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초대로 이병우씨 공연을 우연치 않게 보게 되었다. 참 좋았다. 오랜만에 찾은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은 기억 속의 그것보다 훨씬 깔끔해져 있었다. 이적이나 유희열 같은 가수들이 출연한 2부 보다는, 아무래도 영화 음악 위주로 짜여진 1부 공연이 훨씬 귀에 감겼다. 단순히 음악으로만 진행된 공연이 아니라, 그 사운드트랙이 흘러나왔던 영화의 장면이 어울리면서 공감각을 자극하는 멋진 무대가 되었다. 다시 한번, 좋았다.
영화 <마더>의 메인 테마 중 하나인 “춤”이라는 곡이 흘러나왔을 때다. 나른해 보이는 춤사위가 화면을 가득히 채웠다. 김혜자라는 대배우가 보여주는 그 퍼포먼스를 보면서 ‘아… 더 늙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라는 막을 수 없는 굴레가 그녀를 지금 세상에서 앗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도, 누구도 보여주지 못한 멋진 연기였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들었던 멍한 감정이 다시금 가슴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참을 수 없는 안타까움 혹은 말로 형언 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온 몸을 흐물흐물 녹였다. 그 안타까움은 내 손에서 느껴지는 나이 때문이었다. 나도 모르게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버린 현실이 못내 쓸쓸했다. 나도 모르게 이렇게나 세월의 흐름에 몸을 맡겨야 했다는 사실을 인식해 버렸다. 누구나 똑같이 평등하게 소모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이, 모든 것을 더 소중하게 느껴지게 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나와 내 안의 추억들이 절절한 느낌으로 스며들었다.
<렛미인>의 개봉을 앞두고, 왜 사람들이 그렇게 뱀파이어라는 존재에 열광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뱀파이어의 가장 큰 힘은 ‘영원한 생명’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변치 않는 젊음 역시 그들의 특권이다. 그들에게 ‘시간’은 더 이상 족쇄가 아니다. 늘 같은 일상일 뿐이다. 다만 그들에게는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아픔이 있긴 할 것이다. 변하지는 않는 나. 그러나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 외로울 지도 모르겠다.
<렛미인>은 기본적으로 외로움의 정서를 지니고 있다. 200년 동안 12살 나이로 살아야 했던 소녀. 그 곁에서 그를 지키는 남자와 그녀를 사랑하게 된 소년.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 외로움과 고독의 정서를 가득 안고 있다. 그렇기에 영화 속에 펼쳐지는 설원의 차가운 냉기가 그들의 감정과 어우러져 아플 정도로 차게 느껴지는 지도 모른다. 소녀가 눈 위를 맨발로 걸어 다니며 ‘추위를 별로 타지 않는 체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추위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고독도 견딜 만큼 거칠어져 버렸다는 뜻이 아닐까.
소년은 외톨이다. 곱상한 외모에 내성적인 성격이다. 가족은 붕괴했다. 부모님은 이혼을 준비 중이다. 아예 같이 살지도 않는다. 영화 속에서 두 어른은 얼굴 조차 보여지지 않는다. 목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리고 스쳐간다. 학교에서는 어떻게든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누군가 소년을 괴롭힌다. 폭력을 행사한다. 눈물을 흘리고, 오줌을 싸게 만든다. 이유는 없이 놀림을 당한다. 소년은 외롭다. 소년이 즐기는 유일한 낙은 엄마 지갑에서 몰래 돈을 꺼내와 사 먹는 사탕뿐이다. 밤이 되면 비로소 놀이터에 모습을 드러낸다. 아파트에 살면서도 이웃과 인사조차 주고 받지 못한다. 소년이 고작 할 수 있는 것은 몰래 망원경으로 훔쳐보는 일밖에 없다.
소녀가 왔다. 눈이 쌓인 놀이터를 맨발로 걸어 들어온다. 소녀에게는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함께 하고 있다. 소녀의 눈매는 지쳐 보인다. 눈 밑에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그 소녀가 소년의 옆집으로 이사 왔다. 소녀와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싸우는 목소리가 들린다. 벽을 치고 소리를 지른다. 소녀에게서는 이상한 냄새가 난다. 그리고 지저분해 보인다. 배고파 보인다. 소년이 가장 좋아하는 사탕을 먹지도 못한다. 소녀는 소년에게 친구가 될 수 없음을 처음부터 선언한다. 그리고 소녀는 자신이 소녀가 아니라고 한다.
남자는 소녀를 지키고 있다. 그녀를 위해 피를 구한다. 살인을 한다. 그리고는 자기를 희생한다. 그녀는 그의 모든 것이다. 옆집 남자 아이와 소녀가 함께 웃는 것을 질투한다. 그리고 자신의 역할에 한계가 도래 했음을 직감한다. 남자는 지쳤다. 그럼에도 소녀를 떠나지 못한다. 마음 깊이 소녀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녀가 남자를 어떻게 생각하든, 남자에게는 소녀뿐이다.
<렛미인>은 <클로버필드>로 재능을 인정받은 매트 리브스 감독의 첫 번째 뱀파이어 프로젝트다. 그리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했다. 앞서 말했듯이 뱀파이어가 그 소재다. 그러나 다른 뱀파이어 물과는 다르다. 이 이야기는 사랑인지 우정인지.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닌지 모른다.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정서다. 영화를 보고 나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무한함과 유한함의 충돌을 말한다. 남자와 여자를 말한다. 외로움을 말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 것 관객들로 하여금 참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게 한다.
모든 것은 유한하다. 소녀는 자신의 불멸로 인해 외로움을 극복해야 한다. 그녀가 처한 형벌이다. 그리고 소년은 소녀의 무한함으로 인해 생긴 허전함을 채워줘야 한다. 대신 소녀는 소년을 지켜줄 것이다. 서로는 의존한다. 그리고 그러한 의존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협의 같은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어쩔 수 없이 소년이 늙어 죽는 순간 끝이 날 것이다. 소녀는 그래서 소년을 더 소중하게 대할 것이라고 믿고 싶다. 사람들이 ‘유한하기 때문’에 더 아끼고 사랑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야기는 처음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