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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제삿상에 트랜스포머를”

“로봇을 아껴 손자에게 물려주고, 손자가 자신의 제삿상에 변신로봇을 올려놓길 바란다”는 깜찍한 발상을 로봇과 함께 전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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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쓰기’에 관한 입체적 생각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움 살려야 좋지만 고지식할 필요는 없다네


“지금 바로 써라.”
저급 유머를 구사해보았다. 누군가 나에게 “우리글을 바로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그렇게 대답하겠다. 지금 바로, 그러니까 ‘당장’ 쓰라는 이야기다. 실전을 자주 체험해야 ‘바로 쓰기’(옳게 쓰기)에 필요한 구체적인 팁들이 무엇인지 자신의 감각에 담을 수 있다.

‘그녀’의 ‘입장’은 ‘진검승부’다

오늘은 ‘바로쓰기’에 관하여 몇 마디 하련다. 내 기억으로는, 1980~90년대엔 우리글의 오염도가 페놀을 방류한 낙동강 수준이었다. 지금도 외래어가 차고 넘치는 현실이지만, 어설픈 번역어투의 글은 그때 가장 창궐했다고 본다. 난독증을 부르는 외국 소설과 사회과학서적들이 많았다. 문맥이 뒤엉킨 영어식 만연체나 일본어투를 여과 없이 가져온 부자연스러운 문장들이 지식인의 언어인양 잘난 척을 하던 시대였다. 그 암울한(!) 때에 나온 보석 같은 책이 고 이오덕 선생(1925~2003)의 『우리글 바로쓰기』(1989)다.

‘개안’(開眼)이라는 표현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글 바로쓰기』는 어린 시절 글쓰기에 관해 큰 깨우침을 주었다. 그 뒤부터 솔직하지 않은 글짓기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되도록 입말을 옮겨야겠다고, 어색한 한자어는 멀리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분별하게 사용해온 외래어들도 돌아보았다. 그 영향 탓인지 지금도 ‘~에 있어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매한’ ‘다름아니다’ 따위의 표현들은 쓰지 않는다. 주변의 문화센터 교열강좌에서 강의하는 내용을 봐도 대개 이러한 이오덕 선생의 문제의식에 깊게 뿌리를 두고 있다.

그분에게 ‘땡깡’을 부려본다. “선생님은 100% 다 옳습니까?” 그렇지는 않으리라. 세상에 절대적 권위란 없다. 개인적으로는, 다음 세 가지에 관해서 이오덕 선생의 주장에 강력히 반(反)한다. 첫째는 ‘그녀’고 둘째는 ‘입장’이며 셋째는 ‘진검승부’다. 셋 다 일본말이거나 일본 역사와 관련됐다. ‘그녀’는 가노조(彼女)를 그대로 옮긴 말이라고 한다. 그냥 ‘그’가 옳다고 하는데, 일본에서 왔건 아프리카에서 왔건 ‘그녀’가 더 좋다. ‘그녀’가 드러내는 여성스럽고 섬세한 느낌을 사랑한다. 일상생활에서 나오는 입말은 아니지만, 책에서 볼 땐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입장’ 역시 ‘다찌바’(立場)에서 왔다. ‘처지’ ‘태도’ ‘생각’ ‘선 자리’로 바꾸라는데 난감하다. ‘입장’은 그냥 ‘입장’이다. 이보다 더 뜻이 분명하게 함축된 단어가 없다. 김건모의 노래 「핑계」 가사를 이렇게 바꾼다고 생각하니 마음까지 아프다… “처지 바꿔 생각을 해봐~ 니가 지금 나라면 넌 웃을 수 있니~” ‘진검승부’는 일본 사무라이 일대일 대결의 역사가 스며있다. 그럼 로마제국시대 콜로세움의 검투사 승부라면 괜찮은가. ‘전투적 용어’라는 비판이 있지만 ‘진검승부’만이 주는 비유의 힘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일본말·한자·영어도 훌륭한 문화유산

이오덕 선생이 제시한 우리글 바로쓰기의 철학과 지침은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유효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의 책을 읽고 글쓰기의 중심을 잡았으면 좋겠다. 다만 이제는 외국말에 대한 똘레랑스도 추가로 갖추었으면 좋겠다. 한자어로 뒤범벅된 글을 쓰면 읽기 흉하지만 한자어의 압축성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면 날렵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다. 우리말의 한계를 보완해주는 일본말이라면 적극적으로 빌려 써도 된다. 그게 사대주의는 아니다. 우리말이 아름다운 것처럼 일본말도, 한자어도, 영어도 다 훌륭한 문화유산이다.

***

헉, 벌써 노후생활을 걱정해?

설교할 생각은 없다.
불현듯 서울 신촌 로터리 한가운데 서 있는 바위의 글자가 생각났다. 이와 똑같은 바위는 전국 각지에 있다. 내가 사는 경기도 고양시의 자유로 입구에도 이 글자를 새긴 바위가 폼을 잡고 서 있다. 그 내용은 다름 아닌 “바르게 살자.”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라는 단체의 작품이라고 한다. 밤에 몰래 이 바위에 접근해 ‘살’자를 ‘쓰’자로 살짝 고쳐놓는 상상을 한다. “바르게 살자”만큼 “바르게 쓰자”도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 말이다. 전국의 그 바위들이 몽땅 ‘바르게 쓰자’로 바뀐다면, 우리글을 아무렇게나 쓰는 무지몽매한 대중들의 글쓰기 태도가 조금이라도 바뀔까?

아무튼 설교할 생각은 없다. 아이들에게 ‘우리글 바로쓰기’가 뭔지 아냐고 물었다. 중딩 준석과 초딩 은서의 대답이 똑같다. “맞춤법에 맞춰 쓰기, 인터넷 저속어 안 쓰기.” 음, 무분별한 외래어 쓰지 않기라고 답하는 아이는 없다. 꼬마들이 적당한 때에 이오덕 선생의 여러 책들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앞에서 아빠가 밝혔듯, 반드시 따라야 할 내용은 섭취하고 시대가 바뀜에 따라 다양한 반론이 생길 만한 의견들은 잘 가려 소화하면서 말이다.
오늘의 글 주제는 자유롭게 주었다. 지켜야 할 원칙도 만들지 않았다. 너희들 맘대로다. 은서는 요즘 새로 생긴 어떤 말투에 관해 썼다.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나는 하고 싶은 말을 할 때마다 혼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이 말을 꼭 붙인다.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이런 말 하면 혼날 걸 알지만” “이 말 듣고 화내지마”
“‘이런 말 하면 엄마가 실망하는 걸 알지만” 이 말들을 쓰면 엄마에게 혼나지 않는다. “엄마, 오늘은 수요일, 과자 먹는 날이니까 과자 하나 좀 사먹게 돈 좀 줘라.”
이렇게 말하면 엄마는 어쩔 때는 “그래, 자 여기 돈. 먹고 싶은 과자 하나 사 먹으렴.”
하면서 돈을 줄 때도 있지만. 또 어쩔 때는 “너 요즘 과자를 너무 많이 먹는 것 같다.
과자는 일주일에 한 번이야. 그리고 저번에 친구 생일 파티로 치킨, 피자 먹지 않았니? 엄마가 돈이 아까워서 안 사 주는게 아니라, 너 건강 생각하는 거잖아. 알겠지? 엄마가 다음 주 토요일에 사 줄게.” 라고 충고를 한다. 또 “엄마, 나 내일 자전거 사는 일이 너~무 기대되~” 라고 말하면.
엄마는 “은서야. 엄마 좀 조르지 마”라고 한다.
나는 그냥 자전거 사는 게 기대된다고 했을 뿐인데… 엄마는 그것을 내가 조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말들을 붙이면 엄마에게 혼이 나지 않는다. “엄마… 나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과 “엄마, 이 말 듣고 절~대로 화내면 안돼!” 등등의 말들이다.

난 이제 드디어 엄마가 싫어하는 말을 해도 안 혼날 방법을 알게 되었다. 움하하하! 하지만, 어린이 독자분들. 제 글을 읽고서 자신의 엄마에게 이 방법을 시도하지 마라. 시도해서 오히려 봉변을 당하면, 그것은 내 탓이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오빠에게는 이 말들이 안 통한다. 오빠의 지우개를 빌릴려고, “오빠, 이 말을 해서 혼날 거라는 건 아는데, 나… 지우개 좀 빌리면 안 될까?” “야! 혼날 줄 알면 빌리지를 마! 나 지금 공부하니까, 나가!!!!” 힝… 이렇게 화만 돌려 받는다. 오빠가 이렇게 화만 내는 이유는, 오빠 성격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밖에서는 착하다고 소문이 나있다. (아닌데. ㅋㅋㅋㅋㅋ) 친구에게는 이런 말들을 안 쓴다. 아니, 쓸 필요가 없다. 친구들은 편안해서, 물건이나 식품을 살 돈이 부족할 때도 맘대로 빌려도 된다.

예의와 배려냐, 저자세냐

오늘의 열쇳말 중 하나가 ‘바로 쓰기’인 만큼 기본적인 맞춤법에 관해서 지적을 하고자 한다. 은서는 ‘어쩔 때는’이라는 말이 습관이다. “어쩔 때는”은 없다. “어떨 때는”이 맞다. “기대되~”라는 표현도 틀렸다. “기대돼~”다. ‘돼’는 ‘되어’의 준말이다. ‘돼’로 해야 할지 ‘되’로 해야 할지 헷갈릴 때는 ‘되어’로 발음해보면 된다. ‘되어’로 발음하는 게 어색하면 ‘되’가 맞고, 그렇지 않으면 ‘돼’다. ‘기대되어’가 어색하지 않으니 ‘기대돼’가 맞다. 이건 마치 수학공식 같다. 마지막으로는 ‘빌릴려고’다. 쯧쯧 ‘빌리려고’라고 해야지. ‘빌리려고’의 기본형이 뭐니? ‘빌리다’잖아. 갑자기 문법 강의하는 모양새가 됐다. 이건 좀 남우세스럽다… 내용에 관해서 이야기하자.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은서는 ‘눈치’라는 걸 본격적으로 익히기 시작했다. 말을 어떻게 해야 상대방에게 스스럼없이 먹힐 지 이해하기 시작한 셈이다. 은서의 그 말투는 어른들도 많이 사용한다. 아빠가 얼마 전 읽은 어느 외국작가의 소설에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 “친구로서 한마디 해도 될까? 화내지 않는다고 약속해.” “약속할게.” 말의 눈치이자 예의다. 어쩌면 사과의 선불이다. 오빠인 준석도 시도 때도 없이 말한다. “이런 말하기에는 좀 염치가 없지만…” “이런 말을 하면 아빠의 기분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이해는 한다. 부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어린 자식의 처지에서 계면쩍은 마음을 적절하게 표현해야 할 필요가 생기니 말이다. 근데 좀 자제해 주지 않을래? 너네들은 지나치게 잦아. 정말 아빠도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말머리마다 그런 말로 눙치면 비굴해 보인다. 앞으로 ‘저자세’가 몸에 밸 까봐 두렵다. 잘 사용하면 예의와 배려를 갖춘 세련된 장신구가 되지만, 잘못 쓰면 스스로를 모욕하는 족쇄가 된다. 쓰지 마라. 아예 그런 말 쓸 상황을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말하기 좀 그렇거들랑…하지 마!!

똑같은 사례는 아니지만, 이런 경우도 있다.(조금 우스개소리다) 사회생활 하면서 겪은 이야기다. 혼례를 치르거나 집안의 상을 당한 분들이 잠시 휴가를 다녀온 뒤 회사로 복귀하여 전체 사원들에게 감사의 이메일을 보낼 때가 있다. 보통 이런 글로 운을 떼더라.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일일이 인사를 여쭙는 게 도리인지 아오나….” 의례적인 메일을 읽다가 한번은 엉뚱한 생각이 피어올랐다. “그게 도리인 줄 알면 일일이 인사를 하던가…아님 최소한 일일이 따로 감사의 이메일을 쓰던가.” 준석 은서야, 아빠의 직업병이자 신경과민이란다. 아빠는 참 삐딱하다.

다음은 준석의 글이다. 중학교에 입학한 뒤부터 ‘로봇 마니아’가 됐다. ‘로봇 예찬론’을 풀었다. 아빠는 준석이 논리적으로 ‘바로 쓰는’지에 관하여 단락마다 시비를 걸어보았다.

내가 돈을 모으는 이유

(준석) 남자 아이들은 로봇을 즐긴다. 어려서부터 엄마가 사 주시는 변신 로봇을 자랑하면서 다니는데, 그 반면에 여자 아이들은 인형을 즐긴다. 바비 인형 같은 인형을 마치 친구 대하듯 갖고 논다. 두 성별은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여자는 시간이 흐르면 인형을 버리지만, 남자는 시간이 지나도 언젠가 다시 한번 로봇을 사랑하게 된다’ 라는 것. 내가 그랬다.

☞ (아빠) ‘여자는 시간이 흐르면 인형을 버리지만’의 근거가 뭐니? 은서한테 물어보았다. 버리는 아이도 있고, 안 버리는 아이도 있단다. 쉽게 일반화를 시키면 안 된다. “버린다”고 한 건 너의 일방적인 예단이잖아. 어떤 사실을 적었다면, 그 뒷받침을 해줘야 한단다. 안 그러면 무책임한 말이 된다.

(준석) 나는 어릴 적에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엄마가 로봇을 사 주셔서 로봇을 갖고 놀았다. 비행기 로봇, 기차 로봇, 크레인 로봇 등등, 참 많이도 갖고 놀았었는데, 언젠가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나, 로봇과 인연을 끊었다. 그러나 내가 첫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 나는 다시 로봇을 사랑하게 되었다. 바로 ‘트랜스포머’ 때문에.

☞ (아빠) ‘첫 중학교’가 있으면 ‘두 번째 중학교’도 있니? 그냥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라고 하면 되지.

(준석) 사실, ‘태권브이’ 나 ‘마징가 제트’ 같은 유치한 로봇 만화를 봐서 ‘로봇의 매력이 이런 거구나!’ 하고 깨닫기는 어렵다. 내가 이 ‘트랜스포머’를 사랑한 이유는 ‘내 수준’ 즉 중학생 수준에 맞는 변신 과정과 멋진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태권 브이 같은 경우는 중학생 수준에는 쨉도 못 미치기 때문에 좋아하기가 어렵다. 예전에 모두들 알겠지만, 태권 브이 영화가 개봉한 적이 있었?. 그러나 나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유치하니깐, 또 그림이니 현실성이 좀 떨어진다. 하지만 트랜스포머는 정말 그에 비하면 황새이다. 한마디로 태권 브이는 참새, 트랜스포머는 황새이다. 현실성 있는 변신 과정, 그리고 실제 차를 이용해서 그런지 더욱 멋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나는 하나를 사게 되었다.

☞ (아빠) “유치한 로봇 만화를 봐서 로봇의 매력이 이런 거구나!하고 깨닫기는 어렵다”고? 더 명료하고 쉽게 쓰면 안 될까? 그냥 “유치한 로봇 만화로는 로봇의 매력을 깨닫기는 어렵다”고 하면 되잖아? 또 태권브이는 중학생 수준에 왜 쨉도 못 미치지? 맨 끝에 이유를 적었지만 어렵다. 중요한 포인트는 ‘변신’이잖아. 한마디로 트랜스포머가 셀 수 조차 없이 여러가지 모양으로 변신을 해서 훨씬 역동적이라는 거잖아? “현실성 있는 변신과정”어쩌구 하는 말은 난해하다.

(준석) 하지만 ‘퀄리티’라고, 영화에 맞는 퀄리티, 즉 얼마나 영화에서 나온 로봇 답냐를 따졌을 때, 첫 번째로 산 ‘옵티머스 프라임’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정신을 이용해 놈을 파괴하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로봇을 갖고 하는 액션 놀이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남자 아이들이 괴팍한 건가?(?) 바이오니클이라는 레고를 이용하여 놈을 부수고, 때리고, 집어 던지고, 결국 창밖으로 내다 던지기까지에 이르러 버렸다. 하지만 후회했다. ‘아, 왜 그런 짓을!’

☞ (아빠) ‘나의 정신을 이용해’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넌 아빠의 질문에 ‘액션정신’이라고 답했다. ‘부수고 싶은 정신’이란다. 오로지 너만 알 수 있는 모호한 말을 쓰지 마라.

(준석) 그래서 결국 하나 더 샀다. 훨씬 큰 ‘버스터 옵티머스!’ 전보다 훨씬 좋은 퀄리티에다가 총까지 갖고 있었다. 정말 마음에 들었다. 어쨌든 지금도 그 로봇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아직은 만족한다.

☞ (아빠) 할 말 없다.

(준석) 한마디로 로봇은 남자의 인생에서 매우 친근하게 느껴지는 단순히 ‘장난감’이 아닌 ‘친구’ 같다. 여자 아이들은 성숙해지면 인형이 별로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남자들은 커도 로봇이 별로 유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앞으로도 난 로봇을 계속 살 거다, 내 계획을 대충 말하자면,

☞ (아빠) 한마디로? 그럼 한마디만 하지, 왜 두 마디를 하니? 한마디로 할 거면 “한마디로 로봇은 남자의 친구다”라고 하면 더 좋잖아. 여자들의 인형 얘기를 또 하는데, 네가 어떻게 아냐고. 근거도 대지 않으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준석) 이 생각만 해도 즐겁고, 허무맹랑하지만, 나는 어른이 되어서 버는 월급의 일부분을 로봇에 갖다 바칠 것이다. 수집이다. 우표나 병뚜껑 수집보다는 더 돈 들고 수준 높은 로봇 수집. 한달마다 두세개 사서, 갖고 놀고 싶다. 그럴 시간이 있을지는 아직 알 수가 없지만.

☞ (아빠) 한 문장 안에서 쉼표를 두 개 이상 찍지 마라. 그건 ‘복잡한 문장구조’로 가는 길이다. 띄어쓰기도 하나. ‘한달’이 아니라 ‘한 달’이다. ‘두세개’가 아니라 ‘두세 개’다. 숫자와 단위는 떼어놓는 거야.

(준석) 나는 아들이 좋다. 아들은 나와 같은 남자고, 내 취미에 맞는 물건을 가지고 싶어 하고(예외도 있겠지만) 내 가문의 대를 이어 줄 새싹이니까. 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남자 아기가 대체로 귀엽다. 그래서 아들을 낳아 그 로봇들을 줘야겠다. 로봇이나 바비 인형이나 둘 다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아들 있는 아비가 무언가를 사 주어야 한다면 그나마 로봇이다. 딸이 태어나서 바비 인형만 왕창 사줘 버리면 엄마는 몰라도 아빠는 좀 곤란하고 재미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아빠) 가문의 대를 이어? 준석에겐 마초소년, 아니 신보수 청년의 싹이 보인다.

(준석) 그 다음에 노후생활로 이어진다. 솔직히 아버지라면 몰라도 노인네가 로봇을 만진다… 좀 이상하고 어색하지 않나 싶다. 이제 노후생활 대비로 로봇을 좀 팔아먹어야겠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들, 그것도 얘기 시절의 아기가 갖고 논 로봇은 기스는 물론이고 부러진 부분도 그 코가 석 자일 텐데, 팔아먹을 수는 없을 듯하고, 손자를 줘야겠다. 로봇을 아껴다가 손자를 주어야겠다.

☞ (아빠) 벌써 노후생활을 걱정하다니. 손자에게 로봇을 아껴주겠다는 발상은 재밌긴 하다.

(준석) 좀 무서운 생각인가?? 내가 만약 죽게 된다면, 유치원에다가 멀쩡한 로봇을 기부해야겠다. 안된다면 말고. 그럼 제삿상에 올릴 과일과 함께 로봇을 올려놓게 해야겠다. 어쨌든 생각만 해도 재미있다. 오늘도 나는 돈을 모은다.

☞ (아빠) 제삿상에 로봇을 올려놔? 코믹하다. 이건 너의 독창적인 상상력인가? 흠, 웃기다 웃겨!


‘순수 박물관’에 전시하고 싶은 발상

오랜만에 준석의 글에 파동이 보인다. 고여 있지 않고 생동하는 느낌이다. 요즘 한동안 준석이가 은서한테 밀렸다. 성의 없다는 느낌을 조금 받은 게 사실이다. 이번 글은 뒷부분이 독창적이고 참신해서 마음에 든다.

결론을 내릴 시간이다. 오늘은 다른 형식으로 해보련다. 세 개의 후보를 선정해본다. 독자들이 마음속으로 투표를 해도 좋다. 짜잔, 후보 발표!

후보 1. 우리글을 바르게 쓰자

후보 2.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은 뚝! 그건 ‘바로쓰기’가 아니다.

후보 3. 제삿상에 로봇을! 마음 노화 결사반대!!

셋 중 독자들이 지지하는 결론 후보는 무엇인가. 나는 엉뚱하게도 3번을 지지하련다. 만약 준석이 가슴속에 ‘순수 박물관’(오르한 파묵의 소설 『순수 박물관』처럼)을 세운다면, “로봇을 아껴 손자에게 물려주고, 손자가 자신의 제삿상에 변신로봇을 올려놓길 바란다”는 깜찍한 발상을 로봇과 함께 전시하고 싶다. 준석이 그 소년다운 열망의 빛깔을 오래 지켜갔으면 좋겠다. 쉽게 말하자면, 마음이 늙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리다. 마음이 늙지 않아야 세상을 맑게 보고 갖가지 슬기와 아이디어로 세상을 헤쳐나가는 법이다. 그래야 창의적인 글도 쓴다.

멀리 돌아왔다. ‘바르게 쓰자’와 ‘바르게 살자’를 넘어 ‘창의적인 쓰기’까지 더듬었다. 결국엔 ‘마음의 노화’까지 걱정하고 말았다. 어떻게, 마음의 성형수술은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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