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기는 사람의 목소리라는 말이 있죠? 화려한 사운드의 경합보다도 진정한 감동을 주는 건 바로 ‘노래’로 승부하는 정공법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아름다운 선율까지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리듬 앤 블루스의 대중적 인기를 몰고 온 보이즈 투 멘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아카펠라로 이루어진 「It's so hard to say goodbye to yesterday」와 「In the still of the nite」의 성공은 세계적으로 이 아카펠라의 유행을 확산시키기도 했죠. 「End of the road」가 수록된 보이즈 투 멘의 데뷔앨범 < Cooleyhighharmony >입니다.
보이즈 투 멘(Boyz II Men) < Cooleyhighharmony > (1993)
보이즈 투 멘(Boyz Ⅱ Men)은 랩의 폭발 속에서 흑인음악이 결코 하나의 장르가 독점하지 않는다는 것을 세계 음악계에 고했다. 그들의 음악은 랩 이전의 주도적 블랙 뮤직인 리듬 앤 블루스 이른바 R&B였다. 랩은 개화와 동시에 전통의 힘 이를테면 R&B의 흡수력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쨌든 랩에 리듬 앤 블루스는 흑인 ‘형제의 음악’이었다.
랩을 포괄하는 힙합 문화는 잠시 후 힙합 음악을 통해 두 음악의 동거를 일궈낸다. 그러나 이 때만 해도 R&B는 랩에 대한 ‘스타일의 반발’로 일반의 주목을 받았다. 흑인 하층민 음악으로서 랩은 80년대 백인 지배사회에 항거하는 흑인 거리의식의 발로이긴 했지만 빠른 템포와 지껄이는 대사를 표면화에 쉽게 백인이 아니 흑인 기성세대도 좋아하기는 어려운 음악이었다. 10년의 세월을 포효한 랩의 천하는 이 때문에 염증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런 시점에 보이즈 투 멘이 나타났다. 그들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선율 중심의 R&B를 들고 나와 조용한 음악에 주린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하는 적시타를 날렸다. 그것은 전면적 리듬 앤 블루스의 중흥으로 이어졌다.
그들의 「막다른 길」(End of the road)은 바로 뒤의 휘트니 휴스턴의 「항상 당신을 사랑하리」(I will always love you)애 의해 깨지긴 했지만 당시 빌보드 싱글 차트 13주를 1위를 지키는 전무한 흥행을 창출했다. 그들의 데뷔 앨범인 <쿨리하이하모니>도 92년부터 이듬해 팝계를 천하 통일했다. 지금까지 900만 장을 상회한 판매 실적은 랩의 폭풍 M.C. 해머 앨범에 맞먹을 정도로 막대했다.
이러한 성과는 정통 리듬 앤 블루스 가수라고 하기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마이클 잭슨, 프린스, 재닛 잭슨 등을 제외한다면 R&B 가수의 음반 가운데에선 최고에 해당한다. 이 앨범은 국내에서도 5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보이즈 투 멘은 이 앨범을 통해 자신들이 리듬 앤 블루스와 소울의 자손들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 음악의 메카라 할 전통의 모타운 레코드사에서 음반을 낸 것부터가 그렇다(이때 사장이 베리 고디는 아니었지만). 수록된 곡 「모타운필리」(Motownphilly)에서 그들은 자신들을 곡목에 표현되었듯이 ‘모타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음악은 더욱이 전면적인 ‘모타운 소울’을 추종하는 것이었다. 「엔드 오브 더 로드」나 역시 싱글로 나와 모두 2위까지 오른 「어제를 잊는 것은 너무 어려워」(It's so hard to say goodbye to yesterday)와 「밤의 고요 속에서」(In the still of the night) 그리고 「우아」(Uhh ahh) 등은 과거 60·70년대를 수놓은 소울의 향이 가득했다.
그중 압권은 무반주 합창 이른바 아카펠라(a-cappella)인 「어제를 잊는 것은 너무 어려워」와 「밤의 고요 속에서」였다. 모든 악기음을 배제하고 인간의 소리가 갖는 순수성을 극대화한 아카펠라는 이 곡들에 의해 전 세계적 유행으로 확산되었다. 그것은 대중음악계의 복고 붐과 맞물리면서 위력이 증폭되었다.
사람들은 ‘소년에서 성인으로’ 가는 어린 친구들이 어쩌면 그리도 깊고 진하며 완벽한 보컬 화음을 구사할 수 있는지 경이로울 뿐이었다. 그들은 평단 언론 그리고 대중들 누구한테나 ‘천상의 하모니‘라는 찬사를 들었다. 또한 그것은 팝에서 모처럼 들어본 보컬 하모니였다. 보이즈 투 멘은 그간 끊겼던 흑컀 보컬 하모니를 부활시켜 60년대 모타운의 전설들인 템테이션스(Temptations)나 포 탑스(Four Tops)의 보컬 전통이 90년대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입증했다.
물론 그들이 랩을 못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최신의 랩과 전통의 R&B를 섞어 펑키한 맛을 구현한 뉴 잭 스윙(New jack swing)을 시도했다. ‘모타운필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 새로운 스타일은 이후 힙합의 주요 양식으로 발전했다. 힙합이 ‘신구의 결합’이 낳은 새로운 산물임을 가리킨다.
‘모타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어/ 약간은 이스트 코스트 스윙을 하면서 말이야/ 보이즈 투 멘이 나갑니다/ 너무 세지 않게 너무 부드럽지도 않게’
94년 보이즈 투 멘은 다음 앨범 <Ⅱ>로 다시 한번 대성공을 확대 재현한다. 이 앨범에서는 「당신을 사랑할 거야」(I'll make love to you)와 「무릎을 꿇고」(On bended knee)가 차트 정상을 차지했으며 「물이 마르더라도」(Waters run dry)가 2위에 오르는 등 전보다 더 위력적이었으며 앨범 판매고도 증가해 지금까지 미국에서만 1200만 장이 팔려나갔다. 이러한 대기염에 어떤 설문 조사에서는 그들이 ‘90년대의 비틀스‘로 선정되는 결과도 나왔다.
국내에서도 95년부터 R&B 선풍이 일었다. 누가 더 진하게 더 흑인답게 노래하느냐가 가창력을 따지고 대중적 인기를 가름하는 척도가 될 정도였다. 보이즈 투 멘의 영향력은 비단 미국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가수들을 휘감았다.
글 / 임진모(jjinmoo@iz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