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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사이로막가’ 씨의 총알 피하기

슈팅 게임의 문제설정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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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하기와 관련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임은 아마 <타이거 헬리>가 아닐까 싶다. 이 게임은 도무지 타협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헬리콥터를 운전하는 느낌을 충실하게 전하려고 노력한 점은 인정한다.

피하는 놈 ─ 생존의 문제

‘비사이로막가’ 씨의 총알 피하기

슈팅 게임에서 슈팅의 영역은 대부분 FPS나 리듬 게임으로 넘어갔다. 리듬 게임은 모든 일련의 피하는 동작이 배제된(조종간이 없다!) 그야말로 맞추기만 하는 슈팅 게임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개념의 슈팅 게임은 이미 피하기 게임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80년대 ‘유머 1번지’가 유행하던 시절의 유머 모음집에는 이런 퀴즈가 곧잘 실렸다.

‘문: 세상에서 가장 마른 사람은?’ ‘답: 비사이로막가’

우리가 ‘비사이로막가’ 씨처럼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피할 수 없는 이유는 우선 우리의 몸집이 비 사이의 간격보다 크기 때문이고, 비가 내리는 속도보다 우리의 움직임이 느리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를 극복할 수 있다면, 누구나 ‘비 사이로 막갈’수 있으리라.

이 회피의 법칙은 슈팅 게임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슈팅 게임에서 난이도를 높이는 방법은 탄을 피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탄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는 대체로 둘 중 하나다. 탄이 너무 많거나 탄이 너무 빠르거나. 거기에 아군의 덩치가 크고 속도까지 느리다면 더욱 절망적이다. 따라서 유저가 어려운 난이도로 인해 흥미를 잃지 않도록 대부분의 게임은 적절한 타협점을 찾게 마련이다.

탄이 많은 게임은 아군의 몸집이 작은 편이다. 혹 덩치가 크더라도 실제 격추되는 피탄 지점은 매우 작다. 케이브의 슈팅 게임들이 대체로 이런 패턴을 고수한다. 탄이 빠른 경우에는 아군에게도 그에 못지않게 꽤나 빠른 움직임을 제공한다.

사이쿄의 슈팅 게임은 탄의 양보다 탄의 속도와 조준의 정확도에 초점을 맞춘다. 당연히 두 게임의 생존법은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에 따라 게임의 재미 역시 달라진다. 가끔은 피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탄이 피할 수 없는 속도로 날아오는 경우도 있다. 이때 플레이어는 절망에 빠지며, 공포를 느낀다. 슈팅 게임 마니아들은 대체로 이 공포를 극복한 뒤에 오는 희열을 알고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리듬 게임 <비트매니아>의 컨트롤러. 버튼으로 맞추기만 하면 된다.

피하기와 관련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임은 아마 <타이거 헬리>가 아닐까 싶다. 이 게임은 도무지 타협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헬리콥터를 운전하는 느낌을 충실하게 전하려고 노력한 점은 인정한다. 다만 그 묘사력이 너무 지나쳐서 ‘헬리콥터는 느리기 때문에 적의 탄을 잘 피할 수 없다’는 것까지 표현하려고 했다. 지금이야 그 재현의 꼼꼼함에 박수를 보내지만 동전 한 푼이 아쉬운 당시 어린이들에게 <타이거 헬리>는 정말 큰맘 먹고 해야 할 게임이었다. 아니면 적의 탄을 예상해서 피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든지 말이다.

야구공처럼 동그란 적탄은 박찬호 선수의 메이저리그 전성기 시절의 직구 속도를 뺨칠 정도다. 그런데 플레이어의 헬리콥터는 이대호 선수의 발만큼이나 느리다. 게다가 적들의 공격은 일정한 패턴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정확히 아군을 향해 조준 사격을 한다. 탱크의 포대가 모두 아군을 향해 일제히 움직이는 모습이 압권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 미리 예측하고 피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격추되어버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화면 끝까지 날아가는 적탄과는 달리 아군의 탄은 고작 화면의 반도 날아가지 않는다. 그렇다. 이 게임도 <건스모크>처럼 거리의 제약이 있는 게임이다. <건스모크>는 장화 아이템으로 아군의 속도를 높일 수 있었지만 이 게임은 ‘스피드업’ 아이템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가뜩이나 피하기도 어려운 몸을 이끌고 최대한 적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맙소사.

위험할 때는 폭탄을 쓰면 되지 않냐고 누군가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아쉽게도 이 폭탄은 곧바로 터지지 않기 때문에 생존이 100% 보장되지는 않는다. 다른 아이템도 도움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아이템 색깔에 따라 좌우에 서포터를 해주는 미니 헬리콥터를 붙일 수 있는데 흰색은 전방으로 탄을 발사하고, 붉은색은 측면으로 탄을 발사한다.

탄의 범위는 다소 넓어지지만 문제는 그만큼 아군의 덩치가 비약적으로 커진다는 것. 안 그래도 동작이 굼뜬데 좌우로 식구가 늘어나면서 더욱 피하기가 어려워진다. 심지어 서포터 유닛을 살리려다가 플레이어가 격추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서포터 메카는 어지간한 컨트롤이 아닌 이상 금세 사라져버리기 일쑤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하지만, 기본적인 회피는 보장해야 맞추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슈팅이라는 장르가 아닐까? 아무튼 곱씹을수록 플레이어의 동전을 강탈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디자인이다. 비단 <타이거 헬리>만의 일은 아니다. 그 많은 적을 혼자 상대한다는 설정 자체가 이미 위험천만한 일이니까. 이 ‘피할 수 없는’ 문제는 어쩌면 근대적 ‘슈팅 게임’이 낳은 원죄일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생각 좀 하고 쏘자

<타이거 헬리>

앞서 모든 게임에 슈팅의 요소가 녹아 있다고 얘기한 바 있다. <슈퍼마리오>도 예외는 아니다. 마리오가 꽃 아이템을 얻어서 파이어볼을 던지게 되면 게임 진행이 더욱 쉬워진다. 원래 마리오는 모든 적을 직접 밟아서 무찔러야 한다. 자신이 없다면 그냥 피해가도 그만이다. 하지만 꽃을 얻는 순간 마리오는 매개물을 사용하는 도구적 인간으로 돌변한다. 재미있는 것은 마리오의 변화에 따라 그것을 플레이하는 게이머의 성향도 함께 변한다는 것이다.

점프의 거리와 낙하지점을 계산해 매사에 조심조심 힘겹게 적을 물리치던 마리오는 이제 파이어볼을 마구 남발하면서 그야말로 적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게 된다. 비록 게임이지만 여기서도 도구적 이성의 폭력성은 여실하게 드러난다.

<슈퍼마리오>에서는 그나마 파이어볼을 얻기 전의 평범한 마리오로 돌아갈 여지가 남아 있다. 허나 일반적인 슈팅 게임에서는 처음부터 무제한의 탄환을 지니고 시작하기 때문에 ‘학살’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정형화되는 게임 디자인은 게이머의 반성적 사유를 어렵게 만든다. 게임은 현실의 반영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게임이 다시 현실에 반영되고 있다.

게임을 흉내낸 모방범죄 같은 얘기가 아니라, 우리의 사고방식과 일상이 게임적인 요소들을 점점 흡수하고 있다는 얘기다. 현실을 마치 온라인 게임처럼 생각하는 ‘타블로 온라인’이나 ‘천안함 온라인’ 같은 현상들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수많은 형태의 슈팅 게임에 필요한 것은 ‘잘’ 쏘는 것이 아니라, ‘왜’ 쏘아야 하고 ‘어떻게’ 쏘아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이다. 슈팅 게임에는 ‘쏘는 놈’ ‘맞는 놈’, 그리고 ‘피하는 놈’이 모두 필요하다. 하나라도 없으면 게임의 밸런스는 무너진다. 문득 나는 현실에서 어떤 ‘놈’이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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