저번에도 이러셔서 내가 한 번 봐줬지만, 이번에는 절대로 봐 줄 수 없다. 나는 볼을 풍선으로 만들어 “흥! 이번에는 절대로 못 봐줘!”라고 했다.
아빠는 한번만~ 이라고도 말하고, 급기야 담엔 피자를 먹겠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나는 피자 이야기에 솔깃했지만 그래도 OO국수집이 싫었다. 그 집 메뉴중 하나인 수제비는 그래도 봐줄만한데 들깨 수제비라니!!! 게다가 내가 싫어하는 검은 콩도 갈아서 넣었다.
나는 반항했지만 아빠한테 억지로 끌려갔다. 아빠가 접시를 주고, 휴지를 주고, 젓가락, 숟가락을 줘도, 나는 흥! 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받고도 싶고, 배도 고팠다. 하지만, 삐짐 스킬 마스터의 힘을 보여줘야 했다. 내가 숟가락과 젓가락을 줘도 안 받은 이유가 이 때문이다.
수제비가 나오고, 주먹밥이 나오고, 떡구이가 나오고, 홍합짬뽕이 나와도 볼을 풍선으로 만들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몇 분이 지나자 배도 고프고, 꼬르륵 소리도 났다.
내 마음이 2개로 갈라졌다. 하나는 “아니야, 안 돼, 빨리 화를 풀고 맛있게 밥 먹고, 다음에 피자 먹어야지~”였다. “왜 이때까지 참아서 일을 커져 버리게 해! 그냥 빨리 먹어~.”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아니야, 아니야, 삐짐 스킬 마스터 제 1을 다 써먹어야지. 보여주는거야. 그래, 잘 봐라 이게 삐짐의 힘이라고 말이야. 그럼 사람들은 이제부터, 아, 삐짐이라는게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다음부터는 은서가 하고 싶은 걸로 해줘야지. 라고 느낄거야. 응?”
하지만, 난 여리고 착하기 때문에 1번째 마음이 이겼다. 그래서 나는 아빠한테 말했다. “수제비 좀…”. 그러자 아빠가 “그래그래”하시면서 웃는 얼굴로 수제비를 떠주셨다. 그 다음에 아빠한테 또 말했다. “다음에는 피자…응?”
아빠는 “수제비 좀… 담엔 피자”라는 말을 계속 쓰면서 크크크거렸다. 그 다음부터 일주일동안 나한테 “수제비 좀…” “수제비 좀…”이라면서 장난을 걸었다. 아빠가 그렇게 말하면 나는 “담엔 피자”라고 답해줘야 한다. 아빠가 너무 자주 그런 걸 요구하니까 짜증이 났다. 재미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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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에 담긴 10가지 복잡한 감정
“글 쓸 땐 배드걸~ 먹을 땐 굿걸~.” 걸그룹 ‘미스에이’의 <배드걸굿걸>의 가사를 비틀어보자면 그렇다. 먹고 놀 때만 ‘굿걸’인 은서도 자신이 원치 않는 걸 먹어야 할 땐 ‘배드걸’이 된다. 글에 나오듯 ‘볼을 풍선처럼’ 만든 뒤 ‘삐짐 스킬 마스터’를 발휘하려 한다.
한번 퇴짜를 놓고 다시 쓴 글이지만 신통치 않다. 심리묘사보다는 행동을 설명한 부분이 압도적이다. 마음 내시경은 갈라진 두개의 마음을 보여줄 때만 작동했다. 건성으로 대충대충 찍은 셈이다. 사실, 다 안 찍어도 좋다. 한 군데만 집중적으로 찍어도 된다. 아무튼 마음 내시경을 넣고 헛구역질 나올 때까지 촬영하면 안 되겠니?
그런 의미에서 은서에게 숙제를 하나 냈다. 글 속의 “흥”이라는 의성어 한 음절이 있다. 여기에 깃들었던 마음을 10가지 적어보라고 했다.
1) 지금 여기서 지고 시키는 대로 먹으면 자존심 Down 소녀.
2) 잘 포기하는 애로 알지도 몰라.
3) 날 쉽게 볼지도 몰라.
4) 그냥 수제비 먹을까?
5) 근데 배고프다.
6) 향기도 좋은걸.
7) 꿀이다. 떡 구이 찍어 먹으면 맛있을 텐데.
8) 주먹밥이 아주 연기가 모락모락~ 맛있겠다.
9) 와, 수제비다.
10) 다 맛있겠다.
‘흥’이라는 한 글자 속엔 여러 욕망과 아빠에 대한 거부감,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자존심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이걸 맛있게 반죽해서 묘사하면 실감나는 글이 될지도 모른다. ‘흥’ 하나에 수 십 가지 심리 해석을 끌어다 붙이고 전후의 상황을 전하면서 글 하나를 통째로 요리해도 좋다. 내시경으로 ‘흥’의 속살만 찍어도 좋다는 이야기다. 마음의 클로즈업이라고나 할까. 다음은 준석의 글이다. 중학교에서 수련회 다녀온 소감을 적었다.
전체 반 좌향좌…모두 침을 삼켰다
“하나, 둘, 하나, 둘!” “또 느려진다 느려져!” “전체 귀 잡아!” 교관님의 말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었다. 항상 신속함과 함께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정확함, 정직함을 요구하는 이곳, 중학생이 따르기는 참~ 힘든 이곳, ‘OOO 수련원’을 소개한다. 뭐 4,5학년 때도 수련원을 다녀와서 그렇게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다른 수련원보다 훨씬 ‘넓은’ 방과 함께 고급 음식, 고급 시설의 ‘수련원의 이데아’인 OOO수련원을 간 건 매우 좋았다.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말하라고 한다면, 단연 ‘벌칙’을 뽑을 것이다.
특히 ‘이상한 포즈’를 잊을 수 없다. ‘이상한 포즈’는 우리가 수련원에 갔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교관님들이 아이들의 위험한 물건이나 사진기를 걷을 무렵, 우리들은 조용하였다. 교관님들은 몇 번이고 “정직하게 내거라”를 반복하셨다. “안 내면 전체 벌칙이다.” 위협적인 말로 부드럽게 이야기하셨다. 교관님이 신이 아니신 이상 500명이 넘는 아이들 중 전자 기기를 내지 않은 아이들을 찾아내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역시 중학생 아이들을 다스리기는 초등학생의 수준을 뛰어넘는 것인가.
결국 한 놈이 걸렸다. 교관 선생님은 역시나, 호되게 혼을 내셨다. “야 내가 정직하게 바로바로 내라고 말 했어 안했어!!!” 아이는 고개만 떨구고 있을 뿐, 아무 말도 안 했다. 어쩌면 그 애는 교관 선생님보다 아이들의 따가운 시선이 더 무서웠을 것이다. 결국 선생님이 “여러분, 제가 기회를 주었습니까, 안 주었습니까?” 아이들은 당연히 “주었습니다” “소리가 길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그걸 알고도 약속을 지켰습니까, 안 지켰습니까?” “안 지켰습니다!” 모두 침을 삼켰다. 과연 어떤 벌을 줄 것인가.
벌칙령이 시작되었다. “전체 반 좌향 좌” 엉거주춤 좌향좌를 하는 아이도 있고 우향 좌를 하는 아이들도 있다. “여러분 반 좌향 좌 모릅니까? 반 좌향 좌!” 결국 아이들은 반 좌향 좌를 시도하였다. “팔을 높이 태극기를 향해서 드세요.” 들었다. “고개를 하늘로 향해!” “허리 굽히고!” 그랬더니 이게 뭔가. 정말 뼈아픈 자세가 아닐 수 없다. 목의 통증에, 등뼈에서 울리는 통증, 무엇보다 자세가 웃겼다. 힘들어하면서도 아이들의 자세를 보면서 웃기만 했다. 몇 분 뒤, 교관이 물었다. “다시 한번 이런 일이 일어나야 겠습니까?” 우리들은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결국, 앉았다. “편히 앉으세요” 에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그 동안은 여자애들이 벌 서는 것을 구경하였다. 역시 재미있었다. 계속 아이들은 내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있긴 있는 듯싶다. 학생들이 자꾸 걸리니까 신뢰가 안 가서인지 교관님들은 계속 “자~ 더 없어? 내가 기회 준다고 했다~”고 한다. 아, 낼 애들은 좀 그냥 내라. 그런데 결국 안 낸 한 학생이 걸려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성별은 ‘남’ 이었다~!!
결국, 다시 벌칙을 받게 되었다.
예상은 모두들 하고 있다. “안 내는 이유가 뭐죠?” “다시 좌향 좌, 두 손 들어, 허리 굽혀, 고개 천장으로 들어!” 아 이런 멍청한 놈 같으니. 자신도 그렇게 당해 보았을 텐데 아직도 내지 않다니 그 놈은 참으로 멍청한 놈이었다. 이제 몸이 좀 풀리려~ 하는데 또다시 이런 불상사를 내다니, 아이들은 전부다 그 아이를 보고 짜증내듯 “아~~ 진짜!”라고 말했다. 하지만 선생님도 사람인지, “너희들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 격려해 주어라”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벌칙은 이걸로 다행히 끝이 났다.
나는 이 글을 쓰며 수련회의 대표적인 추억 중 하나는 ‘벌칙’이라는 것을 느꼈다. 몸저리게 아픈 경험이기는 할 테지만, 그만큼 기억에 남고 기억해 보면 재미있다. ‘추억’ 이란 것은 이런 것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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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교관은 어떻게 생겼는데?
좋다. 다 좋다. 수련회를 다녀온 준석에게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입소할 때의 벌칙이었다. 이 상황을 묘사하는 데 승부를 걸었다. 이 상황의 중요한 등장인물은 교관이다. 교관의 말 한마디에 아이들은 울고 웃었다. 한데 교관은 어떻게 생겼냐? 교관의 생김새와 복장, 특징을 묘사한다면 더 생생하지 않을까? 한마디로 결정적인 ‘인물묘사’가 빠졌다는 말이다.
글을 읽고 난 뒤 준석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교관은 어떻게 생겼냐?” “잘 못 봤어요. 벌 받느라고?” “정말 하나도 안 봤어?” “음, 그건 아니고.” “봤어, 안 봤어?” “멀리서 봐서….” “하나도 안 보여?” “아니 보긴 봤죠.” 알고 보니, 준석은 교관의 인상착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봤으면서도 왜 안 썼을까? 빼먹은 거지 뭐~. 은서에게 했듯, 교관의 인물묘사 역시 10가지로 정리해보았다.
1) 검은색과 빨간색이 어우러진 유니폼을 입었다.
2) 검은 모자를 썼다.
3) 안경을 안 썼다.
4) 나이는 약 45살가량 돼 보였다.
5) 키는 175cm 정도?
6) 뚱뚱하지는 않았다. 호리호리했다.
7) 꾹 다문 입으로 볼 때 엄한 표정이었다.
8) 목소리는 크고, 굵고, 짧았다. 위협적이었다.
9) 아이들이 실수할 때마다 다시 하게 했다.
10) 군인 출신 같다. 학교에서 만나기는 싫다.
이런 내용들이 녹아들어갔어야 했다. 그래야 문장 위에 중딩들이 벌칙 받는 광경이 스크린처럼 흐르지 않겠니? 친구들에 대한 묘사도 부족하다. 체육복을 입었는지, 교복을 입었는지, 사복을 입었는지도 안 나와 있다. 무리가 몇 명이었는지도, 구체적인 반응들도 더 궁금하다. 이건 기본이다.
추리소설을 떠올려본다.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경찰 수사팀을 떠올려본다. 단서를 찾고 실마리를 풀려면 범인의 인상착의가 필수적인 단서다.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옷을 입었는지, 목소리가 어떤지, 행동할 때 습관은 무엇인지 등등. 글로 상황을 묘사할 때 주요 인물들의 인상착의로 실마리를 잡아봐라. 의외로 글이 풀린다. 준석아, 상황묘사하기 전엔 반드시 인물묘사부터!(중학교 수련회에서 체벌이 올바른지에 대해서는 여기서 논외로 한다)
그림에서도 데생이 기본이지~
초·중·고교의 국어나 논술시험엔 “~에 관해 서술하시오”나 “~에 대하여 논술하시오” “~를 설명하시오” “~를 입증하시오”로 끝나는 주관식 문제는 많다. “~의 광경을 묘사하시오”로 끝나는 문제는 못 들어봤다. 논리적인 능력은 강조하지만, 이를 탄탄히 받쳐주기 위한 묘사 능력은 중요히 여기지 않는 느낌이다. 그림 같은 묘사를 거친 사실관계에서 나오는 추론이나 판단이야말로 읽는 이를 끄덕이게 한다. 묘사는 그림으로 치면 데생이나 스케치 능력이다. 데생을 잘해야 나중에 고도의 테크닉을 요하는 추상화나 정물화나 인물화도 잘 그린다.( 묘사가 있다는 것은 결국 ‘이야기’가 있다는 말과 같다. 이야기’에 관해선 다음에 또 한 번 쓸 예정이다)
자, 이제 결론을 내릴 시간이다. 다음 한마디다.
‘뽀샵’은 하더라도…잘 좀 찍어봐라~잉
인간의 눈은 카메라 렌즈와 다름없다. 스틸, 동영상 둘 다다. 카메라는 입에도, 위()에도, 똥꼬에도, 마음에도 쑥쑥 들어가서 활동한다. 중요한 부분을 선택해 초점 분명하게 맞춰서 셔터 흔들리지 않게 잘 찍어라~잉. 카메라로 찍은 듯한, 살아있는 너희들의 글을 보고 싶다. 퇴고 하면서 ‘뽀샵’은 하더라도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