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팅’이라는 놈
앱스토어에서 얼마 전 < Angry Honey >라는 게임을 받았다. 성난 부인이 던지는 접시, 냄비 등을 주인공 남편이 박자에 맞춰 튕겨내는 일종의 리듬 게임이다. 게임에서 묘사된 것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부싸움의 본질은 집 안에 있는 물건을 ‘던지는 것’인가보다. 이 물건 던지기의 기원을 거슬러올라가면 아마 우리는 사냥감에 돌도끼를 던지는 구석기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인류 최초로 사냥감에 짱돌을 던진 원시인의 투구폼을 잠시 생각해본다. 만약 맞추지 못하면 사냥감은 멀리 도망치거나 혹은 미친 듯이 던진 사람을 향해 달려들 것이다. 끼니를 굶거나 물어뜯기거나 그 어느 쪽도 미래는 없다. 그러니 어찌 떨리지 않았겠는가? 생존을 위해 힘껏 목표물을 조준해야 했던 그의 숙연한 마음이 느껴진다.
올림픽의 창던지기나 양궁 등의 종목에는 그러한 구석기인의 고뇌가 아주 조금은 남아 있는 것 같다. 팽팽한 활시위를 놓기 직전의 미묘한 침묵 같은 형태로 말이다. ‘슈팅 게임’이라는 장르도 결국 기원을 거슬러올라가면 ‘던져서 맞추는’ 인류의 오랜 생존 스킬이 전자적 형태로 계승된 것이리라. 총탄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오늘날 슈팅 게임에서 앞서 말한 구석기인의 고뇌를 느끼기는 어렵다. 이른바 탄환을 바구니에 가득 담아서 화면에 쏟아붓는다는 ‘케이브’표 슈팅 게임들을 보면 특히 그렇다. 대개 이런 게임들은 적들 못지않게 아군도 총탄을 화면 가득 남발한다. 열심히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적들이 알아서 맞아주는 수준이다. 맞추는 행위보다 피하는 행위에 더 초점이 맞춰진 것 같아서 ‘슈팅’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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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브의 대표작 <도돈파치> 시리즈 | |
알다시피 최초의 컴퓨터 게임은 슈팅 장르에서 시작되었다. 그보다 오래된 핀볼 게임 역시 스프링을 사용해 쇠구슬을 쏘아서 점수판을 맞추는 놀이였고, 또 그 이전의 다트 게임도 방법만 다를 뿐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맞추는’ 놀이였다. 그러고 보면 ‘슈팅’은 컴퓨터 게임의 하위 장르라기보다는 인류의 놀이문화 전체를 대표하는 장르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컴퓨터 기술과 결합되면서 슈팅 게임은 한동안 맞추는 것보다 피하는 것에 더 치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슈팅 게임이 처음 등장했던 시절에는 조준 사격의 숭고함, 즉 공포와 긴장감으로 눈앞의 표적에 삶의 모든 것을 거는 원시의 아우라가 담겨 있었다.
쏘는 놈─ 주체, 분리되다슈팅 게임의 원형<스페이스 워>에는 니들과 웨지라는 두 대의 우주선이 등장해 상대방을 먼저 격추해야만 하는 비극적 상황을 연출한다. 이 게임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결을 다룬다. 때문에 모든 조건을 공정하게 설정해야 했고, 덕분에 두 대의 우주선은 완벽한 대칭관계를 이루었다. 니들과 웨지는 겉모습이 다를 뿐 기능적으로 완벽하게 동일한 존재다(물론 플레이어의 능력 차이는 존재한다). 편의상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이미지를 ‘주체’, 주체를 제외한 조작할 수 없는 이미지를 ‘객체’라고 가정해보자. 흔히 슈팅 게임에는 하나의 주체에 수많은 객체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스페이스 워>에서는 주체와 객체가 질적으로, 그리고 양적으로 동일한 존재였다. 플레이어는 바둑의 흑돌과 백돌처럼 늘 자신과 동일한 대상을 마주하고 있다. 그것은 없애야 할 적이지만 한편으로 자기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상대방의 행위를 통해서 끊임없이 자신의 행위를 재구축하게 된다.
어린아이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비슷한 방식으로 <스페이스 워>의 플레이어는 어느 순간 스스로 주체이면서 객체가 된다. 주체와 객체의 공격하는 행위와 회피하는 행위는 하나의 공간에서 끝없이 중첩된다. 이 뫼비우스의 띠가 결국 슈팅 게임의 원형이며, 이후 모든 슈팅 게임은 이 매듭 위에서 하나둘 이륙하게 된다. 비록 서로를 격추시켜야만 했으나 <스페이스 워>는 동등한 두 개체가 하나의 우주에서 조화를 이뤄가는 세계였다. 그곳은 주체와 객체가 아직 완벽하게 분리되지 않은, 근대 이전의 공간이었다.
객체들의 물량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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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워> |
<스페이스 인베이더> | |
주체와 객체의 균형이 무너지고, 급기야 분리되기 시작한 것은 <스페이스 인베이더> 같은 게임이 등장하면서부터다. 대결의 상대가 사람이 아닌 컴퓨터로 바뀌면서 1:1의 정당한 대결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컴퓨터의 인공지능이 아무리 좋아진다고 해도 동일한 조건에서 인간의 사고 능력과 컨트롤 능력을 당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컴퓨터(혹은 디자이너)는 자신의 실력 차이를 소위 ‘물량’으로 극복하려고 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에서는 수많은 침략자들이 플레이어를 공격한다. 이런 물량공세를 위해 마련된 ‘외계인의 지구 침공’이라는 이야기 구조는 얼마나 절묘한 설정인가! 영문도 모른 채 플레이어들은 외계인의 물량공세를 즐겁게 막아내야만 했다. 이제 주체와 객체는 더 이상 동일한 존재가 아니다. 수많은 객체들은 홀로 외롭게 지구를 지키는 플레이어를 하이에나처럼 무리지어 공격해온다. 그들은 플레이어와 다른 체계를 살아가는 ‘타자’들이다. 실제로 70년대 냉전체제의 미국과 소련처럼 지구인과 외계인은 하나의 세계에서 공존할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였다.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분위기까지 완벽했던 시절, 인베이더란 그저 없애버려야 할 적이었다. 동일자가 서로 조화와 균형, 그리고 질서를 이루던 코스모스는 사라졌다. 그리고 ‘나’ 이외의 적은 모두 없애버려야 하는 규칙이 혜성처럼 게임의 우주를 떠돌기 시작했다.
조준 사격의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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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그> | |
주체와 객체가 처음으로 분리될 무렵, 플레이어는 그 옛날의 구석기인처럼 최선을 다해 목표물을 조준해야 했다. 아군의 탄환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사용하던 조총처럼 장전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대체로 탄이 적에게 맞거나 화면에서 사라질 때까지 다음 탄을 쏠 수 없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한 번에 쏠 수 있는 탄은 점점 늘어났다. <스페이스 인베이더>에서 한 발씩 허용되던 ‘슈팅’은 <갤러그>에 이르러서 두 발씩 허용되었다. ‘전자오락’이라는 단어에서 무의식중에 ‘뿅뿅’이라는 의성어를 떠올리는 이유는 아마도 <갤러그>의 영향 때문일 거다. <갤러그>는 80년대를 대표하는 황지우 시인의 작품에도 등장할 정도로 당시 대중적인 오락이었으니 말이다(황지우 시인은 <갤러그>의 전자음을 “숑숑”이라고 묘사했다). 아군의 미사일이 두 발씩 나가는 소리가 은연중 우리의 청각에 각인된 것은 아닐까? 심지어 <갤러그>는 게임이 종료되면 ‘명중률’을 성적표처럼 보여주는 친절함까지 갖췄다. 이 성적표는 당시 슈팅 게임이 얼마나 ‘정확하게 맞추는 것’을 중시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허나 기술은 사람들의 예측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다음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준 사격은 자취를 감추고 수많은 탄환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 변화의 출발점에 <엑스리온>이라는 게임이 있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내 기억에서는 그렇다.
학살이 시작되다<엑스리온>의 기본 구성은 <스페이스 인베이더>나 <갤러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쨌든 정체불명의 외계생명체들이 적으로 등장하고, 하여튼 플레이어는 전투기를 타고 그들을 물리쳐야 하는데, 좌우간 이 게임은 그전의 슈팅 게임과는 몇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일단은 배경화면. 여전히 우주공간이었지만 화면 하단에 혹성의 표면과 혹성 위를 떠다니는 구름이 묘사잵었다. 이것들이 스크롤되면서 마치 미지의 혹성 위를 비행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아군의 움직임도 남달랐다. <엑스리온>의 전투기는 좌우로 수평운동만 하던 기존의 비행체들과는 달리 화면 전체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게다가 현실의 물리법칙을 적용하여 방향전환 시 비행기의 움직임이 무거워지는 등 기존 게임과는 다른 느낌을 전달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변화는 ‘기관총’이?는 새로운 무기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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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리온> |
<이카루가> | |
1883년 발명가 하이럼 맥심(Hiram Stevens Maxim)이 개발한 최초의 현대적 기관총은 총탄의 반동을 이용하여 완전자동사격을 가능케 하였고, 분당 500발 정도를 발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기관총은 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살인방법을 고민했던 도구적 이성의 정점을 보여준다. 게임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그런 현실의 무기들을 하나씩 모방했던 것이다. 난이도를 고려해 탄 수에 제한을 두기는 했지만 자극적인 소리와 함께 일렬종대로 발사되는 <엑스리온>의 기관총은 ‘학살’의 느낌을 재현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이제 주체는 다수의 객체를 압도할 수 있는 비이성적 도구를 손에 넣었다. 바야흐로 슈팅 게임의 근대가 도래한 것이다.
주체와 객체의 새로운 정립오랜 시간 동안 슈팅 게임은 정형화된 틀을 고수했다. 물론 슈팅 게임의 근대를 탈주하고자 했던 게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 게임 중에서 디자인을 통해 주체와 객체와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 게임이 트레져의 <이카루가>다. 이 게임의 모든 개체들은 흑색과 백색으로 구분된다. 아군도 적군도……. 플레이어는 버튼으로 자신의 기체 색깔을 흑색 혹은 백색으로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사실 변신 자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탄의 방향이 달라지거나 파워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변신의 의미는 오직 적과의 관계 속에서, 상대적으로 발생한다. 흑색의 상태에서는 흑색의 탄을 흡수할 수 있고 백색 적을 상대로 월등한 파워를 보인다. 반대의 경우도 같은 룰이 적용된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상황에 따라 자신의 색깔을 바꿔가면서 대처해야 한다. 도저히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도 이런 상성관계를 활용하면 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 쏟아지는 탄은 많지만 주체의 상태에 따라 객체들을 흡수해 상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즉, 이 게임은 무조건 상대를 쓰러뜨려야 하는 근대적 규칙에서 벗어나 있다.
대신 주변 환경에 적응하면서 주체와 객체의 관계를 상황에 맞게 끊임없이 재정립해야만 한다. 조금 전까지 나를 도와주던 존재는 색깔이 바뀌는 순간, 흉기로 돌변할 수 있다. 주체는 주변의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거기서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카루가>는 탈근대적 슈팅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주체와 객체는 이분법으로 대립되어 있다. 하지만 그 대립을 이만큼이나 세련되게 다듬고 재해석한 게임도 흔치 않다.
<스페이스 워>에서 시작된 주체와 객체 대립은 <스페이스 인베이더>에서 완전히 분리되었고, 총탄 경쟁의 근대적 슈팅 게임을 거쳐 <이카루가>에서 새로운 대립구도를 만들어냈다. 완벽한 적이라는 개념은 몇 발의 총성과 함께 해체되었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쏘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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