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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에게 귀 기울이기. 그리고, 소통의 시작

작가 김혜나 인터뷰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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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만 보던 김혜나 작가님을 드디어 만났다! 작품을 읽고 나서 그녀를 궁금해하지 않을 독자가 있을까? 우리도 그 독자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녀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인터뷰 일자: 2010년 7월 23일
참석자: 김혜나 강진 박예슬 이주연
원고 작성자: 강진 박예슬 이주연
(안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 소설 A파트)


사진으로만 보던 김혜나 작가님을 드디어 만났다! 작품을 읽고 나서 그녀를 궁금해하지 않을 독자가 있을까? 우리도 그 독자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녀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그녀의 학창시절, 소설의 배경 등 우리의 머릿속은 물음표투성이였다. 우리가 먼저 떠올렸던 그녀의 이미지는 바로 ‘노는 언니’였다. 하지만 이게 웬걸, 실물로 뵈니 책 앞부분에 쪼끄맣게 상상했던 모습은 없고 하얗고 가녀리기만 했다.

우리와 같은 청소년 독자들이 보기엔 다소 선정적이고 충격적이었던 내용을 이렇게 가녀린 ‘언니’가 썼다니. 예쁜 얼굴만큼 우리를 배려하는 마음까지 예뻐서 또 한 번 반했다. 우리는 서로 첫인사를 나눈 뒤 홍대 근처의 카페에 둘러앉았다. 곧 음료를 시키고 다들 목을 축였다. 왠지 건조했던 분위기가 조금 완화된 것 같았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곧 어색한 흐름을 깨고 옆집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듯 인터뷰를 시작했다.

실물로 뵈니 더 예쁘신데요.(작가님이 부끄러운 듯 손사래 치며 웃으셨다!) 첫 질문은 작가님께 가장 여쭤보고 싶은 질문이었어요! 어쩌면 뻔한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불쾌할 수도 있는 소재이던데, 어떻게 『제리』(민음사, 2010)라는 소설을 쓰게 됐나요?

『제리』는 사실 소설 내부적으로도 뚜렷한 메시지나 희망은 들어 있지 않아요.^^ 초고를 썼을 때 어떤 의도나 의식이 있기보다는 감각에 의지해 썼거든요. 스무 살 시절 꿈 없이 지냈던 때, 하고 싶은 것도 없이 매일같이 술을 마시면서 내 눈에 비친 세계들, 방황의 잔상들, 어두운 모습들 그런 것들을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도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제리』에서 화자가 사회 속 루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연이 참 궁금했는데, 그런 사연을 넣기보단 뭔가 루저로서 살아가는 삶만을 보여준 데에는 이유가 있나요?

기본적으로 소설이라는 게 무언가를 설명하기보다는요, 보여주어야 되지 않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보여주기를 중심으로 하고 싶었어요. 꾸미거나 만들어내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최대한 건조하게 썼어요. 알레고리나 판타지 같은 어떤 소설적 기법들을 사용하기보다는 담담하게 써내려갔어요. 그러다보니 소설이 다소 건조해지고, 화자가 살아가는 삶만을 보여주기 중심으로 쓴 것 같아요.

작품 중간중간에 과격한 성애나 자학적인 피어싱, 과도한 음주 등 다소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는 소재들을 사용하셨는데…… 이것들로 나타내고 싶으셨던 게 뭔지 궁금해요!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존재감이 없다고 생각해요. 존재감이 없기 때문에 꿈이 없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음, 그렇기 때문에 이 인물들은 내 존재가 무엇인지 또 삶은 무엇인지 잘 몰라요. 하지만 사람들은 이들을 무조건 제도권 안으로 넣기 위해서 애를 쓰죠. 그렇게 천천히 무의식적으로 나 자신의 존재도 모르는 허무한 존재가 되어가는 거예요. 자기 안에 들어가서 자기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할 기회가 없는 거죠……. 나도 나를 돌아보고 생각해보는 시간이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내 존재가 무엇인지 꿈이 무엇인지 모르던 상태였고요. 그런 상태에서 내게 진정한 꿈이 있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제도권 안에 들어가서 잘 적응하는 학생도 있지만, 보통은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기보다는 해야 하기 때문에 대학을 가고 그러잖아요.^^ 그렇게 존재감을 상실한 상태에서는 무언가를 꿈꾸는 게 불가능한 것 같아요. 소설 속 아이들이 무언가를 꿈꾸기 전에 자기 자신을 좀 돌아보고 그럴 수 있었다면, 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거죠.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그야말로 존재감을 가지지 못한 존재잖아요. 껍데기만 남은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죠. 이들이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 즉각적 반응이 오는 술, 피어싱, 섹스였어요. 이런 행위들을 함으로써 자신의 공허함을 채워나가고 있는 거예요. 외롭지 않기 위해서…….

방황하던 시기에 작가님이 가장 후회했던 일 하나만 말해주세요.

사실 스무 살의 나날들이 후회가 되진 않았어요. 그땐 매일매일 아침까지 술을 마셨어요. 오후에 일어나고, 또 술 마시러 가고, 노래방 가고, 다시 아침까지 술을 마시고. 정말 젊음을 방탕하게 소비하면서 살았어요. 그때는 이런 삶 외에 다른 삶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게 최선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으니까요. 최선을 다해서 방황했었기 때문에 후회가 남진 않더라구요.^^ 방황의 끝 안에 완전히 들어가봤기 때문에……. 그러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던 게, 또래 작가들이 신춘문예 등으로 등단하는 거 보면 중학교 때부터 글을 쓴 작가들도 있고 어려서부터 글을 쓴 분들도 있는데. 부러운 거예요, 정말. 어린 마음에. 나는 왜 어릴 때부터 착실히 하지 못했나, 어려서부터 글을 썼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삶을 그냥 소비했을까. 나도 어려서부터 했으면 더 일찍 등단할 수 있었을까, 후회가 되더라고요. 하지만 다시 돌이켜보면 그때가 있었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었고, 방황의 시간이 결국엔 지금의 나에게 문학적 자산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각자 저마다의 길이 있기 때문에 방황의 시간들을 후회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성에 관련된 자유로운 시선이 부족하잖아요~ 그런데 『제리』와 같은 소설을 당당하게 발표할 수 있었던 용기의 계기나 작가로서의 자부심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런 장면에서는 감정이 완전히 결여된 채 썼어요. 그래서 소설 자체가 건조하게 보여지죠. 소설 안에서도 주인공의 섹스는 무의식적인 것이라 쓰면서도 성이란 생각도 들지 않았구요. 아무런 감정 없이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허망함을 채우기 위해 하는 것이었죠. 감정이 없었기 때문에 무척 사실적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노골적인 장면도 쉽게 묘사되었구요. 때문에 이런 소설을 발표하면서 부담이 되었다거나 부끄러움이 들진 않았던 것 같아요. ^^


아, 그럼 개인적인 질문 하나 들어갈게요! 요가 강사로 활동하고 계신데, 어떻게 요가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술과 불규칙한 생활로 몸이 거의 회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 매일매일 아팠어요. 나중엔 위궤양까지 오더라구요. 살도 너무 빠지고. 햇빛도 못 볼 정도였어요. 그래서인지 우울증도 함께 오더라고요. 어딜 나가지 못하니까 집에서 할 수 있는 걸 찾게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요가를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요가가 나에게 잘 맞았고, 아픈 몸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죠. 요가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기도 해서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에요!

아~ 그러면 요가를 가르치는 데 특별한 자격증이 필요한가요? 네, 그럼요. 강사 생활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이 있어요. 대부분 6개월 내에 따는 편인 것 같아요. 솔직히 강사라는 직업이 나에게 잘 맞진 않는 것 같아요. 누구를 가르친다는 게. 그렇지만 요가가 너무 좋아서 하고 있어요.^^ 내 나름대로 부업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요가가 소설에 집중할 수 있게 도움을 많이 주는 것 같아요. 오전 수업이다보니깐 특별히 방해받는 것도 없구요.

제가 요가를 한 달 정도 배운 적이 있는데 요가를 할 때 몸이 뻣뻣해서 한계에 다다를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오래 못하고 그만두었거든요. 그럴 땐 어떻게 해야 되는지. ㅠㅠ

당연히 힘들죠~^^ 특히 몸이 많이 힘들고. 그럴 땐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되는 거예요. 억지로 무리해서 더 하려고 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만큼만. 요가는 내 몸에 맞게 하는 거예요. 요가에는 초급반 중급반 그런 것이 없잖아요. 모두가 같이 하는데, 요가는 기준이 나 자신에게 있는 거예요. 내 몸이 늘어나는 데까지만 하는 거예요. 조금씩, 조금씩 호흡을 하면서 늘려나가는 거죠. 그러다보면 어느새 내가 그 동작을 완성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완성이 되거든요. 내가 요가를 하면서 많이 도움을 받았던 건 안 되는 건 없다는 거예요. 말도 안 되는 동작들이나…… 예를 들어 다리를 막 꼬고 그런 동작들이 있는데, 처음에는 잘하는 사람들과 비교도 되고 답답하죠. 나는 왜 안 되나 그러는데 정말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되는 것 같아요. 아 노력하면 되는구나, 언젠가는 되는구나, 굳이 욕심내지 않고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되는구나, 이런 걸 배우게 됐죠.

낮에는 요가 강사로 일하고, 밤에는 주로 글을 쓴다고 하셨는데요! 이제 ‘오늘의 작가상’이라는 큰 상까지 타시고, 많이 바빠지셨죠? 하하. 계속 두 가지 일을 병행하실 생각인가요?

네. 글쓰기와 병행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기 때문에 계속 해나갈 생각이에요.

수험생인 저희에게 추천해주실 만한 요가 동작이 있나요?

책상에 앉아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음……^^ 무엇을 말해드려야 할까요? 우선, 양손을 활짝 펴고 손가락을 각각 움직여주는 게 가장 간단하죠. 손바닥을 위로 해서 꼬물꼬물, 이렇게. 뇌에 좋은 자극을 줘서 머리가 맑아질 거예요. 공부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기본적인 스트레칭을 틈틈이 하는 것도 좋구요. 모두들 아는 나무자세도 많은 도움이 돼요. 이곳에서 일어서서 보여드릴 순 없네요. ^^

소설 속 주인공이 다니는 학교가 인천 주안역 근처더라고요. 혹시 주안에 사신 적이 있나요?

아니요. 나는 목동에 살구요, 어릴 적 부평 쪽에서 산 적은 있어요. 어릴 때 친구들은 아직도 인천에 살고 있어서 지금도 종종 놀러 가곤 해요.

작품 중 가족의 비중이 적긴 하지만 저는 왜인지 이 부분에 눈이 갔어요. 혹시, 화자의 방황은 가족의 무관심이 초래한 결과인가요? 소설 속 가족의 역할이 궁금해요.

나는 사회적 제도에 잘 적응하지 못했어요. 왜 내가 남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머리를 하고 공부를 해야 되는지. 왜 선생님의 말에 일일이 따라야 하는지. 가족도 하나의 사회구조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런데 난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하는 것이 싫었어요. 자의식이 강했던 거죠. 적응을 못하는 거예요. 가정이나 학교와 같은 사회적 제도로부터 늘 도망치고 싶었죠. 가족의 무관심으로 인해 방황이 초래됐다기보다는, 자꾸 도망만 치다보니 모든 관계들이 다 단절돼버렸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제도권으로부터 단절된 내 모습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서 소설 속 가족과의 관계도 매끄럽지 못하게 그려진 것 같아요.



저희와 같은 청소년 독자들이라든지 수많은 독자들이 작가님의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는지 묻고 싶습니다.

사실 청소년 독자들이 있을 거란 생각을 못했어요.^^ 어쩌다가 읽게 될 순 있어도 딱히 찾아서 읽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죠. 나는 딱 스무 살부터 『제리』를 읽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엔 청소년 독자들이 의외로 많아서 조금 꺼려지기도 했어요. 그런데 청소년 방송이나 그런 쪽에서 내 책이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라고 말씀해주셔서……. 그래궼 당당하게 보여드리게 됐어요. 요즘 성교육도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나 때는 무조건 학생 땐 성관계를 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지금은 올바른 성관계를 해야 한다, 라고 하더라고요. 내 책을 읽고 무분별하게 섹스를 하는 사회의 실상을 발견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걸 찾은 내 삶의 단면이 청소년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해요. 20대 초에 방황했던 내 삶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었던, ‘나’에 집중할 수 있었던 요가를 찾았다거나, 소설에 대퇇 욕심이 생긴 것처럼 청소년들도 그랬으면 해요. 무분별한 섹스, 그런 삶들을 읽어가면서 결국에는 청소년들이 방황이나 일탈의 삶 속에서 ‘나’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나’를 좀 돌아보고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해요. ‘나’ 자신만의 삶을 살 수 있었으면 해요.

저는 소설을 읽다가 제리를 찾아오는 아줌마라는 인물에 애착이 갔어요. 그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기도 했고요. 혹시 아줌마라는 인물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줌마라는 인물도 아픈 인물로 그려지잖아요. 위로를 받기 위해선 돈을 들고 찾아가야 하는 비참한 현실의 실상에 놓여 있죠. 난 어디서도 위로받지 못하는, 상처받은 사람들의 비참한 실상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리 또한 돈을 받고 사람들을 위로하지만, 자신 또한 그것으로 위로받잖아요. 돈으로밖에 살 수 없는 사람들이죠.

그러면 왜, 배우들도 자기가 맡았던 역할에 굉장히 애착을 느끼고 또 거기에서 못 벗어나오는 경우도 많잖아요. 혹시 작가님도 소설 속 인물 중 실제로 영향을 많이 받았던 인물이 있나요?

글을 쓰는 동안에는 아무래도 ‘제리’에게 애착이 많이 갔어요. 제리를 통해 주인공에게 변화가 일어나니까요. 그래서 나 또한 주인공과 같이 제리만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다 쓰고 나니까, ‘강’이라는 인물에게 더 많은 감정이 느껴지더라고요.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놓았는데…… 강 또한 저마다의 좌절과 방황을 겪으며 성장하는 인물이죠. 더 좋게 그려주지 못해서 많이 미안했어요.

아, 하나 더! 주인공이 수조 속으로 들어가면서 소설이 끝나던데 어떤 의도로 그리셨는지 굉장히 궁금했어요.

나는 뚜렷한 결말을 싫어하는 편이에요. 삶에는 끝이란 게 없고, 모든 게 돌고 도니까. 열린 결말, 다양한 이미지를 끌어낼 수 있는 결말을 꿈꾸었기 때문에 수조의 뿌연 이미지처럼 결말도 뿌옇게 나타내고 싶었어요. 뿌옇게 흐려지는 결말. 명확한 결말을 나타내기보다는 뚜렷하지 않게. 많은 분들이 결말에 대해 궁금증을 가져주시더라구요. 나는 이런 것 같다 하면서 모두 다르게 해석하시는데, 정말 다 달라요. 주인공의 죽음을 나타내는 거라는 분도 있었고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거라는 분도 있었고요. 내 생각에는 결말을 향한 다양한 해석들이 모두 맞다고 생각해요. 어떤 분들은 소설에 희망이 없다, 희망적인 것이 나타나지 않았다, 끝까지 절망으로 끝났다고 하시는데, 의도적으로 결말에 희망은 쓰지 않았어요. 소설 속에서 절망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이 소설 외부에서 자기 자신만의 희망을 만들어가고 찾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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