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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같은 전설의 초콜릿

담백한 스페인 초콜릿 해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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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의 초콜릿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지금의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음료. 카카오 콩을 발표시켜 빻은 것을 물에 넣어 우려냈기에 카카오 콩기름이 둥둥 떠 있는 쓴 음료였을 것이다. 다양한 향신료를 첨가해 먹었는데 멕시코 고추를 넣은 빨간 초콜릿, 꽃을 섞어 만든 분홍색과 오렌지색 초콜릿, 심지어 틀라케찰리(Tlaquetzalli)라는 청록색 초콜릿도 있었다니 지금 생각해도 아찔할 뿐이다.

원시적인 스페인 초콜릿의 유혹

보통 ‘초콜릿’ 하면 프랑스나 스위스를 떠올리지만 사실 스페인이야말로 유럽 초콜릿의 개척자라 부를 만하다. 초콜릿을 만드는 카카오는 아즈텍을 정복한 스페인 사람들의 배에 실려 16세기 말 스페인에 도착했고, 한참 후에야 서서히 유럽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다.

카카오는 유럽에 소개되기 훨씬 이전부터 중앙아메리카에서 귀한 음식이었다. 이미 기원전 1500년 전부터 올메크 족(마야 문명의 모체)이 카카오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고, 마야 문명과 아즈텍 문명에서도 특별하게 여겨졌다. 특히 아즈텍 문명에서 카카오 열매는 사람의 심장을, 그 음료는 피를 의미하였기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도 했던 종교 제의에서 빠지지 않았다.

이때의 초콜릿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지금의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음료. 카카오 콩을 발표시켜 빻은 것을 물에 넣어 우려냈기에 카카오 콩기름이 둥둥 떠 있는 쓴 음료였을 것이다. 다양한 향신료를 첨가해 먹었는데 멕시코 고추를 넣은 빨간 초콜릿, 꽃을 섞어 만든 분홍색과 오렌지색 초콜릿, 심지어 틀라케찰리(Tlaquetzalli)라는 청록색 초콜릿도 있었다니 지금 생각해도 아찔할 뿐이다. 그뿐만 아니라 옥수수를 이용해 초콜릿 죽을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이는 스페인 국민 음료, 초콜라테와 비슷한 점이 많다).

가장 원시적인 카카오의 손길이 닿았던 것이라 그럴까? 혀를 향수에 담근 것 같은 초콜릿 음료, 투박한 죽 같은 초콜릿에 당혹스러웠는데, 이미 500년 전 아즈텍족이 먹던 방법과 닮은 구석이 있다니 묘한 기분이다. 그때라면 나 같은 평민은 상상도 못했을 카카오. 아, 한 번의 기회는 있었겠다. 종교 제의에 제물로 선택되어 죽음을 앞두었을 때. 평민이 이 신의 음료를 먹을 수 있는 기회는 그때뿐이었으리라.

스페인 초콜릿은 감미롭지만은 않다. 프랑스의 고급 초콜릿이 입에서 녹아 버리는 보석 같다면, 스페인의 초콜릿은 원시의 비밀 제의를 엿보는 듯 텁텁한 기운이 감돈다. 낯설지만 거칠게 빠져든다.


어떠한 초콜릿은 한 그릇의 해장국이 된다

전설의 초콜라테리아, 산 히네스(Chocolateria San Gines). 영업시간을 알아보니 저녁 7시부터 아침 7시까지로 되어 있었다. 술집도 아니고, 잘못된 정보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건 스페인을, 마드리드를 너무 몰랐을 때의 이야기다.

플라멩코 공연이 밤늦게 끝나고 숙소가 있는 솔 광장(서울의 명동쯤 되는)에 한밤중에 도착했다. 다들 조심하라는 스페인. 덜덜 떨면서 택시에서 내렸는데 눈이 부시다. 순간 밤낮이 뒤바뀐 줄 알았다. 낮보다 더 휘황찬란한 골목. 주말 명동보다 더한 인파가 새벽 1시가 넘는 시간에 그곳을 점령하고 있었다. 산 히네스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한 곳이었던 것이다. 밤새도록 노는 사람들의 마지막 종착지.

시골 읍내 다방처럼 초라하다. 주메뉴는 추로스와 초콜라테. 주문을 하기 무섭게 식탁에 오른 추로스. 요플레처럼 진하고, 자장면보다 시꺼먼 초콜라테에 추로스를 푹 담갔다.

‘이건 초콜릿 죽인데……. 무슨 사골국에 초콜릿을 풀었나? 쓴맛이 감도는데 왠지 찌개처럼 들큼한 맛이네.’

그리고 일주일 후 세비야에서의 일요일 아침 8시. 도시가 고요히 잠들어 있는 시간, 사거리의 제법 큰 노점상에 긴 줄이 늘어서 있다. 바로 추로스와 초콜라테를 사기 위한 줄. 우리네 시장에서 도넛 튀기듯이 가마솥만 한 그릇에 타이어만 한 추로스를 튀기고 있다. 소라처럼 돌돌 말려 있는 추로스는 줄 선 사람 순서대로 착착 잘려 종이봉투에 담긴다.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날이잖아. 언제 또 이걸 먹겠어.’

왠지 모를 무언가에 이끌려 한 봉지를 사 들고 뜨뜻한 초콜릿에 찍어 먹는다. 참 이상하지. 그러고 나서 간간이 생각이 난다. 일 년 후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자마자 향한 곳, 초콜라테리아. 쎽에스타로 문 닫은 가게 앞을 지켜 서 있다가 셔터가 오르자마자 서둘러 들어갔다. 꽤나 그리웠던 초콜라테와 추로스. 넉넉한 잔에 넘칠 만큼 가득 담긴 시커먼 초콜라테에 바삭한 추로스를 푹 담가 먹고, 남은 것은 숟가락으로 싹싹 긁어 먹는다. 들큼하다 못해 해장국처럼 시원?다. 녹진함은 전분을 넣었기 때문이라지만 의외의 담백함은 소금 때문일까. 튀긴 밀가루와 전분 넣은 시커먼 초콜릿. 그 마약 같은 중독성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어떠한 초콜릿은 역사가 된다

1873년 문을 열어 5대째 내려온 밀크 바 그란하 비아데르(Granja Viader). 갓 짠 우유를 가져다 파는 곳이다. 칠은 말끔히 새로 했지만 닳디닳은 타일 바닥은 숨길 수 없다. 여기서 1913년에 개발했다는 역사 속의 초콜릿 음료 카카올라트(Cacaolat)를 주문해 본다.

<플랜더스의 개>에서 주인공 네로가 배달하는 바로 그 유리병이 테이블에 놓인다. 나이 지긋한 종업원이 병따개를 꺼내더니 무뚝뚝하게 병뚜껑을 따 준다. 어렸을 적 먹었던 마일로 같은 친숙한 맛. 이래 봬도 스페인 최초의 영양 음료였다. 우리의 박카스 같은 것이었을까? 그때엔 함부로 못 사 먹는 고급 음료였을 테지만 이제는 촌스러운 디자인의 그저 그런 초콜릿 음료. 대량 생산이 된다니 꼭 이곳이 아니라도 먹을 수 있지만 그래도 이곳 사람들이 여기서 먹는 그 맛은 특별하지 않을까? 할아버지의, 아버지의 추억이 배어 있는 곳일 테니.

초콜라테리아 산 히네스 Chocolateria San Gines
주소 Pasadizo de San Gines, Madrid
전화 91 365 6546
오픈 19:00~07:00
교통 Sol 역에서 도보 5분

그란하 비아데르 Granja Viader
주소 C/Xucl 4-6, Barcelona
전화 93 318 3486
오픈 월요일 17:00~20:30, 화~토요일 09:00~13:30, 17:00~20:30
휴무 8월 둘째 주
교통 Liceu역에서 도보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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