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로저>, 마이크 니콜스 감독, 2004 ━
카프카는 연인 밀레나에게 쓴다.
“문득 제가 당신의 얼굴을 하나하나 다 기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단지 당신이 커피숍의 탁자 사이를 걸어 나갔을 때, 그때의 당신 모습, 당신 옷, 그것만이 생생하게 보일 뿐입니다.”
방금 헤어진 연인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들뢰즈가 말했듯이, 잉여이며 또한 비가시적인‘어떤 것’이 연인의 얼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얼굴은 채워진 이미지로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표상을 거부하며 연인을 혼돈스럽게 만든다. 바르트가 일본의 연극 노[能] 배우의 얼굴에 대해, 얼굴은 쓰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것은 연인의 얼굴에도 적용될 수 있다. 연인의 얼굴은 항상 재서술되고, 그 재서술 때문에 항상 미지의 상태로 남게 된다. 그럴 때 연인의 얼굴은 그 누구의 인용도 표절도 아닌, 분석도 해석도 거부하는 고대의 상형문자가 되는 것이다.
지금 연인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가? 그럼 당신은 그의 무한한 얼굴을 끝도 없이 더듬고 있는 것이다. 그것만이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이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재인식시킨다. 반대로 지금 연인의 얼굴이 분명하게 그려지는가? 그럼, 그 얼굴이 명확하게 그려지는 것만큼 오히려 당신의 사랑은 역설적으로 비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런던. 영화는 댄이 앨리스를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댄은 신문에 부고 기사를 쓰는 기자이지만, 소설을 쓰고 싶어한다. 그리고 묘한 분위기의 앨리스는 스트립댄서. 댄은 앨리스에게서 영감을 얻어 소설을 쓴다. 더 정확하게는, 앨리스의 삶을 스토리텔링 하여 소설가가 된다. 앨리스는 댄의 뮤즈가 된 셈이다.
소설책에 넣을 사진을 찍기 위해 댄은 사진작가 애너를 만나고, 앨리스의 뜨거움과 다른, 무심하고 서늘한 매력을 가진 듯한 애너에게 이끌린다. 댄을 따라 스튜디오에 들어오게 된 앨리스는 댄과 애너 사이의 기운을 감지하고 슬픔에 빠진다. 그리고 그 슬픔은 아름다움이 되어 사진의 프레임에 담기고, 애너의 사진전에 전시된다. 눈물을 머금고 있는 앨리스의 사진 앞에, 애너의 연인 래리가 서 있다. 애너와 래리는 댄의 장난 때문에 만나게 된 인연. 자신들의 만남이 누군가의 장난 때문에 시작된 것을 알게 되었기에 둘의 관계는 장난스럽고 가벼운 속도로 진행되고 그 속도의 관성에 따라 결혼을 하게 된다. 래리도 애너와 댄의 관계를 알게 되고, 이제 모두 다 아는 상황에서 사랑의 집착과 질투는 더 집요해진다. 어느 한 군데가 끊어지지 않으면, 집착과 질투의 원환은 자기 꼬리를 문 뱀 우나보로스처럼 끝이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 우나보로스의 회전이 만드는 중력에서 가장 먼저 나온 이는 누구였을까. 가장 열정적으로 보였던, 가장 집착이 강해 보였던 앨리스였다.
영화 <클로저>에서‘앨리스(내털리 포트먼)’의 사진은‘댄(주드 로)’에게도‘애너(줄리아 로버츠)’에게도 문맥이 없다. 컨텍스트에 기대어 있지 않은 동떨어진 텍스트로서의 얼굴은 그저 얼룩이지만, 얼룩이기에 댄에게 푼크툼punctum, 즉 불가해하여 상처를 주는 얼굴이 된다. 앨리스의 사진은 애너가 촬영하고 인화하고 현상한 것으로, 그녀의 시선과 손을 거쳐간 이미지이다.
문제는 댄이 스트립댄서인 앨리스와 사진작가인 애너를 동시에, 다?게 사랑한다는 것이다. 댄의 또 한 명의 연인(애너)이 포착한 자기 연인(앨리스)의 얼굴, 그 얼굴 앞에 서 있는 애너의 또 다른 연인 래리(클라이브 오웬). 앨리스는 사진 속 자신의 이미지로, 애너는 그 이미지 바깥에서 댄을 아프게 한다. 연인을 아프게 하는 것은 자해라는 것을 모른 채 상처를 준 주체는 상처를 되돌려 받는다. 한 연인은 다른 연인의 부두인형인 것처럼 한 연인을 찌르면 다른 연인이 동시에 아프다.
문득, 그를 본다. ‘그가 그렇게 걸었었나. 저렇게 웃었었나. 그가 저렇게 팔을 들어 올렸었나. 그의 앉은 모습의 각도와 선이 저렇게 위태로웠었나. 그의 순간, 돌린 얼굴에서 떨어지는 눈물은 기억 속에 있었던 것인가.’ 시선을 거두고 시간을 흘려보내고 다시 떠올리면 그의 얼굴은 다시, 없다. 그의 얼굴은 얼음조각tableau이 될 수 없는 것. 정지된 사진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멈추지 않고 기호를 쏟아내는 부정형의 텍스트.
사랑하면서 우리는 삶을 허송하고,
과거를 유린하고, 시간을 실종시킨다.
허송과 유린과 실종으로 인해 사랑은 더욱 지지부진 지겨워지고, 그 지겨움때문에 스스로를 덜 기만하게 된다. 마침내 가면을 벗고 연인을 대한다. 그러면서 점점 이별할 엄두조차 나지 않게 된다.
앨리스와 댄, 댄과 애너, 애너와 래리, 래리와 앨리스의 폐쇄회로에서 그들은 전방위로 긁고 파인다. 끝까지 가면을 닦아내지 않았던 앨리스, 그녀는 자신의 진짜 이름(제인 존스)을 그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고, 처음 댄을 만났을 때의 모습도 아니고, 스트립댄서의 얼굴도 아니고, 애너의 사진 속 얼굴도 아닌 또 다른 텍스트인 얼굴로 댄을 떠나 군중 속에 섞인다. 앨리스가 처음 댄을 만나“Hello, stranger”라고 말했을 때 그녀는 댄에게 조금씩 다가갈 수 있으리라Closer 생각했을까? 댄의 마리오네트가 되려고 했다가, 단지 자신이 그의 시뮐라시옹이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 그래서 떠났을까? 사진 속에 제 민얼굴을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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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연인이 마리오네트처럼 아름답지만 그것이 당신이 만든 이미지라면,당신에게 보이는 시뮐라시옹의 얼굴이라면, 그래도 좋은가요? 당신의 연인은 언제나 낯선 이stranger여야 할 것입니다. 점점 더 다가가고 싶을 때에도 그의 손과 입술과 몸을 당신의 모드mode에 맞추고 싶더라도, 그 순간 당신은 자신을 오히려 결박해야 할 것입니다. 그가 아무것도 아닌 물物, thing이 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을 테니까요.
카프카의 편지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당신이 나를 밀쳐냈습니다. (……) 아주 슬픈 생각이 들었어요. 당신이 거절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을 마음대로 다룰수 있는 어떤 말 없는 여인처럼 다룬 자신이…… 슬펐던 것입니다.”(1920. 6. 15.)
연인은 끝내 타자이어야 하고, 우리는 연인의 타자성을 훼손하지 말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와 영원히 사랑하고 싶다면 클로저가 되는 것을, 아프지만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