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예스 책꽂이 > 고전, 낯설게 읽기
윗사람을 풍자하여 백성들이 잘사는 세상을 만들자
올바른 정치 위해 시를 모으다
고전이 고민하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지표와 이상의 별이 되고, 인간과 세계를 성찰하는 거울이 되게 하고, 한 편의 예술작품을 올바로 이해하고 감상하는 시금석이 되게 하고, 시와 인간과 자연을 사랑하는 시심(詩心)이 일게 하고, 때로는 어두운 세상을 향하여 촛불을 밝히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게도 하련다.
연재를 시작하며
고전?! ‘인류에게 빛이자 별이어서 누구나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극히 소수를 제하고는)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고전이 아닐까. 이상과 현실 사이의 틈이 크레바스를 넘어 바다 수준이다. 왜? 어렵기 때문이다. 재미없기 때문이다. 올바로 안내해주는 글이 드물기 때문이다. 접근하는 방식이 고리타분하여 고증과 주석에 머물기 때문이다. 오늘 나의 삶과 동떨어져 있거나 현재와 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인을 알았으면 고쳐야지, 암! 그래서 핵심을 잡아 쉽게, 재미있게 쓰며 올바로 안내하련다. 화쟁기호학, 서발턴 이론, 상호텍스트성 이론과 같은 새로운 방법론을 동원하여 고증과 주석을 넘어서서 새롭게, 낯설게, 비판적으로 해석하련다. 고전 그 자체에 담긴 진리에 충실하되, 21세기 오늘에 발을 디디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빛을 줄 수 있는 의미들을 찾으련다.
그래서 고전이 고민하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지표와 이상의 별이 되고, 인간과 세계를 성찰하는 거울이 되게 하고, 한 편의 예술작품을 올바로 이해하고 감상하는 시금석이 되게 하고, 시와 인간과 자연을 사랑하는 시심(詩心)이 일게 하고, 때로는 어두운 세상을 향하여 촛불을 밝히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게도 하련다. 아무리 길이 험하고 길더라도 어두운 하늘에 별이 빛나는 한, 아무리 지치고 고단한 몸이라도 잠깐 쉬어갈 길섶과 잠시나마 기댈 언덕이 있는 한, 그 여정은 의미로 가득하리라.
올바른 정치 위해 시를 모으다
외국인이 우리에게 한국문화와 예술에 자랑할 만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개 한글, 석굴암, 팔만대장경, 국악, 판소리 등을 거론한다. 그러면 E. T.와 같은 외계인이 지구 문명에서 자랑할 만한 것을 묻는다면? 나는 ‘사랑’과 ‘예술’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랑은 그렇다 치고 도대체 예술이 뭐기에?
남아 있는 것 가운데 인류 최초의 예술은 동굴벽화와 암각화다. 그들은 자신이 사냥하였거나 사냥하고픈 동물을 동굴 벽이나 바위에 그리거나 새겼다.
이런 동굴벽화나 암각화를 넘어서 예술이 무엇인지, 어떤 예술이 좋은 예술인지, 예술작품을 어찌 창조하면 좋은지라고 기록한 책, 그리하여 모든 예술을 하는 이들의 별이 된 것은 무엇일까. 서양에선 아리스토텔레스의 포에티카(poetica), 곧 우리가 『시학(詩學)』으로 번역한 책이고, 동양에선 공자의 『시경(詩經)』이다. 시에 관한 정의이지만, 당시에는 시가 예술의 정수라 생각하였고 시론이 소설론과 문학론, 더 나아가 영화이론으로 확장하였기에 여기서 ‘시’를 ‘예술’로 대체해도 좋다.
태초에 말이 있었고 노래가 있었다. 신에게 노래로 소망을 빌기도 하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그 마음을 노래로 풀고 전하였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탄하여, 임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나 의롭지 않은 것에 분노하는 마음을 억누를 길이 없어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사람들을 울고 웃게 하였으며, 때로는 왕과 하늘마저 감동시켰다.
신문과 텔레비전이 없던 옛날에 임금은 어찌 백성들의 여론을 알 수 있었을까. 시와 노래에는 백성들의 마음이 온전히 담겨 있다. 그러니, 천자는 시를 채집하는 관리인 채시관(采詩官)을 두어 백성들이 부르는 시가를 모으도록 하였고[采詩], 그렇지 않으면 관료들이 백성들의 풍속을 관찰한 것을 시로 진술하거나[陳詩], 시를 바치게 하였다[獻詩]. 천자는 이들 노래를 듣고 백성들의 여론을 파악하여 자신이 정치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판단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았다.
주나라 좌구명(左丘明)이 『좌씨전』을 쓰기 위해 춘추시대(春秋時代) 8국의 역사를 나라별로 적은 책인 『국어(國語)』 「주어 상(周語 上)」 편과 반고(班固: A.D. 32~92)가 전한(前漢)의 역사를 편찬한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내를 다스리는 자는 이를 열어서 물길을 열고,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말을 펴서 말길을 연다. 때문에 천자가 다스림에 대해 알고자 하면 공경대부에서 선비에 이르기까지 시를 바치게 하였다.”
“예로부터 시를 모으는 관리가 있어서 임금은 이로 백성들의 풍속을 관찰하고 다스림의 잘하고 못한 득실을 따져 스스로 바로잡았다.”
고대시대에 군주가 할 최고의 일은 황하의 홍수를 다스리는 일이었다. 전설적인 군주인 우(禹, B.C. 2070년경)로부터 내려오는 치수(治水)의 방법은 둑을 쌓는 것이 아니라 물이 흐르는 대로 물길을 터주는 것이었다. 그렇듯 백성들이 임금과 관료들에게 가진 불만과 비판을 막는 것이 아니라 이를 펴서 말길을 열고, 그 방편으로 백성들의 불만과 비판, 혹은 태평성대의 즐거움을 마음껏 노래하게 한다. 그리고는 공경대부에서 선비에 이른 자들은 이를 시로 지어 바친다. 또, 시를 수집하는 관리인 채시관을 두어 시를 모으게 한다. 그러면, 왕은 그 시를 듣고 시에 나타난 백성들의 마음을 읽고 자신이 정치를 잘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그 득실을 따져, 잘못한 것이면 스스로 바로잡았다.
공자가 이렇게 하여 모아진 3,600편의 시가 가운데 305편을 골라 편찬한 노래집이 바로 『시경』이다. 한마디로 말하여, 『시경』은 서주(西周) 초기에서 춘추(春秋) 중기에 이르는 약 500여 년간의 노래를 모아 편찬한, 요새로 치면 ‘애창 가곡 및 대중가요 선집’이다.
지금 우리가 서점에 가서 볼 수 있는 『시경』은 원래 공자가 편찬한 책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한나라 때 『모시(毛詩)』 『노시(魯詩)』 『제시(齊詩)』 『한시(韓詩)』 등 사가(四家)로 부르는 4종의 주석본이 있었다. 다른 주석본은 다 사라지고, 조(趙)나라 사람인 모형(毛亨)과 모장(毛 ), 두 모공(毛公)이 주석한 본만이 남았는데, 그것이 바로 『모시』다. 우리가 지금 『시경』으로 읽고 있는 것은 실은 이것을 가리킨다.
『모시』의 맨 앞머리에 자하(子夏)의 작(作)이라는 「대서(大序)」가 있고, 각 시의 앞머리에는 자하와 모공의 합작이라는 「소서(小序)」가 있다. 「대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견줄 수 있는 시론을 펴고 있고, 「소서」는 일종의 시에 관련된 내용의 간략한 소개 및 비평이다.
백성을 깨우쳐 성정이 바른 세상을 이루다
공자는 『시경』을 편찬한 후, “시 3백 편을 한마디로 포괄하여 말한다면 생각하는 데 삿됨이 없는 것이다”라 하였다.03 공자는 3,000여 편의 시를 모아 305여 편으로 정리하고 보니, 내용도 소재도 다르지만 그들 시에 공통적인 시정신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무사(思無邪)’, 세 글자로 요약한 것이다. ‘생각함에 삿됨이 없는 것[思無邪]’을 풀어서 말하면, 시의 목적이 인간의 성정(性情)을 바르게 하는 데[性情之正] 있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성정을 바르게 할 것인가. 이를 놓고 『논어(論語)』에서 시에 대한 공자의 언급과 『모시』 「대서」 등을 중심으로 동양에서는 2천여 년 동안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다. 보수적인 입장과 진보적인 입장이 있는데, 전자를 상이풍화하(上以風化下)의 교화론(敎化論), 후자를 하이풍자상(下以諷刺上)의 간서론(諫書論)이라 한다.
교화론은 철학에서 플라톤, 미학에선 헤겔과 상통한다. 이들에게 세상이 어두운 것은 백성이 어리석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세상을 밝게 할 것인가. 이미 성정의 바름에 이른 군자들이 어리석은 백성을 잘 가르쳐서 깨우쳐야 한다. 이럴 때 시란 군자들이 어리석은 백성을 교화하는 방편이다. 헤겔이 예술을 정신을 담는 좋은 방편으로 본 것처럼, 이들에게 시는 도(道)를 싣거나[文以載道] 밝히는[文以明道] 방편이다. 기(氣), 현실 세계는 선과 악, 바른 것과 삿된 것,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이 공존하니, 보이지 않는 이(理), 선하고 바르고 아름다운 이치를 글에 담아 드러내고, 인간이 그 글을 접하여 이에 담긴 도(道)를 깨닫고 선에 이르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니, 시란 『모시』 「대서」에서 밝힌 대로, “부부의 도리를 조리 있게 하여 효(孝)와 경(敬)을 이루고, 인륜을 두터이 하고 교화를 아름답게 하여 풍속(風俗)을 좋게 고치는” 수단이었다. 이런 논의를 절대화한 것이 주희(朱熹)의 주석서인 『시집전(詩集傳)』이다.
『시경』 「주송(周頌)」 가운데 〈소자를 불쌍히 여기소서閔予小子〉란 시를 보자.
閔予小子 소자를 불쌍히 여기소서.
遭家不造 집안의 큰일 겪고
遭家在家 의지할 바 없이 괴롭나이다.
于乎皇考 오호 크신 아버님이시여!
永世克孝 영원히 효도를 할 수 있게 해주소서.
굳이 해석할 것도 없다. 불효자들은 이 시를 읽고 효를 하겠다는 마음을 가져 영세무궁 효를 행하라는 것이다. 아래 시조를 보자. 어버이 살으신 때 섬길 일이란 다 하여라
지나간 後면 애닯다 어찌 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정철의 <훈민가(訓民歌)> 중 한 수다. 이것도 깊이 해석할 것도 없이 “돌아가신 후 후회하지 말고 어버이가 살아계실 때 효도를 다하라”고 강권하고 있다. 위의 『시경』의 시가 시적화자 스스로 효를 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훀다면, 정철의 시조는 저 높은 곳에서 백성들을 내려다보며 효를 행하라고 권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시조 4,500여 수 가운데 절반이 넘는 것이 이와 궤를 같이한다.
공자는 “제자들아, 너희는 왜 시를 공부하지 않느냐? 시는 성정쟀 바른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사물을 통찰하게 하고 어울리게 하고 바르지 못함을 원망하게 하며, 가까이로는 어버이를 섬기고 멀리로는 임금을 섬기게 하며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을 잘 알게 한다”라고 시의 효용에 대해 말하였다.
위와 같은 시를 읽으면 우리들은 부모님께 살아계실 때 효를 다하여야 한다는 마음이 일어난다. 국화를 ‘선비의 지절(志節)’로 노래한 시조나 ‘실존’으로 노래한〈국화 옆에서〉란 시를 감상하면서 국화란 사물의 본질을 통찰한다. 시를 읽으면 사물과 내가 가까워지고, 사랑하는 마음, 그리워하는 마음, 약하고 두들겨 맞고 사라지는 것들에 연민을 갖게 되니, 사물과 사람과 어울리게 된다. 시를 짓고 감상하면서 불효자나 간신, 탐관오리를 미워하게 된다. 그러니 시는 가까이로는 어버이를 섬기며 효를 다하게 하고, 멀리로는 임금을 섬기며 충을 다하게 한다. 아울러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을 잘 알게 된다.
교화론의 입장에 선 이들이 충효 이데올로기만 강조한 것은 아니다. 서양인들은 중국의 시를 대하고 놀랐다. 남녀가 7세가 넘으면 같은 자리에도 앉지 못하게 할 만큼 강력한 유교 이데올로기를 강요한 한나라 시대에도 남녀 사이에 노골적으로 사랑을 읊은 시가 너무도 많이 발견되는 것이다. 이 괴리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 또한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 한마디로 유교에서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은 지조와 정절을 가진 사람이다. 군자의 충과 여인의 정절은 서로 통한다. 또 여인이 그토록 오매불망 그리며 사랑하는 임은 언제든 임금님으로 바꾸어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에 여인이 임을 절절하게 그리는 노래를 충과 동일시하였고, 그 노래의 ‘임’을 ‘임금님’으로 해석하며 음미하였다.
采采券耳 도꼬마리 캐고 또 캐어도
不盈頃筐 바구니에도 차지 않네.
嗟我懷人 아, 아! 임 그리워
嗟彼周行 바구니조차 길에 놓치네.
陟彼崔嵬 저 높은 산에 오르려 하나
我馬崔嵬 말이 뱀에 물려 주저앉으니
我姑酌彼金嵬 에라! 저 금술잔에 술을 부어
維以不永懷 임 생각을 잊어나볼까.
陟彼高岡 저 높은 산마루에 오르려 하나
我馬玄黃 검은 말이 누렇게 되었으니
我姑酌彼玄黃 에라 쇠뿔잔에 술이나 따라
維以不永傷 이내 시름 잊어나 볼까.
陟彼玄矣 저 돌산에 오르려 하나
我馬玄矣 내 말이 병이 들고
我僕玄矣 마부까지 앓아누웠으니
云何玄矣 아, 아! 어찌하면 좋으랴.
위의 작품은 『시경』 「주남(周南)」 중 〈도꼬마리[券耳]〉다. 한 평범한 여인이 임을 간절히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다. 한 여인이 봄날을 맞아 나물 캐러 나왔다. 열매는 약으로, 잎은 나물로 먹는 도꼬마리 풀을 뜯지만, 임 생각이 간절하여 뜯다 말고 멀리 바라보며 한숨을 짓고, 나물을 캐러 도꼬마리 풀에 손을 기울이지만 임이 몹시 그리워 먼 산만 바라본다. 그러니 하루 종일 캔들 바구니가 어찌 채워지겠는가. 돌아오는 길에 멍하니 임 생각을 하는 통에 반쯤만 채운 바구니조차 길에서 놓친다.
그리워만 할 것이 아니라 임 찾아가고자 행동으로 나서서 말을 타고 높은 산을 넘어 임 계신 곳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말이 달리다 뱀에 물려 주저앉으니, 제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어 술에 의지하여 잊으려 한다.
또 그리고 그리다가 말을 타고 달리니 검은 말이 누렇게 되도록 기진하였다. 그새 금잔으로 술을 먹던 가세는 기울었다. 허기진 그리움에 나물도 캐지 못하는 여인네가 과연 무엇을 하여 가산을 챙기겠는가. 금잔 대신 쇠뿔잔에 술을 마시며 잊으려 한다. 다시 또 세월이 흘러 돌산을 넘어가려 하지만 말은 병들고 마부마저 앓아누웠다. 생략되었지만 가세는 더욱 기울어 아마 술 한잔 먹을 형편도 되지 않았을 듯하다. 그러니 여인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제 임께 달려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시경의 시 가운데서도 임을 그리는 마음과 그에 따른 형편을 참 절절하게 묘사한 시다. 평범한 여인이 임을 그리는 이 노래를 두고 주희는 “주나라 문왕(文王)이 조회를 가거나 정벌을 나갔을 때, 혹은 감옥에 유배되었을 때 문왕의 아내 후비(后妃)가 문왕을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라고 하였다. 여인의 그리움을 임금에 대한 충으로 대체한 것이다.
윗사람을 풍자하여 백성들이 잘사는 세상을 만들자
하이풍자상의 간서론(諫書論)은 교화론과 대립되는 시론을 전개한다. 이들이 볼 때 세상이 어두운 까닭은 위에 있는 위정자들이 올바로 다스리지 못하였거나 부조리하고 부패하여 백성들을 지나치게 착취하고 억압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상을 바르게 하는 방법은 하늘의 마음을 닮은 백성들이 부조리와 부패를 일삼는 윗사람들을 풍자하고 비판하여 견제하는 것이다. 『시경』의 언급을 보자.
왕도(王道)가 쇠멸함에 이르러, 예절과 의리는 없어지고 다스림과 가르침은 사라졌으니, 나라마다 다스림이 다르고 집마다 풍속이 다르다. 이에 변풍(變風)과 변아(變雅)를 짓는구나. 국사는 득실의 자취를 밝히고 인륜이 사라졌음을 슬퍼하고 가혹한 형벌로 다스림을 애달파하여 성정(性情)을 읊어 윗사람의 잘못을 풍자하고 세상이 변하였음을 널리 알리니, 이는 옛 풍속을 그리워함이다. 때문에 변풍(變風)이 정(情)에서 일어나 예절과 의리에 머문다. 정에서 일어남은 백성의 본성이고 예절과 의리에 머묾은 선왕의 은택이다.
|
관련태그: 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